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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초(撻楚)
어버이나 스승이 잘못을 경계(警戒)하느라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림을 일컫는 말이다.
撻 : 때릴 달(扌/12)
楚 : 회초리 초(木/9)
(유의어)
초달(楚撻)
달초(撻楚)는 부모나 스승이 훈계 할 목적으로 자신의 볼기나 종아리를 쳐 자녀나 제자가 자기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고 '국어사전'은 적고 있다.
달(撻)자는 '종아리 칠 달'자고, 초(楚)자는 '가시 초'자로 부모나 스승의 아픔이 자식이나 제자에게 전해져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다.
현대에는 달초 시야비야(是也非也)로 옳다 그르다지만 참교육의 차원에서 헤아릴 필요가 있다.
김약연(金躍淵)은 1899년 중국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과 교육에 관심을 가져 1911년 명동여학교를 설립하여 여성교육에 힘썼다.
약연은 간민회(墾民會)를 창설하여 자활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37년에는 은진중학교를 설립,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작문시간에는 '애국'과 '독립'이라는 낱말이 들어가지 않으면 점수를 주지 않았다. 또 책을 읽으면서 생각 없이 읽은 것은 음식을 씹지 않고 삼키는 것과 같다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느 해 봄, 학생과 학부형들이 학교에 불만을 품고 소동이 벌어졌다. 약연 이사장은 그 상황을 지켜보다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아시다시피 이 학교의 이사장입니다. 오늘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난 것은 모두 저의 부덕한 탓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하지 마십시오. 나라를 빼앗긴 지금 대한의 아들 딸들을 올바르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통열하게 느낍니다. 이 책임을 지고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보시는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사장은 아랫도리를 걷어 올리고 회초리(楚)로 힘껏 자기 종아리를 내려치기(撻) 시작했다. 종아리는 금세 빨갛게 부풀어 올랐고 거듭 내려치자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에 모두 놀라 잠시 넋을 잃고 서 있던 학생들과 학부형들은, 이사장에게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했다. '이사장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내려 놓으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가 져야 합니다.'
학부형들은 이사장님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러자 한 학부형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도 학부형의 한 사람으로 제 아들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자 학부형들이 너도나도 나섰다. 이사장은 더 이상 학부형들의 만류를 물리치지 못하고 걷어 올렸던 바지를 내리면서 말했다. '앞으로 다시는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장이 물러가자 학부형들은 이사장의 인격에 감동하여 너나 할 것 없이 숙연해졌다. 전문화된 현대 교육에서도 완벽한 교육지침은 없다. 개개인의 인간심리를 분석하고 근본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전인교육기관인 학교가 있기 전에는 서당(書堂)이 있었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서당에 맡길 때 싸리나무 한 묶음을 훈장에게 주는 관례가 있었다. 달초(撻楚)는 여기에서부터 전래 되었다고도 한다.
안방 앞 시렁에 놓인 회초리는 동생과 싸웠을 때나 거짓말을 했을 때, 종아리를 걷어 올리고 맞았던 매였다. 영국의 처칠수상도 어릴 적엔 체벌을 받았다고 한다. 어릴 때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습관이 되어 고치기 어렵다고 믿었던 것이다.
자녀 교육의 출발은 안인(安人)이다
요즈음 자녀문제로 속앓이 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정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사교육비를 부담하며 자녀교육을 열심히 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곱씹어 볼 일이다. 그간 우리가 이룩한 국가발전과 풍요로운 삶은 높은 교육열 덕택이다.
지난 반세기 만에 자원도 자본도 신통찮은 나라가 세계가 찬탄하는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개인도 윤택하게 된 원동력은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 공급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한강의 기적’의 자랑스러운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그 주인공인 오늘의 한국인들 삶은 어떠한가?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윤택하다고 삶이 과연 행복해졌는가?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점점 뒷걸음질쳐 이제는 세계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반면 자살은 점점 늘어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9년째 1위이고, 2위와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특히 70, 80대 노인 자살률이 20, 30대 젊은이보다 5~10배 높다.
더구나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학대받고 있다고 응답한 노인들에게 누가 학대하느냐 물으니 85.7%가 가족이라 답하고, 그 가운데 가장 학대하는 사람은 누구냐는 물음에 아들이라고 한 대답이 51%에 달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 사회에 왜 이런 문제들이 생겼을까.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의 문제다. 마음의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특히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행복으로도, 불행으로도 이끈다. 부모를 학대하는 자녀가 생기는 근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자라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자녀는 학교에 가기 전부터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란다. 세계 제일의 높은 교육열로 자녀를 교육시켰는데 왜 이 땅에서는 효자가 줄어들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서일까. 그동안 공부 잘하라는 지식교육, 남들에게 이겨야 된다는 일등 교육만 시켰기 때문이다.
