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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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교역자 시절, 구역예배를 마치고 다과를 나누는 자리에서 씁쓸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한 분이 쓰레기를 버리는 문제로 옆집과 말다툼을 했다는 것입니다. (쓰레기 종량제 시행 이전입니다.) 한 번, 두 번 참다가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서 얘기를 꺼낸 것이 말다툼으로 연결된 모양입니다.
다음날이 주일이었습니다. 교회 갔다가 돌아오는데 집 앞에서 옆집 아주머니와 마주쳤습니다. 손에 성경책이 들려있으니 말다툼을 했다는 사실이 괜히 난처하더랍니다.
여기까지 얘기했는데, 옆에 있던 권사님이 얼른 말을 받았습니다. “그거 봐! 그러니까 성경책은 나처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해!”
대체 무엇을 보이고 무엇을 숨겨야 합니까? 자기 성질을 보이기 위해서 성경을 숨겨야 합니까, 성경을 보이기 위해서 자기 성질을 숨겨야 합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부대끼는 문제가 이런 문제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신앙을 공개하면 세상에서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늘 손해 보고 늘 참고 늘 양보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꺼이 신앙을 숨깁니다.
이런 문제가 교회 밖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존재합니다. 교육전도사 시절의 일입니다. 교사들 사이에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제가 판결을 내렸습니다. “교회에서는 신앙 좋은 사람이 양보하는 법입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말하면 서로 앞 다퉈 양보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옳다고 강변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서로 자기 신앙이 안 좋다고 강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집사님은 모태신앙이잖아요. 저는 이제야 예수 믿은 지 겨우 10년이에요. 저 집사님에 비하면 아직 초신자에요.” “저는 말로만 모태신앙이에요. 저는 새벽기도 나가본 적이 없는데 저 집사님은 꼬박꼬박 새벽기도도 하잖아요. 성경도 저 집사님이 훨씬 많이 알아요.”
무슨 뜻입니까? 차라리 신앙을 포기하고 말지, 욕심은 포기하기 싫다는 뜻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신앙이 없어지는 것은 괜찮아도 자기가 손해 보는 것은 못 참습니다. 하나님 영광 가리는 것은 참아도 자기 자존심 상하는 것은 못 참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요? 출처/ 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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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 자 | 강학종목사 | khj2142@daum.net | | 원본보기 | ☞창골산☆칼럼 | 글에 대한 문의는 필자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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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감하는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씁쓸한 기분이 무엇 때문일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