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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만에 실현된 도인의 예언
2010년 10월 5일
원무명(袁無名)
【정견망】
고생스런 어린 시절
내 이름은 이모선(李慕仙 가명)이다. 집은 중원의 어느 현에 있고 나는 대대로 소도(小道)를 수련하던 집안에서 1919년에 태어났다.
조부님은 일찍이 현 동남쪽 구역의 장을 지내셨다. 당시 우리 집에는 5-6경(약 수만 평)의 땅이 있어 비교적 생활이 넉넉했다. 그러나 조부님이 아편에 빠져 얼마 지나지 않아 가세가 기울었다.
내가 8살 때 나는 현에서 큰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나중에 시골로 이사했다. 형제 5명 중 내가 셋째인데 십대 때 모친이 돌아가셨다.
식구들은 내 명이 짧고 운수를 보니 상이 불길하다고 하여 나를 절에 보내려 했으나 결국 보내지 못했다.
10대 때 나는 현소재지에 있는 채소가게에 들어가 점원이 되었다. 당시 점포는 우물과 2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나는 후문으로 나가 물을 길어오기를 하루에도 40여 차례나 해야 했다.
오고가는 거리를 모두 합하면 수십리에 달했고 당시 나이가 어리고 키가 작아 두 번이나 물통을 떨어뜨려 야단을 맞기도 했다.
청년 시절에 한 착한 일
중화민국 32년, 중국에 큰 가뭄이 들었다. 우리 현에서도 유랑하며 밥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길 양쪽에 남녀노소가 자식들을 데리고 저녁까지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먹다 남긴 감 껍질을 도랑에 버리면 구걸하는 사람들이 주워서 후후 불어서 먹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나는 당시 독립해서 쌀 식초 가게를 하고 있었다.
이날 나는 한말의 쌀로 식초로 만들었는데 가게 문을 막 열자 어떤 늙은이와 어린애가 들어왔다. 노인은 4-5세 된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간절히 애걸했다.
“마음씨 좋으신 분, 제 손녀에게 먹을 것 좀 주십시오! 우리는 이틀간 먹지 못했고 아이 어미는 굶어서 젖이 나오지 않습니다.”
나는 마음이 약해 그에게 밥 한 끼를 차려 주었다. 그들이 막 떠나가자 즉시 100여 명이 왔다. 나도 장사하는 사람인데 모두 다 베풀고 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내게 무릎을 꿇었는데 나는 얼른 일으켜 세웠다. 그저 전부 다 주는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사람은 늦게 와서 누룽지를 긁어 먹었다.
그들이 간 후 집주인이 내게 훈계했다. “나는 땅이 수만 평이 있어도 감히 희사하지 못한다. 너 내일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과연 다음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왔는데 모두 합해 280명이었다. 나도 돈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매 사람마다 한푼씩 나누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 푼이면 가게에서 약간의 물건을 살 수 있었다.
풀지 못한 고인(高人)의 수수께끼
아마 중화민국 34년쯤의 일일 것이다. 그때는 일본인이 비행기로 우리 현을 폭격할 때인데 나는 어느 절로 들어가 방공호를 파고 목숨을 건졌으나 부친은 그해 세상을 떠나셨다.
아마 1950년 내가 32살 때의 일로 기억나는데 나는 현의 어느 거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산속에 집이 있는 파사가(婆娑街)란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45세 가량 되었다.
어느 날 그가 나를 끌고 어느 수도인(修道人)에게 데려 갔다. 수도인은 당시 6-70세가량 되어 보였고 동남의 어느 현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키가 매우 크고 얼굴 혈색이 불그레했다.
말을 하면 목소리가 우렁차서 천정의 먼지가 떨어져 내릴 것 같았고, 집 밖에서도 발아래 땅이 진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道力이 매우 깊어보였다.
같이 간 우리 너댓 명은 그를 매우 흠모했으며 산속 친구에게 부탁해 한수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래서 입도(入道) 의식을 거행했는데 의식이 아주 장중했다.
