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증장애인을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는 주거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이 있다고 해서 모든 장애인이 입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도움이 필요하고,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가족의 돌봄을 지속적으로 받기 어려운 장애인은 적합한 생활시설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시설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시설은 입소 인원이 부족한 반면, 다른 곳에서는 입소할 곳을 찾지 못해 문의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설의 숫자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장애인의 지원 필요도와 각 시설이 제공할 수 있는 돌봄의 형태가 서로 맞지 않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2. 착한목자의 집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생활 전체를 돌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착한목자의 집은 입소장애인 네 분이 오랜 세월 함께 생활해 온 공동생활가정입니다.
식사와 위생관리, 건강관리, 안전관리, 여가활동, 지역사회 적응훈련까지 일상생활 전반을 지원하고 계시지요.
특히 시설장님께서는 입소장애인들이 외출이나 식당 방문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선택하고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십니다.
이러한 돌봄은 단순히 장애인을 시설 안에서 보호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장애인의 하루하루가 무사히 이어지고, 작은 즐거움이라도 누릴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돌봄입니다.
이런 형태의 생활을 필요로 하는 가족이나 보호자가 착한목자의 집을 찾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3. 오랜 기간 운영해 온 시설이라는 신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착한목자의 집은 2001년 11월 20일 문을 열어 25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운영되어 왔습니다.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은 단순히 공간만 마련한다고 운영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을 돌보는 경험과 생활관리 능력,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시설장님께서 오랫동안 네 분의 입소장애인과 함께 생활해 오셨다는 사실은 시설의 운영 이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입소 문의자들이 이러한 운영 이력과 시설의 특성을 알고 연락하는 것이라면, 오랜 운영 경험이 신뢰를 형성하는 요인일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문의가 늘어난 이유가 시설의 평판 때문인지는 문의자들에게 어디서 시설을 알게 되었는지 확인해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4. 가족의 돌봄 부담이 한계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장애 자녀를 오랫동안 돌봐 온 부모가 고령화되거나 건강이 나빠지면, 이전까지 가정에서 감당하던 돌봄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시설에 입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 정도와 행동 특성, 일상생활 지원의 필요성, 시설의 인력과 운영 여건이 서로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전화하신 분들도 실제로 어떤 사정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만약 가정에서 더 이상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단순히 입소할 시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의 가족을 누가 안전하게 돌봐 줄 수 있을지 절박하게 알아보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시설장님께서 문의 전화에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다면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부분입니다.
5. 그렇지만 입소 문의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입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은 시설장님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착한목자의 집은 현재 네 분의 중증장애인을 시설장님과 사회복지사 한 분이 중심이 되어 돌보고 있습니다. 시설장님께서는 24시간 생활지원이 필요한 현장의 현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입소 문의가 많아지는 것은 지역사회에 필요한 돌봄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지만, 동시에 지금의 인력과 공간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요가 존재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입소 가능 여부를 판단할 때는 다음 사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입소 문의에 응답하는 것과 실제 입소를 결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시설의 여건을 넘어서는 입소는 기존 입소장애인의 생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이것입니다.
시설장님, 저는 이번 입소 문의를 단순히 시설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의미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을 평생에 걸쳐 돌볼 수 있는 주거환경에 대한 필요가 계속 존재하고 있으며, 그 필요가 시설장님께 걸려 오는 전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착한목자의 집이 그동안 걸어온 길과 현재의 돌봄 방식은 이러한 현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