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울에게 미칠 세 가지 징조
삼상 10:1-8
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2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4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의 손에서 받으리라
5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 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6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삼상 10:1-8 /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사로잡다] 사무엘은 준비해 두었던 기름병을 꺼내서 사울의 머리에 붓고 빰에 입을 맞춘 뒤에 이렇게 말하였다. `이는 바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신 것을 뜻하오. 이제 당신은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며 사방에서 괴롭히는 원수들로부터 이 백성을 해방시키시오! 여호와께서는 당신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의 기업을 다스리는 영도자로 세우고, 그 징조를 보여줄 것인데, 이제 가면서 그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오. 2) 이제 내게서 떠나 저 멀리 베냐민 지파로 들어가는 경계선을 넘다 보면 라헬의 무덤 근처에 있는 큰 바위 그늘에서 쉬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오. 그 사람들이 당신에게 이런 소식을 전해 줄 것이오. '당신이 찾아다니는 암나귀들은 벌써 찾았으나 이제는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아버지께서 걱정하고 계십니다.' 3) 또한 거기서 떠나 더 가다가 다볼의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벧엘의 성소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오. 한 사람은 세 마리의 염소 새끼를 안고, 또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들고, 다른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메고 올 것이오. 4) 그들이 당신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면서 떡 두덩이를 줄 것이니 받으시오. 5) 그 다음에는 기브아로 가서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시오! 당신이 그 성읍으로 들어가다 보면 산당에서 제사드리고 내려오는 예언자들의 무리와 마주칠 것이오. 그들은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연주하고 내려오면서, 그들 자신이 예언자의 황홀경에 빠져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를 것이오. 6) 그때에는 여호와의 영이 당신에게도 내리 덮쳐서 당신도 예언자들의 황홀경에 빠져 그들과 더불어 춤추고 노래 부르게 될 것이오. 그 순간부터는 당신도 변화되어 새사람이 될 것이오. 7) 당신에게 이런 징조가 모두 일어나거든 당신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망설이지 마시오! 당신에게 의욕이 생기는 대로 행동하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이오. 8) 그 다음에는 당신이 나보다 먼저 길갈 성소로 내려가서 7일 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으시오! 나도 그곳으로 내려가서 주께 온전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바치겠소! 당신이 그 다음에 하여야 될 일은 내가 그때에 가서 모두 알려 드리겠소!'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며 여호와께서 기업의 지도자로 삼았다고 선언합니다. 이에 따른 세 가지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전합니다.
기름부음 받은 사울(1) 사무엘이 사울을 불러 기름을 부은 일은 공식적인 왕위즉위식이 아니었습니다(삼하 2:4; 5:3). 사울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는 중에 사무엘을 만났으며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지도자가 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예언이 사울에게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지라도,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은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십니다.
세 가지 징조(2-6) 사울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름부어 왕으로 세우심에 대한 확신을 줄만한 징조가 필요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세 가지 징조를 전합니다. 첫째, 사울이 해결해야 할 잃어버린 암나귀를 이미 찾았다는 전갈을 받게 된다는 일입니다. 둘째,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러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 떡 세 덩이 중 두 덩이를 받게 될 일입니다. 그리고 셋째, 하나님의 산에 이르러 성읍으로 들어갈 때 산당에서부터 온갖 악기를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선지자의 무리들이 만날 것이며 사울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사울이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될 일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을 돕는 분이십니다.
결단의 촉구(7-8) 사무엘은 이 세 가지 징조가 임하거든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줄로 믿고 기회를 따라 행하라고 사울에게 결단을 촉구합니다. 결단하여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길갈로 내려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것과 앞으로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일을 기다리라고 당부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왕이 된 후에도 초심을 지키는 길이 될 것입니다. 사울뿐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모든 성도에게 꼭 필요한 일입니다.
적 용 :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은 여호와께서 친히 부르신다고 믿습니까?
독립운동가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청년들에게 강의한 뒤,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 한 청년이 한국엔 위대한 인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시대를 이끌만한 지도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빨리 계몽되어서 민족을 이끌고 일깨울만한 지도자가 어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안창호 선생은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자네는 정말 우리나라에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자네를 비롯한 모든 청년들이 인물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네. 자네는 민족을 이끌만한 인물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가? 인물이 없음을 불평만 하고, 인물이 되려고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인물이 없다고 탄식하기 전에 먼저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게.”
호크마 주석
=====10:1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 여기서 '기름병'은 목이 좁은 그릇이다. 그리고 당시 기름 부음을 위하여 여기에 담겨졌던 기름은 사무엘이 이때를 위하여 특별히 준비한 거룩한 관유(출 30:23-33)였던 것 같다(Smith, Fay). 한편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병'이외에 기름부음을 위하여 '양뿔'도 사용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16:1, 13). 사울의 머리에 붓고 - 기름을 붓는 일은 맡겨진 직분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음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동이었다. 즉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그에게 신적 사명과 권위를 부여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공식적으로 수행하도록 한다는 임직(任職)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기름 부음의 의식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성별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사 61:1). 한편 구약 시대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제사장과 왕, 그리고 선지자였다. 따라서 여기 사울에 대한 사무엘의 '기름 부음'은 이제부터 이스라엘의 왕직(王職) 역시 이미 존재하던 제사장직 및 선지자직과 더불어 동등한 하나님의 3대 신적 직분으로서 그 권위를 가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Keil). 또 한편 여기서 기름 붓는 일이 비밀리에 행해진 까닭은, 백성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기름 부음을 받기 전에 사울이 먼저 하나님의 소명을 철저히 깨달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여기의 기름 부음은 사울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께 피택되어,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나서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입맞추어 - 이 입맞춤은 권위에 대한 인정과 존경의 표시(Lange, 시 2:12), 또는 은혜 받는 자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표시(Keil, Schmidt)이다. 그런데 당시 이와 같은 입맞춤은 대개 상대의 입이 아닌 손, 무릎, 이마, 혹은 옷 등에 하였다. 그 기업의 지도자 - 여기서 '기업'(* , 나할라)은 '몫', '유산', '소유'등의 뜻으로서,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으로 친히 택하여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출 19:5;신 4:20)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한편 '지도자'(* , 나기드)에 대해서는 9:16주석을 참조하라. 삼지 아니하셨느냐 - '진실로 그렇다'라는 의미로서, 곧 자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울에게 사무엘이 하나님의 그 뜻에 순종케 하려는 확증적 질문이다.
=====10:2
베냐민 경계 셀사 - '셀사'(Zelzah)는 라마 근처, 그리고 벧엘 남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창세기 35:19에 따르면, 그곳은 베들레헴과 가까운 곳이었다. 한편 사울은 이때 사무엘과 함께 있었던 '라마'를 떠나 자신의 성읍 '기브아'로 가는 도중 이곳 '셀사'를 지나야 했을 것이다. 라헬의 묘실 - '라헬'은 야곱의 아내 중 가장 총애받던 여인으로서(창 29:18, 30), 요셉과 베냐민을 낳은 생모이다(창 30:22-25;35:18). 그녀는 온 가족과 함께 세겜에서 벧엘을 거쳐 당시 이삭이 살고 있던 헤브론으로 올라가는 도중 임산(臨産)하여 베냐민을 낳다가 그 산고(産苦)로 죽었다(창 35:16-19). 그러자 야곱은 그녀를 그곳 근처에 장사지내고 묘비를 세웠다(창 35:20). 오늘날 그곳은 벧엘에서 베들레헴으로가는 노상, 곧 베들레헴 북서쪽의 '쿠벱 라힐'(Kubbet Rahil) 근방으로 추정된다(Wilson). 한편 '묘실'은 일반적인 무덤을 뜻한다(창 35:20;47:30;겔 32:23, 24). 두 사람을 만나리니 - 구약 시대의 율법상 '두 사람'은 특별한 일을 증언함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숫자이다(신 19:15). 그런 점에서 여기 '두 사람'은 사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의구심을 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의구심을 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증인'(證人)임이 분명하다.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 하리요 - 이때는 사울이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로 집을 떠난지 벌써 나흘이 지난 때였으므로, 오히려 아들 사울을 향한 아비 기스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9:5, 20, 26).
=====10:3
다볼 상수리 나무 -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일부 주석가들(Ewald, Thenius)은 그곳을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 매장됐던 '벧엘 아래 상수리 나무'와 일치시키려 한다(창 35:8;삿 4:5). 그러나 그때 사울은 라마를 떠나 자신의 성읍 기브아로 가던 길이었으므로, 여기 '다볼 상수리 나무'는 기브아 근처 어디에 있었을 것으로 봄이 타당할 듯하다. 하나님께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 - '벧엘'(Bethel)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제단을 쌓기 훨씬 이전부터 (창 12:8;13:3, 4) 이미 요새화된 성읍으로 발전된 듯하다(Kelso). 그곳이 그처럼 일찍부터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능선 지대인 그곳에는 많은 샘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은 신약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물통이 필요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이곳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단을 쌓은 것 외에 야곱 또한 단을 쌓음으로써(창 28:19;35:1-7),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성역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삿 20:18-28). 따라서 사무엘 당시까지도 벧엘은 라마에서와 같이(7:16;9:12), 별도의 제단이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드려졌음이 분명하다(Keil, Fay, Smith). 염소 새끼 셌 - 이것은 세 사람이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칠 분량이었다. 떡 세 덩이 - '떡'은 소제의 제물로서 하나님께 바쳐졌었다(레 2:4-6). 포도주 한 가죽 부대 - '포도주' 또한 희생 제물과 함께 하나님께 바쳐졌었다(1:24;민 15:6, 7).
=====10:4
문안하고(* , 솨알루레솰롬) - 직역하면 '평강을 간구하였다'란 뜻이다. 여기서 '솨알루'의 기본형 '솨알'(* )은 '질문하다'는 의미 외에 '원하다' 및 '간구하다'란 뜻도 있다(1:17;왕상 3:10;전 2:10). 아무튼 벧엘 순례자의 이같은 행동은 결국 그들이 사울을 이미 지도자와 같은 신분으로 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삼하 8:10;와하 10:13). 떡 두 덩이를 주겠고 - 벧엘 순례자의 이 같은 행동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사울을 존경하는 의미와 함께 사울의 허기를 베워 주기 위함이며(9:7), (2) 이스라엘의 모든 값진 것이 사울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며(9:20), (3) 특히 그 떡이 하나님께 바쳐질 예물이었다는 점에서, 벧엘 순례자의 행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울을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인정하는 행위였다(1절;9:16).
