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에 꼬릿말을 달아주신 낄미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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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잠깐만요!"
다급하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멈칫해버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전에 방송실에 함께 있던 녀석의 친구가
내 걸음걸이를 따라오느라 힘들었는지 헥헥거리고 있었다.
"뭐야?"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설마, 날 저 방송실로 끌고 가려는 건 아니겠지?
남자를 상대로 사대 일은...싸워본 적은 있어도 이겨본 적은 없는데.
싸운 것도 내 딴에 싸운 것이지
사쪽의 놈들에겐 일방적인 구타였지만.
"저..안녕하세요! 저 기억 안 나요?"
내 앞에서 90도로 꾸벅 인사를 하더니
내 앞으로 처억 다가와서는 얼굴을 들이미는 놈.
그러고보니..
90도인사하며,
외소한 체구에 귀여운 목소리.
그리고 약간 겁에 질린듯한 얼굴.
나는 손벽을 딱-쳤다.
"생각났다!"
그리고 소리쳤다.
내 8옥타브에 깜짝 놀랐는지 움츠렸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동그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
"어제 축구공! 맞지?"
덧붙이는 내 물음에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근데 왜?"
따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내 말투가 그렇게 나와버렸다.
십년간 이런 말투를 고집했는데
이제와서 변할리가 없다.
"그냥 어제는 정말 미안했어요."
아이가 또 90도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제..
축구공을 돌려주는 그 짧은 시간동안
아이가 자기 친구와 싸운 나를 불러세워 사과할만한 짓을 했던가.
생각해봐도 있을리가 없겠지만
곰곰히 생각하기도 전에 물었다.
"뭐가?"
나는 생각한다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도 싫어하고
자존심에 스크래치가는 것도 못 참는다.
역시나, 이번에도 퉁명스럽게 묻는 꼴이 돼버렸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이 더욱더 겁에 질렸다.
"멋대로 착각해서 나쁘게 말했던거요."
계속되는 내 단답형에 아이의 목소리가 풀이 죽었다.
그나저나, 나쁘게 말했던 거라니..
내 기억에는 아이가 내게 공을 달라고 했던 것밖에 기억 안 난다.
더 생각해내자면 내가 실수로 아이의 가슴팍에 공을 던진 것정도?
그럼 미안한 건 오히려 내 쪽인데..
"그래. 괜찮아."
"정말요?"
"응."
"정말? 정말요?"
"그렇다니깐."
"하..한 번만 더요!"
이게 지금 장난하나..
굳이 하는 사과를 거절할 필요 없다싶어 받아줬더니
뭐가 그렇게 신나서 계속 묻는 것일까.
..귀찮은 꼬맹이다.
물론 아이는 나보다 컸지만.
"사실 니가 왜 사과하는지 모르겠어."
"아..?"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건 뭘 뜻하는 거니?
그나저나 너무 오랫동안 지체한 것 같다.
늦게 일어나서 벌써 시간도 한참 까먹었는데 얼른 독서실 가야지.
"그러니까 사과 안해도 되. 알았지? 그럼 나 간다."
나는 황급히 손까지 흔들며 아이와 작별을 고했다.
아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입을 벌리긴 했지만
내가 후다닥 뒤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아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계단을 내려가면서 힐끗 아이를 봤을 땐
아이는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거참..
내가 귀신이란 말인가.
에이. 짜증나.
나는 뚜벅뚜벅 학교를 빠져나왔다.
도중에 쉬는시간을 알리는 듯한 종이 울려서
학교를 구경해볼 사이도 없이 허겁지겁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 날 나는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했고
도중에 대빵이 데릴러 와서 함께 저녁도 먹었다.
내가 새벽까지 공부하는 동안 대빵은 휴게실에서
노트북으로 정신없이 일을 했고 우리는 새벽 3시가 되어서
나란히 집으로 귀가했다.
나는 일기 따위를 쓰진 않지만
그래도 쓴다고 치더라도
오늘 일따윈 일기에 적지 않을 것이다.
특별한 하루였지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하루같아서.
그래서 오늘 눈을 감으면
만났던 모든 아이들을 지우기로 다짐한다.
단순한 우연이었다.
내가 오진남이라는 놈을 만난 것도,
오진남이 내 엠피를 밟은 것도,
내가 고등학교에 갔다가 아이를 만난 것도.
우연이니까.
지극히 평범한 내 일상과는 거리가 먼..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
'타앙!'
'툭..투두둑..'
'꺄아아아아아악!'
'비켜!'
'여보! 대답해요! 여보! 여보오오!!'
'꼼짝마!'
'여보오..흐으..우으..여..꺅!'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이 여자를 쏘겠어.'
'흐으...여보오...흐으..살려주세요..'
'야 이 더러운 자식아!'
'강형사! 움직이지마! 멈춰!'
'타앙!'
'툭..투두둑...
.쏴아아아...'
자글자글.
보글보글.
"어? 일찍 일어났네!"
오랜만에 몇날 몇일 먹던 김치찌개가 아닌 된장찌개를 끓이던 중,
어느틈에 나타난 대빵이 늘어져라 하품을 하다 말고 내게 건넨 말.
그것도 매우 놀란 얼굴을 하고서.