사람다운 삶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풍요와 윤택을 얻은 대신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 도리(道理)를 잃어버렸다. 이것을 되찾아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니 네가 먼저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대해야 한다(安人)는 인간존중의 인성교육이 중요하다. 그런데 인성교육은 말과 글로 안 된다.
아이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 마신다고 했듯이, 아이들은 가르치는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대로 닮아간다. 솔선수범이 답이라는 뜻이다.
우리 조상들은 여러 자식을 낳고 어렵게 살았다. 하지만 자식 사랑은 그제나 이제나 여전했다. 충분히 먹이지도 못한 자식이 늦도록 공부할 때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워 '이제 그만 자거라'를 연발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새벽녘에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자식의 성공을 빌고 빌었다. 자신을 편안히 인격체로 대해주시는 이런 부모님을 보고 자란 자식이 효자가 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또한 이렇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효도하는 부모를 보며 자란 그의 자식 역시 자연스레 효도하게 됨은 물론이다. 효자 집안에 효자가 생기는 이치다.
지금 우리는 그때에 비해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부모도 뒷전이요 형제도 경쟁자가 되곤 한다. 제 자식 사랑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모두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데에는 여기에 교육이 덧보태져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교육하여야 할까. 서너 살 된 아이도 자기의사가 분명하다. 부모가 이끄는 대로만 언제까지 따라오지 않는다. 사고와 자세의 전환이 필요하다.
겨레의 큰 스승 퇴계는 훈몽(訓蒙)이라는 한시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일러주고 있다. '부모가 삼갈 일은, 많이 가르치는 것(多敎)과 회초리 매질(撻楚), 우매하다 꾸짖는 것(謂愚迷)이요, 적극적으로 할 일은 자녀를 크게 칭찬(大讚)하고 좋은 낯빛으로 대하는 것(顔好)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내가 낳은 자식에게도 안인(安人)의 자세로 대하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곱씹을 만한 자녀교육의 출발점이 아닐까.
사랑의 매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전날 배운 내용을 다음날 학우들이 앞에서 책을 덮거나 등지고 앉은채로 줄줄 외우는 배강(背講)이 필수였다.
그러나 이를 못하면 목침 위에 서서 훈장으로부터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다. 소위 달초(撻楚)라 부르는 체벌이다. 요즘으로 치면 '사랑의 매'라고나 할까.
이 같은 체벌은 성균관에도 있었다. 공부한 내용을 제대로 체득하지 못했을 경우 이외에 졸거나 산만한 학생에게도 똑같이 내려졌다.
과거시험에서 쓰이던 '삼십절초(三十折楚)', '오십절초(五十折楚)'의 문장이란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 30자루나 50자루의 회초리가 꺾이도록 종아리를 맞고서야 뛰어난 글을 얻는다는 뜻이다.
율곡이 쓴 학교모범(學校模範)이란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잘못을 처음 저지른 학생에게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린다. 두 번 잘못을 하면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꾸짖고 세 번 잘못을 범했을 땐 출세에 영향을 주는 원부에 기록한다.'
예부터 체벌을 교육의 기본 수단으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체벌은 가정에서도 자녀의 잘잘못을 일깨워 주는 교육적인 기능으로 존재해 왔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유대인만큼 아이들 교육에 체벌을 적극 활용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이들은 아이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면 신체에 고통을 주는 체벌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벌주는 일을 주저하다가 나쁜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보다는 체벌이 더 교육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의 체벌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지혜의 원천인 머리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고 아이들을 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도 도구 사용은 절대 금기 사항이다. '오른손으로 벌하고 왼손으로 안아주라'는 격언도 철저히 이행한다.
또 대게 아버지가 체벌을 가하는 ‘악역’을 맡고 어머니는 자애로운 손길과 다정한 말로써 기분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지혜로움이 묻어나는 훈육방법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발생한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훈육 도구 체벌이 다시 논란이다. 역기능과 순기능을 놓고 서다. 그러나 어떤 명분으로든 정당화 될 수 없는 게 폭력 아닌가. 특히 사랑이 결여된 것이라면 말이다.
