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이 온갖 생명이 숨쉬는 소우주이지만 하나의 생명체인 것처럼, 산 또한 온갖 수많은 생명이 숨쉬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이다. 구파발에서 우회전하여 송추로 가는 길은 거대한 북한산의 맥박치는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생명의 길’이다. 봄의 한가운데서 찾은 북한산은 푸른 나무와 꽃으로 함박웃음 짓기도 하고, 기암괴석으로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짓기도 했는데, 송추역 표지를 지나자 그 발랄한 숨결이 갑자기 잦아들었다.
포클레인과 각종 기자재가 양철벽으로 둘러쳐져있는 공사현장이 원각사라는 표지판과 함께 나타났다. 북한산은 그 포클레인에 시동이 걸릴까봐 잔뜩 움츠리고 있는 듯했다.
지난 겨울부터 공사현장 옆에 천막을 치고 들어앉아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수경(收耕)스님(53·불교환경연대 대표)과 인근 회룡사의 비구니 스님들이 아니라면 지금쯤 북한산은 생살이 도려내진 채 신음하고 있었을 것이다.
19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온 세상이 하나의 생명’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화두삼아 선방이 아닌 농성장 천막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경스님을 찾았다. 전화로 만나기를 청하자 “제발 오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안개비 내리던 지난 16일, 막무가내로 찾아간 객을 내치지는 못하고 따뜻한 차 한잔을 권했다.
“저는 아직 수행이 모자라 도를 깨치지 못했습니다. 오욕락(五慾樂-재욕·색욕·음식욕·명예욕·수면욕 등 인간의 근원적 다섯가지 욕망)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제가 감히 부처님 오신날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저는 그저 수행하는 중일 뿐입니다.
또 환경운동 전문가도 아니고요. 그저 ‘삼라만상이 모두 한 생명’이라는 화엄경 말씀처럼 부처님 가르침을 따를 뿐인걸요”
-30여년간 조용한 산사의 선방 수좌로 도를 닦으시다가 시끄러운 삶의 현장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어떤 인연의 끈이 이곳까지 스님을 이끌었는지요.
“저는 오로지 도를 깨치겠다는 일념으로 전국 산사의 선방을 다니면서 수행만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실상사 약수암에서 혼자 공부를 했지요. 깨달음에 대한 갈급함 때문에 실상사 스님들에게 ‘절에 불이 나도 내게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귀농학교와 인드라망 공동체 운동을 펼치고 있는 실상사 주지 도법스님이 2년 전 제게 몇 번이나 도움을 청하더군요. 지리산에 댐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도법 스님은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힘이 드니 저보고 좀 도와달라는 거였어요. 처음엔 ‘내 공부도 못했는데 무슨 세상일을 하겠느냐’며 거절했지요.
그런데 도법 스님이 하루는 저보고 ‘땅 한삽만 파도 무수한 생명이 죽는데, 지리산에 거대한 댐을 만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겠느냐? 그것이 불교와 무관하단 말이냐? 그래도 네 공부가 더 중요하냐?’고 따져 묻습디다.
그러면서 ‘그래도 네 공부가 더 중요하면 선방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셨어요. 그만 말문이 막히더군요. 그때 난 닷새 후에 강원도 어느 산속으로 공부하러 떠나려던 참이었는데, 그만 발목이 잡혔습니다”
-그럼 이제 환경운동에 발목을 잡히셨으니 산으로 돌아가기 힘드시겠습니다.
“아이고, 중은 훌훌 터는 것이 전공인데,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 이 일을 맡을 사람이 나타나야겠지요”
-스님은 출가 이후 줄곧 어떤 화두를 붙들고 계십니까.
“화두 이야기는 안하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생명을 걸고 좇는 화두를 한담 나누듯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성철 스님께서도 화두 이야기를 하려면 삼천배를 하라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럼 스님의 출가 때 이야기를 여쭈어도 실례가 되지는 않을지요.
