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1차 바이블파워 http://www.biblepower.co.kr/
2차 https://m.blog.naver.com/ddoksaseyo/48489745
조승규 / 킹제임스성경신학대학 교수
샤머니즘과 오순절 성령운동
한국 교회가 초기에는 물론 지금도 오순절 성령운동을 열광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샤머니즘에는 병을 고치고 복을 비는 ‘재수굿’이 있는데, 여기에는 노래와 춤이 있고 축제와 흥겨움이 있었던 것처럼 성령운동에도 병고침과 방언과 시끄러움과 손뼉 치는 찬송과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치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1]
무당이 굿을 하면서 신들림이나 입신 등의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초기 한국식 기독교의 신비체험으로 나타나 감각적인 느낌을 성령을 체험한 것으로 오해하게 했고, 또 입신, 환상, 방언, 기적, 체험 등 신비적인 것들을 요구하는 그릇된 신앙을 만연하게 했다. 따라서 소위 열성적인 신앙과 신비적인 체험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샤머니즘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성령운동을 한다는 교회와 목사는 부흥회나 집회에서 마치 굿을 할 때 신령을 부르듯이 성령을 부르거나 성령충만을 좌우할 수 있는 것처럼 외친다. 귀신보다 강력한 성령의 도움으로 방언과 신유, 축사의 은사를 받기를 고대하는 교인들은 샤머니즘적인 토양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2]
천도교의 창시자인 수운 최재우가 상제(上帝)의 소리를 듣는 과정에서 온 몸에 찬기운이 들면서 몸 떨림의 현상을 체험했는데 무당들의 접신 과정에서도 몸 떨림이 있으며,[3] 한국 교회에서 소위 성령충만하다는 교인들도 성령충만의 증거로 손가락의 떨림이나, 몸의 진동, 혹은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 그리고 방언, 꿈, 환상 등을 언급했다는 사실은[4] 소위 성령충만과 샤머니즘의 외형적인 모습이 같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샤머니즘과 같은 모습들을 지닌 한국 교회의 부흥회에 대한 다음의 평가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부흥회에서는 예언, 방언, 치병, 묵시 등이 강조되었고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한 통로는 부흥회와 산기도 그리고 금식이었다. 이런 부흥회들은 단지 대규모의 그리고 세련된 방식으로 진행되는 “무속신앙의 강신회(降神會)”를 닮고 있었다.」[5]
샤머니즘이 한국식 기독교에 미친 영향
샤머니즘이 생겨나는 원인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행복과 건강과 성공을 찾는 인간의 본능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샤머니즘을 철저한 현실종교라고 하는 것이다.[6] 특히 개인의 위기나 곤경, 사회적인 혼란기에 샤머니즘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1900년 초의 국가적 혼란기에, 또 한국전쟁 이후의 어려운 시절에 샤머니즘은 한국식 기독교로 자리잡았다.
(1) 기복적인 질병 치유 - 한국 교회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전도할 때에 첫마디가 ‘예수 믿고 복받으세요,’ ‘예수 믿으면 좋아요’ 등이다. 왜냐하면 이 말이 복 받기 원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상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에서 무당의 역할은 신령과 사람의 중간에 서서 병을 낫게 해 주고 복을 받게 해주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목사를 병을 낫게 해주고 물질적인 복을 받게 해주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샤머니즘에 기인한 것이다. 또 목사들이 복을 주는 사람으로서 축복기도나 안수기도를 해야 하고, 헌금자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해야 하며, 꼭 목사의 기도를 받아야 병이 낫는다는 생각들은 모두 샤머니즘적인 것이다.[7] 증산도에서는 신도들에게 시천주 태지주(侍天呪 太之呪) 등의 주문을 외워 수련을 하여 신이 몸에 내리는 강신(降神)이 되면 병이 낫는다고 가르치는데,[8] 질병의 원인이 귀신이라는 생각과 이 귀신을 무당의 굿이나 주술적 방법들로 축사, 즉 쫓아낸다는 샤머니즘은 김기동 목사의 귀신론과 축사는 물론, 한국식 기독교의 축사와 치유 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2) 기복적인 설교 - 1960년대 이후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적극적 사고를 강조하면서 교인들의 복 받고자 하는 욕구 충족에 적극적으로 나선 대표적인 인물은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와 광림교회의 김선도 목사이다. 이들 외에도 부흥사들이 적극적 사고의 중요성을 그들의 설교에서 강조하였는데, 이는 샤머니즘의 현세적 축복신앙과 일치한다. 1982년 실시된 한 조사에 의하면, 43.6%의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치유와 축복에 관한 설교를 가장 많이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에 가정의 평화에 관한 설교 6.4%를 합하면 50%에 달한다. 이것은 신도들이 기복적 신앙을 원하고 있고 목회자들이 여기에 호응하여 그런 신앙 형태를 개발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9]
