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마지막 교통 오지를 '종남산터널'로 탈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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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가장 큰 미래 사업,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는 종남산(終南山) 방동고개 아래로 터널을 뚫어 밀양시내 중심부인 '삼문동 ~ 나노교 ~ 사포 ~ 방동터널 ~ 초동 봉황리 ~ 초동 ~ 무안'으로 10분 내로 연결하는 교통의 혁명을 이룩합시다.
'방동터널'은 일명 '종남산터널' 입니다.
방동고개를 밀양의 지리지(地理誌)와 밀양지명고(密陽地名攷) 등에는 '방울재' 또는 '영현(鈴峴)'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옛 부곡현(釜谷縣)과 창녕군(昌寧郡)을 잇는 고개였습니다.
지금 밀양 시내와 제일 먼 거리를 잇는 지역이 초동면과 무안면의 중.남부 지역입니다.
이 종남산터널(일명 방동터널)이 개통되면 밀양에서 가장 먼 초동면과 무안면의 중.남부 지역이 10분 이내로 연결됩니다.
종남산터널(일명 방동터널)을 사포와 봉황리 구간을 뚫는데는 터널의 길이도 짧고, 공사비도 많이 안 들면서 초동과 무안의 중남.부 지역을 가장 빠르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초동면 전 지역과 무안면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종남산에 막혀서 밀양 시내 중심부와 지리적으로 막혀 있다.
●부북면 후사포리와 초동면 봉황리 구간의 종남산터널 1.6km를 뚫어면 마흘리고개와 무안면을 우회하지 않고, 또 상남면과 하남읍을 우회하지 않고 초동면 전 지역과 무안면 중부 및 남부 지역을 밀양시내 중심부와 교통을 매우 빠르게 소통시킬 수 있다.
●밀양 사람들이라도 초동면 지역이 교통 오지로 남아 있어 종남산 동쪽의 사람들이 소통이 잘 안되어 초동면의 마을 이름을 잘 모른다.
●이에 비교해서 다른 지역은 단장면 경유 표충사, 산외.산내 경유 울산 방면, 상동 경유 경북 청도.대구 방면, 청도면 경유 창녕 방면, 삼랑진 경유 양산 방면, 상남.하남 경유 창원.부산 방면으로 대중교통 등이 자주 있어 마을 등이 알려져 있다
●초동면은 밀양 시내 중심에서 도로 노선을 보면 막다른 골목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어 잘 왕래하지 않으니까 밀양 사람이라도 마을 이름을 알기가 좀 생소하다.
제(도재국)가 초등학교 다닐 때인 60여 년 전까지만해도 방동고개는 밀양시내와 초동면.무안면.창녕군의 인교.부곡면.길곡면 쪽으로 잇는 산중대로(山中大路)였고, 오일장 장날마다 장보러 다닌다고 초동면과 무안면, 창녕 부곡면 쪽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 넘어다녔습니다.
그러니까 근대 동력 대중교통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방동고개(일명 종남산 고개)가 밀양 중심부인 밀양부(密陽府) 관아(官衙)에서 종남산 너머의 초동면 전 지역과 무안면의 중.남부 지역과 더 멀리는 창녕의 인교.부곡면.길곡면 등을 가장 빠르게,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산중대로(山中大路)였습니다.
동력 대중교통이 발달하기 이전의 '산중대로(山中大路)'는 요즘으로 비교하면 국도와 고속도로의 중간 정도의 지위를 가지는 도로망이었습니다.
이 고개 아래로 터널을 뚫는 장기계획을 세워 터널을 뚫어면 밀양 시내 중심부와 교통이 가장 먼 위에 열거한 지역과 가장 빠르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종남산터널(방동터널)을 통과하는 도로는 또 '청도면 ~ 무안면 ~ 낙동강 방향 창원 북면의 '新창원 공단(확장 중)' 등의 지역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국가지원지방도로와 바로 소통(연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초동면과 무안면 중.남부 지역으로 오가려면, 지금은 마흘리고개를 넘어 멀리 둘러다니거나, 또 상남면과 하남읍을 멀리 둘러 다녀야 합니다. 즉, 너무나 멀리 종남산을 둘러다녀야 합니다.