수도인은 우리에게 의식을 거행한 후 오후에 떠났는데 매우 조급해보였다. 떠날 무렵 수도인은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인류의 대겁난이 곧 닥쳐올 것이다. 미륵 불조(佛祖)께서 세상에 내려와 佛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실 것이다. 너희들은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얼른 언제 어디서 어떻게 미륵 불조를 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수도인은 “수탉이 세 번 울고 난 후”, “장백산 아래 반월담(伴月潭)”에서 속가의 성은 “십팔자(十八子)”라고 했다.
나중에 우리가 따라가면서 묻자 그는 비로소 웃으며 “어쨌든 동북쪽이다”라고 했으며 그 외 다른 해석은 없었다.
나중에 나는 또 이웃 현에서 사형제들과 그 도인을 한번 만났다. 그때는 공산당이 이미 道를 전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우리 사형제들은 문을 닫고 담화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문을 밀고 들어와서 깜짝 놀랐다.
바라보니 당시 우리의 스승이었던 도인이 크게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뭘 그리 두려워 하느냐?”
우리는 마음을 놓았다. 도인은 또 우리에게 도 닦는데 관한 일을 좀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음해에 동남쪽 현의 사형제가 말하기를 도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당시 이웃현의 상점에도 이 도를 배운 사람이 많았다. 당시 스승의 속가 성은 조(趙)씨였는데 외부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오랜 기다림
나중에 중국 대륙에 많은 일이 발생했다. 공산당의 무슨 “진반, 삼반, 오반, 사청, 강철제련”, “문화대혁명”, 학생을 진압하는 천안문사태 등등으로 사람이 편히 지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삼십대가 되어 가정을 이뤘다. 사회가 매우 혼란했지만 나는 시종 수련을 잊지 않았다.
일부 도가의 풍수와 <성명규지(性命圭旨)> 같은 수련서를 보았고 한때는 다른 종교의 일부 신도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미륵 부처가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제도한다는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세월은 물처럼 흘러 나와 함께 입도했던 사람들(나의 계모와 여동생도 포함)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줄곧 미륵 부처 관련 소식을 듣지 못했으므로 나 역시 이 일을 점점 잊어버렸다.
1997년 1월 5일이 되어 내가 이웃마을의 친구를 찾아갔는데 사람들이 李洪志 스승님의 강의를 틀어놓는 것을 보았다.
들어보니 佛法을 널리 전하며 중생을 구도한다고 했다. 특히 천목(천안), 현관을 말할 때 매우 도리가 있어 나는 진법(眞法)이라고 느꼈다.
갑자기 크게 깨달았는데 “수탉이 세 번 운다”는 것은 바로 닭의 해(酉年)를 세 번 지난다는 것이 아닌가!(간지로 따지면 유년은 12년마다 한번씩 돈다)
사부님께서 1992년 5월 법륜대법(파룬궁)을 전하셨으니 바로 세 차례의 유년이 지난 후였다(93년 계유년이 네 번째 유년이다)
또한 길림성은 바로 사부님의 고향 동북이 아닌가?
“십팔자(十八子)”란 또한 사부님의 성씨 “이(李)”가 아닌가?
이는 1950년에 만난 그 도인의 예언과 일치했다.
1997년에 대법을 수련한 후 나의 신체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자전거를 타도 어떤 사람이 밀어주는 것 같고 고구마 몇 포대를 실어도 사람이 밀어줄 필요가 없었고 또 늘 천안으로 法輪과 연꽃을 보았다.
손을 꼽아보니 그 도인을 만난지 48년이 지났다.
우리 가족은 보통 5-60년 살았고 가장 길어야 72년 살았다. 명을 보는 사람이 나더러 72세까지 산다고 했지만 나는 79세 되던 97년에 다행히 대법을 얻었다. 어쩌면 이는 내가 청년시절 선행을 한 것이 그 원인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당시 그 수도인이 예언한 “장백산 아래 반월담”은 줄곧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내가 동북에 가본 적이 없으므로 줄곧 “반월담”은 못의 이름이라고 생각했으며, 아마 李洪志 스승님 고향 부근이라고 생각했다.
