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서 전도자는 참된 지혜자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사실 역사상 딱 두 명이었습니다. 모세가 그런 사람이었고, 예수님은 얼굴 뿐만 아니라 온 몸을 광채가 나신 참된 지혜자이십니다(1). 사실상 인간들 중에서 참된 지혜자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어서 지혜자는 왕 앞에서 행하는 사람에게 신중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취할 합당한 태도에 관한 조언입니다. 왕 앞에서 겸손해야하는 이유는 그에게 권위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왕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은 불행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2-5). 무슨 일이든지 적당한 때와 판단이 있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은 그때를 잘 판단하여 조언을 합니다(6). 하지만 그 역시 어느 누구도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바람을 주관하지 못하고, 죽는 날도 자신이 결정이 하지 못하며, 전쟁할 때에 제대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7-8). 이는 모든 인간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사실 인간 왕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무한하시고, 전능하십니다.
전도자는 계속해서 인생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보고 허망함을 표현합니다. 세상의 일을 잘 살펴보니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일이 있습니다(9). 그런데 그렇게 다른 사람을 억압하면서 부와 명예를 축적해 온 사람도 결국 잊혀집니다. 다른 사람을 억압하면서 살아온 그의 삶도 헛됩니다(10). 또 악한 사람을 제대로 징벌하지 못하여 악을 행하는 일이 빈번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장수하는 일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도 잘되고 장수 합니다. 겉보기에는 죄인들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악인들은 장수하지 못하고 그림자와 같이 없어질 것입니다(11-13). 현실에서 악인들이 오래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정의의 심판의 날은 오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그림자 같이 사라질 것입니다. 또다른 부조리는 악인들이 받아야 할 벌을 의인이 받게 되는 아이러니 한 상황도 있습니다. 반대로 의인의 행위대로 취급 받는 악인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조리한 삶은 허무합니다. 때문에 희락을 즐기고 주어진 오늘을 즐겁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14-15). 이것은 쾌락만을 추구하는쾌락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조리 속에서도 하루하루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쁨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지혜자는 자신이 최선을 대해서 지혜를 찾기 위해서 밤낮으로 노력을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의 결론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아무리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자는 다시 한번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겸손하게 나아가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16-17).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부조리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억울한 일도 당하게 되고, 의인이 악인 취급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이유 없이 미워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도 생깁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인생 속에서 확실한 한가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결국 그림자와 같이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께 기억되고 잘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우리의 삶 속에서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매일의 삶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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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