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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自繩自縛)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잘 나갈 때는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시대, 이렇게 딱 두 왕이 다스린 시기뿐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나름 부국강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정치, 외교, 군사 그리고 문화 모든 면에서 그야말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솔로몬이 죽고 난 뒤 이스라엘은 그간의 번영은 한 순간에 사라진다.
하나였던 민족이 둘(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게 되었다. 태평성대를 이루며, 자신들이 섬기는 신 야훼의 축복으로 번영을 이루던 멀쩡하던(?) 국가가 왜 갑자기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주변의 강대국들 때문이라느니,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중요한 곳이라 너도나도 탐했던 지역이라 지정학적으로 분쟁이 많을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둥 다양한 핑계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당시 가나안 지역에 거주하던 유목민 규모로 매우 작은 민족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나로 버티면서 세력을 확장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하지만, 다윗과 솔로몬 두 왕의 시대를 뒤로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뉜다. 시작은 성전 건축이었다. 이스라엘의 신, 야훼의 축복으로 강성한 국가의 형태를 띠게 된 이스라엘은 신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는 이유로 성전을 짓는다. 종교적인 색채가 워낙 뚜렷한 민족이었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위해 오랜 기간 백성들이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는 데 있다.
솔로몬 때 지어진 성전 건축물은 고대 이집트 문명이나 그리스, 혹은 중세 유럽의 교회 건축물들과 비교했을 때 규모 자체가 큰 편은 아니었다. 가로세로 높이 다 해봐야 300㎡에 불과했다. 공공 교육기관(초중고)의 체육관 혹은 강당 정도의 규모다. 하지만, 문제는 자재 구입과 내부 장식이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짓기 위해 사용된 자재들은 대부분 레바논에서 수입했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당시 솔로몬은 레바논의 왕 히람과 외교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무역하는데 이로웠고,
2. 레바논에서 생산되는 백향목이 고대 근동에서는 최고급 목재로 유명했는데, 내구성이 뛰어나 부패에 강하고 향이 좋아 방충 효과도 있어 건축물이나 가구 제작에 매우 적합했다.
3. 마지막으로, 지리적으로도 이스라엘과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지중해에 여러 항구도시를 보유한 레바논에서 자재들을 배를 통해 운반할 수 있어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던 육로 운반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가깝고 해상운송에 용이하다 한들, 현대 사회만큼 기계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대부분의 운반은 인간의 노동력이 수반되어야만 했다. 게다가, 토목공사를 통해 성전의 기틀 및 외형을 꾸미는 데 필요한 돌들은 사용 이전에 다듬어 운반 후 시공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모든 자원은 인력이었다.
이미 이 두 가지 요소만으로도 헉 소리 나는 노역이 충분히 예상된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 내부는 금으로 덮었고, 성전 내부에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지성서는 전체가 금으로 도금되었다. 이외의 부분들은 은과 놋으로 장식했는데, 이 모든 걸 세금으로 사 왔고, 그걸 사람이 나르고, 가공하고 붙였다. 당시의 건축 기술과 예술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었으며, 굳이 비교하자면 이탈리아의 마르코 대성당이나,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과 같이 내부가 아주 세밀하게 장식된 공간으로 꾸며졌다고는 하나, 이를 위해 거둬들인 세금과 강제노역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이었다.
규모만 작았지, 솔로몬의 성전에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다. 당시의 이스라엘 인구가 1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이 중에서 성전 건축에 차출될 만한 성인 남성이 6-70만이었다. 그런데,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벌목하고 이를 이스라엘로 운송하는 인원이 약 3만, 채석 작업 7만, 채석한 돌을 다듬고 운반하는 이들이 약 8만, 그리고 현장 감독이 3,300명, 총 18만 3천 명이 성전 건축에 동원됐다.
노동할 수 있었던 성인 남성의 1/3 가까이가 성전 건축에 발목 잡혀 있으니, 일단 머릿수부터 채워놓고 봐야 하는 고대 군사 시스템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성전 건축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상황에서, 나라가 제대로 운영될 리 없었다. 결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솔로몬이 죽자마자 이스라엘은 둘로 나뉘었다.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을 걸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망조는 자승자박이었다.
또 다른 이유, 차별과 위선이 낳은 분열
강제 노역만을 이유로 나라가 둘로 갈라진다는 건 어폐가 있다. 고대 이집트도 그렇고, 바빌로니아나 페르시아, 로마, 오스만 등 지구촌 인류사에 제국이라 불리던 곳 중 강제노역을 안 시킨 곳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나라가 두 동강 나거나 멸망의 길로 들어선 건 아니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차별과 위선이다.
앞서 언급했듯, 노동을 할 수 없었던 여성과 노인, 아이들을 제외하면, 국가 운영의 기둥이었던 성인 노동자 1/3이 성전 건축에 동원되었다. 그런데, 성경의 열왕기상 9장 22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사람은 누구도 노예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군사령관이나 지휘관, 기병대원 등으로 강제노역에 차출되지 않았다. 즉, 대부분의 성전 건축에 동원된 노동자는 전쟁을 통해 점령한 지역의 외국인이나 하층민으로 이뤄져 있었다. 물론, 이러한 기록이 유대인이 성전 건축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뜻은 아니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고증이 어려운 사안이기도 하고 정확한 사실 확인은 어렵다. 분명한 건, 유대인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누렸다는 점이다.
성전 건축은 유대인들의 신, 야훼를 섬기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섬기는 신을 위한 성전을 짓는데 본인들만 쏙 빠졌다. 성전 건축 기간은 총 7년 6개월. 열왕기상 6장 37~3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솔로몬이 왕이 된 지 4년째 되는 해, 둘째 달인 시브월에 성전 기초를 놓았고, 11년째 되는 해 여덟째 달인 불월에 성전을 완성하였다."
이 시기는 기원전 966년에서 959년에 이르는 기간이다. 1~2년도 아니고 7년이라는 세월을 특수 계층이 믿고 따른다는 신을 위해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강제 노역에 동원된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분하다. 솔로몬이 자신의 왕궁을 짓는 데 13년이라는 세월을 더 허비한 시간까지 고려하면 20년, 10~20대 젊은이들이 꽃다운 청춘을 밑거름 삼아 성전과 궁을 짓게 했으니 원망이 극심했을 것이다.
그렇게 갈등을 겪던 이스라엘은 종국에, 남쪽의 유다 왕국과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 이렇게 둘로 나뉜다. 점령한 지역도 그리 넓지 않은 데다, 인구수도 얼마 되지 않았다. 똘똘 뭉쳐 있어도 시원찮을 판에, 서로 나누고 차별하고 다투다가 두 나라로 갈라서게 되었으니, 역사적으로도 이미 여러 예시가 있듯, 멸망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수준에 이르렀다. 혹자는 강대국의 침략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은 본인이 판 무덤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