작년에야 나는 이 예언의 뜻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월담”이란 “정월담(淨月潭 장춘 동남쪽에 있는 호수)”의 약칭이며 “장백산 아래 반월담(伴月潭)”이란 장춘을 가리키는 것이다.
장춘은 마침 장백산 아래에 있으며 또 “월담(月潭)”을 끼고(伴) 있다. 이는 스승님께서 佛法을 전하기 시작하신 지역을 말한 것이었다.
세인들이여, 이것은 내가 직접 경험한 사실이다. 말법시기에 생명을 구원받아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 만고의 대법과의 기연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선량한 사람들이여, 공산당의 거짓말을 믿지 말고 빨리 진상을 알아 대겁난을 피하고 밝은 미래를 선택하기 바란다!
발표시간 : 2010년 7월 29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7/29/67601.html
청성산(青城山) 도인의 경고
작자:신민(新民)
【정견망 2010년 5월 1일】
성리학의 대가 주희(朱熹 1130-1200)는 《문공역설(文公易說)》 21권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육경(六經) 중에는 이런 일로 말미암아 이런 이치를 말하는 것이지만, 오직 역경(易經)만은 이런 일이 없음에도 먼저 이런 이치가 있음을 말하는데 성인의 예언으로 사람들에게 알린다.”라고 했다.
주희가 언급한 “이런 일이 없음에도 먼저 이런 이치가 있음”은 수십 년간 공산사당의 유물론과 무신론 교육을 받은 중국 대륙 사람들 중에는 오늘날 이미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사실 이치가 먼저 존재한다는 도리는 성인이 인정하시는 것이다. 다만 이 “이치(理)”는 성인 또는 지혜로운 사람만이 미리 알고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이에 나는 청성산 老 도인의 경고가 떠올랐다.
내게 집을 판 왕위(王位 가명)는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으로 사천성 성도(成都) 사람이다. 2001년 초 그는 내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80년대 중반에 그의 모친이 만성병을 앓았는데 오랫동안 고치지 못했다. 그는 형과 상의해 모친을 청성산으로 보내 어느 老 도인에게 치료를 부탁드렸다.
1988년의 어느 날 왕위는 모친에게 양식을 보내러 갔다가 도인을 만났다. 왕위가 내려가기를 기다린 후 老 도인이 왕위의 모친에게 물었다.
“오늘 양식을 보내온 사람이 누굽니까?”
“제 아들입니다.”
“아드님을 뵈니 성질이 정직하고 고집이 있으며 또 젊으니(왕위는 당시 20여세였다) 뜻대로 일을 하기 쉽습니다. 내년에 인간 세상에 큰 일이 있을 테니 그를 잘 돌보시오. 그가 밖에서 일을 일으키지 않도록 말입니다.”
도인의 말을 듣고 모친은 매우 조급하여 즉시 왕위의 형에게 이 말을 전하며 내년에 밖에 나가서 일을 일으키지 말라고 했다.
다음 해 바로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벌어졌다. 얼마나 많은 청년과 시민들이 애국 열정을 품고 반정부, 반부패 등을 외치다 억울하게 공산당의 총과 탱크 아래 쓰러졌는지 모른다.
왕위의 말에 따르면 성도도 마찬가지였으며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잔혹한 진압을 당했다고 한다.
6월 4일 아침 그가 동대가(東大街)를 따라 길을 걷다가 성도 인민상점 건너편을 지날 때의 일이다. 인민상점 아래에서 진한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더니 잠시 후 불빛이 하늘을 찔렀다.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소방관이 오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상하게 느꼈다. 어째서 소방서가 와서 불을 끄지 않는가?
나중에 비로소 알았는데 인민상점에서는 불이 일어나기 이틀 전에 이미 귀중한 상품은 다 치워버렸고 정부에서 보낸 사람이 불을 지른 것이었다. 그런 후 이를 학생과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시켜 탄압의 빌미로 삼았던 것이다.
이 일만이 아니다. 필자의 다른 친구가 내게 말하길 1999년 7월 장쩌민을 두목으로 하는 공산당 사교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의 일이다.