사랑의 매와 체벌
오래전 장안의 화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한 장면이다. 할머니는 손자의 종아리를 5대 내리쳤다. '아직도 모르겠니? 나는 널 혼내는 게 아니다. 널 가르치는 중이야.'
서자인 탁구는 이복누나의 연필을 훔친 도둑으로 몰렸다. 할머니는 탁구가 범인이 아닌 줄 알면서도 '억울하냐? 분하냐? 살다 보면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며 매를 든다. 험난한 세상 살아가려면 억울함마저 인내하라는 것이 할머니의 가르침이다.
조선시대 문신 이항복은 어머니의 '사랑의 회초리' 덕분에 장원급제했다. 건달이 되어가는 아들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장가 간 아들의 종아리와 엉덩이에 피가 터지도록 모진 매질을 했다. 그후 항복은 이율곡을 스승으로 모셔 학문의 길로 매진했다.
달초(撻楚)란 부모, 스승이 훈계할 목적으로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린다는 뜻이다. 자식들이 서당에 가면 부모는 훈장에게 회초리 한 묶음을 전달했다.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 달라는 뜻이다.
재미난 사실은 과거 회초리는 싸리나무가 아닌 뽕나무라는 것이다. 동의보감에 보면 뽕나무가지로 맞으면 상처가 덧나지 않고 빨리 아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매질은 하지만 행여나 상처딱지라도 생길까봐 걱정했던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사랑의 매가 아니고서야 회초리 나무 성질까지 가려서 썼을까 싶다.
영국 왕실 교육에서도 체벌은 필수였다고 한다. 장차 왕이 될 왕자에게 매질을 할 수 없어 대신 맞는 아이(Whipping Boy)가 있었다고 한다.
1800년대 미국의 일부 학교에는 체벌실(Whipping Room)이 따로 있을 정도로 체벌은 교육현장에서 일상화됐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점차 체벌을 금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다만 무조건 금지가 아니라 예외적인 조항을 두어 체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각급 학교에 체벌 전면금지 지침을 내렸다. '손바닥으로 맞으면 장풍(掌風)을 맞은 듯 나가 떨어진다'는 '오장풍'이라는 초등학교 교사의 어린이 폭력이 발단이 됐다.
'아이를 사랑하거든 매를 주고, 미워하는 아이에게는 먹을 것을 많이 준다'는 명심보감의 한 구절을 되뇌지 않더라도 사랑의 매는 체벌과 차원이 다른 훈육 방법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의 '사랑의 회초리'로 인격을 가다듬고, 지적 성장을 해 나간다. 정치권은 선거라는 '민심의 회초리'를 의식해 정치를 한다. 기업은 '소비자의 회초리'가 무서워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회초리 없는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의 회초리
교육이 백년대계(百年大計)라면 한국사회는 100년은 커녕 10년후조차 기대하기 어렵게 생겼다. 요즘 교육현장 돌아가는 꼴을 보면 누구라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초등학교 여교사가 학부모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다음날 어느 중학교에서는 남학생이 여교사를 넘어뜨린 뒤 걷어차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한 여고 교사가 학생들을 교실에 감금하고 밖에서 문을 잠근 사실이 어제 뒤늦게 알려졌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를 놓고 교육 당국과 일선학교, 학부모단체는 책임 떠넘기기에만 바쁠 뿐 자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지금은 사라지다시피 한 말로 '달초(撻楚)'가 있다. 부모와 스승이 훈계할 목적으로 회초리로 볼기나 종아리를 때리는 일이다. 예컨대 '아버지의 달초로 잘못을 뉘우쳤다'는 식으로 쓴다.
전통사회에서 달초는 효과적인 교육수단이었다. 단지 어린 자녀나 제자에게만 적용되는 수단이 아니어서, 중년을 넘은 가장도 잘못을 저지르면 노모 앞에 나가 회초리를 드리고 목침 위에 올라섰다.
달초가, 때리는 어른이나 맞는 아이 모두에게 기껍게 받아들여진 까닭은, 자기 자신을 때리는 마음으로 회초리를 들기 때문이다.
달초와는 거꾸로 자식이나 제자가 부모와 스승에게 회초리를 드는 징벌도 있었다. 자식이 큰 잘못을 저지르면 어머니는 아이 앞에서 종아리를 걷고 '에미를 쳐라'고 명령한다.
만약에 아이가 회초리를 들지 못하면 스스로 종아리에 피가 맺힐 정도로 회초리질을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그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게 마련이다. 이같은 방식은 사제지간에도 통용됐다.
