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장.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26일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당원권 정지 10개월’ 중징계를 결정했다.
지난 3월 김기현 대표 체제가 들어선 지 5개월 만에 김재원 최고위원과 태영호 전 최고위원에 이어 대선 주자급 인사에 대한 징계가 이뤄진 것이다.
여당이 지도부 인사와 대선 후보까지 지낸 광역단체장 등 ‘빅샷(주요인물)’을 잇따라 징계하자 정치권에서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비교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재명이 2022년 8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뒤 민주당은 1년 동안 당 차원의 징계를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징계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재명 취임 전인 지난해 6월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일명 ‘짤짤이 발언’ 사건으로 제소된 최강욱에게 당원 자격정지 6개월을 의결했다. 하지만 이재명 취임 후 열린 재심 회의에서 징계 결정을 연기한 뒤 최강욱 징계는 결국 흐지부지됐다.
최근 수십억대 코인 투자로 수사까지 받고 있는 김남국은 징계 전에 자진 탈당해 역시 징계를 피했다.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을 향해 “부하들 다 죽이고 무슨 낯짝으로”라는 발언을 해 공개 사과까지 한 권칠승도 징계 대상이 되진 않았다.
이같이 여야가 ‘비대칭 윤리위’ 상황에 놓이자 국민의힘 내에선 득실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①도덕적 우위 확보 vs 배드 뉴스 확산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비공개 면담을 하고 나와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한나라당 시절인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오명을 얻은 뒤 자체 징계에 비교적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이다. 2010년 7월 강 전 의원이 아나운서 비하 및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이 되자 한나라당 윤리위는 즉각 회의를 열어 강 전 의원에 대한 제명을 의결했다.
국회가 윤리특별위원회를 거쳐 사건 발생 1년이 넘은 2011년 8월에야 강 전 의원에게 ‘30일 국회 출석정지’ 징계를 의결한 것보다 훨씬 발빠른 대처였다.
새누리당 시절인 2014년 5월엔 지방선거 공천헌금 수수 의혹을 받은 유승우 전 의원에게 ‘탈당 권고’를 의결했는데, 유 전 의원이 의혹을 부인하며 재심을 청구하자 1주일 만에 ‘제명’으로 징계 수위를 높였다.
미래통합당 시절인 2020년 총선 때 각각 세월호 유가족 관련 막말과 노인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차명진 후보와 김대호 후보를 즉각 제명한 사례도 있다.
반면 민주당 소속 의원이나 거물급 인사가 당 차원의 징계를 받은 사례는 손에 꼽는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이던 2015년 당시 정청래가 최고위 회의에서 주승용을 향해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발언해 ‘공갈 막말’ 논란을 빚었고 당원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곧 다시 회의를 열어 정청래의 당원 자격정지 기간을 6개월로 감경시켜줬다.
2016년 친인척 채용 논란에 휩싸였던 서영교가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에선 징계 전 선제적 자진 탈당 카드가 자주 활용돼 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그만큼 보수당의 윤리적 잣대가 높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김재원(왼쪽) 최고위원과 태영호 전 최고위원이 지난 5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윤리위원회에 각각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최근 민주당에 비해 여권의 윤리위 징계가 활발해지면서 되레 부정적 뉴스가 확대·재생산되는 것 아니냐는 반박도 있다.
실제 김의겸 (민주당)도 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비판하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궁평지하차도’로 밀어넣는 행위”라고 발언하면서 궁평지하차도 참사 유가족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우리 당이 지난해 수해 당시 김성원 의원의 수해봉사 발언으로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린 것과 대비된다”며 “당이 감싸주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징계하면서 문제를 확산하고 불필요한 잡음을 가중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②건전한 당내 견제 vs 권력 싸움 변질 우려
2022년 8월 13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대표는 당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를 받은 이후 36일만인 이날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리위가 당내 권력 싸움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잡음이 이어지고 있는 서울 양천갑 지역구가 대표적이다. 지난 5월 서울 양천갑 당협위원장이자 최고위원인 조수진 의원이 당원들로부터 윤리위에 제소됐는데, 정치권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알력 싸움”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조 최고위원과 가깝지 않은 당원을 중심으로 국민의힘 양천갑 비상대책위원회가 조직된 뒤 지난달 9일 비대위는 조 최고위원의 당협위원장 탄핵을 주장했다.
반면 같은 날 국민의힘 소속 양천구의원들은 양천갑 출마설이 돌고 있는 정미경 전 의원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며 대치했다.
지난해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받는 과정에서 여권에 극심한 혼란을 부른 이준석 전 대표 사건에 대해서도 비주류 측은 “옹졸한 정치적 보복”(하태경 의원)이라거나 “권력의 하청을 받아 정적을 제거한 것”(유승민 전 의원)이란 주장을 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