사천의 어느 고위 관원은 파룬궁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眞善忍” 원칙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하며 파룬궁은 확실히 병을 고치고 건강하게 하는 큰 효과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정부기관에서 국가와 사회에 백 가지 이로움만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고 발표했었는데 어쩌다 단번에 이렇게 나쁜 것으로 선전하며 탄압하는가?
그는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어 청성산 도인에게 가서 연유를 물었다. 청성산 도인을 만난 후 파룬궁의 수련서 <전법륜>을 주며 진위를 감별해달라고 부탁했다.
도인은 책을 대강 훑어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진짜 경(經)입니다. 파룬궁은 얻기 어려운 큰 덕(高德)을 지닌 대법(大法)입니다.”라고 하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당신은 파룬궁 박해에 관여하지 마시오. 파룬궁을 박해하면 만겁 지옥에 떨어집니다!”
나중에 이 사람은 공산당의 지령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며 자신의 위치를 정했다. 듣는데 의하면 그의 집 재산이 수억인데 어떤 사람이 중공 규율위에 신고하여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는 은퇴할 나이가 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고금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확실히 미리 다가올 일을 알고 정사(正邪)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졌다.
프랑스의 노스트라다무스는 <제세기>에서 공산당의 죄악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사악한 낫이 두 차례 혁명의 원인이다” 사악한 공산당의 깃발은 낫과 도끼가 표지로 되었다.
“두 차례 혁명”이란 1차 대전 중에 발발한 러시아 10월 혁명과 2차 대전 직 후 발발한 중국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혁명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2500년 전에 불교가 말법(末法)시기에 이르면 사람을 구도하지 못하며, 그때는 “미래불”이 세상에 내려와 法을 전하며 중생을 구도한다고 했다.
이런 것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증명되었다.
오늘날은 대우주의 갱신기에 처해있으므로 마땅히 자신의 밝은 미래를 위해 神과 부처, 현자들의 경고를 생각해보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발표시간 : 2010년 5월 1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5/1/65864.html
사부님과 함께 있었던 날의 실화
2015년 11월 22일
글/ 다롄(大連) 대법제자
[명혜망] 베이징에서 전화가 왔는데 한 프랑스인이 사부님을 뵈러 일부러 중국에 왔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그들이 아이 병을 치료하러 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다른 기공사를 찾아가라고 전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상대방은 또 전화해 꼭 만나고 싶다면서 지금 출발 중이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그럼 오라고 하십시오. 인연이 있어 오려고 하니 만나봅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프랑스인과 중국인 각각 두 명을 포함한 일행 4명을 여관으로 데리고 간 후 사부님 방으로 안내했다. 방 시설이 초라하여 그들을 침대에 앉게 한 후 나와 노수련생은 문 앞에 서있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보십시오.”
통역원은 우선 부자(父子) 두 사람을 소개했는데, 그들은 프랑스 국적 유태인으로 대기업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 중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유태인입니다. 저희는 지금의 인류가 아주 위험하여 말겁(末劫)의 재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神은 오직 한 중국인만이 인류를 구하고 프랑스인과 유태인들을 구할 수 있다고 저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관찰한 끝에 저희는 그 분이 바로 당신, 중국의 기공 대사 리훙쯔(李洪志) 선생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만나러 왔습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神은 당신을 프랑스로 모셔가라고 저희에게 시켰습니다. 유럽을 구해주십시오.”
그는 이어서 “당신이 프랑스로 가는 수속과 비용은 저희가 모두 책임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간곡한 말투와 표정에 무척 감동됐다.
“지금 당신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공덕이 무량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아주 친절하게 “다른 일이 있으면 더 말해보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젊은 프랑스인이 말했다. 그에게는 7,8살 되는 아들이 있는데 선천적으로 지능이 낮아 말과 행동에 장애가 있고 늘 침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의사들을 찾아 보였지만 고치지 못했다며 선생님의 치료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십시오.” 사부님께서 말했다.
“사진은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디오테이프가 있습니다.”