(3) 기복적인 기도 - 새벽 미명에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정성껏 빌었던 여자들의 모습에서 기복적인 기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수험생을 위한 백일작정기도, 불임성도들의 백일작정기도, 가장과 사업의 성공을 위한 백일작정기도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10] 또한 한국 교회의 기도는 축복의 오용과 남발로 인해 기복신앙을 조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부흥사들이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라고 설교 중간 중간에 말했으나, 지금은 한국 교회 강단에서 설교나 기도할 때에 보편화된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결과 설교를 하는 것인지 축복 기도를 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가는 정도이다.[11]
(4) 기복적인 심방 -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문제가 있는 사람은 무당을 초청해서 도움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무당은 굿을 하고, 독경을 해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해 주며, 또 삶의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이 일을 위해 봄가을로 정기적인 방문과 굿을 통해서 그 가정의 복을 빌어 주는 민간의 관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이와 같은 풍습으로 인해 한국 교회에 봄가을의 대심방이 제도화되고, 여자 전도사가 없이는 목회를 하기 힘든 한국 교회의 상황이 된 것은 모두 샤머니즘의 산물이다.[12] 특히 이때 무당이 받아가는 복채와 같이 목사들이 심방 때 기도해 주고 봉투를 받아가는 것이 한국식 기독교가 아닌가! 또한 대심방 때나 그 밖의 대소사에서 목사의 심방을 기다리는 교인들의 염원 속에 자기 자신과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보다는 자기 집에 복을 빌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훨씬 많으며 그중에서 대다수는 화를 제거하고 복을 기대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모습이다.[13]
(5) 기복신앙의 중심지, 기도원 - 기복신앙을 형성하고 샤머니즘적 신비체험을 파급시키는 역할을 한 것은 기도원이다. 대한수도원, 용문산기도원, 한얼산기도원, 오산리금식기도원 등은 은사주의 성령운동의 중심으로 한국 교회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런 기도원의 예배에서 설교자들은 교인들의 현실적 욕구에 맞는 설교를 함으로써 갈급해 있는 자들의 필요를 채워줬으며, 그 결과 기도원은 “문제 해결의 장소”로 인식됨으로써 그 폐해를 더하고 있다.[14]
결론
샤머니즘은 한국에 기독교가 수용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샤머니즘의 토대 위에 한국 교회는 초기 선교부터 비성경적인 신앙을 뿌리내리고 비정상적인 양적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한국식 기독교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한국의 무속적인 종교의식이라는 토양이 있었기 때문이다.[15] 따라서 「기독교는 많은 그리스도 교인들에게 있어서 공식 종교요, 실질적인 종교는 샤머니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16]라는 평가는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한국 교회가 샤머니즘을 비판해 왔지만, 동시에 현세적인 물질적 복을 강조하여 샤머니즘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들을 교회로 이끌어 모았으며, 축복과 치유를 강조하고 행하는 교회가 비정상적인 양적 성장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순복음교회이다. 또한 너나없이 성장을 추구하는 교회들이 더욱 샤머니즘적인 한국식 기독교의 확장을 가속시키고 있다. 따라서 물질주의, 물량주의를 경계하는 강단의 소리는 형식에 그치고, 그것을 외치는 설교자들이 거기에 “가장 앞장서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17] 한국식 기독교의 문제 해결은 바른 성경으로 돌아가고, 바른 교리를 통해 철저하게 샤머니즘적인 전통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말씀의 칼로 베어버리는 것이다. 육신적인 생각을 버리고 진통이 있더라도 성별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
[1] 서광선, 「한국의 무속과 기독교」, 풀빛목회, 1984. 4, p.49.
[2] 김영동, 「샤머니즘적인 영성의 도전에 직면한 한국 개신교의 선교적 과제」, 장신논단, 1994, 제10집, p.566.
[3] 박광수, 「한국종교와 샤머니즘」, 풀빛목회, 1997. 10, pp.98-99.
[4] 김태곤, 한국무속연구, (서울: 집문당, 1983), pp.234 -239.
[5] Chung, David, “Relgious Syncretism in Korea Society,” Ph.D. Dissertation, Yale University, 1959, p.284; 김흥수, op. cit., p.167에서 재인용.
[6] 전호진, 「부흥하는 샤머니즘, 쇠퇴하는 교회」, 월간고신, 1997. 1, p.47.
[7] 김득룡, 임옥, 조종남, 「한국 교회와 샤아머니즘」, 월간목회, 1985. 6, p.32.
[8] 박광수, op. cit., pp.100-101.
[9] 이종윤 편, “한국 교회 성장과 그 문제점,” 한국 교회의 종교개혁, 도서출판 엠마오, 1983, p.113.
[10] 정도량, 「기도의 샤머니즘 요소를 극복하자」, 월간목회, 2000. 3, pp.43,44.
[11] 장차남, 「기도의 기복성을 극복하자」, 월간목회, 2001. 7, p.62.
[12] 박근원, “한국 교회와 목회신학,” 기독교사상, 1986. 6, pp.60,61; 김흥수, op. cit., p.192에서 재인용.
[13] 최건호, 「한국 교회 성숙한 신앙을 가르치자」, 월간목회, 2001. 7, p.57.
[14] 김흥수, op. cit., p.162.
[15] 서광선, op. cit., p.49.
[16] 김영동, op. cit., p.555.
[17] 이만열, 한국기독교와 역사의식, 지식산업사, 1981, p.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