“어렸을 적에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많이 겪었습니다.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동생이 차례로 세상을 떴지요. 학교에서 어머니를 모셔오라고 할 때마다 ‘난 왜 어머니가 안계실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왜 사람은 죽는가’ ‘왜 죽음에는 순서가 없을까’와 같은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고 열여덟에 수덕사에서 출가했지요. 2년 전 낙동강 상류 태백 황지에서 강을 따라 을숙도까지 걷는데, 상류의 맑은 물이 하류로 갈수록 점점 오염되어 탁해지더군요.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출가때의 순수했던 저는 간 곳 없고 이렇게 때묻은 중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조계종의 수행방법인 간화선(看話禪·화두를 좇는 수행방법)에서 호흡은 어떤 방법으로 행해야 하는지요.
“호흡은 들이마시고 멈추고 내쉬는 흡(吸)지(止)호(呼)의 순서로 길이가 같으면서도 세세면면(細細綿綿), 세세하게 들이마시고 끊김없이 면면하게 내쉽니다. 코 끝에 터럭을 들이대도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해야 합니다”
-수행 때 힘드셨던 적은?
“스스로 깨달았다고 착각할 때입니다. 해인사에서 도반들과 한철 석달간 용맹정진(잠을 자지 않고 선수행을 함)을 끝낼 즈음 우연히 ‘부제불제불(夫諸佛諸佛·대저 모든 부처님들께서) 장엄적멸궁(莊嚴寂滅宮·적멸궁을 장엄하신 뜻은)’으로 시작되는 원효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狀)’을 보게 됐어요. 선수행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인데 갑자기 그 글귀가 또렷한 깨달음을 주는 겁니다. 그러나 큰스님께 여쭈었더니 ‘이놈, 마구니가 들었구나’란 호통만 들었어요. 한 7개월 고생했는데 도반들의 질책이 아니라면 헤어나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북한산을 관통하는 민자유치 서울외곽 순환도로 공사를 월드컵 이후로 연기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했는데, 어찌 잘 해결될 것으로 보십니까.
“결과보다 과정이 더 문제입니다. 올해 선거가 있으니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이해와 대화를 통해 잘 논의해서 다시는 이런 문제가 불거져나오지 않도록 해야지요. 1천만 서울시민의 녹색허파인 북한산이 단순히 자본주의적 논리로 망가지면 다른 곳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 정부와 시공사, 그리고 저희들이 모두 마음을 다치지 않는 선에서 대화로 풀어나가야 할 겁니다. 부처님이라면 분명 좋은 방법을 찾으실텐데, 미련한 중이라서 그 방법 찾기가 쉽지 않네요. 다만 그동안 환경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에 입을 닫고 있던 불교계가 이번 문제들을 계기로 의식전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 고무적이기는 합니다”
“3걸음은 인간의 탐진치(●瞋痴·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3독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고, 1배는 그걸 극복하게 해달라는 원을 하는 것입니다. 환경운동이기도 하지만, 수행이기도 하지요”
-끝으로 의례적 질문이지만 ‘부처님 오신날’의 감회를 묻지 않을 수 없군요.
“올해도 부처님 오신날 축하의례를 돈 많이 들여 화려하게 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정치, 사회적으로 어렵고 부처님의 자비심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불쌍한 대중들이 넘치는데, 그걸 외면하고 화려한 축제를 한다는 것이 씁쓸한 게 사실입니다. 부처가 지금 다시 오신다면 과연 어찌 행동하실까, 그런 행사장으로 가실까, 아니면 우리의 힘든 이웃들과 함께 하실까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 귀족불교화되어 있는 한국불교가 소욕지족(少慾之足)의 청빈함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1평 반이나 될듯 말듯한 작은 오두막 안에는 한편에 이불이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고 작은 앉은뱅이 책상 위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남이 입다 내던진 승복을 20년째 누덕누덕 기워 입은 스님은 부처님 오신날에도 이곳을 지키며 농성장 천막불당에서 불공을 드리겠다고 했다.
아마도 명산대찰 번쩍거리는 가사장삼 고승들의 화려한 불공보다 작은 천막농성장 누더기 스님의 ‘북한산을 제발 그대로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염원 불공이 더 크게 부처님께 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