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10kg 빠지고 수면제 없인 못자” 金부담 박상영, 동료들이 일으켜세웠다
[도쿄올림픽]펜싱 남자에페 단체전 동메달
‘리우 金’ 부담 떨친 박상영, 마지막 3분서 11점
동점이던 중국전 역전승 이끌어… 개인전 8강서 탈락 충격 씻어내
권영준도 29-32서 34-34 만들어
한국 펜싱 이틀 연속 메달 박상영(오른쪽 아래)이 30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B홀에서 열린 중국과의 펜싱 남자 에페 단체 동메달결정전에서 45-42로 승리를 확정 지은 뒤 팀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30일 한국과 중국의 펜싱 남자 에페 단체 동메달결정전이 열린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B홀. 마지막 선수로 나선 박상영(26)은 45-42로 승리가 확정되자 그대로 피스트에 누워 눈물을 흘리며 포효를 터뜨렸다. 팀 동료들이 피스트에 올라올 때도, 응원석을 향해 큰절을 할 때도 눈물은 계속 흘렀다. 그 뒤에도 대기석에서 얼굴을 무릎에 묻은 채 한동안 펑펑 울었다.
박상영에게 도쿄 올림픽은 부담이 컸다. 그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할 수 있다”를 되뇌는 긍정 마인드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끝에 금메달을 차지하며 깜짝 스타가 됐다. 하지만 영광 뒤에는 후유증도 컸다. 그는 경기 뒤 “리우 올림픽 이후 부담감이 점점 커져 나에게 돌아왔다. 체중이 10kg이나 빠졌고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탈락하고 국내 대회 성적도 좋지 않아 국가대표에서 제외되는 등 슬럼프를 겪었다. 그는 “수술을 두 번이나 하면서 성적이 나지 않았다. 최대한 많은 운동을 했는데 결실이 나지 않을까 봐 두려움이 생겼다”고 밝혔다.
도쿄에 도착해서도 스트레스는 여전했다.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니 개인전 8강전에서 탈락했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단체전에 함께 나선 팀 동료 권영준(34), 송재호(31), 마세건(27)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그는 끝까지 힘을 내며 해결사 역할을 해냈다.
이날 스위스와의 8강전과 중국과의 동메달결정전은 박상영에서 시작해 박상영으로 끝났다. 8강전 첫 선수로 나서 4-3 리드를 이끌었고, 14-15로 뒤진 상황에서 나선 5바우트에서도 8점을 따며 22-21로 역전시켰다. 압권은 마지막 9바우트였다. 30-34로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박상영은 혼신의 힘으로 3분간 무려 14점을 얻으며 44-39 대역전극에 마침표를 찍었다.
동메달결정전에서도 34-34 동점 상황이던 9바우트에 나서 3분 동안 11점을 몰아치며 한국 에페 단체전의 사상 첫 메달을 안겨줬다. 박상영은 “형들이 잘해줬지만 내가 실수하면 끝날 수 있기 때문에 부담감과 두려움이 있었다”며 “내가 제일 잘하는 것만 하고 내려오자고 생각했는데 좋은 결과를 맞았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동메달 획득에는 ‘맏형’ 권영준의 역할도 컸다. 권영준은 8강전과 일본과의 4강전에서 제몫을 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동메달결정전에서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했다. 권영준은 8강전과 4강전에서 득점보다 실점이 더 많았다. 하지만 중국전에서 29-32로 뒤진 8바우트에 나서 5점을 얻으며 34-34 동점을 만들었다.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한 것. 권영준은 “몸도 마음도 지쳐 마치 ‘낭떠러지’에 있는 것 같았다”며 “하지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고 오로지 상영이한테 점수 차이를 좁혀서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멋진 마무리를 해준 상영이에게 고맙다”며 웃었다.
한국 펜싱은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 에페 단체전(은)과 남자 사브르 단체전(금)에 이어 단체전에서만 3번째 메달을 땄다.
지바=김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