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말고 대충 쏘자” 강심장 안산… 숨막히는 슛오프서 텐! 텐!
[도쿄올림픽]안산, 양궁 첫 3관왕 새 역사
한국 여름올림픽 사상 첫 3관왕에 오른 스무 살 신궁 안산은 주변의 평가대로 멘털 ‘슈퍼갑’이었다. 16강전 이후부터 매 경기 치열한 승부가 이어졌지만 표정이 바뀌거나 큰 동작을 취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간간이 미소를 지었다.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와의 결승전 1세트 첫 발을 8점에 쐈지만 이후 2세트까지 5발 연속 10점을 명중시켰다. 4강과 결승전에서 한 차례씩 활시위를 당기다 멈칫하는 동작을 취했지만 결과는 각각 9점과 10점이었다. 화살이 문제가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바로 자세를 만들어 슈팅을 했다.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이어 1발로 승부가 결정나는 슛오프를 치렀지만 모두 10점 만점을 쐈다. 경기 도중 80대 bpm에 머물던 안산의 심박수도 결승 슛오프에서는 118bpm으로 올랐지만 오시포바는 167bpm을 찍을 만큼 요동치는 모습을 보였다. 경험 많은 선수들도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슛오프 상황을 여자 양궁 대표팀 막내인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금메달 시상식이 끝난 뒤 안산이 “‘쫄지 말고 대충 쏘자’라는 생각을 했다”며 슛오프 상황을 복기하자 취재진들 사이에서는 한번 더 놀랍다는 탄식이 터졌다. 경기 내내 혼성전에서 함께 금메달을 일궜던 김제덕(17·경북일고)이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는 얘기를 듣고는 “목이 아프겠다 싶었다”라고 재치 있게 답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경험했던 대선배들도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게 안산의 ‘포커페이스’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이성진 홍성군청 코치(본보 해설위원)는 “산이의 포커페이스에 이은 과감한 슈팅은 다른 선수들이 갖지 못한 역대 최고의 퍼포먼스다. 그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멘털”이라며 놀라워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관왕 장혜진도 “평소 경기 때의 평정심, 포커페이스 유지는 최미선(리우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금메달)이 최고일 때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안산은 5차례 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동안 2925발을 쐈다. 선발된 3명의 대표 가운데 가장 많다. 바늘구멍에 비유되는 선발전을 통해 그의 멘털은 더욱 강해졌다. 산(山)이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어떤 위기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포커페이스도 시상식에서 ‘봉인 해제’가 됐다. 애국가가 울리고 하이라이트 부분에 이르자 눈물을 훔쳤다. 시상식이 끝난 후 공식 인터뷰 자리에 은메달, 동메달리스트가 늦자 셀카를 찍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부지런히 사진을 올리는 모습은 평범한 여대생 그대로였다. 시상식 전달자로 나선 정의선 대한양궁협회 회장(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 주기도 했다.
평소에는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안산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엄마가 해주는 애호박찌개를 먹고 싶다. 조금 매콤하게 한 거”라고 답했다.
개인전 직전 자신의 짧은 ‘쇼트커트’ 머리를 둘러싼 페미니즘 논란이 크게 불거졌지만 부담을 경기장으로 갖고 들어오지 않았다. 이날 오전 정의선 회장이 안산에게 격려 전화를 해 “외풍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경기를 해달라”고 했다. 안산도 16강전부터 결승까지 오는 동안 관련 질문을 정중하게 사양했다. 시상식 때도 관련 질문을 피했던 안산은 이번 대회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대한양궁협회를 통해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국민들의 많은 응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한 사람의 위대한 성취 뒤에는 반복되는 훈련과 지독한 외로움이 있다. 때로는 지나친 기대와 차별과도 싸워야 한다”며 “서로의 삶에 애정을 갖는다면 결코 땀과 노력의 가치를 깎아내릴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끝까지 이겨낸 안산 선수가 대견하고 장하다”고 썼다.
도쿄=유재영 기자, 박효목 기자
안산, 페미니즘 악플도 뚫었다… 외신 “사이버 폭력속 金 행진”
[도쿄올림픽]‘쇼트커트 머리’ 무분별 비난에 “안산 선수 지켜야” 응원 글 쇄도
안산 “상처 받지 않았으니 괜찮다”… BBC “한국, 성평등 제대로 다뤄야”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에서 안산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안산은 혼성단체전, 여자단체전에 이어 개인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하며 사상 첫 올림픽 여자 양궁 3관왕이 됐다. 2021.7.30.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홍진환 기자
도쿄 올림픽 양궁 개인전을 앞두고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안산(20)의 짧은 머리 모양을 놓고 ‘도 넘은 페미니즘 혐오’ 논란이 일었다. “금메달을 박탈하라”는 비판에 주요 외신까지 “사이버 폭력”이라고 보도했고, 정치권 등에선 “국가 망신”이라며 안산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안산은 24일 혼성 단체전과 25일 여자 단체전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딴 직후 예상치 못한 비난 여론에 부딪혔다. 안산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한 누리꾼이 “왜 머리를 자르나요?”라고 댓글을 달자 “그게 편하니까요”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남초 성향의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안산이 광주여대 출신인 것을 찾아내 “여대에 쇼트커트이면 무조건 페미(페미니스트)”라고 주장했다. 안산이 과거 소셜미디어에 올린 ‘웅앵웅’ 표현을 두고 ‘남성 혐오(남혐)’ 성향이라고 몰아세웠다. 웅앵웅은 ‘말을 웅얼웅얼하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로 여성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였지만 단어 자체에 ‘남성 비하’ 의미가 담겨 있진 않다. 일부 누리꾼들은 “남혐을 위해 만든 단어를 쓴 이유가 뭐냐”, “메달을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리꾼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쇼트커트 캠페인’을 펼치며 안산을 응원했다. 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안산 선수를 보호해 주세요’, ‘악플러들을 처벌해 주세요’라는 등의 내용이 수천 건 올라왔다.
안산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향한 과도한 비난에 대해 27일 인스타그램에서 “상처받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했다. 또 누리꾼이 보낸 욕설에 대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데”라고 답장한 캡처 화면을 공개하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주요 외신은 이 같은 논란을 두고 안산에 대한 ‘사이버 폭력(online abuse)’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30일 “안산이 헤어스타일과 관련된 비난을 떨쳐 내고 양궁에서 3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고 했다. 로라 비커 BBC 한국특파원은 트위터에 “이번 일은 헤어스타일 문제가 아니라 ‘전형’을 따르지 않는 여성에 대한 공격”이라며 “한국이 성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신들의 보도에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국가적 망신 상태”라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머리가 쇼트커트고, 특정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는 표현을 사용한 것 가지고 마치 그게 그 사람의 전부인 양 규정하고 비난하는 것은 도를 넘은 것”이라며 “안산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은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민 기자, 조종엽 기자, 최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