-봉천동 재개발 철거 용역업체 ‘적준건설’, 철거팀장이 대장동게이트 유동규라는 사실에 전율
-경찰-용역깡패 원팀. 권력 비호 받아온 깡패들이 지자체장과 한통속되어 제도권 권력 잠식
90년대 중반 시작된 봉천동 일대 재개발 사업은 그 수용과 철거 단계의 난폭함으로 더 유명세를 탔었다. 90년대 초중반 봉천동 고개 어느 연립의 난방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반지하방에서 자취를 하던 나는 93~94년 무렵 철거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봉천동 일대를 소일 삼아 자주 돌아다녔다. 말 그대로 곳곳이 전쟁터였다.
봉천(奉天)이란 지명의 역설이기라도 하듯, 가난한 도시 빈민들의 빼곡히 어깨를 맞댄 단칸방들이 들여다보이는 가파른 골목길을 걷노라면, 시골 출신의 가난한 농부 아들 신분조차도 사치스러워지고는 했었다.
당시의 철거 용업업체들의 철거 방식은 말 그대로 무자비함 그 자체였다. 방에 사람이 있건 없건 포크레인 삽날을 휘둘렀다. 막아서는 사람들에게는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는 기본이고, 쇠 파이프며 자전거 체인 등이 마구 휘둘러졌다.
흔히 사시미라 불리는 칼도 위협, 협박용으로 놈들의 손에서 그 예리한 날을 번뜩였다. 오죽하면 초로의 아주머니들이 나체로 스크럼을 짜고 용역 깡패들을 막아섰을까마는 별무소용이었다.
당시 철거 용역업체들에 소속된 철거 반원들은 거의 100% 깡패들이었고 양아치들이었다. 크고 작은 조폭 조직에 속해 있었고, 그들은 철거 현장에서 늘 경찰의 비호를 받았다.
그런 먼 기억들을 이재명의 대장동 게이트가 호출해 냈다. 당시 그 봉천동 재개발의 철거 용역업체가 ‘적준건설’이었고, 거기 철거팀장이 이재명의 최측근이자 대장동 게이트의 공모자인 유동규였다는 소문에 전율한다.
분명한 것은 당시 철거 용역업체들에 소속된 철거 반원들은 거의 100% 깡패들이었고 양아치들이었다. 크고 작은 조폭 조직에 속해 있었고, 그들은 철거 현장에서 늘 경찰의 비호를 받았다. 놈들은 나체로 시위에 나선 아주머니들을 향해 쌍욕을 퍼붓고, 철거를 명분으로 대놓고 성희롱과 성추행을 했다.
그들 중에 적준건설이란 깡패들의 철거 용역업체가 있었고, 유동규란 양아치가 있었다는 소문이다. 당시 놈들은 김영삼 정권의 사실상 비호를 받으며 봉천동뿐만 아니라 전농동, 금호동 등지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가며 강제 철거에 저항하는 주민들을 폭행하고, 성희롱·성추행을 일삼았다.
당시 철거 장면들을 기억하노라면 경찰은 용역 깡패들과 사실상 원팀이었다. 그렇게 20년, 30년을 권력의 비호를 받아온 것도 모자라 깡패들은 사악한 지방 자치단체장,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들의 비호를 받거나 한통속이 되어 제도권 권력을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동규가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고 보니까 한양대 음대 출신으로 소개된 프로필이 대단히 어색하다. 음대 출신의 용역 깡패라… 이재명이 유동규를 필요로 한 이유가 명료해진다. 재개발, 재건축 현장에서 닳고 닳은 용역 깡패야말로 이재명식 공공 개발에 필수 아이템이기 때문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