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턱걸이로 올라가 銀명중… 전날 아빠에 “자신 있어” 카톡
[도쿄올림픽]주종목 10m 대표 탈락 아픔 딛고 25m 권총 銀… 사격 첫 메달
본선 탈락 직전 8위로 기사회생 “부족함 느껴… 더 채우고 싶다”
30일 여자 25m 권총에서 ‘반전 드라마’를 쓰며 한국 사격 대표팀에 도쿄 올림픽 첫 메달을 안긴 김민정이 은메달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도쿄=뉴스1
30일 도쿄 올림픽에서 깜짝 은메달을 쏜 ‘여자 진종오’ 김민정(24·KB국민은행)은 ‘반전의 여왕’이다. 그의 주 종목은 10m 공기권총이지만 그에게 은메달을 안긴 종목은 25m 권총이었다. 한국 사격 여자 권총에서 올림픽 메달이 나온 건 2012년 런던 대회의 김장미(금메달) 이후 처음이다.
은메달을 따기까지도 ‘반전의 연속’이었다. 2012 런던 올림픽 공기권총 10m 금메달리스트 진종오(42·서울시청)처럼 2019년 이 종목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던 그는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로 탈락했다. 실망은 잠시, 대신 곧이어 열린 25m 권총에서 1위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그는 이날 경기 뒤 “다들 내 주 종목이 10m라고 생각하지만 25m도 잘 쏜다”며 “10m에 집중한 나머지 25m를 연습하지 않고 있다가 선발전 공식 훈련 때가 돼서야 훈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 국제사격연맹 뮌헨 월드컵에 번외 선수로 참가해 25m 권총 비공인 세계기록(597점)을 쏜 적이 있다.
가까스로 올림픽 무대를 밟은 뒤에도 위기가 있었다. 본선에서 탈락 직전까지 갔던 것. 김민정은 본선 1일 차 완사에서 291점으로 9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둘째 날 급사에서 293점을 쏴 합계 584점으로 조라나 아루노비치(세르비아)와 동점을 이뤘다. 그러나 이너텐(inner ten·가장 중앙의 원)을 쏜 횟수에서 아루노비치(18회)보다 단 1회 많은 19회를 기록해 8위로 결선행 티켓을 따냈다. 그는 “극적으로 결선에 들어가 기뻤다. 인생에서 올림픽 결선을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25m 권총 결선은 급사 50발로 순위를 정한다. 10.2점 이상을 쏘면 1점을 받는다. 시리즈당 5발 단위 사격이며 4시리즈(16∼20발)부터 가장 낮은 순위 선수가 탈락하는 서바이벌 방식이다. 결선에서 그는 금메달을 놓고 비탈리나 바차라시키나(러시아올림픽위원회)와 초접전을 벌였다. 9시리즈까지는 34-33으로 앞섰다. 하지만 마지막 10번째 시리즈에서 동점을 허용한 뒤 슛오프에서 패했다. 그는 “그동안 준비한 대로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하며 다 쏘니 은메달이 된 것 같다”며 “‘내가 조금 부족하구나, 더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14세 때 사격을 시작한 그는 시력이 0.3∼0.4에 불과해 동그란 사격 안경(교정시력 1.0)을 쓰고 경기에 나선다.
손에 땀을 쥐게 하며 자신의 첫 올림픽 메달을 땄지만 김민정은 다른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경기 전날 그는 아버지 김태형 씨(53)에게 이런 ‘카톡’을 보냈다. “나는 자신 있어.”
도쿄=김정훈 기자, 김성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