이 터널과 연결되는 밀양과 인근 주민들이 합심하여 종남산터널을 뚫어면 《밀양의 마지막 교통 오지》로 남아 있는 종남산 너머의 초동면 전 지역과 무안면의 중.남부인 연상리와 무안리.중산리.덕암리.고나리.모로리.웅동리.성덕리 등의 지역을 크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종남산터널(일명 방동터널)은 또 밀양과 창녕의 여러 지역을 가장 가깝고, 가장 빠르게 소통하는데 엄청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함양~울산 고속도로'를 건설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위 지역의 구석구석을 몸의 실핏줄처럼 파고드는 도로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종남산 너머인 무안 중.남부 지역과 초동면.하남읍 등의 일부 주민들이 창원 및 김해의 상권(商圈)에 점차 다가가는 것도 종남산터널을 뚫음으로서 밀양시내의 상권(商圈)으로 집중시켜야 합니다.
수십 년 전인 박창기 밀양시장 시절에 시장님이 부임해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밀양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밀양시청 전 직원에게 한 가지씩의 밀양시 발전 방안을 작성해서 제출하라' 했을 때, 저(도재국)는 지금의 '가지산터널을 뚫어 밀양과 울산을 가장 가깝게, 가장 빠르게 연결시키면 밀양 발전을 크게 앞당 길 수 있다' 라고, 장문(長文)의 제안서를 맨 처음 내었습니다.
제가 공무원 39년을 하면서 20명 정도의 시장님과 군수님이 오고 갔습니다. 그중에서 박창기 시장님을 감히 임금에 비교하면 성군(聖君)과 같은 분이었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습니다.
그 당시는 어느 누구도 가지산 아래로 장대(長大) 터널을 뚫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구불구불 석남고개 60리(밀양 남명 삼거리~ 울산 석남사 입구 구간) 국도'를 개량하는 것만 신경을 쓰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하급 밀양시청 직원인 도재국의 제안'이 지금의 우리나라 최대의 장대(長大) 터널 중의 하나인 '가지산 터널'을 뚫은 기폭제가 되었을 것은 확실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옛 밀양의 지리문헌(地理文獻)과 고지도(古地圖)의 주기(注記)에는 석남고개의 밀양과 언양 구간을 '험한 60리 고갯길'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합심하여 밀양의 마지막 교통 오지를 해소하기 위해서 종남산터널(방동터널)을 뚫는데 총력을 다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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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지명을 정하는 기준과 석남고개, 천화현, 가지산, 천화산, 천화면, 가지산터널, 석남터널, 나노橋, 가칭 終南山橋 또는 沙浦橋 등)
1. 석남고개와 천화현 :
석남(石南)고개를 천화현(穿火峴)이라고도 합니다. 穿火峴의 지명 유래는 옛날 태고시대에 지구의 지각운동이 일어날 때 지하의 마그마가 땅밖으로 불을 뿜어면서 밀고 솟아올랐다는 뜻에서 천화(穿火)라는 지명이 붙었고, 迦智山을 穿火山 또는 石南山이라고도 합니다.
2. 가지산의 유래 :
세월이 흘러 石南寺가 들어서면서 穿火山이 부처님과 관련이 있는 산명인 迦智山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迦智라는 뜻은 佛敎的인 용어입니다. 그래서 석남사의 配山은 가지산이 되었고, 석남사의 산문 현판에는 '迦智山 石南寺'가 적혀 있습니다.
가지산과 얼음골 일대와 載嶽山 北麓 일대는 화산암(안산암) 지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밀양문화원에서 발행한 《밀양지 密陽誌》의 자연환경 編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3. 가지산터널과 석남터널 :
석남(石南)고개 밑으로 뚫은 터널을 가지산터널 이라 합니다.