청주기계공고 어머니회가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교 측에 '사랑의 회초리'를 전달했다. 학교 당국은 그 회초리를 체벌에 쓰지 않고 각반 교실에 걸어 놓기로 했다고 한다.
꼬일 대로 꼬인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당국자 모두가 가슴에 회초리 한 자루씩은 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물론 상대방을 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종아리를 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랑의 회초리'로서 기능을 다해 스러져가는 우리 교육을 되살릴 수 있다.
▶️ 撻(때릴 달)은 형성문자로 挞(달)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達(달)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撻(달)은 ①때리다 ②매질하다 ③종아리 치다 ④빠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때릴 구(毆), 볼기 칠 태(笞) 등이다. 용례로는 어버이나 스승이 잘못을 경계하느라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림을 달초(撻楚), 회초리로 종아리를 침을 달초(撻草), 종아리를 때려서 욕을 보임을 달욕(撻辱),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 벌함 또는 그 벌을 달벌(撻罰), 채찍으로 때리는 것 또는 어떤 사람을 잘 할 수 있도록 따끔하게 나무라는 것을 편달(鞭撻), 종아리를 때림을 복달(扑撻),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림을 초달(楚撻), 매로 때림을 추달(箠撻) 등에 쓰인다.
▶️ 楚(초나라 초/회초리 초)는 형성문자로 椘(초), 檚(초)는 통자(通字)이다. 옛 모양은 도끼로 작은 나무를 베고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楚(초)는 많은 나무를 뜻하는 林(림)과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에 많은 뜻(叢; 총)을 가지는 疋(필)로 이루어지며, 잘라 모아진 작은 나무의 뜻이다. 그래서 楚(초)는 (1)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나라. 양자강(揚子江) 중류의 유역에 근거한 나라로, 춘추 초엽에 무왕(武王)이 이웃 지역을 정복한 뒤부터 발전함. 장왕(莊王) 때, 제(齋)나라의 환공(桓公),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에 이어 패자(覇者)가 됨. 한때 오(吳)나라의 공격을 받아 쇠했으나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가 됨. 후에 진(泰)나라에 멸망됨 (2)중국 5대십국(五代十國)의 하나. 호남(湖南)과 광서(廣西)를 영토로 하여 마은(馬殷)이 세움. 차(茶)의 재배로 거부(巨富)가 되었는데, 뒤에 내분으로 분열하여, 남당(南唐)에 망함. (3)중국에서 북송(北宋)이 망한 후 1127년에 금(金)나라가 세운 나라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초(楚)나라, 나라의 이름 ②회초리 ③가시나무 ④매(사람이나 동물을 때리는 막대기, 방망이 따위) ⑤아름다운 모양 ⑥우거진 모양 ⑦매질하다 ⑧아프다 ⑨괴롭다 ⑩늘어놓다 ⑪산뜻하다 ⑫곱다 ⑬우거지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초나라의 노래를 초가(楚歌), 어떤 범위의 밖에 존재함을 초재(楚在), 가시나무가 무성한 거친 땅을 초지(楚地), 아프고 괴로움을 초통(楚痛), 꼬리가 긴 초나라의 닭으로 변변치 못한 물건을 이르는 말을 초계(楚鷄), 초나라와 월나라라는 뜻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 상관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초월(楚越),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림을 초달(楚撻),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벌을 초벌(楚罰), 사람이나 짐승을 때리는 데 쓰는 매를 추초(菙楚), 간난과 고초로 고생이 심함을 간초(艱楚), 억울하게 당하는 고초를 원초(冤楚), 슬프고 가슴 아픔을 비초(悲楚), 몹시 슬프고 괴로움을 통초(慟楚), 말쑥하고 조출함을 청초(淸楚), 심히 아프고 괴로움을 통초(痛楚), 뭇사람 가운데에서 뛰어남 또는 그 사람을 교초(翹楚), 종아리채 또는 종아리를 침을 추초(箠楚), 초나라 왕비가 부를 지킨다는 뜻으로 명분에 사로잡혀 실을 잃음을 이르는 말을 초비수부(楚妃守符),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빠짐을 일컫는 말을 사면초가(四面楚歌),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라는 뜻으로 약한 자가 강한 자들 사이에 끼여 괴로움을 받는다는 말을 간어제초(間於齊楚), 나릇을 북쪽으로 향하게 해 놓고 남쪽인 초나라로 가려 한다는 뜻으로 의도하는 바와 행하는 바가 서로 어긋난다는 말을 북원적초(北轅適楚)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