=====10:5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 여기서 '하나님의 산'(* , 기브아트하엘로힘)은 곧 '하나님의 기브아'(Gibeah of God, NIV)라는 뜻으로서, 이는 사울의 고향인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를 가리킨다(Keil, Fay, Smith). 그런데 '기브아'를 수식하는 '하나님의'란 말은 그곳에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산당(山堂)이 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사울이 왕이된 이후 이곳은 '사울의 기브아'라고 불리워졌다(11:4;15:34;삼하 21:6),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따르며,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아무튼 사울은 자기 고향 집의 성읍 기브아로 들어가는 길에 마침 그곳 산당에서 제사드리고 내려오는 선지자의 무리와 만난 것이었다.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 여기서 '영문'(* , 네치브)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즉 이 영무(營門)은 (1) 블레셋 족속이 그 권위의 표시로 세운'기둥'(post)을 뜻한다는 견해(Wellhausen, Bottcher), (2) 블레셋 족속이 공물을 받기 위해 설치한 행정 관서 또는 사무소를 뜻한다는 견해 (Budde, Caird, Driver, Thenius), (3) 블레셋 족속이 이스라엘을 감시.통치하기 위하여 요소(要所)에 배치한 '수비대'(garrison)를 뜻한다는 견해(KJV, RSV)등이다. 그런데 이후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신의 군대로 이곳을 공격했다는 성경의 기록으로 보아(13:3, 4), 이곳은 세번째의 견해대로 블레셋 족속이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들의 군사력 강화를 위해 이스라엘 땅에 구축한 진지(陣地) 또는 군사 기지(MILITARY POST)임에 틀림없다(Keil, Fay, Smith; 삼하 8:6, 14). 그리고 이러한 블레셋의 수비대는 사사시대 말기 경부터 시작된 40년 간의 블레셋 통치기간(삿 13:1) 중에 설치된 것 같다(Leon Wood, 4:10 주석 참조). 선지자의 무리(* , 헤벧 네비임). 성경에 분명한 언급은 없지만, 아마도 이들은 사무엘의 영적 지도를 받으면서 훈련을 받던 자들이었던 것 같다(L.Wood, F.R.Fay). 즉 이들은, 블레셋에 의해 오랫 동안 압제를 받던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민족주의적 혹은 신앙적 열심을 갖게된자들이 당시 대사사요 선지자인 사무엘의 지도를 받기 위해 이스라엘 각처에서 모여들어 무리를 형성한 일단의 선지 훈련 생도들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리 중 모두가 신적(神的)인 소명을 받았는지의 여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한편 어떤 주석가는 '하나님의 산' 기브아는 이와 같은 민족주의적 열심을 소유한 자들이 모인
려 치는 오늘날의 탬버린과 유사한 악기인데, 이것은 홍해를 건넌 후 미리암이 사용한 악기이다(출 15:20). '저'(* , 할릴)는 갈대 또는 뿔 등으로 만들어진 플루우트(flute)와 같은 피리이다. '수금'(* ,킨노르)은 '네벧'(nebel, 비파)과 같은 현악기로서, 걸어가면서 연주 가능한 오늘날의 기타(guitar)와 비슷한 악기이다(시 71:22;108:2;150:3). 한편 이와 같은 여러 악기들은 히브리인들의 정서 생활과 매우 밀접한 것으로서, 그당시 히브리인들의 문화를 잘 반영해 준다(출 15:20;삿 11:34). 그리고 이때 선지자의 무리가 이같은 악기들을 사용했던 까닭은 다음과 같다. 즉 (1) 신령한 시와 찬미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중 자신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며(왕하 3:15), (2) 또한 악기의 음조에 맞춰 예언적인 노래를 하기 위함이었다(대상 25:1, 3).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이 악기들은 혹자(G.B. Caird)의 주장처럼 하나님의 영감을 더 받기 위한 촉진적 도구 및 광적인 입신(入神)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하다(Interpreter's Bible).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 여기 선지자 무리의 예언은 여호와의 영광을 찬앙하는 내용을 노래로 부른 것인 듯하다(Clericus;민 11:25).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규명하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선지자의 무리가 위와 같은 예언을 할 때에 그들은 결코 무아지경(無我之境), 곧 황홀경의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그들이 황홀경의 상태에 빠졌다면 그들은 무리져 함께 내려오지 못했을 것이며, 심지어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19:24;왕상 18:26-29).
=====10:6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 구약 시대에 '여호와의 신' 곧 성령(창 1:2)이 임하는 일은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선택된 지도자에게 때와 필요를 따라 나타났던 현상이었다(16:13;민 11:25;삿 6:34;11:29;14:6, 19;15:14).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지도자를 택하고 인정하셨다는 확증일 뿐만 아니라, 그 같은 일을 통하여 그 지도자에게 맡긴 일을 잘 수행토록 특별한 은사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구약 시대의 성령의 임재는 때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임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때로 떠나가기도 했기 때문에(16:14), 그 본질상 오순절 이후 임하는 성령, 곧 구원의 문제와 관계된 신약 시대 중생(重生)과는 다른 것이다(Keil;요 3:3, 5).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 여기서 사울이 한 '예언'도 선지자의 무리가 한 것과 동일한 것임이 분명하다. 즉 사울 역시 선지자의 무리와 마찬가지로 그 마음이 감동되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깁븜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다(Smith, Fay). 한편 이때 사울에게 있어 이 예언은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했음을 확증해 주는 외적 증표의 하나요, 아울러 그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기름 부음 받았음을 확증해 주는 내적 증표가 되었다(Keil).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 이것은 신약적 의미의 중생이나 성화(聖火)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사울에게 있어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시사한다. 즉 (1)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할 자로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소명되었다는 사실을 사울이 분명하게 깨닫게 되리란 뜻이요(1절;9:20, 21), (2) 그에 따라 이스라엘을 구출하기 위한 열망이 사울에게 맹렬히 타오르게 되어, 이제 적극적이고 담대하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활약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11:6).
=====10:7
이 징조가...임하거든 - '이 징조'는 2-6절에 언급된 세 가지 징조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임하거든'은 막연한 가정을 의미치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임할 때'로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 기회를 따라 행하라 - 문자적으로는 '손이 발견하는 것을 너를 위하여 행하라'의 뜻이다(삿 9:33). 즉 이것은 향후 자신의 소명과 관계된 일이 발생할 경우, 소신껏 거기에 대응하라는 권면이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리라 - 이는 사울이 기회를 따라 행하는 일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이 있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말이다(11:11).
=====10: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 사무엘이 사울을 먼저 내려가도록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무엘 자신은 백성들을 소집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고 (2) 사울은 자신을 성별할 기회를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무엘은 그때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온 백성들에게 공개적으로 소개하려는 기회를 가지고자 했던 것이다(11:14). 한편 '길갈'(Gilgal)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영도로 요단 강을 건넌 직후 진을 쳤던 곳이었다(수 4:19). 또한 이곳은 사무엘이 자신의 사사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매년 순회하던 주요 거점 중의 하나였다(7:16).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 '번제'는 전적 헌신을, '화목제'는 감사와 친목을 위한 제사이다. 한편 여기의 제사들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한 위임식(委任式)과 관련된 제자들이다. 내가...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 까지 - 이것과 관련하여 사무엘은 12장에서 사울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칠 일을 기다리라 - 여기의 '칠 일'은 사무엘이 이 말을 한 후 '칠 일'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사울이 나중에 길갈에 간 후 '칠 일'을 말한다.
< 설 교 >
사울이 왕으로 뽑히다
사무엘상 10장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무엘상 9장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 기스의 암나귀들을 잃어버린 사건을 통해서 사울을 사무엘에게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봤습니다. 오늘 사무엘상 10장 말씀은 사무엘이 기름을 부은 사울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제비를 뽑아 왕으로 세우는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사무엘은 사울을 배웅하는 현장에서 급히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면서 선언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라고 했습니다(1).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사건은 공개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은밀히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것은 아직 사울이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나타날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행위는 우리가 지난 시간에 봤습니다만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기 전에 이미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이 찾아 올 것을 예고 해 주셨기 때문에 정당한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이렇게 급히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후에 앞으로 사울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2-6절을 보면 사무엘은 사울에게 세 가지 사인을 줍니다.
첫째는,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그가 찾고 있던 아버지의 암나귀들의 행방에 대해 말해 줄 두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2). 그들은 사울과 사환이 찾던 기스의 암나귀들은 이미 찾았고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가 아니라 그들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났던 아들을 인해 걱정한다는 것을 말해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라헬의 묘실 곁이라고 합니다.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을 낳은 야곱의 아내입니다.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죽습니다. 그 산고로 인하여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베노니라고 불렀는데 야곱이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베냐민으로 그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창 35:18). 그 베냐민의 후손인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고 사무엘의 예언의 성취를 통해 오른손의 아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참조. 시 80편).
둘째는,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러 벧엘로 제사하러 가는 사람들에게서 떡 두 덩이를 받을 것을 예고합니다(3-4). 사울이 셀사에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중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또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마지막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사울에게 인사를 하고 떡 두 덩어리를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사무엘은 사울에게 그들이 주는 떡 두 덩이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벧엘은 아브라함이 단을 쌓은 곳이며, 야곱이 도망가다가 여호와를 만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이스라엘의 기름부음을 받는 자로 세워지는 것은 여호와께 드려져야 할 떡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산에서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게 될 때에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게 되고 사울도 예언을 하며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을 말씀합니다(5-6). 사무엘은 사울에게 떡 두 덩이를 받은 후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라고 합니다(5). 그런데 그 산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다고 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그 문으로 지나 성읍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때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여 사울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6). 사울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을 하는 행위는 사울에게는 생소하고 또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사는 사울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새 사람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일은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 곧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것을 함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새 마음이 됩니다. 새 마음이 될 때 여호와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 세 가지 사건들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징조라고 말하며, 사울이 이 연속적인 징조에 믿음으로 응답하라고 권고합니다. 7-8절을 보면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사기서에서 봤듯이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세우실 때 인간적인 중개자를 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사사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을 지도자로 부르실 때는 사무엘을 중개자로 세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사울이 영적으로 둔감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라는 영적인 중보자를 파송하셔서 긴 설명을 듣게 하신 후에 그를 지도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도 봤습니다만 사울은 영적으로 둔한 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 사무엘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과의 영적 소통과 동행의 측면에서 보면 매우 어린 단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통해 이런 준비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준비를 갖추고 하나님의 섭리가 이끄시는 대로 믿음으로 응답하고 지도자의 품격과 영성을 갖추어 행동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갑짜기 자기에게 당한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서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회를 따라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의 방편을 예시해 줍니다. 8절을 보면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길갈은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지파들의 중요한 성소가 있었던 곳이며, 열두 지파 체계를 지탱해 주던 영적인 중심지였습니다(참조. 수 5:1-9). 사무엘은 이 유서 깊은 성읍에서 사울에게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려줄 예정이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영적인 세계에 문외 한 사울에게 하나님과의 영적인 소통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 사울을 자신이 직접 집전하는 제사에 참여시키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13장에 보면 사울은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9-12절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예고한 일들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한 모든 일들이 그날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사울 일행이 하나님의 산에 이르렀을 때 과연 사무엘이 예고한 대로 일단의 선지자 무리가 사울을 영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했습니다. 사울이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던 사울이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여 예언을 하자 전에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 이르기를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11). 12절에 보면 그곳의 어떤 사람들은 사울과 사환을 형제로 알고 그들의 아비가 누구냐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사울의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보고 조롱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라는 속담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선지자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런 조롱하는 속담이 생긴 것 같습니다.
