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피 순을 따서
저녁 늦은 시간 서쪽부터 강수가 예보되어 우리 지역은 내일 종일 비가 온다는 사월 첫째 화요일이다. 어제는 진전 거락 산책로를 걸으려다 길을 잘못 들어 등산로가 없는 숲을 누볐다. 개척 산행 중 가시오가피 자생지를 만나 새순을 따오게 되었는데 그 순은 아파트단지 맞은편 상가 아주머니한테 보냈다. 가시오가피는 천주산 꼭뒤 그윽한 산골에도 자생지가 있음을 알고 있다.
천주산을 넘어 가시오가피 군락지를 찾아가기는 동선이 멀어 무릎에 무리가 올 듯해 다른 경로를 찾았다.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 칠원 산정마을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기로 했다. 이른 아침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로 마산역 동마산병원 앞으로 나가 산정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마산 내서지구 아파트단지와 칠원 읍내를 둘러 천주산 꼭뒤 산정마을로 들어갔다.
하루 두세 차례 벽촌으로 들어가는 버스로 종점에서 혼자 내렸다. 평소 천주산 함안 경계 고개나 양미재에서 구고사를 거쳐 찾은 산정마을을 대중교통으로는 처음 가 봤다. 인적이 드문 마을 안길을 거쳐 담벼락에 옛날 농주를 판다는 글씨가 적혀 있는 집을 지났다. 한 할머니가 고두밥을 쪄 누룩으로 전통 방식의 술을 빚어 파는 집인데 근래 나는 들러 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마을에서 함안 경계 고개 길고 긴 골짜기에 임도를 개설해서 곳곳에 사방댐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을에서 가까운 일부 구역만 경작지고 나머지는 깊고 깊은 산골이라 평소 오가는 사람이 드는 곳이었다. 시내 거리 가로수 벚꽃은 모두 졌으나 산중의 산벚은 이제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온 골짜기 야생으로 자란 개복숭나무가 피운 산도화 복사꽃은 절정이라 무릉도원이 연상되었다.
고갯마루로 올라가기 전 임도를 벗어나 사방댐이 설치된 계곡으로 내려섰다. 등산로가 없어 바위 절벽을 지나기도 했다. 천주산에서 칠원 예곡으로 가는 호연봉이 긴 산등선으로 뻗어간 곳이다. 나는 작년 봄에 천주산에서 등산로가 없는 그곳 숲에 자라는 가시오가피 군락지를 발견해 새순을 따 산나물로 먹은 바 있었다. 올해도 오가피 순을 채집하려고 거기 산기슭을 찾아갔다.
계곡물이 흐르는 가장자리 산괴불주머니가 층층이 노란 꽃을 피웠다. 이른 봄 피어나 제 몫을 다하고 저문 야생화의 흔적들이 보였다. 응달 숲 바닥에는 연보라로 귀엽고 앙증맞은 꽃을 피운 노루귀는 잎맥을 부풀려 자랐는데 노루의 귀처럼 생겼더랬다. 얼레지는 백합과 같은 꽃잎이 시든 채 달린 개체들도 보였다. 흰 남산제비꽃과 자주색 고깔제비꽃은 아직 몇 송이 남아 있었다.
북향 응달 그윽한 곳이라 회잎나무 순은 이제 피어 산나물로 삼기 알맞게 잎을 펼쳐 나왔다. 나는 보름께 전 조롱산에서 채집해 비빔밥을 비벼 먹은 홑잎나물이다. 홑잎은 거들떠보질 않고 오가피나무를 살피니 잎눈이 터 부드러운 순이 자라 나왔다. 배낭을 벗어두고 오가피 순을 따 모았다. 야생 오가피나무에는 가시가 붙어 있긴 해도 세력이 약해 순을 따기는 어려움이 없었다.
한 시간 남짓 걸려 오가피 순을 땄더니 배낭과 보조 가방까지 채울 수 있었다. 배낭을 추슬러 둘러메고 산비탈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섰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엎디어 한 마리 짐승처럼 물을 들이켜 마셨더니 목마름이 가셨다. 비탈에서 임도로 올라 산정마을로 나가 시내에서 들어올 버스를 기다렸다. 운행 시간에 맞추어 들어온 버스를 타고 칠원 읍내를 둘러 마산으로 나갔다.
집 근처 이르러 꽃대감에게 전화했더니 빙상장에서 운동 중이었다. 오가피 순을 채집해 오는 길이니 아파트단지 건너편 상가에서 보자고 했다. 가끔 들린 주점을 찾아 주인 아낙에게 오가피 순을 꺼냈더니 향기가 퍼졌다. 맑은 술을 몇 잔 비우는 사이 오가피 순은 전으로 부쳐져 나와 쌉쌀하고 향긋했다. 이웃 테이블 손님들까지 오가피 전으로 무르익어가는 봄을 혀끝으로 느꼈다. 23.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