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나, 소설, 만화속에서 외계 생명체에 대한(또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 대한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초기에는 인간과 같은 사고를 하고 인간의 틀에서 상황을 이해하는 다소 단순한 설정에서부터 최근에는 인간과 사고형태, 지식의 축적과정이 전혀 다른 그러한 그야말로 '외계' 지적 존재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경우도 많이 접하게 되었다.
1. 인간과 비슷한 사고를 가지는 외계 지적 생명체.
(1) 우호적관계.
그야말로 우호적 관계이다. 두 개체 간에 위치의 위, 아래도 없으며 주로 개체와 개체간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종족과 종족의 만남은 서열의 우위를 가져오기 쉽기 때문이다.
('ET'나 '콘택트'가 이것의 중요한 예이다.)
그들은 주로 우리의 보금자리를 연구하러 오거나, 의외의 사고로 인해 이 곳에 안착하게 되거나 하는 생명체이다. 살아온 배경, 문화가 다를지언정 생각하는 방식 또한 우리와 아주 비슷하다.
이들은 우리가 악하다고 느끼는 것에 동조하며, 때로는 같이 우리의 권선징악의 보편적*인류적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만남의 순수성은 종족과 종족간의 만남에서는 파괴될 수 있으며,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그러한 소박한 만남이 될 것이다.
(2) 적대적 관계.
이 관계는 주로 종족과 종족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며, '전쟁'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인디펜던스 데이', '화성침공'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 두 존재의 목적은 한 종족이 한 종족의 위에 서거나 지배, 또는 터전을 빼앗는 방식으로 일어나며, 우리의 가치관에서 그들은 종종 악으로서 묘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해결은 주로, 종족 내부의 분열이나 중심부에 향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짓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라는 전제하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 우주에 인간만큼 내분이 잘 일어나고, 지휘계통의 소멸이 종족 전체에 혼란을 가져다주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물론 그것이 인간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2. 인간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녔으나,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거나
혹은
인간문화가 고도 성숙할 경우와 비슷한 경우.
(1)우위적 관계.
인간은 항상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 싸워왔다. 이들은 그러한 존재가 아니다. 설사 인간과 같은 과정을 거쳐왔을지언정 이제는 없는, 그러한 이들이다.
그들에게 '종족 내부의 전쟁'이란, 과거 그들 역사의 산물일 뿐이며 그들이 보기에 우리의 문화는 '과도기적'이다.
(가장 좋은 예로, starcraft의 protoss를 들 수 있다.
또는 톨킨 등의 판타지 소설에서 접할 수 있는 '요정'도 그러한 문화적 존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과 우리가 접촉하는 경우는 자주 소설이나 영화속에서, 인간의 무지함으로써 비롯된다.
(starcraft에서 protoss함대가 terran의 식민지를 침공한 이유는 그들이 그 행성의 자원을 낭비하고,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도 우리와 사고하는 기본적 원리는 같고, 자신들의 영역의 침범에 대해서 주로 우호적이지 않은 경향이 있다.
많은 경우에 이들과의 만남에서 인류는 의외의 잠재적 능력을 보여주며, 약한 육체, 짦은 수명,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문화가 아주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정적(static)'이라는 것을 뜻하며, 반대로 우리의 문화가 '동적(dynamic)'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소설에서 인간의 문화는 그야말로 '동적'이다.
'이실두르'와 함께 사우론을 쓰러뜨린, 몇 천 년 동안 살아온 요정족의 수장인
'엘론드'는 '이실두르'의 몇 십대 손인 '아라곤'과 자기자신을 동등한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의 소설에서 '인간'은 보잘 것 없으면서도, 결코 나약하지 않은 종족이다.
(사실 그런 면은 인간보다도 '호빗'의 경우로 더욱 부각 시키기도 한다.)
(2)보편적 관계.
이 세계관은 위에서 보았던, 세계관과 완전히 배경이 다르다. 그 전까지의 '우리들의 배경'이 '우리들의 별' 이었다면 이 세계관에서 우리의 배경은 '우주 전체'이다.
이 경우 외계생명체와 우리들의 차이는 외국인과 내국인의 차이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스타워즈'나, '맨 인 블랙'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적과 아군의 관계는 종족의 특수성으로 인해 생기지 않으며, 이해관계나 가치관의 차이 등으로 인해서 발생할 뿐이다.
