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방
얼굴 목 부위에만 볕이 든다. 가슴 하반신은 침침. 지표면과 붙은 창이란 게 절묘하다. 방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에는 행인들 아랫도리만 오락가락이다. 차량이라도 달릴라치면 먼지는 방안으로 쏟아진다. 비는 금세 물벼락, 긴 장마와 홍수 때 순식간에 방이 잠겨 옷가지 가재도구는 물론 목숨까지 잃는다.
대한민국의 반지하방. 어둔 완전 지하방을 모면하긴 했지만 늘 습기가 차서 곰팡이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기아선을 간신히 모면하며 지상으로 얼굴을 삐죽 내민 삶의 공간, 방범 창살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데 사고가 나면 창살 방은 돌연 감옥소로 둔갑한다. 탈출도 탈주도 못해 창살을 붙잡고 쓰러지는 비극,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베르베르인의 지하가옥과 동굴집 말고 우리네 반지하방.
(반지하방 일부)
그해 겨울
여기 저기 장갑 한 짝만 떨어져 나뒹굴었다
눈보라가 거셌던 그해 겨울
발자국까지 쩌억-쩍 붙드는
꽁꽁 언 길, 떨어진 한쪽짜리 장갑
수갑처럼 앙상한 손목을 죈다
누군가는 다른 길 위에
손마저 잃지 않았을까 아무 말이 없다
장갑만 움찔, 비틀거리는 손가락
죽을 만큼 버텨 살기
가짜 웃음, 눈물보다 더 슬프다. 가짜 눈물, 웃음보다 더 재미있다. 웃고 우는 것도 자유롭지 몫한, 삶은 꼬였고 매듭을 풀기는 어차피 글렀다. 갈기 찢긴 마음을 얼기설기 엮어 엉켜 살아야 한다. 간혹 삶은 기회이자 놀이다. 무조건 붙잡아 즐기고 누려야 한다는 말을 거기 갖다붙인다. 진정으로 살아보기 전에 절대 죽지 말아야 할 이유다. 살고 사랑하고 웃고 일하고 간혹은 공부하기.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 책 제목으로 말하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기’다. 책을 기반으로 만든 같은 제목의 영화, 아름다운 장면이 아른거린다. 기자의 삶에 황폐화한 줄리아 로버츠의 무작정 탈출.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한 다음 도착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사랑에 빠지며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는 스토리다. 소설이고 영화니까 그러하겠지. 죽도록 힘들 땐 죽을 만큼 버텨 사는 수뿐.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 삭막했던 그 길이 꼬리를 감추고 사라진다. 사람들은 그걸 아름다운 추억이라 부른다.
허의도 시인
1988 민음사 세계의 문학 봄호 등단
시집『누가 붙들다』북인 206,5 1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