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홍두깨 같은 질문이라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답은 분명 있다. 이들은 모두 90년대 초반에 가장 인기 있던 "우리들의 천국"이라는 드라마의 등장인물이라는 것이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MBC의 이 드라마는 타 방송사의 "내일은 사랑"이라는 드라마와 더불어 당시 대학생들의 일상 생활을 다룬 드라마로 캠퍼스 드라마의 대명사로 불리우고 있다. 더욱이 신인 탤런트를 대거 기용하면서 신선한 대학생들의 이미지를 보여주었고, 이 드라마에 등장한 많은 연기자들은 이름만 들어도 아~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기 연예인이 되었다.
"우리들의 천국" 이외에도 많은 청춘 드라마가 있었다. "내일은 사랑" "열정시대" "광끼" 그리고 지금 비록 시트콤이라는 형식을 빌리고는 있지만, "뉴 논스톱"이 캠퍼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남자 셋 여자 셋, 논스톱, 골뱅이 등의 시트콤도 역시 캠퍼스 이야기를 다뤘다.) 군대에서 최고 인기라는 장나라, 신세대 미남으로 통하는 조인성을 비롯해서 김정화, 정태우, 정다빈 박경림 등의 인물이 뉴 논스톱에서 캠퍼스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있다. 드라마와 시트콤은 비록 그 틀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90년대와 2000년대의 대학생들을 비교해 보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듯 싶다.
90년대와 2000대, 대학생이라는 공통분모
우선 비교에 앞서 이 두 프로그램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부터 짚고 넘어가자. 우선 등장인물들이 신방과 학생이거나(광끼는 광보과 학생들의 이야기) 영화과, 혹은 영화동아리 학생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논스톱은 연극 영화과, 뉴 논스톱은 체대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신방과는 90년대에 들면서부터 학생들이 대거 몰린 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청춘 드라마의 영향으로 인해서 더욱 지명도가 높아진 과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어리석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TV에서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약속도 없이 일정한 장소에 모인다. 일명 아지트! 우리들의 천국에서의 아지트는 선배가 운영하는 학교 앞 까페였다. 대부분의 청춘 드라마에서는 선배가 운영하는 까페를 아지트로 쓴다. 뉴 논스톱 같은 경우는 기숙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항상 이러한 일정 장소에 모여서 서로 고민을 토로하기도 하고, 갈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대학생들이 과방이나, 동아리 방 등의 일정한 장소에서 서로 교류하는 것을 당연하게(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 빠지지 않는 것은 캠퍼스 커플에 관한 것이다. 홍학표는 인기 배우 최진실, 그리고 유호정과 같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고, 남자 셋, 여자 셋의 송승헌·이의정 커플, 그리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박경림·조인성 커플 등 수 많은 커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커플이 되는 과정이나, 갈등 과정은 청춘 드라마의 전개에서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로 자리 잡는다. 단지 시트콤은 드라마와는 달리 희극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90년대 대학생과 2000년대 대학생의 다른 점이라면?
청춘 드라마의 문제점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캠퍼스 이야기를 다루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는 젊은이간의 사랑이 핵심 요소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주가 되지는 않는데... "우리들의 천국"에서는 간간이 신세대와 구세대간의 갈등을 보여줬다. 이것은 당시 신세대와 구세대간의 세대차이가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문제였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수긍이 가는 점이다. 그리고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광끼", "남자 셋, 여자 셋" 과 같은 프로에서는 사랑이라는 문제 외에 자신들이 나아갈 길, 즉 진로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남자 셋, 여자 셋은 웃음을 선사하는 시트콤이라는 형식적인 제약이 있기는 했지만, 이의정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줬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생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뉴 논스톱 인기 비결 중의 하나는 등장 캐릭터들의 개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비록 네모라는 소리는 듣지만, 스스로 자수성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온갖 어려운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 박경림. 능글능글맞고 무조건 남한테 "쏴라~"를 외치고 다니는 빈대 양동근. 남의 뒷이야길 좋아하고 과소비가 심한 정다빈. 의리파이면서 터프한 대학생 김정화. 모든 여자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대학생 정태우. 어리숙하면서도 귀여운 여대생 장나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런 인물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뉴 논스톱은 좌충우돌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과거 청춘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잘생기고 인기있는 남자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여자 주인공이 중심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절친한 친구이지만, 주인공들과는 구별되는 성격 좋은 친구들이 잘생긴 친구들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만큼 학생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잘생겼고 예쁘다고 해서 인기 짱인 시절은 갔다. 무엇보다도 성격 좋고 유머러스한 사람들에게 봄날이 온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TV는 잡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TV
미디어는 90년대와 2000년대의 대학생을 문화적 코드에서부터 다르게 인식해야한다. 2000년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 청년들은 IMF라는 국가위기를 겪은 후유증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는 환경에 직면해 있다. 이것은 국민소득 만불을 향해 가던 시절의 청년들과는 다른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나 네모난 상자는 시청률에 의존해서만이 연명할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청춘 드라마의 주 시청자인 중, 고생들의 취향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변화하는 시대나 캠퍼스 안의 고민보다는 보편적인 공통분모인 사랑 놀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뉴 논스톱의 제작진도 주 시청자 층인 청소년의 생각과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동시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사랑과 우정 같은 보편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과거 "우리들의 천국"은 93년 9월 5일자 한겨레신문의 칼럼에서 대학생의 사랑 타령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청춘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스타들이 청소년의 모방대상이면서 동시에 소비를 부추기는 메신저라는 것이다. 드라마가 가공의 세계라고는 하지만, 신세대에게 있어 텔레비전이 가장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시트콤이 일반 드라마와 다르다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다. 그러나 최근의 시트콤에서 보여지는 대학생들은 좀더 소비적이고, 오락적인 면만이 부각되어 있다. 2000년대의 대학생이 90년대의 대학생보다 좀더 소비적이고 즉흥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대학생이라고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유치함과 집착은 때론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10년 후에는 캠퍼스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미래의 캠퍼스 드라마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까? 예전엔 그랬지... 하고 젊은 시절 캠퍼스를 떠올릴 수 있을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