사울의 새 사람 되는 경험은 하나님의 신에 사로잡혀 예언하는 선지자가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무리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던 어떤 자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사시 시대에 거룩한 전쟁 전통을 이어받은 무리들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전쟁이나 대의명분에 동원하거나 참여시키기 위해서 활동하던 자들이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마 이들은 예언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격동시키거나 격려하거나 혹은 책망을 했던 것 같습니다.
13-16절을 보면 사울은 예언하기를 마치고 산당으로 갔습니다. 그때 사울의 숙부가 찾아와서 사울과 그 사환에게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사울은 “암나귀를 찾다가 얻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숙부가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말해 달라고 합니다. 이때 사울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사울이 그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의 말하던 나라의 일은 고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16). 사울은 숙부에게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말하더라고만 하고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마 사울의 숙부는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의 중차대한 성격을 감지하고 이야기 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여튼 사울이 알리지 않았지만 왕으로 임명받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17-27절 말씀은 미스바에서 사울을 제비뽑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보면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했습니다. 18-19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가 너희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대로 천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이미 우리가 1절에서 본 것처럼 사울이 사환과 함께 자신을 찾아 왔을 때 여호와께서 그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였느냐고 하면서 기름을 부어 세웠습니다. 이제 사무엘은 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공식적으로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제비를 뽑아서 왕으로 선택하여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곧 사무엘에 의해 은밀히 기름 부음을 받았던 사울을 이제 백성들 앞에서 제비를 뽑아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사무엘은 18절에 보면 먼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존립근거는 바로 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와 같은 구원의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신들 위에 인간 왕을 세워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은망덕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세우기 전에 먼저 이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왕을 직접 뽑아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20-24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은 사무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각 지파별로 천명씩 나아왔습니다. 그때 베냐민 지파가 뽑혔습니다(20). 그 베냐민 지파를 그들 가족별로 가까이 나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습니다. 이미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지만 모든 백성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사무엘이 진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울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이에 여호와께 묻자 행구 사이 곧 짐 보따리 사이에 숨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와서 백성 중에 서니 그 키가 다른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습니다.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모든 백성들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불렀습니다(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인간 왕을 택하고서는 왕의 만세를 부른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25-27절을 보면 사무엘은 백성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그것을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사울도 기브아의 자기 집으로 갈 때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사울과 함께 기브아의 사울의 집으로 갔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왕을 환호하는 유력자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왕정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그들을 비류 곧 불량배라고 합니다(27). 아마 이들은 왕의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는 서민들 혹은 하층 백성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류들은 사울을 멸시합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잠잠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울을 제비 뽑아 왕으로 세웠을 때 두 가지 백성들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그룹은 만세를 부르며 열열히 환영하고, 한 그룹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며 멸시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세워진 왕이지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영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왕을 세워 달라고 해 놓고서는 여호와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왕을 환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멸시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왕을 구하여 만세를 부르거나 왕을 멸시하거나 간에 인간은 각자가 왕으로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의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한 것은 결국 여호와를 왕으로 섬기지 않고 자신들이 왕이 되어 살고자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왕이 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참된 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 도께서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어떤 멸시를 당하셨습니까? 십자가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이 원하는 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왕을 만세로 맞이합니까? 곧 우리는 어떤 왕을 원하고 있습니까?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자신들에게 승리와 이익을 가져다 줄 사울과 같은 왕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우리 주님이 우리의 참된 왕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새 사람 이야기
삼상 10장 6~9절 / 김창인목사
오늘은 사무엘상 10장 6절에서 9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새 사람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사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고 오늘은 그 사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 또 왕이 된 후 얼마 동안은 너무 좋았습니다. 그의 겸손함과 충성됨과 효심과 믿음이 좋았었는데 왕의 자리에 앉고 세도를 부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엇인가 달라지기를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완전히 변질이 되었습니다. 결국은 버림을 받았고 집안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여기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사울이 왕이 아닌 일반 평민으로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왕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큰 화근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저 사람 목사가 되더니 사람 못쓰게 됐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좋은 의미가 아닌 나쁜 의미로 '저 사람 장로 되더니 사람이 달라졌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사람은 변질이 된 자의 표본입니다. 권사가 되고 변질이 된다면 오히려 직분 맡은 것이 큰 화근이 됩니다.
사울의 마지막은 비참했어도 사울이 참으로 좋았던 때를 생각하면서 변질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따라 사울이 한 때 참으로 좋았던 새 사람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성령으로 되는 새 사람 (6-)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의미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신분의 변화입니다. 예를 들어서 요즘은 그런 제도가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양반이요, 상인 즉 상놈이라고 하는 계급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신분제도라고 합니다. 상인이 양반이 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히 신분의 변화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신분의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 딸이기 전에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고(롬 6:7)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고(엡 2:3) 죄를 짓는 자로서 마귀에게 속한 자였습니다(요일 3:8). 즉 마귀의 자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본래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모태로부터 선택을 하시고 이 세상에 태어난 후에 사람들의 전도를 통해서 불러내십니다. 우리 교회는 10월 6일 주간을 총동원 전도 주간으로 지킵니다. 그래서 사람을 불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때 자기의 영을 주십니다. 즉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야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아버지처럼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감동으로만 하나님을 확실히 믿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 육신의 아버지에게서 피를 받아 아들 딸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영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과거에 우리가 지녔던 신분에서 변화가 일어나 하늘의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이것을 거듭남이라 하기도 하고 성령으로 중생함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성령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상태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면 갓난아이와 같아서 사람 축에는 들고 식구 축에는 들지만 일꾼 축에는 들지 못합니다. 갓난아이는 전부 자기만 위해 달라고 합니다. 즉 자기 본위입니다. 조금만 내버려두면 사고를 칩니다. 그래서 일꾼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자라고 자라서 실력을 갖추고 인격이 성숙하게 되면 훌륭한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상태 변화라고 합니다. 즉 성령의 충만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반드시 상태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신분이 변화되는 것으로 끝나면 상태가 변화되지 않았기 까닭에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영적으로 실력이 충만해 지고 영적으로 인격이 성숙해 지고 어디에 내 놓아도 일할 수 있는 일꾼이 됩니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을 잘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의 변화된 상태를 보고 '저 사람이 광성교회에 10년을 다니더니 많이 달라졌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이쯤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상태 변화까지 이르러야만 합니다. 역시 상태 변화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훈련을 받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로를 세워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즉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인터넷에 '이제는 교회도 히딩크 식으로 교회를 운영하면 어떻겠습니까?'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어떻게 세상 방법으로 운영을 합니까? 그것은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사들 사이에 경쟁하는 곳도 아닙니다. 말씀 선포에 경쟁을 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슥 4:6). 아무리 훌륭한 사람의 훌륭한 노력도 하나님의 영이 빠지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의 모든 변화는 전부가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절을 보면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이 왕 되기 직전에 그에게 "네가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게 될텐데 그 때 나의 영을 크게 부어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라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신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령이 아닙니까? 크게 임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성령의 거듭남이 아닌 충만함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첫 단계인 거듭남을 다 거쳤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첫 단계를 뛰어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울이 새 사람이 된 것은 성령에 의해서뿐입니다. 훈련을 받아 새 사람이 된 것이 아니요, 어디에 가서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서 새 사람이 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만 가능한 새 사람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 속에 임재한 성령은 '네가 이러면 안되는데? 오늘이 주일임에도 불구하고 왜 금강산에 가느냐? 더욱이 광성교회 집사가 그래도 되느냐?'라고 합니다. 그러면 광성교회 그 집사가 '가만히 있어'라고 하면서 성령의 감화를 소멸시켜 버립니다. 서슴지 않고 기어이 금강산에 가는 것입니다. 그 때 성령이 '이런 것이 아닌데'라고 하면서 우리들 속에서 얼마나 근심하겠습니까? 성령으로 변화되는 나,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된 나, 성령으로 하나님의 일꾼 된 내가 어떻게 성령의 감화를 소멸시키고, 성령을 근심케 합니까? 이제는 내 속에 임재하여 계신 성령을 항상 기쁘시게 해 드리고, 그 성령의 감화를 따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으로 되는 새 사람 (7-8)
장로교에는 12신조가 있습니다. 열두가지 신조는 우리가 죽어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중의 첫째 신조는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첫째 신조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성서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과 성서는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신구약만을 가리키지만 성서는 거룩한 글입니다. 즉 성경에 대해서 해석을 잘한 좋은 책까지도 성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 생활에 조금도 틀림이 없는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덮어놓아 두고 내 멋대로 믿는다고 하면 30년을 믿었다고 한들 무엇합니까? 전혀 쓰지 못할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믿으라 하면 이렇게 믿고, 저렇게 믿으라 하면 저렇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지 말라고 하면 믿지 말아야 하고, 믿으라 하면 죽어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유일한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해야만 그 믿음이 제대로 된 믿음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의 생활에도 법칙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하지 말라고 하면 죽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하라 하시면 죽어도 해야 되고 손해를 보더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이 바로 새 사람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덮어놓아 두고 제 멋대로 살아 버린다면 그런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과 생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법칙으로 삼아 따르며 그대로 사는 생활이 새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또 새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7절에서 8절을 보면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곧 왕이 될 사울에게 왕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침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즉 법칙입니다. 그런데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그 지침을 따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이 징조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사울의 집에는 아버지가 그렇게 아끼는 나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귀가 도망을 가서 돌아오지를 않습니다. 아버지가 크게 걱정을 하므로 사울이 아들로서 "아버지 제가 나귀를 꼭 찾아오겠습니다. 그러니 근심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그래 그러면 찾아봐라"고 하였습니다. 하루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이틀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나귀를 찾지 못하였기에 들어올 수가 없어서 또 삼일째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 때 선지가 사무엘을 만났습니다. "너는 빨리 집으로 가라" "왜요?" "나귀는 이미 찾았으니 네가 이렇게 헤맬 필요가 없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이런 일 세 가지가 있으리라"고 징조를 말해 주었습니다. 첫째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에 가면 두 사람을 만나게 될꺼다. 그러면 두 사람이 하나같이 너에게 하는 말이 너의 잃었던 나귀는 찾았는데 아버지가 나귀는 고사하고 네가 3일 동안이나 행방불명이므로 걱정하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라고 하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징조는 "상수리 나무 아래서 세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한 사람은 염소 세 마리를 거느렸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들고 있다가 떼어서 두 덩이를 네게 줄 것이요, 또 한 사람은 포도주를 담은 가죽 부대를 메고 있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징조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게 되는데 선지자의 무리가 전부 예언을 할 것이요, 그러면 너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울에게 보일 징조라는 것입니다. 징조가 나타나면 즉시 행동하라고 덧붙여 주었습니다.