※구(舊) 24번 국도상의 짧은 석남터널과 구분
3. 지명 제정 기준은 '가는 방향'의 중요 지명 선정 :
지명(山 이름, 고개 명칭, 교량 등의 명칭)을 정할 때는 주로 가는 방향의 중요한 지명을 선택하여 정합니다. 그래서 밀양에서 울산(彦陽)으로 갈 때는 고개 너머에 석남사(石南寺)라는 큰 절이 있으므로 石南寺의 방향으로 고개를 넘어간다는 뜻에서 밀양 사람들은 石南고개라 부릅니다.
※兩방향(양쪽 지역)의 상대성이 있어 지역분쟁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중요하고 큰 지명을 선정하는 것이 큰 원칙입니다.
4. 울산도호부와 언양현 :
그러면 반대로 옛날에는 울산(彦陽) 사람들은 석남고개를 어떻게 불렀을까요? 穿火峴 또는 穿火嶺, 천화고개라 불렀습니다. 울산(彦陽) 사람들이 왜 穿火峴 또는 穿火嶺, 천화고개라 불렀을까요? 그 이유는 옛날에는 지금의 밀양시 산내면과 산외면을 모두 천화산 자락에 있다 하여 穿火面으로 불렀습니다. 그후 山內面을 穿火山內面, 山外面을 穿火山外面으로 불렀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밀양문화원에서 발행한 《밀양지명고(密陽地名攷)》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5. 천화령, 천화현, 천화고개 :
위와 같은 지명 유래와 지명을 정하는 기준에 의해 울산(언양) 사람들은 밀양을 향해 석남고개를 넘어갈 때 석남고개라 부르지 않고 穿火嶺 또는 穿火峴, 천화고개라 했습니다.
6. 조선시대 지방행정구역 체계 :
울산을 제(도재국)가 왜 '울산(彦陽)'이라 적었을까요? 그것은 조선시대에 지방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맨 上位부터 下位로 순서대로 적어면 府, 牧, 大都護府, 都護府, 郡, 縣입니다. 즉, 언양현은 울산도호부와 별도의 행정구역의 지위를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都護府는 요즘과 비교하면 市 단위입니다
7. 울산도호부와 언양현 :
조선시대에는 蔚山都護府와 彦陽縣이 각각의 행정구역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옛날에 밀양도호부가 있었을 때 지금의 경북 청도군 豊角面 일대가 豊角縣의 행정조직으로 각각의 행정구역의 지위로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풍각현은 한 때 밀양도호부(高麗時
代에는 密州)의 屬縣으로 있었습니다.
8. 지명은 당해 지역민과 외지인에게 선명성 강조 :
지명은 당해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그 지명을 통과하는 외지인에게도 방향의 선명성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들면 나노橋보다는 종남산橋 또는 沙浦橋로 하는 것이 밀양 사람 또는 외지인에게 오가는 방향의 선명성이 있습니다. 이 교량을 지나다니는 밀양 사람과 외지인이 길을 찾아가는데는 나노橋가 방향에 도리어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또 예를들면 울산이나 양산, 부산 등지의 외지인이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로 차를 몰고 영남루와 삼문동을 지나, 또 나노교를 지나 창녕 방향으로 갈려면 반드시 종남산 또는 沙浦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길을 묻거나 도로안내간판에 '나노橋'보다는 '종남산橋' 또는 '사포橋'로 안내하면 길 찾기가 용이합니다.
※거리 또는 지역적으로 보아 나노橋는 나노산업단지와 큰 관련이 없는 지명(교량 명칭)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密州橋'도 '馬岩山橋'로 하면 길 안내 또는 길 찾기가 매우 유리합니다.
9. 지명위원회의 임무 :
지명위원회가 지명을 제정할 때 즉, 교량 또는 고개 등의 명칭을 정할 때는 '가는 방향 또는 가는 방향 인근의 대표적인 사물의 명칭(산, 마을 등의 명칭)' 또는 '양쪽 방향 지명'을 선정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예시 :
●龍頭橋 : 가는 방향 인근의 용두산
●禮林橋 : 가는 방향의 마을 명칭
●密山橋 : 밀양시내와 산외면의 양쪽 방향
●三上橋 : 삼랑진읍과 상남면의 양쪽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