나는 즉시 카운터로 갔지만 고급 여관이 아니어서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괜찮습니다. 아이 모습을 머릿속으로 생각하십시오.”라고 시키셨다.
잠시 후 사부님께서는 또 “좀 더 뚜렷하게 떠올려 보십시오.”라고 부탁하셨다.
이어서 사부님께서는 침대 앞에서 양손으로 사람 모양을 그리고 한참 바라보셨다. 그 다음 머리 부분에 대고 실오라기를 뽑듯이 밖으로 연속 몇 번 끄집어내는 동작을 하신 후 두 손을 마주하여 그것을 잡으셨다.
이어 책상 위에 놓인 찻잔 덮개를 열고 손에 잡고 있던 것을 찻잔에 넣은 후 다시 덮개를 닫으셨다.
사부님께서는 또 사람 모양에 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으로 세 번 두드린 후 한참 주시해 보시다가 “이젠 나은 것 같습니다. 그 쪽에 있는 아이도 지금 아마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또 급히 카운터로 달려갔지만 그 여관에서는 국제전화도 할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머무는 호텔에 가서 전화하겠습니다. 파리는 지금 새벽 4시쯤이니 시간이 너무 이릅니다.”
그들이 떠나려 할 때 사부님께서는 “여기 와 보십시오. 파룬(法輪)을 느끼게해드릴 테니 손을 내미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공중에서 그들을 향해 오른 손으로 원을 그리셨다. 대략 10분 후 느낌이 있는지 묻자 그들 부자 중 아버지는 한 갈래 에너지가 손바닥에서 신체로 밀려들어왔는데 매우 강했고 매우 뜨거운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아들에게 물으니 그는 “저는 온몸이 진동했습니다. 에너지가 정말 강했습니다. 손의 느낌이 제일 선명했는데 15분이 지났어도 여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3시간 뒤 나는 집에서 통역원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눈물을 훔치면서 조금 전 파리에 전화했을 때 프랑스인의 아내가 한 말을 전했다.
그의 아내는 “왜 이제야 전화를 했나요? 4시쯤에 갑자기 그 어떤 큰 충격에 놀라 잠에서 깼는데 방안이 매우 밝았어요. 저는 남편이 중국의 기공 대사를 찾아갔는데 혹시 그가 에너지를 내보낸 건 아닌지 하고 생각하고 급히 아이 방으로 달려 가보았는데 아이는 침대에 앉아있었어요. 그리고 저를 보더니 ‘엄마, 제가 어떻게 된 거죠?’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발음이 똑똑하고 정확했어요. 이건 처음 있는 일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했다.
통역원은 “아내는 아이를 안고 감격하여 소리 내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계속 남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죠. 아내는 전화 저쪽에서 눈물을 흘리고 남편은 이쪽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아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 둘도 옆에서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 감동됐습니다. 리 선생님은 너무 위대하십니다. 너무 위대하십니다.”
여기까지 듣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어서 그는 “그들이 오늘 저녁에 리 선생님을 만나려 합니다. 내일 급히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서요.”라고 말했다.
당일 저녁은 학습반 첫날이었다. 오토바이 공장의 강당은 2,7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는데 리 선생님이 두 번째로 파룬궁 학습반을 연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할 수 없이 3천 석까지 입석을 추가했다.
수업 시작 전 나는 사부님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격동되어 “좀 있다 강단에 올라가 이 일을 말하겠습니다. 천 리밖에 있는 아이를 고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부님 옆에 있던 한 관계자는 “관두십시오. 사부님께서는 병을 치료하지 않으십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아닙니다! 이건 병을 치료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부님께서 천리 밖에서 공능(초능력)을 펼치신 것이란 말입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리하여 나는 수업 시작 전 강단에 올라가 그 일을 수강생들에게 들려줬다. 물론 神이 그들에게 사부님을 찾아가게 시킨 일은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수강생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사부님을 쳐다보니 전혀 격동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표정이셨는데 마치 아주 흔한 일이라는 듯했다. 사부님의 위대함에 나는 더욱 탄복했다.
