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대부터 1850년대까지의 영토이다.
아유타야 왕국이 따웅우 제국에게 망한 뒤 아유타야 독립운동 및 부흥 세력과 따웅우, 2차 따웅우, 꼰바웅을 잇는 버마 왕조의 재정복 운동으로 인한 전쟁이 1540년대부터 1770년대까지 이어져 두 나라 모두 피폐해져 버렸다.
결국 아유타야 왕조의 몰락과 단절, 꼰바웅 - 청 전쟁이 시작되었고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딱신 대왕이 태국을 통일하고 라오스 지역과 란나 왕국을 정복하며 기반을 다졌다.
이후 라마 짜끄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짜끄리 왕조를 개창하며 시암 제국이 본격적으로 확장하였다.
응우옌 왕조 베트남과 강화조약을 맺고 동남아를 반분하며 위의 영역을 구가하였다.
그런데 최전성기를 구가함과 동시에 이를 가능하게 해준 주변 환경이 극으로 치닫으며 위기를 맞이했다. 영국-버마 전쟁으로 마침내 버마가 망하고 프랑스-베트남 불평등조약으로 베트남도 위성국에 불과해졌다.
이때 태국은 많이 접한 프랑스 편을 들려다가 베트남의 경우와 영국에 자극을 줄 행동임을 인지하고 땅을 떼어주며 둘을 만족시키고 자극하지 않으며 중간 지대로 역할을 하였다.
이후 그 당시의 영토를 유지하며 1932년까지 시암이라는 국호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