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은 산… 金金金 ‘명중’
[도쿄올림픽]안산, 양궁 女개인전서 금메달
한국 선수 첫 여름올림픽 3관왕
사격 김민정, 25m 권총 ‘깜짝 銀’
펜싱 男에페 단체전서 銅 추가
‘강심장’의 눈빛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의 막내 안산이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활을 쏜 뒤 그 궤적을 마지막까지 응시하고 있다. 준결승과 결승에서 치른 슛오프에서 두 번 모두 10점을 쏘며 금메달을 딴 안산은 24일 혼성전과 25일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더해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첫 여름올림픽 3관왕에 올라 최고 신궁이 됐다. 도쿄=뉴스1
세트 스코어 5-5. 금메달과 은메달의 주인공은 이제 슛오프에서 단 한 발로 결판나게 됐다. 긴박한 순간에도 스무 살 신궁 안산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류수정 여자 대표팀 감독이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익살스러운 제스처를 보이자 ‘아니다’는 의미로 손가락을 젓기도 했다. 사대에 오른 안산의 손을 떠난 화살이 70m를 날아가 노란색 중앙에 꽂혔다. 10점 만점. 과녁을 응시하던 안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8점을 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옐레나 오시포바는 허탈하게 웃었다. 비로소 안산은 류 감독의 품에 안기며 승리의 환호에 젖어들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3관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안산은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오시포바를 슛오프 끝에 6-5(28-28, 30-29, 27-28, 27-29, 28-27<10-8>)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안산은 혼성전과 여자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까지 휩쓸며 한국 선수로는 첫 여름올림픽 3관왕에 올랐다. 겨울올림픽에서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남녀 쇼트트랙 3관왕에 오른 진선유, 안현수가 각각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한국 양궁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4개 전 종목 우승을 휩쓴 데 이어 혼성전이 추가된 이번 대회에서 5개 금메달 석권에 한 개만 남겼다. 31일 남자 개인전에서 김우진(29)이 마침표에 도전한다.
안산은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속 슛오프를 치르는 숨 막히는 접전에도 두 번 모두 10점을 쏘는 강심장을 과시했다. 결승 슛오프에서 안산의 심박수는 118bpm이었던 반면 오시포바는 167bpm까지 치솟았다. 안산은 “끝나고 나니 더 긴장된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린 그는 “갑자기 (감정이) 차올라서 울지 마 울지 마 했는데 나왔다. 한국에 있을 때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금메달이 확정되자 양궁장에는 방탄소년단(BTS)의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가 울려 퍼졌다. 세계 양궁을 평정한 안산을 위한 축가였다.
김민정(24)은 사격 여자 25m 권총 결선에서 비탈리나 바차라시키나(ROC)와 38점으로 동률을 이룬 뒤 슛오프에서 1-4로 져 은메달을 따냈다. 이번 대회 한국 사격의 첫 메달이다.
박상영(26), 권영준(34), 송재호(31), 마세건(27)으로 구성된 한국 남자 펜싱 에페 대표팀은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중국을 45-41로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6 리우 올림픽 에페 개인전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을 되뇌며 금메달을 딴 박상영이 고비마다 해결사로 나섰다.
도쿄=유재영 기자, 지바=김정훈 기자
“연아처럼 유명해지겠다던 산이 꿈 이뤘어요”
[도쿄올림픽]안산 모교 광주여대서 응원한 부모
“하고 싶은 것 하며 살고 싶다던 딸… 관심만 가져주고 집착 말아 달라”
축제서 대나무 활 갖고 놀던 안산, 평정심 장점… 광주체중서 두각
“무조건 과감하게 쏘고 싶다” 포부
“장하다” 한국 양궁 여자 국가대표 안산의 아버지 안경우 씨(오른쪽 사진 오른쪽)와 어머니 구명순 씨가 딸이 다니는 광주여대에서 응원을 하다가 금메달을 확정하는 모습에 환호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안산의 어린 시절 모습. 어릴 적 대나무 활을 갖고 놀던 안산은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땄다. 광주=뉴스1·안산 인스타그램
“산이는 ‘박지성, 김연아 선수처럼 스포츠를 잘 모르는 국민들도 자신을 알게 되면 좋겠다’고 했었어요. 그 소원을 푼 거 같아요.”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의 안산(20·광주여대)이 30일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첫 여름올림픽 3관왕에 오른 순간 어머니 구명순 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광주 광산구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체육관에서 함께 경기를 지켜본 안산의 부모와 지도자들, 광주여대 양궁팀 선후배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로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대학 측은 유니버시아드체육관에 안산이 출전한 여자 개인전 8강과 4강, 결승전 중계방송을 함께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른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화상회의 앱을 통해 온라인 응원을 했다.
초조하게 결승전 경기를 지켜보던 아버지 안경우 씨와 어머니 구 씨는 딸이 결승전 슛오프에서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누르고 우승하자 주먹을 불끈 쥐고 양팔을 치켜올리며 환호했다. 구 씨는 “뭐든지 잘하는 내 딸이 당연히 3관왕 할 줄 알았다”며 “대한민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에서 감동의 드라마를 써준 내 딸이 너무나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구 씨는 또 “이번 올림픽을 치르면서 우리 국민 중 산이를 응원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산이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던 아이다. 관심만 가져주시되 집착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안산은 우연한 기회에 양궁에 입문했다. 광주 문산초등학교에 다닐 때 양궁부가 창단하면서 그는 덜컥 입단서를 냈다. 지역 축제에서 대나무 활을 가지고 노는 딸을 유심히 지켜본 어머니 구 씨도 선뜻 찬성했다. 당시만 해도 안산은 왜소한 체격에 장난기 많은 평범한 선수였다.
안산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광주체중에 입학한 이후다. 높은 집중력과 실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 큰 장점이었다. 중학교 시절 그를 지도한 박현수 광주 운리중 양궁부 코치는 “산이가 중3 때 문체부 장관기에서 전 종목 우승(6관왕)을 했을 때 향후 큰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이 지도자로서 최고로 행복한 날”이라고 감격스러워했다. 안산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키가 170cm 이상으로 훌쩍 자랐다. 탄탄한 신체가 뒷받침된 안산은 광주체고에 다니면서 국가대표로 뽑혔고, 2019년에는 테스트 이벤트로 치러진 도쿄 프레올림픽에서 우승했다.
2012 런던 올림픽의 기보배, 2016 리우 올림픽의 최미선에 이어 안산까지 3대회 연속 금메달리스트를 지도한 김성은 광주여대 감독은 “산이가 입학했을 때 어떤 선수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니 ‘선생님, 저는 10점을 쏘든, 8점을 쏘든 무조건 과감하게 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답하더라. 남다른 선수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년 전 본보와 한 인터뷰에서도 안산은 18세 어린 나이에도 시종일관 침착하고 담담하게 질문에 답했다. 국가대표가 되어서 어떤 점이 좋으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 진천선수촌 밥이 너무 잘 나와요. 제가 가난한 학생이다 보니 국가대표 수당이 나오는 것도 너무 좋아요(호호).”
이헌재 기자, 광주=정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