첫째로 주신 지침은 네 본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즉 세 가지 징조가 보이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기회를 따라 행하라는 말은 왕이 곧 될텐데 왕권을 행사해야 될 기회가 되면 그 때에는 왕으로서 네 본분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떤 직책을 맡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맡았으면 본분을 다해야 되지 않습니까? 처녀가 결혼을 하여 남의 아내가 되었으면 아내의 본분을 다해야 되지 않습니까? 아들 딸을 낳았으면 어머니의 본분을 다해야 되지 않습니까? 본분을 다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는 보다 앞서 가라는 것입니다. 즉 이제 길갈로 내려가서 큰 행사를 치러야 되겠는데 나도 내려가겠지만 너는 나 보다 앞서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일을 하다 보면 꼭 앞장 서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도하는 일, 기도하는 일, 봉사하는 일, 헌금하는 일 등에 꼭 앞장서 주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억지로 끌려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끌려오지도 않으면서 뒤에서 불평 불만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는 함께 하나님의 일, 교회 일을 하지 못합니다. 본문에 보면 길갈에 가서 큰 일을 해야 되는데 보다 앞서 가라고 하였습니다. 보다 앞서가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로 주신 지침은 끝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즉 그곳에 가면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린 후에 네가 왕이 된 다음에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가르쳐 주겠으니 그때까지 7일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즉 끝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 히딩크가 왔을 때 성적이 당장 오르지 않는다고 얼마나 욕을 해 댔습니까? 여러분들은 욕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히딩크를 보고 사람들마다 뭐라고 합니까?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합니다. 히딩크는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지 말든지 나는 내 할 일을 하리라 하고 좋은 성적이 타나날 때까지 기다린 사람입니다. 즉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 실력을 키우면서 기다리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지침을 주었더니 사울이 즉시로 순종하여 그 말씀을 따라 열심히 살아가지 않습니까? 얼마나 멋진 사람입니까? 참 훌륭하고 좋았는데 나중에 변질되고 망하고 말았으니 괴로운 일이 아닙니까? 우리도 변질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사람이 되었으면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 사람으로 살아 남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새 사람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은혜로 되는 새 사람 (9-)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없지 않습니까? 황해도가 제 고향이고 18살에 피난을 나와 혼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니까 얼마나 좋은지요. 제가 장가갈 때 제 아내를 돈을 주고 사 왔습니까? 공로를 세우고 그 값으로 받아왔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당신의 아내 이야기를 하는데 왜 우리가 공감을 하느냐 하실 분들이 계실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내나 남편이나 다 같은 말입니다. 제 자신을 예로 든 것뿐입니다. 분명히 은혜로 준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훈련받은 사람만 아들 딸을 낳습니까? 모두다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밖에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온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욥은 "내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옛날 노아 홍수 때 그 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 때 그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의 마음의 생각의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순서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에서 계획이 나오고, 계획에서 행동과 생활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악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악하기에 생각이 악하고, 생각이 악하니까 계획이 악하고, 계획이 악하니까 행동과 생활이 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경우를 보면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9절을 보면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울에게 말씀을 주시자 마자 즉시 돌아서서 순종하여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옛 마음, 옛 사람은 쓸데가 없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요, 본래 죄의 종이요, 죄를 짓는 자 마다 마귀에게 속한 자였습니다. 우리 옛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귀한 은혜입니까?
사울이 아직 대관식을 하지 않았지만 사울이 논산 훈련소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아 새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까?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박사를 받아 마음이 새로워졌습니까? 전혀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능력과 은혜로 사울의 마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마음이 새로우니까 생각이 새롭고, 생각이 새로우니까 계획이 새롭고, 계획이 새로우니까 모든 생활이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즉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의 신앙이, 여러분들의 생활이, 여러분들의 가정이, 여러분들의 마음이 이처럼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즉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로 계속 새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성령으로 새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신분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우리의 상태가 성령으로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말씀으로 새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원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 몰라라 하고 산다면 30년을 믿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아직도 옛 사람으로 남은 것입니다. 그러나 새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을 합니다. 말씀으로 새 사람이 된 우리 성도는 말씀으로 살아 새 사람으로 남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은혜로 새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사울 왕의 마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즉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니까 생활도 인격도 사람도 전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의 남편도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해 새마음
삼상 10장 5~9절 / 이동아목사
요즘 젊은이들의 문화 가운데 '엽기신드롬'은 눈 홀기는 어른 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그칠 줄 모르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토막살인 신문기사에서나 쓰이는 줄 알랐던 '엽기'라는 단어는 초등학교 어린이들 대화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룹 자우림이 성탄절 콘서트에서 "이런 산탄를 죽여 버렸네" 라고 엽기의 노래를 불러도 큰 충격을 느끼지 못할 만큼 '엽기'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급기야는 엽기 취미의 최 극단이라 할만한 '자살사이트'가 실제로 촉탈살인을 빚으면서 2000년은 엽기적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애인에게 배신 당했습니다. 빚도 6000만원이나 있어요 죽고 싶어 환장했어요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좀..... 답변은 한결 같았습니다. "약국에서 000이란 약을 드세요" "높은 곳에서 약을 먹고 떨어지세요" "그래도 안 죽으면 메일 보내세요. 상담해 드릴게요."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20대 남자 대학생 2명이 함께 동반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살을 고려중에 있는 사람들이 은밀히 만나고 있고 자살 방법을 알려주고 자살방법을 배우는 곳으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오리알이 닭의 알에 썪여 병아리 사이에서 병아리처럼 살다가 호수가에 이르게 물을 뿌리게 되자 푸드득 날개짓을 하고 물위를 헤엄쳐 나아갔고 병아리는 물을 끼엊자 혼비백산 삐약거리며 도망치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악 근접성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멀쩡한 사람이 인화물질만 있으면 확 돌아버리는 사람의 본성은 죄악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래 인간의 품성은 악했다고 보는 성악설이 있긴 하나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는 그 품성이 악하지는 않았습니다.사단에 뀀에 빠져 타락한 이후부터 인간의 품성은 악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울왕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와 왕이 될 당시는 그의 말로처럼 그렇게 악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의 경우는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왕에게 들려준 예언으로 사울이 성령받고 새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새해 새옷을 입는다고 새마음이 될까요?
새로운 카렌다를 건다고 새마음이 되지는 않습니다.
2001년 새해 새아침 새로워지는 비결을 오늘 본문을 통해 나누겠습니다.
1. 성령의 능력으로
(삼상 10:6)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받기 전에는 형편없는 겁쟁이들이요 결심한 것을 지킬 수도 없는 연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을 받고 그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극복하여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질을 바꾸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어떻게 성령을 충만히 받게 됩니까?
그것은 오직 죄를 회개하면 성령으로 충만케 됩니다.
2. 주께서 동행하심으로/임마누엘
(삼상 10: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주님이 날마다 시간마다 동행하심으로 주님이 나를 붙드시고 나를 지키실 때 새 사람의 상태가 유지 지속된다는 말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것됨의 조건은 in christ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구속받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옛 죽음 옛습관 그낡은 모든 것으로부터 온전히 자유합니다. 생각과 의식 감성,모든 면에서 낡은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때 그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요 새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늘 간섭하심으로 사건으로 상황으로 시련으로 고통으로 나를 연단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떠나면 멸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마다 징계하십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입니다.
어떤 부흥사는 항상 오른쪽 손을 주먹을 쥐고 다녔답니다. 그래서 어느분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주님의 손을 꼭 붙들고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말씀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새창조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3.예배를 통하여
(삼상 10: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구약의 제사는 번제와 화목제물로 양을 잡아 번제로 주님께 드렸습니다.
신약에 와서 우리 주님께서 단번에 화목제물로 자신을 번제로 드림으로 우리는 값없이 공로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주앞에 온전히 헌신할 때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늘 주앞에 예배의 삶을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령이 내려와 자신의 약함을 넉넉히 이기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욕망과 우리의 삶의 목적을 주님의 목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삶 그래서 주님의 생각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삼상 10: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4.삶의 동역이 무엇이냐?
무슨 힘으로 사느냐는 것입니다. 욕심,증오심,시기,경쟁심,복수심 어떤 사람은 죽고 싶어도 억울해서 못 죽겠다고 합니다. 그힘은 미움입니다. 경쟁자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쳐서 취해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사랑이 나를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합니다.
광수생각
한사람이 "자기 요새 여자와 교제한다며 ? "
"그래" "그런데 그여자가 부탁해서 술을 끊었다며?"
"아 끊었어 자꾸 끊으라고 해서 끊었어"
또 한사람이 "아 자네 요새 담배도 끊었다며? 그 줄담배를 피우더니""아 그 내 사랑하는 사람, 교제하는 그 여자가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해서 담배 끊었어."
그 다음 친구가 말하기를 "자네 그럼 여자와 왜 결혼하지 않나?" 이 친구 대답하는 말이 "내가 이렇게 다 끊고 착한 사람이 되고 보니 내가 괜찮은 놈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자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날 것 같아서 결혼하지 않네"
그 사람 분명히 사랑하는 그 여자와 헤어지면 담배 또 피울 사람입니다. 그 사람 술독에 다시 빠질 사람입니다. 이 여자가 그를 사랑하고 그와 사랑을 느끼는 동안에 그 사랑의 힘으로 그 좋아하던 도 박도 다배도 술도 끊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줄이 끊어질 때 나는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여 여기에 취하여 나아갈 때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새해 지난해 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새마음로 새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살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습니다.
주의 말씀안에 거하면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 허물어진 삶을 심령을 새롭게 하면 도비니다. 주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면 새로워 집니다. 빛앞에 내 자신을 노출 시키면 늘 생명을 풍성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여 그 사랑에 취할 때 우리는 늘 세상의 유혹을 이기며 새로운 내일을 살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합니다.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삼상 10장 01절 / 양인국목사
1. 본문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시고 그로 하여금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사무엘을 통하여 두 가지 일을 행하게 하셨다. 하나는 사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확신을 갖도록 하신 일이고 다음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택하신 것을 백성들 가운데 선포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부르심을 받은 자는 부르심에 대한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외적으로는 사람들로부터 부르심에 대한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셨을 때 어떻게 그로 하여금 부르심에 대한 내적 확신을 갖게 하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로부터 부르심에 대한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하시는지에 대하여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한다.