저녁에 나는 프랑스인 일행 4명과 사부님께서 함께 식사하도록 식당을 찾아 안배했다. 그들은 전화를 한 과정을 이야기했는데 자연스럽게 또 감사의 말과 격동된 마음을 연달아 표현했다.
모두들 함께 식사하면서 사부님을 프랑스로 모셔가는 일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그 사이에 나는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사진을 씻고 보니 벽에 흐릿한 그림자가 아주 많았다.
사부님께서는 “아주 많은 神들이 왔는데 그들의 유태신도 왔습니다. 유태신이 누군지 압니까? 바로 당신들이 알고 있는 노스트라다무스예요. 400여 년 전에 남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99%가 실현됐는데 그는 바로 사람들에게 대재앙이 있음을 경고해주러 왔습니다. 그래서 인류가 소멸된다는 그의 마지막 예언을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재앙은 확실히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내가 와서 法을 전하기 때문에 원래 배치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내가 개변시킬 것입니다. 그 대재앙은 오지 않을 것이지만 나쁜 사람들은 청리될 것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인데 상당히 무서운 일입니다.”
사부님께서 이처럼 중대한 천기를 알려주시자 나는 조금은 몸 둘 바를 몰랐다.
2기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는 보도소 설립을 선포하시고 또 수련생들에게 반드시 법공부와 연공을 잘하고 심성을 잘 닦아 반드시 공성원만하라고 격려해주셨다.
문장발표: 2015년 11월 6일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6/318464.html
법륜대법(파룬궁)은 중국 길림성 출신인 李洪志 사부께서 1992년부터 중국에서 전하기 시작한 심신수련법으로, 몸과 마음의 정화효과가 탁월하여 현재 전세계 100여개 국가에 전파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과거의 사람들보다 業이 많아 대부분 몸에 질병이 많기에 몸은 등한시하고 마음만 닦는 방법으론 병든 사람들을 해탈시킬 수가 없는 실정이기에, 사부님은 현재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성명쌍수의 大法으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제도하고 있습니다.
전법륜은 법륜대법의 수련지침서로 중문강의를 번역한거라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더라도 끝까지 여러번 읽어보시면 인생을 살면서 꼭 알고 싶었던 진리에 대한 많은 의문점들을 해결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전법륜 책에는
진정한 나는 누구이며,
왜 인간으로 태어나 고생하며 사는지,
우주만물의 근원인 우주의 특성(우주의식, 우주의 정신)은 무엇인지,
업력을 소멸하고 공덕을 쌓는 법
수련과정 중에 나타나는 각종 문제점과 예방책 제3의눈, 숙명통, 빙의현상과 방언, 주화입마, 공중부양현상, 몽유병, 자심생마의 실체, 살생과 육식문제, 질병의 원인, 영감, 근기, 청정심 등 깨달음과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 담겨 있어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수행을 하든 모두 지도적 작용이 있는 책입니다.
성자들이 이르길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사람으로 태어나서도 대각자를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고 설령 대각자를 만나도 믿음을 내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후천적으로 형성한 고정관념이 대각자의 가르침과 상충되면 사상이 혼란해져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가진 지식이나 관념이 과연 진실한 것인가를 먼저 성찰해보고 관념이 아닌 직관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시중에는 깨달음을 내세워 돈벌이에 치중하는 수련단체들이 아주 많은데, 수련의 원리에 관한 체계적인 가르침도 없이 이런저런 수련법을 짜깁기해서 가르치는 곳이 많다 보니 수련자들에게 상기증, 빙의, 정신착란, 금전갈취 등의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이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곳이나 찾아가서 수련하다간 도리어 좋지 못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으며, 특히 스승이 가르친 법리대로 실천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다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은 게 수련의 세계이니 심신수련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전법륜 책을 꼼꼼히 읽어보시고 수련의 원리와 주의할 점 등을 먼저 정확히 파악하신 후에 수련하시길 바랍니다.
전법륜 보기 => https://www.dafamedia.or.kr/book/HTML/zfl
첫댓글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