3. 인간과 사고하는 과정이 다른, '이지 생명체'
(1)전체가 하나, 하나가 전체인 종족일체.
이들에게 개인적 사고란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종족 중심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starcraft의 Zerg를 연상하는 것이 대체로 옳을 것이다..)
그들과 communication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해 보이며, 우리와 그들의 의지가 정면으로 상충할 경우, 남는 결론이란 '적대적관계'에서의 '전쟁'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전쟁이 진행되는 형태는 판이하게 달라지겠지만.)
※starcraft와 bloodwar의 Zerg는 다르다.
문제는 종족의 의지가 overmind이냐, kerrigan이냐 하는 것이다.
overmind는 Zerg이고, Zerg는 곧 overmind이다.
그것의 의지가 종족 전체의 의지이며, 종족 전체의 의지가 곧 그것의 의지이다.
그러나 kerrigan에 와서는 Zerg는 '인간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적'으로 교활해진 덕분에, kerrigan은 bloodwar에 나오는 모든 이들을 속인다.)
(2) 마지막 예 : 실험, 학습, 공존하려 하는 이지 생명체.
이들은 '문화에 대한' 실험을 하는 목적으로 우리들의 보금자리로 찾아온다.
이들의 만남은 정말로 독특하다.
'종족'과 '종족', '종족'과 '개인', '개인'과 '개인'의 모든 형태의
communication이 모두 일어난다.
(주로 물질적 교류이기 보다는 정신적교류가 절대적으로 많은 형태를 차지한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우리와 그들 자신이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며,
만약 가능하다면 '어떠한 형태가 될 것인가?' 라는 물음의 답들을 추구한다.
그들에게 있어 우리의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초기부터 통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와 공존할 문화적 형태'를 찾는 과정에서 '인간적 속성'을 배우게 된다.
인간들 중 과도기적 사고(외계의 적을 멸해야 한다!)에서 벗어난 몇몇은 또한, 그들의 '문화적 속성'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인간적 속성이란, '감성'과 '이성'이다.
감성 중 인간의 가장 강렬한 특징은 '사랑'과 '아픔'이다. 인간과 교류하려는 과정에서 그들은 인간의 사랑과 존재감, 아픔, 상실감과 동조하게 된다.
이들은 주로 인간의 속성 중 이성보다는 감성을 많이 학습하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그들이 주로 '이성적'인 존재로 많이 설정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화적 공존을 위한 수단은 극단적인 것에서부터 점진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가장 극단적인 수단은, '동화'다. ('동화'와 '인류에게의 침략'은 다르다.)
'그들'과 '우리'가 같아지면, 어떠한 분쟁도 있을 없으며 모든 것이 같아지며, 모든 것이 없어진다. 이런 극단적인 방식 때문에 이들은 인간에게 종종 '악'으로 묘사되곤 한다.
자연은 원래 모든 것이 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소립자는 구별할 수 없었고, 모든 힘은 하나였다. 그곳과 저곳을 같았으며, 그 때와 저 때는 같았다.
맞다면, 그들을 우리가 '악'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수단은 '인간의 개체로서의 존재감' 즉, '나'라는 정체성을 파괴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른 이의 '상실감'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에게 있어, '나'로서의 정체성의 형성. 이것은 인류에게 저주이자 축복이다.
즉, 이러한 수단은 그들이 '인간의 아픔과 상실감에 동조하지 못했거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보다 점진적인 방식은 '접촉'과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대화'란, 서로가 서로에게 '나'라는 정체성을 보존시켜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 정체성을 더욱 더 부각시켜주는 도구가 되는 communication의 본질이다.
이것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1.창궁의 파프너 - 페스튬.
이다. (필자가 자주 보는 곳에서 발견한 것이니... 조금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1.창궁의 파프너 - 페스튬.
(원작의 설정을 배경으로 하면)
'페스튬'이란, 21c 후반에 극지방에 상륙했다. 그들이 행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과 자신들의 동화'
그것이 '나 로서의 정체성'을 모르는 그들에겐 범우주적 진리.