2.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로 하여금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셨다. 다음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사울로 하여금 이와 같은 확신을 갖도록 인도하신 일들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먼저 사무엘로 하여금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도록 하심으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셨음을 말씀해 주셨다. 이스라엘에서는 왕, 제사장, 선지자 직을 위임 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이 의식은 내용적으로는 구별을 의미하지만, 의식 자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행위였다. 물론 부르심에 대한 공식적 선포는 각 시대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지만 본질적인 것은 동일했다. 예를 들면, 구약 시대 부르심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방식은 기름부음이었지만, 신약시대에는 안수였다. 신약은 특별한 부르심(사역)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부르심(거듭남)까지도 공식적으로 선포했는데, 그때 사용한 의식은 세례였다. 이러한 공개적인 선포는 우리의 신앙이 사람들 가운데 감추어야 하는 밀의(密議)의 신앙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선포할 수 있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것임을 말해 준다. 여기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라는 말은 사무엘이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은 하나님의 명하심에 따라 행한 것임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그의 부르심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하도록 징표들을 주셨다. 그 징표들 가운데 하나는 사울이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인데 그들은 사울에게 잃어버렸던 암나귀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는 것이고(10:2), 다른 하나는 사울이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게 될 때 하나님께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날 것인데 그들은 사울에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줄 것이라고 했다(10:3,4). 그리고 또 다른 징표는 사울이 떡을 받은 후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될 것인데 그곳에서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게 될 것이고 또한 그에게도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선지자의 무리와 함께 예언할 것이라는 것이다(10:5,6). 여기 세 가지 징표들은 사울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것을 충분히 확신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일은 하나님 외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해 준 세가지 증표들은 모두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와 인물들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일들이 일어났는지 일어나지 않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들이었고, 그 일들이 예언한 대로 일어났다면 그 일들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사울은 자신의 부르심에 대하여 세 번이나 거듭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이와 같은 기회를 주심으로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신 것이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이와 같은 확신이 필요한 것은 부르심에 따라 행할 수 있는 모든 동기가 바로 이와 같은 확신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날 수 있었고, 기드온은 삼백 명의 군대를 가지고 십만 이상이나 되는 군사를 가진 미디안과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호사밧도 이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믿고 노래하는 자들과 함께 찬송하며 전장(戰場)에 나갈 수 있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부르심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는 징조들을 말해 준 다음 그가 마땅히 행할 일을 말해 주었다.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10:7)” 여기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은 “표징들이 이루어지거든”이라는 뜻이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라는 말은 “부르심에 따라 행할 기회가 주어지면 믿음으로 그 일을 행하라”는 의미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8절의 말씀이다.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사무엘은 사울에게 먼저 길갈로 내려가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하면 자신이 그곳에 이르러 행할 길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말했다. 확신은 언제나 순종을 요청한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한다면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논리에 따르는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입술을 통하여 자신을 부르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징조들을 통하여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동일한 입술을 통하여 주시는 권고를 들어야 했다. 사울은 사무엘의 입술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또 다시 행할 길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부르심은 단 한 번의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해 준다.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후 마땅히 순종해야할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로 하여금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인도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확신에 따라 살 수 있도록 마음을 새롭게 해 주셨다. 여기 마음은 그 사람의 근본을 드러낸다. 이것은 마음의 어떠함이 곧 그 사람의 어떠함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사울과는 전혀 다른 사울로 만들어 주셨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변화는 외적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적변화로부터 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으로 택해 주신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왕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내적인 변화를 주셨다는 의미다.
한편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해 주셨음을 공포했다. 물론 이와 같은 일들은 절차에 따라 행하였는데, 19-21절은 이때 행한 절차를 말해 주고 있다.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20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21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10:19-21)”
사무엘은 이미 하나님의 명하심에 따라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스라엘 가운데 왕으로 세우는 일을 행할 때에는 공적 절차에 따랐다. 이것은 사울이 사적으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이 부르심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공적으로 인정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미스바로 모이게 하고, 각 지파에서 천 명씩을 택하여 제비뽑기를 통하여 지파를 결정하고 지파 중에 가족을 결정하고 가족 중에서 왕으로 세울 사람을 찾아서 그를 왕으로 세웠다. 이처럼 왕을 세우는 공적 절차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왕을 세우는 일에 공적 절차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절차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대하여 권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하나의 특징은 왕을 선택하는 일에 제비뽑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왕을 선택하는 권한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공평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제비뽑기는 구조적으로 인간의 어떤 의지도 반영 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에 공정성이 보장 된다.
이와 같은 공적 절차를 통하여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의 가족들 가운데 마드리 가족이 뽑혔고 마드리 가족들 가운데서 가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다. 이때 사울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사무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고 백성들은 그를 향하여 만세를 부름으로 자신들의 왕으로 받아들였다.
3. 함께 기도하자. 주는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 수 있도록 내적 확신과 외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심으로 주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들을 알게 해 주시고 믿음을 굳게 하여 부르심에 따라 살게 해 주옵소서.
초대 사울왕
삼상 10:1-13 / 배영진 목사
오늘은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에 대하여 설교하려고 합니다. 사울은 참 안타까운 인생입니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울왕은 하나님앞에 실패한 왕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실격! 실격처리가 된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이렇게 살면 망한다! 이걸 보여주는 샘플입니다. 우리가 이제 평생 90에서 백살 사는데,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뭐냐? 마지막에 결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스냐? 노우냐? 그 열매를 보시고 결산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을 받고 칭찬듣고 좁은 길, 생명의 길, 의인의 길을 걸어갔다, 그것을 내가 안다 해주시면 인생합격입니다. 그러면 그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하고 하나님앞에서 영생을 누리고 삽니다. 하지만 자칫 정신차리지 않고 생각없이 세월을 헛되이 살아버린 인생도 있어요. 인생 90년 금방 흘러갑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생 결산하실 때, 아무개야 너는 왜 그렇게 살았니? 불순종했구나! 너는 좁은 길로 가지 않고 악인의 꾀를 좆았네, 죄인의 길을 따랐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았네! 하시면 그 인생은 멸망입니다. 사울왕은 오늘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왕이 되었는데, 40년 왕으로 있는 시간을 결산해보면 하나님 보실 때 열매가 없습니다. 열매는 믿음으로 순종한 삶입니다. 초대왕 사울의 인생을 핵심단어 한가지로 말하면 믿음없이 살아 불순종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오늘 하나님이 사울에 대한 기대를 갖고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의 인생이 처음부터 망하기로 결정되어있었는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울은 아무리 잘해보려고 했어도 결국 잘 안될 수 밖에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순종하며 열매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인생이든지 선택권을 허락하십니다. 그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살 수있고, 그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살 수 있습니다. 사울은 여기서 불순종을 택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침착하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으심 받는 장면입니다. 사울의 인생결말을 참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과연 사울은 왜 멋진 시작이었는데 추한 결말로 마무리가 되었을까? 그래서 오늘 우리가 두가지를 생각하려고 해요. 기회가 있었다. 계기가 있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이 두가지를 허락하셨습니다. 얼마든지 순종하며 살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십니다. 멋지게 순종할 수 있게 계기도 주십니다. 사울은 이 두가지를 모두 팽개칩니다. 주님이 우리 모든 인생에 이것을 주십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계기를 주십니다. 기회를 붙잡고, 계기를 붙들면 됩니다. 그러면 순종이고 팽개치면 불순종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순종할 기회를 주신다.
1절을 읽어봅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엄청난 기회를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의 직무를 주십니다. 오늘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기름을 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왕으로 기름을 붓는 일입니다. 9장 보면 베냐민 지파에 청년 사울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부르시고 그에게 이스라엘의 왕으로 일해볼 기회를 주십니다.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사울이라는 청년이 너를 찾아올 것이다.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라. 하나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부르심이란, 사실상 자기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왕이 되고 싶다고 되나요? 그런데 하나님이 한 사람을 당신의 뜻대로 소중하게 쓰시려고 할 때, 그에게만 주셔서 그 사람을 통해서만 일하도록, 그 사람에게만 부어주시는 거죠. 이것을 은사라고 합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은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내게 주신 은사로, 나의 인생 소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울은 왕으로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선지자로 부르십니다. 사무엘의 부르심은 사사시대의 어두움을 끝내고 이스라엘을 빛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일입니다. 사무엘은 그러므로 사사시대와 다윗왕국을 연결하는 부르심에 부응하며 삽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모두다 똑같은 소명은 아니죠. 모두 나라를 세우는 소명을 주시지 않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뭘까요? 사무엘을 낳아 주님께 바치고 키우는 것이 소명입니다. 아들 하나 잘 키워내는 것이 소명이예요. 많은 경우, 아들 딸 낳아서, 잘 키우는 것 자체가 소명입니다. 마리아의 소명은 뭡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아서 서른살까지 잘 키워내는 일입니다. 그것이 마리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 눈으로 보는 것처럼, 세상사람의 가치관으로 보는 것처럼, 큰 일이 있고 작은 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각자에게 하나님은 나 자신만의 소중한 부르심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독특한 기회입니다. 모두가 기회를 얻는데, 모두가 같은 소명을 받지는 않습니다. 모두 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선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왕으로, 어떤 이는 선지자로, 어떤 이는 목사로, 어떤 이는 엄마로, 어떤 이는 선생으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은 더 소중하고 어떤 일은 함부로 대충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그 소중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앞에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앞에 물어보지 않아요.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이게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일을 나에게 맡겨주셨다, 이 청지기 개념이 들어가있지 않았습니다. 이게 청지기정신입니다. 사울은 이것이 자기 것인줄 알아요. 여러분 여기서 그 인생이 결판납니다. 생각이 이러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맡기시고 중간에 하나님이 평가를 하십니다. 이른 바 중간결산입니다. 그래서 일처리에 어떤 문제가 있다 그러면, 경고를 하십니다. 엘로우 싸인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세번이나 경고를 주셔요. 엄중ᅟᅪᆸ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앞에 불순종 한두번 하면, 하나님이 곧바로 그냥 막 통째로 벌하시거나, 두들겨 패지 않습니다. 사울왕의 불순종의 흐름을 따라가 보십시오. 그러면 이런 깨달음이 명확히 옵니다. 아 사울왕은 모든 기회를 자기 발로 차버리는구나!
이번 5월 한달내내 여러분이 사무엘상을 묵상해가면 그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사울왕의 불순종의 흐름, 하나님의 경고의 흐름이 계속 나옵니다. 계속 노란 불, 계속 빨간불 경고 싸인이 오는데, 놀랍게도 사울왕은 그 기회를 다 무시합니다. 요즘말로 개무시라고 하죠. 사무엘상 13장, 14장 15장 연속해서 기회를 놓쳐요. 13장에 사울의 첫번째 불순종이 등장합니다.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인데 왕이 시도합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사울왕을 엄하게 책망합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회개할 기회를 던져버립니다. 삼상 14장, 사울이 또한번 경솔한 실수를 저지릅니다. 성급한 맹세로 부하들과 백성을 곤혹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뢰를 잃어버리고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습니다. 그런데 자기성찰의 기회를 전혀 갖지 않습니다. 삼상 15장 결정적 불순종입니다. 아말렉과 전쟁에서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때에 아말렉을 완전 진멸하라, 이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결정적으로 하나님 주신 기회를 팽개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울왕을 버리기로 결정하십니다. 사무엘을 사울에게 보내시고 하나님이 선포하십니다. 사울아 내가 이제 너를 버리노라! 사무엘의 선포입니다. 왕이시여,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왕을 버리셨습니다.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서 폐위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서 왕의 자리를 박탈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주기로 결정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이 등장하여 골리앗을 무찌르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도 15년을 사울은 왕으로 있습니다. 사울은 왜 망했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놓칩니다. 순종할 기회, 기도할 기회, 회개할 기회, 사울은 모든 기회를 모두 팽개칩니다.
둘째, 하나님은 새마음의 계기를 주신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어떤 계기를 주시는가? 9절을 다같이 한목소리로 읽어봅니다. 여기 중요한 계기가 뭐냐? 하나님이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 라는 것입니다. 새 마음은 새 영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새 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한 얘기에, 6절 보면 그런 계기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6절에는 전혀 딴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요. 개역성경은 새사람이 되리라 그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9절부터 13절까지, 흥미로운 장면이 나와요. 그게 뭐냐면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강하게 임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그래서 사울이 예언자의 무리와 함께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며 예언을 했습니다. 10절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사울이 산에 올라갔는데 예언자의 무리가 있었어요. 선지자들이 모여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가 예언자들의 신령한 모임인 것입니다. 그들이 사울이 오니까 환대하고 맞아줍니다. 예언자의 그룹에 넣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요?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세차게 임했어요.