난 뭐 일찍 일어나면 안되나..
"응."
나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하고나서
내 등뒤에 선 대빵의 입에 국물 한 숟가락을 넣어주었다.
"아아..정말 대단해."
대빵이 인상을 팍썼다가
대단하다는 말에 내가 기뻐하기도 전에
다시 헤벌쭉 웃으며 덧붙인다.
"어떻게 형편없는 니 요리실력은 한결같은지 몰라."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그런거였냐..
"어쭈! 먹기 싫음 먹지마!"
이게 아주 양광에 초쳐서 요강에 똥싸는 소리 하고 앉아있네.
나는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국 한 숟가락 떠먹었다.
얼마간의 침묵속에서 일그러지려는 것을 애써 참는,
충분히 웃길만한 내 얼굴을 멀뚱히 서서 바라보는 대빵.
그리고는 짜다는 범위를 초월한 찌개국물을 삼킨 내가
자존심을 위해 맛있기만 하다고 큰 소리를 뻥뻥치자
갑자기 피실피실 웃는다.
"뭐, 뭐야! 왜 웃어!"
웃음거리가 됐다고 생각하자 쪽팔림에 내가 소리를 빽질러도
아니라며 끄끝내 나를 조롱하듯 국이 참 맛있다는 말을 남기며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버리는 대빵.
괜히 기분 나빠진 내가 대빵을 무시하고 찌개에 물을 부으려던 찰나,
삐걱.
..살며시 열린 화장실문틈에 얼굴을 빼꼼 내밀고서
인정넘치는 선한 얼굴을 내비춘다.
"뭐야. 약먹었어?"
..라는 내 질문에 또 헤벌쭉 웃으며
"우리 방금 간접뽀뽀했다!"
쾅!
..
....
저게 정말 미쳤나.
방금 귀여운 척한거야?
웩. 저 자식 분명 이 소설 시작할 땐 저런 컨셉이 아니었는데..
(글쓴이 역시 의도한 방향과 거리가 멀어져 놀랐다)
내 찌개가 그렇게 미칠 정도로 형편없었나..
거칠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다시금 물그러미 굳게 닫힌 화장실문을 쳐다본다.
피이..
"다녀올게!"
안절부절,
오랜만에 일찍 눈 뜬 나와 좀 더 있고 싶다고 떼를 쓰는 대빵을 배웅했다.
이거참, 대빵을 배웅하는 것도 몇일만이냐..
새삼스레 미안해지다가,
겨우 일찍 일어나서 얻은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어
서둘러 가방을 챙겨 집을 나왔다.
날씨는 선선했다.
하지만 발걸음이 마냥 힘차지는 못했다.
엠피쓰리에서 흘러나오는 강한 비트에 맞춰 더이상 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그것때문만은 아니었다.
한풍고등학교.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소위 연예인이 되려고 다니거나,
연예인이 주로 다니고 있다는 학교.
독서실 가는 길에 꼭 지나쳐야만 하는 이곳.
덧붙이자면,
일주일 전 내 엠피를 산산조각 내버린 놈이 다니는 학교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쩐지 꿈만 같다.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재수없는 놈이 생겼는데,
그 자식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그러나 나는 다니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럽다.
내가 재수없는 놈을 부러워한다는 사실이 열받는다.
일주일간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기에
보지도 않는 드라마 속 주인공을 바란 적도 없기에
그냥 새똥을 머리에 맞는 꿈을 꿨다고 생각하고 지워버리려 해도
일주일동안 내 삶의 활력소인 엠피쓰리를 듣지 못하니
어째 분해서 잊을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찢어버린 그 수표도 아깝다. 큼큼!
그렇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
[나와 독서실 앞이야]
한창 독서실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을 무렵,
대빵한테서 온 문자.
그러고보니 오늘이 6월 8일이네.
그래서..그런 꿈을 꿨나..
왠지 기분이 안 좋았다.
선선했던 날씨마저 우중충해지더니 당장이라도
날 너무나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하느님이
내 머리위로 비를 퍼부워버릴 것만 같았다.
사실 책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때문에
나는 얼른 가방을 챙기고 독서실에서 나왔다.
독서실 앞에 대빵은 없었다.
별로 꿈지럭거리지도 않았는데,
기다리기 지루해서 먼저 갔나?
자가용이 없는 대빵이 먼저 걸어가고 있을 곳이라면
당연히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골목길뿐이겠지.
조금 음침하긴 하지만 빨리 뛰어가다 보면
분명 얼마 안 가서 대빵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골목길로 향했다.
날씨는 더욱 험상궂게 변하기 시작했다.
비는 제발 안 왔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우산이 없으니깐.
왜냐하면 난 비가 제일 재수없으니깐.
골목길은 역시나 음침했다.
그래서 더욱 더 발걸음을 빨리 할 때 즈음,
탁.
..누군가 등 뒤에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뭐야, 설마 날 놀래킬 생각이었던 건 아니지?"
당연히 대빵이라 생각하며
사실은 찔끔 놀라서 등골이 오싹했지만
센척을 즐겨하는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는데..
"물론. 난 그런 귀찮은 짓은 안해."
..왜 니가 여기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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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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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2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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