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란 참, 김밥 같아서
그날 김밥을 말고 있는 내게 물었지
인因과 연緣이 만나 허기를 채운다면
김과 밥은 무엇으로 채우느냐고
오래된 별 하나 스쳐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인연이라고
속 재료가 모자란 이유 대신
우리가 말려 들어간 경우를 에둘렀지
우린 식성 차이로 자주 다퉜고
그럴 때면 김밥을 말았어
인연은 참, 김밥 같아서 잘도 들러붙었지
꼬투리를 좋아하는 너는 냉소적이었어
인연은 김밥보다 부실하고
우연히 왔다가 필연적으로 가는 거라고
난 우리의 대화를 똘똘 말아서 토닥였어
내가 우연처럼 왔듯이 너도 필연처럼 가겠지만
우린 우주의 여백에서도 부싯돌처럼 반짝일 거라고
속 터진 김밥을 담으며
안쪽에서 버티는 힘은 인이고
바깥에서 감싸는 것이 연이라고 말했어
원인만으로는 말지 못하고
조건만으로는 뭉칠 수 없으니까
야심차게 계란말이로 별을 만들었어
떨림의 흔적을 찾듯
오래된 별과 겸상한 표식을 남기려
함께 말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증거불충분이었지만
원인을 캐묻는 동안 밥은 식었고
조건을 따지는 사이 김은 눅눅해졌지
단무지에서 별이 스쳤어
빨간 동그라미
달력에 송년 모임 동그라미가 빨갛다
동그라미는 규정 속도가 없고
멈추려 하면 헛바퀴가 돈다
내 달력은 알코올 중독이다. 빨간 동그라미가 밤마다 나를 끌어내고, 맨정신을 온전하게 데리고 온 적 없다. 월세와 관리비, 취하지 않으면 동그라미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시간은 할부로 주행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연체중이다. 대출금보다 약속이 먼저 만기를 맞고, 12월은 할인도 없이 지나간다. 계산서는 늘 내가 받는다
단골 노포에는 세꼬시 한 점 덩그렇게 남고, 빈 병을 털고 사라지는 사람들. 거리엔 가벼운 전표처럼 눈발이 흩날리고 부르지도 않은 택시가 왔다가 가고, 오들오들 떨던 길냥이는 나를 보지 않고, 영혼 없는 순찰차가 사이렌 속으로 사라진다. 상처 빨간 내 동그라미는 필름 끊긴 도로를 대수롭지 않게 횡단한다
달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날 동그라미를 정확하게 수금해갔다
비틀거리는 한해가
음주 측정을 거부하고 최단 거리로 달아났다
과속에 치인 나를
달력 가장자리에 동그랗게 방치하고
생선 가시
구순의 어머니와 아들이 코다리찜을 사이에 둔다
어머니는 침침한 눈으로 가시를 발라내고, 아들은 살을 발라 어머니 숟가락에 도톰하게 얹는다. 배부르다며 밀어낸 손, 살은 다시 아들의 밥그릇으로 돌아온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아들이 마지못해 삼키면, 어머니는 가시에 붙은 시간을 뜯는다
어머니는 평생 가시 쪽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 밥상 앞에는 가시만 쌓이고
나는 어머니가 발라낸 하루들을 먹으며 환갑이 되었다
어머니의 등이 먼저 식었다
삼킬 것도 없는데
목구멍이 자꾸 콕콕 찔린다
이병진 시인
2022 월간문학 신인상 등단
시집 『애매와 모호』시인광장 2026,6 1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