이것은 구약역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구약의 오순절 성령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의 마음을 완전히 새롭게 해주시고, 새 사람이 되도록 해주셔요. 놀라운 인생전환, 인생도약의 계기를 마련해주시는 것입니다. 뭐 때문에 이렇게 계기를 주셨을까요? 한번 이 사울이라는 젊은이를 하나님의 뜻에 소중히, 존귀히 사용하여 보고싶으신 마음이 명확히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진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풍성한 계시를 내려주시고, 예언자의 수준으로 올려, 하나님의 뜻이 그를 통하여 흘러가게 해보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0장을 보면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놓고 제비를 뽑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제비뽑힙니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다! 선포하니까 온 백성이 환호성을 지르며 사울왕 만세!를 외칩니다.
그리고 11장, 사울왕에게 또한번의 계기를 주십니다. 내가 너를 멋지게 쓰리라 이런 메시지를 주시는 겁니다. 암몬과 전투가 벌어졌는데 하나님이 사울에게 또 하나님의 영을 크게 임하게 하시고 크게 승리를 주십니다. 11장 6절 보면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세차게 내렸다 그래요. 엄청난 권능과 담대함을 주십니다.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사들이 암몬과 전투에서 엄청난 승리를 경험합니다. 새마음을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울에게 멋지게 헌신할 계기를 주신 겁니다. 그런데 아까 설명해드린 대로 사울은 13장 불순종, 14장 불순종, 15장 불순종, 연거푸 하나님께 쓰임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며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납니다.
저는 우리 각자 인생에 하나님이 주시는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러번 새마음을 품고 결단하도록 계기를 주셨습니다. 예수믿을 계기, 헌신할 계기, 다시 새롭게 되는 계기, 누군가를 섬길 계기, 공동체에서 쓰임받을 계기, 이걸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소중하게 사용하고 싶은 뜻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나에게 뭔가 깨닫게 하시고, 우리에게 뭔가 생각나게 하시고 아! 내 문제가 이것이구나,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새마음을 주시는 계기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운 길로 훈련하는 일을 합니다. 그때, 그 계기를 보고 그 계기를 잘 붙잡아, 하나님앞에 새 사람이 되기로 일어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문제는 뭡니까? 하나님이 그렇게도 새 마음, 새 영을 부어주시고 계기를 주시는데, 그것을 자기가 새로운 삶을 하는 계기로 쓰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울왕을 묵상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중요한 것을 한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은 절대로 우리의 인생을 얘기할 때 결정론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가 어디서 살고, 누구와 만나 결혼하고, 무슨 일을 할 것이며, 그 삶이 순종으로 갈지 불순종으로 갈지 이런 것을 완벽히 미리 정해놓으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결정론은 다른 말로 하면 사주팔자, 운명론입니다. 내 앞길이 미리 다 정해졌다, 이것이 점을 치는 사고방식입니다. 사울은 어차피 불순종할 사람으로 하나님이 다 결정을 해놓으셨는가? 아닙니다. 가인이나 에서나 가룟유다는 하나님을 버리고 예수님을 배신할 인물로 태어나기 전에 정해놓으셨는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오늘 저는 두가지 포인트로 사울의 실패를 말씀드렸습니다. 기회와 계기입니다. 그는 기회를 놓칩니다. 사울이 순종할 수 있도록 여러번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고 그때마다 불순종을 택합니다. 사울은 새마음을 주시고 변화될 계기가 왔을 때, 그것을 계기로 새롭게 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왕의 인생을 40년 지켜보셨습니다. 기다려주시고, 경고하시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 실격처리! 사무엘상 초기 기록은 엘리와 사울, 두 사람 인생이 무너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인생과 그들의 집이 무너지는 모습이 나옵니다. 반면에 한나와 다윗의 인생이 나옵니다. 어떻게 그들과 그들의 집을 하나님이 세워주셨나 명확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그동안 어떤 기회를 주셨나? 그 기회를 잡았나를 돌아보십시오. 주님이 나에게 그동안 새롭게 일어날 계기를 주셨나? 그때 새마음으로 일어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으키십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인생회복됩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삼규목사 / 삼상 10:1-16
찬송 : 289장
사막 지대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사는 곳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없는 불모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님의 사모님이 부엌 바로 뒤에서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생각하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모님은 설거지를 할 때마다 설거지한 물을 뒤뜰의 같은 장소에 매일 버리셨다고 합니다. 늘 같은 장소에 물을 주자 어느 순간 토양이 바뀌었고, 그곳에 한 씨앗이 바람에 날아와 떨어져서 어느 날 갑자기 자라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입니다.
여러분! 한 순간에 인생이 바뀌는 것은 어렵다 할지라도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하는 삶을 살게 되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水滴穿石(수적천석)’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5분만이라도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5년 후, 10년 후, 15년 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하여 하나님의 허락으로 왕을 세우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는 중요한 과정이 세 가지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첫째,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운 것(1절), 둘째는 사울이 제비뽑기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왕으로 뽑힌 것(21절), 셋째는 사울이 암몬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을 지지하고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11:15).
오늘 봉독해 드린 말씀은 이 세 과정 중에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은 것,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택하신 증거로 보여 주신 세 가지 징조, 그리고 사울과 숙부(삼촌)와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름 부음과 세 가지 징표를 받은 사울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구약 시대에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은 세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이나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입니다. 사울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사무엘이 기름을 부었지만 실상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실행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웠다는 세 가지 징조를 예고합니다. 그 중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징조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울은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인데 그들이 사울이 잃어버린 암나귀를 다시 찾았으며 사울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걱정한다고 말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사울은 다볼 상수리나무에서 벧엘로 올라가는 세 명의 순례자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들은 각각 염소 새끼 셋, 떡 세 덩이,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고 사울에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사울은 사무엘의 기름 부음이 큰 의미가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선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은 일은 사무엘과 사울 두 사람 사이에 은밀히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사울의 왕위 등극이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과 동행한 사환을 앞서 보내고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으며(9:27), 사울 역시 사무엘에게 들은 이야기와 그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숙부에게 비밀로 했습니다(16절). 이것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스라엘 왕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이스라엘 왕이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징조가 이루어진 장소가 어디입니까?
삼상 10:2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첫 번째 징조가 이루어진 장소는 라헬의 묘실 곁입니다. 라헬이 누구입니까?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가 라헬입니다. 그가 어떻게 죽었습니까? 베들레헴 길에서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난산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베노니’라고 불렀습니다.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후에 야곱이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베냐민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을 배출하게 된 것입니다.
사울은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납니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합니까? “네 아버지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았다. 아버지께서 집 나간 아들을 더 걱정하고 계신다.” 자기가 집을 나온 목적이 해결되었다는 소식과 아버지가 아들을 더 걱정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한 가지 징조만 가지고는 확신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확실한 징조 또 한 가지를 준비하셨습니다.
삼상 10: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두 번째 징조도 구체적입니다. 장소가 어디입니까? 다볼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또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마지막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삼상 10:4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의 손에서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보여 주신 징조들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두리뭉실하게 징조를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말한 두 가지 징조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세 가지 징조를 보여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땅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져 갑니다. 사울을 왕으로 택하신 이도, 왕으로 세워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자신의 욕심대로 자신의 뜻을 이뤄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뜻을 이뤄가고자 조심스레 한 걸음씩 내딛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저하며 미심쩍어 하는 자들에게 끊임없이 확신을 주고 격려하십니다. 바로 오늘도 하나님은 그런 그분의 백성들에게 다가오셔서 다양한 방법으로 믿음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성취되도록 역사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방법으로 확신을 주시며 격려해 주십니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하신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며 격려해 주실 줄 믿습니다.
새 사람이 된 사울
오늘 본문을 보면 세 가지 징조 가운데 특별히 세 번째 징조만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사울에게 생긴 변화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자 사울은 선지자의 무리와 함께 예언하였습니다. 사울의 변화가 너무나도 극적이고 예상치 못했던 것이어서 사람들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사울의 모습은 전에 알던 사울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고 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성도의 내면을 변화시켜 그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과 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사울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삼상 10:6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여기에서 ‘변하여’라는 말은 ‘하파크’라고 하는데 ‘돌다’(turn), ‘뒤집어엎다’, ‘바꾸다’는 뜻입니다. 하파크를 ‘변하여’라고 번역한 것은 “변화” 또는 “바뀜”을 의미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울이 예언을 하며 선지자 무리와 함께 한 것은, 그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 사람의 내면까지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삼상 10: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사울이 사무엘을 떠나려고 할 때 하나님이 그에게 새 마음을 주시면서 그의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사울이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은 사무엘이나 선지자 무리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것입니다. 사울의 공식적인 첫 모습은 ‘열국과 같은 왕’이 아니라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아 예언하는 ‘선지자 같은 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사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의 변화에 대한 의혹과 놀라움을 표현한 이 말은 사울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열국의 경우와 같이 기름 부음이라는 외적 의식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새로운 일꾼을 피택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꾼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 왕은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충만한 선지자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세워지는 일꾼들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요건은 ‘변화된 새 사람’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새 마음과 새 영을 위로부터 덧입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묵상하고 그분의 마음을 깨달아 순종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영,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왕 되심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새로움’은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고 그에게 영으로 임하시고 신적인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신다면 그 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이니,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지혜롭게 침묵하는 사울
사울의 숙부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물었고, 사울은 자기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침묵은 사울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맥을 볼 때 그의 침묵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초대받은 이들과 사울의 사환에게 사울의 기름 부음을 비밀에 부쳤습니다. 때가 되기 전까지는 이 일을 친척에게도 비밀로 해야 했기에 사울은 지혜롭고 겸손하게 침묵을 유지한 것입니다.
삼상 10:15 사울의 숙부가 이르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 하니라
삼상 10:16 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아니하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묵묵히 기다려야 합니다. 사울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때가 이루어지기까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특히 주님의 뜻이 더디 이뤄진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조급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조급함이 계속되면 그 조급함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신이나 절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때에 이뤄집니다. 사울은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왕권은 아직 공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이 왕권을 선포해 주시기까지 참고 잠잠히 기다려야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보다 앞서 가면 일을 엉망으로 만들기 마련입니다. 성도에게는 믿음의 침묵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가겠다는 겸손의 표현이며, 모든 일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매사에 하나님보다 한 발 뒤에서 하나님을 따라 가려고 애쓰고 계십니까? 살다 보면 자신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 일을 진행해 조속히 해결하고 싶은 조급함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조급함은 하나님보다 앞서려는 교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완성하실 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인내하는 동안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겸손과 순종을 확인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변화된 새사람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주실 때 확신도 주신다
사무엘상 10:1~8 / 박희원 목사
어제 본문과 연결되어,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택하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려 하신다는 사실을 확증해주려 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후 세 가지 증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 세 가지 증표는 모두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장소에서 일어납니다. 이는 사울이 지금껏 이스라엘을 인도해 오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며 또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사명을 맡았음을 알게 합니다.