그들에게 있어, '나 자신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이 하나.' - 완전한 무(無)의 추구.
그러나, '아카네'라는 어떠한 인물...
페스튬의 진리의 추구의 목적을 이해한 그녀는
비록 그들에게 동화당하나, 그녀의 의지는 페스튬을 '인간화'시킨다.
즉, 인간의 '상실감,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인간의 사고방식을 그들에게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한편, '나'로서의 존재감, 정체성을 가진 인간들은 페스튬을 적으로 인식한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페스튬은 하나씩 하나씩 인간들을 동화시킨다.
페스튬의 극단적 동화를 막기 위해 시행된 '아카디언 프로젝트'를 위해서
다시 태어난 '미나시로 츠바키'는 페스튬에게....
'아픔과 상실감'을 이해시키려 한다.
물론 스토리의 전개상으로, 그들은 '증오'를 먼저 이해하게 되며,
결국 인간과 페스튬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여기서 인간은 변하지 않는가?
인간도 페스튬의 방식을 받아들인다.
'증오'를 배운 페스튬의 소멸은 그들을 동화'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페스튬과 교류한 주인공,
즉 과도기에서 벗어난 인간은,
'나 자신으로서의 다른 존재에 대한 배타성이 아닌 나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며 동시에
'너와 나의 일체화, 즉 동화가 아닌 너와 나의 조화'에 대해 이해하고 인식한다.
즉, 인간과 페스튬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해야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도기적 인간'처럼 완전한 배타성도,
'페스튬'처럼 완전한 동질성도,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
'대화'와 communication을 통한
'나 자신으로서의 존재감'과 '나와 너의 범우주적 조화'가 공존할 때만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이지생명체와의 교류에 대해서도 이러한 생각을 할 법한데... 인간들끼리는 말할 것도 없지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정말로 시급한 일이 '대화'와 communication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가 똑같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고, 똑같은 신념을 추구하면 극단적인 두 사고방식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결국엔 서로의 파멸을 가져올 뿐이겠죠?)
첫댓글지금까지 제가 본 '이지 생명체'에 대한 묘사 중 가장 철학적인 내용인 것 같았다는... (쿨럭.. 그래봤자 별 내용은 없었지만..^^;) (너무 망상적이긴 합니다만.... 이지 생명체에 대한 고찰이란, SF소설에서 나오니.. 그래도 생각해 볼 뼈대는 있는 내용같네요.. 혹시 나중에 만나게 될지 압니까? ㅋㅋ)
음..jys34 님 말 듣고 창궁의 파프너 어제 26편 전부 끝내버렸습니다 -_-;.. 시험이 하나밖에 안남은지라. 새벽을 불태웠죠+_+사실은 보다보니까 재밌더라구요.후반에 가니까 더 재밌었습니다. 외계생명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랄까.. 신선했습니다. 캐릭터들도 마음에 들고 ㅋㅋㅋ 그런데 진짜 건담이랑 완전 판박이 ㅋㅋ
첫댓글 지금까지 제가 본 '이지 생명체'에 대한 묘사 중 가장 철학적인 내용인 것 같았다는... (쿨럭.. 그래봤자 별 내용은 없었지만..^^;) (너무 망상적이긴 합니다만.... 이지 생명체에 대한 고찰이란, SF소설에서 나오니.. 그래도 생각해 볼 뼈대는 있는 내용같네요.. 혹시 나중에 만나게 될지 압니까? ㅋㅋ)
우우~ 조금 복잡하지막 짝짝짝 ㅋㅋ
음..jys34 님 말 듣고 창궁의 파프너 어제 26편 전부 끝내버렸습니다 -_-;.. 시험이 하나밖에 안남은지라. 새벽을 불태웠죠+_+사실은 보다보니까 재밌더라구요.후반에 가니까 더 재밌었습니다. 외계생명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랄까.. 신선했습니다. 캐릭터들도 마음에 들고 ㅋㅋㅋ 그런데 진짜 건담이랑 완전 판박이 ㅋㅋ
카리에 = 마류함장 마카베 사령관 = 토다카 대령 카즈키 = 신 아스카 -_-;;... 눈 빨개지니까 시드깬 아스카랑 완전 똑같.. 마야 = 미리아리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