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2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사울과 함께 왔던 사환을 앞서 가게 한 후, 사무엘은 사울과 단 둘이 있는 상태에서 그에게 기름을 붓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그 기업의 ‘지도자’로 삼으셨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도 ‘왕’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는데, 이는 상당히 의도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업, 즉 이스라엘을 이끄는 것이지, 그가 무슨 직책으로 불리느냐는 부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왕’이 되어주길 바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이끌어 구원하고 그 거룩함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그 기름부음이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확증해 주는 예언을 주십니다. 사울에게는 세 가지 징표가 있을 것인데, 이는 모두 이스라엘의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첫째 징표는 라헬의 묘실에서 일어납니다. 이는 족장시대, 즉 그 조상이 애굽에 들어가기 전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엇보다 베냐민 지파였던 사울에게 있어서 라헬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 즉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의 어머니로 여겨지는 사람입니다. 특히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이는 베냐민 지파에게는 라헬이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바로 자기가 난 지파의 어머니가 묻힌 곳에서 자신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특히 아버지가 암나귀를 찾았다며 그 아들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말도 혈통과 관련된 말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아들들, 즉 이스라엘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곧 왕의 모습입니다.
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4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의 손에서 받으리라
사울에게 표징이 주어지는 두 번째 장소는 다볼입니다. 다볼은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 야민의 장군 시스라와 그 철병거 부대를 대파한 곳입니다(삿 4장). 그런데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벧엘은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에 들어와서 단을 쌓은 곳일 뿐 아니라 야곱이 하나님을 찾았던 곳입니다(창 12:8, 35장). 이는 그 땅을 이스라엘게 주시고 그 후손들을 번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3’이 반복되다가 떡 ‘2’ 덩어리를 준다는 것은 그 숫자 자체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3은 하늘의 상징수이고, ‘2’는 확실함, 증거의 상징수입니다. 결국 세 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고, 그들이 사울에게 떡을 두 덩어리를 주어 그가 왕이 되었음을 확증해 주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한 상징해석입니다.
그리고 염소, 떡, 포도주는 이스라엘의 3대 산업, 목축과 밀 경작, 그리고 포도를 비롯한 여러 과실수들을 재배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을 수호하고 그 땅의 소산을 얻게 하는 것이야말로 사울에게 주어진 왕으로서의 사명이었습니다.
5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 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6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셋째 표징은 “하나님의 산”에서 이뤄집니다. 이는 사실 시내산(호렙산)을 지칭하는 말로 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당연히 시내산일 리는 없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는, 즉 블레셋 군대가 주둔해 있는 산이라고만 되어 있기에 정확히 어떤 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만 그 산에 산당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거기서 선지자의 무리를 만날 것인데 그곳에서 사울은 여호와의 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지혜 등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체험도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말하며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되는 신비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특하게도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영을 받았지만, 다윗에게는 신비적인 현상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이 모든 표징들이 사울에게 임하면 “기회를 따라” 직역하면 그것들을 따라 행하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드러내는 표징이므로 그 각각의 일에 걸맞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문제는 이 8절입니다. 길갈에서 사무엘이 행하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도록 7일을 기다리는 것은 13장에 블레셋과의 전투 전에 사울이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일이 있기 전에 여러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좀 해석이 어렵습니다. 혹 이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장차 자신을 길갈에서 만날 일이 있을 것을 예언하며 7일을 기다리라고 당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이를 사무엘서 기자가 이렇게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확실한 증표를 얻으며 하나님의 택하심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위를 빼앗길 것을 미리 복선으로 깔아두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는 완벽할 정도였지만, 사울은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표징을 주십니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것을 믿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확실한 표징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각자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은혜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지키심을 드러내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감사하며 받아들이고 내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것으로 나의 이기적인 욕망과 편의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이유는 그의 명예와 복락을 위함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듯이,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심
삼상 10:1-8 / 김두옥목사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고난주간 다섯째 날 특별히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성금요일을 맞이하였습니다.
-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끝까지 기도하시고 자신을 내어주신 십자가의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 예수님의 죽으심이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자녀 됨에 자긍심을 가지고 주어진 쓴잔을 마시고 어디에서나 내게 맡긴 크고 작은 사명을 재확인하고 묵묵히 순종으로 사명 감당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10장에서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장면이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배치되는 일이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왕을 요구하자,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워 주셨습니다.
- 그리하여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왕정 제도가 시작되었는데, 이스라엘에게 있어 이 제도는 행복이 아닌, 고통과 압박의 시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 그래서 사울이 왕으로 확신시킨 세 가지 징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라헬의 묘실 곁에서 만난 두 사람으로부터 암나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음으로 이것은 인간의 모든 걸음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도하신다는 것입니다.
② 다볼 상수리나무에서 만난 세 명의 벧엘 순례자로부터 떡 두덩이를 받음으로 인간 사이의 일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하고 제사의 중요함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③ 블레셋 영문에서 선지자들의 무리를 만날 때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예언함으로 왕의 직분을 받은 자는 성령에 의해 새로워져야 하며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집에 돌아온 사울은 그 동안의 행적을 숙부로부터 질문을 받았으나 사무엘의 지시대로 기름부음 받은 것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사울은 가장 작은 집안 출신이고, 당시로서는 그리 큰 세력을 과시하지 못했는데, 사울 집안은 그중에서도 더 작은 집안이었습니다.
- 이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출신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된 것이니 참으로 하나님은 낮고 미천한 자를 높이 들어 크게 사용하시는 분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 세상에서는 좋은 배경을 중요시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배경보다는 자신의 주권적인 뜻을 통하여 성령으로 선택한 자를 사용하시어 구원 역사를 진행시킨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사무엘에 의해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통치 방법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실감케 됩니다.
- 미스바에서 공식적으로 선출되었으며, 길갈에서 왕위에 오르고 화목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 하나님은 지극히 작고 미천하고 우둔한 자를 높이 들어 존귀하게 하시고 고귀하게 사용하십니다.
-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미리 택정함을 입었고, 사무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후 제비뽑기를 통해 공개적인 왕으로 선출되었습니다.
- 이는 인간의 모든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과 이스라엘 왕정 체제 또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결과였음을 교훈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삶까지도 보고 듣고 간섭하시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미천한 자를 짓누르고 가진 자를 존대하려는 습성들이 있지만,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통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방법임을 받고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주의 영이 충만하면 세상을 변화시킨다. (삼상10장6,7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성도가 주의 영을 받으면, 다양한 은사로 변화를 받아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여 하나님의 선한 일에 최선을 다 할 수 있게 됩니다.
6-7절을 살펴보면 “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사울이 왕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데, 사무엘은 세 번째 징조로 사울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 임함으로 사울에게 일어날 새로운 변화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여호와의 신’이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말하고 있으며, 새 마음 새사람이 됨을 의미합니다.
- 그리고 특히 7절에서 사울에게 그가 왕이 될 것을 확신시키는 세 가지 징조를 말한 사무엘은 다시 사울을 향하여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 말하자면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잡아서 공의와 정의로 온전히 선용하라는 것입니다.
- 사실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가 왕이 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 그러나 사울은 이제 사무엘을 만나면서 제비 뽑혀서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될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 더욱이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왕이 될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사울은 그 징조를 보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 줄로 알고 끝까지 겸손히 선한 도구로 잘 섬겨야 했습니다.
- 사울이 순수한 때에 성령님이 함께하시고 주어진 기회를 겸손히 잘 붙들고 나라를 다스렸더라면 역사에 길이 남는 선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 사실 성령은 오순절 날 역사적으로 강림하신 이래로 오늘날에는 사모하는 성도들 안에 내주하여 계십니다.
- 그러나 신약 시대와 달리 구약 시대에 성령께서는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임재하시곤 하였습니다.
- 물론 구약 시대에도 성령은 필요한 경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임재하기도 하셨습니다.
- 그러나 그렇다 해도 신약 시대처럼 모든 하나님의 사람에게 영속적으로 임재하신 것은 아닙니다.
- 아무튼 성령께서 사울에게 임하시자 사울에게는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으나 교만함으로 실패하였습니다.
- 그리고 이는 오늘날 성령을 받는 성도들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변화들입니다.
- 그러면 그 변화들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먼저는 각종 은사들을 받게 됩니다.
- 본문을 보면 사울은 그에게 성령이 임하시자 선지자들처럼 예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 이러한 예언 행위는 구약 시대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었습니다.
- 선지자들의 예언은 다 성령을 받은 결과 예언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 그리고 이외에도 성령을 받으면 사람에 따라 각각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납니다.
- 로마서 12:6-8, 고린도전서 12:4-11; 에베소서 4:11 등에는 여러 은사들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은사는 모두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개인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이나 종류는 다르지만,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다음으로 성령을 받으면 사람의 마음이 새롭게 변하게 됩니다. 본문은 사울이 성령을 받자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 사울이 성령 받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 영과 새마음에서 새사람이 되어 능력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 물론 이는 사울의 외모가 변하였다거나 신약에서 말하는 중생의 체험을 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 다만 사울이 평범한 농사꾼에 불과했던 사람으로서 이제는 한 나라의 왕이 되기에 합당하도록 담대한 마음과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 이처럼 우리도 성령을 받으면 새롭게 변화하게 되고 또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디도서3장 5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 성령을 받으면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이 변하여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본성을 가지게 됩니다.
-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중생 또는 거듭남이라고 말하며,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일도 담대하게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 또한 세상 가치관에서 저주의 입이 변하여 이제는 정말 새로운 축복의 입이 됩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성령을 받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의 여러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 무엇보다 성령을 받게 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사무엘은 사울에게 성령이 임하여 예언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 징조라고 하였습니다.
-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성부 성자 성령의 제 3위 하나님이십니다.
- 마태복음28장19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하였습니다.
- 성령은 하나님 자신이며,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 마음을 지닌 새사람입니다.
- 그러한 의미에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14장16절에서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여호와의 신이 임한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며, 사울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 그는 하는 일마다 형통하였으며, 그것은 다윗에게도 마찬가지였음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와 같이 성령이 함께 하시는 성도는 형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 물론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도 삶 가운데서 때로는 고난과 역경과 시련을 당할 수 있으나, 궁극적 최종적으로는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는데 있어서 혼자의 힘보다는 성령님께서 동일하게 고난에 동참하시고 붙들어 주셨음을 봅니다.
-사도행전10장 38절에서 “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이와 같이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변화가 일어나고 새롭게 새 능력을 받아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 그렇다면 이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예수를 믿는 순간 성령님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는지 ? 그래서 내가 예수를 믿기 이전과 달라진 사람인지? 또한 내가 변하여 새 마음과 새사람으로서 긍정의 힘을 가지고 선한 은사들이 나타나고 있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 되는 삶입니다.
-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형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성령을 받은 징조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까? 이러한 변화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의 신앙이 인간적인 의지가 아닌지 진지하게 자가진단 해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8장 9절에서“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다면 반드시 성령을 받지만, 반대로 아무리 교회생활을 오래하였어도 하나님을 진실로 믿지 않거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면 그에게는 성령이 없으며, 결국 구원과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10장 38절에서 “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니 내가 성령으로 거듭난 새사람이 되면 새 사람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의 기회를 포착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 내가 다른 기회는 다 놓쳐도 이 하나님의 구원의 기회를 잡았다는 측면에는 대단히 성공한 사람입니다.
- 세상적으로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하고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그는 궁극적으로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 반면 내가 성령으로 변화되고 구원에 이르렀으니 그야말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인 것입니다.
- 하지만 내가 이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뜻이 있어서 삶의 순간순간마다 여러 기회를 주십니다.
- 그러므로 내가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들로 주어진 선한 일들을 기회로 삼아 선용하여 고난이 몰려와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갑시다.
- 그래서 구원 이외의 측면에서도 많은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여드리며,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선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께 사로 잡혀 쓰임받자
삼상 10:1~8 / 장재효 목사의 목회 칼럼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께서 신정 정치의 사사 시대를 마감하시며 왕정 정치(王政政治) 시대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영적 지도자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기름부어 성령이 임하게 하심으로 새 사람이 되게 하고 영적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하신 기록입니다.
1. 쓰실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예정적 섭리
사울은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로 용모가 준수하고 키가 보통 사람의 어깨 위는 더 크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오라는 명령에 사환과 함께 찾다가 찾지 못하매 사환의 제안에 따라 숩 땅에 있는 사무엘에게 암나귀들을 찾을 방도를 물어 보자고 갔다가 사무엘을 통하여 암나귀들은 이미 찾았다는 전언과 함께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나할라드) 곧 하나님의 소유, 이스라엘의 지도자(王)를 삼으셨다고 선언했습니다.
본문 1절에서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은 사무엘이 행한 것이나, 여호와께서 하신 것으로 기록된 것은 사무엘이 성령에 사로잡혀 성령의 지시를 따라 행한 것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아 행한 것은 곧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으로 간주되는 것은 성령이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잃은 암나귀들을 찾느라 애쓰다가 영적 지도자 사무엘을 만나게 되고 뜻밖에 이스라엘 왕으로 세움을 받는 사울은 모든 것이 졸지에 되어진 일들로 믿어지기 어려울 정도로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왕으로 선임된 것이 사무엘의 개인적 의지나 방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과 섭리로 되어진 사실을 확신할 수 있도록 본문 2~7절 사이의 그 날로 사울이 당하게 될 3가지 예언적 징조가 사울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더욱 심각하게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신중히 받아들인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은 먼저 성령으로 사로잡으십니다.
그 날 사울에게 3번 째 징조가 실현될 때 10~11절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이 사울의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함을 보아 이미 사울에게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사람으로 바뀌어진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요즈음 교계에서 성령받았다 또는 무슨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같은 말들의 어원(語原)적 의식(意識)은 자기를 주격(主格)으로 세우고 성령은 자기의 소유격(自己所有格)으로 만든 것 같은 어감(語感)이 있습니다.
성령께 사로잡혀 이끌리며 쓰임받는다고 해야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에도 순종할 수 있을 것인데, 자기를 주격으로 의식하다 보니 사언행(思言行)이 자기 의지적 주장(自己 意志的 主張)대로 자행(自行)하다가 신앙과 사명(使命)을 그르치는 이들이 많이 있음을 봅니다.
오늘 우리는 나라는 자기 존재(存在)부터 아들의 피 값으로 구속하신 하나님의 소유물(所有物)임을 명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성령님의 도구로 더욱 요긴하고 힘있게 쓰임받을 수 있도록 성령께 온전히 사로잡히고 점령(占領) 당해야 할 것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찌 되든 간에 내게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고 성령께 사로 잡혀 지속적으로 쓰임받을 수 있기를 절실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 같은 신앙 생활이 곧 성령께 사로잡힌 성도들의 성공적인 삶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3. 영적 지도자의 인도와 지시에 순복할 때 승리와 성공이 보장됩니다.
사울이 성령께 사로잡힌 후 사무엘의 지시에 따라 순종했을 동안에는 영적 승리의 삶이 성공적이었습니다.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고 여호와께서 사울을 세워 이스라엘 왕 삼으심을 선포한 후 이제부터는 백성들이 요구한대로 신정 정치의 사사 시대는 끝났고 사울 왕을 통한 왕정 시대가 열린 것을 선포할 때 백성들은 왕의 만세를 외쳤습니다. 영적 지도자 사무엘의 하나님의 뜻에 의한 역할과 지시에 따라 사울은 공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것입니다.
이후 사울 왕의 치세는 과거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주변 국가들 곧 모압, 암몬. 에돔과 소바 왕국들, 블레셋과 아말렉까지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약탈하는 자의 손에서 건졌습니다(삼상 14:47~48).
이상과 같이 사울은 여호와의 사자요 영적 지도자인 사무엘의 인도와 지시에 순복할 동안 이스라엘을 태평 성대의 반석 위에 올려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성령께 사로잡히고 인도하심을 받으며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쓰임받는 것은, 첫째로 죄악에서 구속받은 증거이며, 둘째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보증이 되고, 세째로 그 성령께서 우리를 하늘나라까지 인도해 가실 터인즉 성도(聖徒)는 전적인 믿음과 온전한 순종으로 쓰임받는 기쁨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1~25절에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오늘 우리가 고달픈 내 형편과 처지며 환경과 여건이 나의 욕구와 기대를 따라 좋게 바뀌어 지기를 기대하지 말고, 서둘러 나부터 회개하고 심령으로 변화를 받아 성령께 사로잡혀 이끌리며 쓰임받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길 진심으로 소원할 때 주께서 임마누엘로 함께 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무한하신 모든 가능성의 방법과 풍요하신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으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3~17절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利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하신 말씀을 깊이 깨닫고 허황된 계획으로 허탄한 실패자가 되지 않도록 성령께 사로잡히고 이끌리며 보다 더욱 힘있게 쓰임받아 하나님의 뜻 이루어 드림을 소원으로 주 안에서 승리하시고, 성공하시는 동역 목회자, 기도원장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울에게 기름 부은 사무엘
삼상 10:1-8절 / 좋은 군사
옛말에 "교육(敎育)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은 백년 앞을 보고해야 하는 중요한 계획이라는 뜻입니다. 근래에는 국가적으로나 교회에 참된 지도자의 부재에 대한 걱정의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막상 지도자를 키우는 일에는 매우 인색합니다.
사람에게 투자하지 않는 공동체는 장래가 없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인재를 육성하는 일뿐만 아니라 양성된 사람을 인정해 주고 지도자로 세워주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현재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새로이 등장하는 젊은 지도자들에게 적정한 때에 자리를 물려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은 이 일에 있어서도 많은 이들에게 본이 되고 있습니다.
1.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하여 여기 저기를 헤매고 다녔던 사울은 사환의 말을 듣고서 선견자 사무엘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라마로 찾아와서 사무엘을 찾을 때에 마침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통하여 사무엘이 라마로 돌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무엘을 만나러 성읍으로 올라가던 중 바로 사무엘과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이러한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하에 이루어진 필연적인 만남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스의 암나귀를 잃어버린 사건을 비롯한 모든 세세한 상황까지도 통제하셔서 중차대한 일뿐 아니라 우리 삶의 세세한 것까지도 통제하고 섭리하심을 믿고 범사에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순종(順從)하고 감사하는 자세(姿勢)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살전5:18절에 "범사(凡事)에 감사(感謝)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어떠한 섭리와 계획(計劃) 가운데 처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사무엘에게 인도(引導)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이미 사울이 오기 전날에 하나님께로부터 사울을 만날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가 어떤 사람이고 또 자신이 그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로 하여금 사울에게 기름을부어 지도자로 삼으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떤 중요한 일을 이루시기 전에 자신의 종들에게 미리 알게 하시는 예가 많습니다. 아모스3: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을 맡은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서 필수적(必須的)인 일입니다. 자신을 비롯하여 민족과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결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바르게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에 순종하여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이미 받은 말씀에 따라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입맞추었으며, 그에게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로 삼으셨음을 분명하게 통고하였습니다.(1절),
사무엘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국가와, 사울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었고,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구체적으로 행동하였습니다.
사무엘은 노련한 지도자였으나 새파란 젊은 청년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지도자로 세움으로써 이스라엘과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루어 드린 것입니다. 이처럼 사무엘은 제사장(祭司長)과 선지자(先知者). 사사(師司)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정성립(王政成立)의 기원을 이룩하는 중대한 일까지 잘 감당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붇는 것으로 자신의 사명(使命)을 다했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自身)의 지도권(指導權)이 사울에게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사울을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고 오히려 사울에게 확신(確信)을 심어 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예언(豫言)함으로 사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소명(召命)에 대한 확신(確信)을 갖게 하였습니다. 사울에 대한 사무엘의 예언은 라헬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 집안 소식을 듣게 될 것,
다볼 상수리나무에세 벧엘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만나 떡을 얻을 것, 그리고 블레셋 사람의 영문 있는 성읍에서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고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예언하고 새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2-6절), 이처럼 교회(敎會)의 직분자(職分者)들은 새로운 직분자들이 세움을 받을 때에 성실한 마음으로 그들을 돕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감당하도록 후임자(後任者)들을 돕는 자세를 하나님은 모든 선임자(先任者)들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딤후2:2절에 "또 네가 많은 증인(證人)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忠誠)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3. 사무엘은 사울이 행할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무엘은 또한 사울에게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 첫 번째 조언은 이러한 징조들이 그에게 임하면 기회를 따라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7절), 이 말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하여 소명에 맞추어 소신껏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또한 먼저 길갈로 내려가서 사무엘이 그에게 다른 것들을 지시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는데(8절), 이 말은 시기와 때를 잘 분별하여 기다릴 때에는 기다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시기와 때를 잘 분별하고 행동하는 일은 중요한 직분을 맡은 성도들에게나,
또는 국가의 대사를 맡은 지도자에게나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행동지침이요 지혜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그 역사(役事)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에 맞추어서 기다리거나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보다 앞서서도 안되고 반대로 움직여야 할 때에 가만히 있어서도 안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주었던 또 하나의 조언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게하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7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일할 때에 가장 중요시 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확신입니다.
이 확신은 새로이 지도자가 되는 참신자들에게 있어서 특별히 요청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확신은 새로이 지도자가 되는 신참자들에게 있어서 특별히 요청되는 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의 교훈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서 담대히 나가라는 격려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교훈도 됩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을 수행하면서 국민들에게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늘 하나님 편에 서 있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승리와 성공의 비결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지도권이 사울에게 넘어가게 됨을 알면서도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또한 성심 성의껏 사울에게 확신을 불어 넣어주고자 하였고, 그가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교훈하여 주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후임자로서 첫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울을 참 지도자로 세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오늘날 국가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귀감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일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지도자는 먼저 국가와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울에 대한 사무엘의 태도에서 선임자의 자세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사무엘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세우기 위한 모든 배려를 베풀었습니다. 확신을 심어주고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선임자는 후임자를 질투하거나 시기 대신 사심없이 그를 돕고 세워줄 수 있어야합니다.
삼상10:1절에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라고 했습니다. 삼상10:8절에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그 때와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조급해 합니다. 모든 일을 급하게 처리하려고 합니다. 성취감을 맛보려고 서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사울에게 명한 것은 칠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면서 기도 드리며 기다릴 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