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영등포구, 탈시설 원하는데 타 시설로 ‘강제 전원’… 장애인들 인권위 진정
송천한마음의집, 지난 8월 ‘시설폐쇄’ 사전통지 받아
서울시·영등포구, 거주장애인들 타 시설로 전원 조치 진행 중
거주장애인 중 탈시설 희망하는 당사자 있어 논란
“전원 조치 즉각 중단하고 개인별 탈시설 지원 계획 실시하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과 김정용(가명) 씨가 나눈 필담.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이라는 질문에 “자립”이라는 대답이 적혀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자립”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송천한마음의집’에 거주하고 있는 김정용(가명) 씨와의 필담 내용이다. 정용 씨는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명확하게 “자립”이라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용 씨는 보호자의 반대로 여전히 시설에 머물고 있으며 곧 타 시설로 전원 될 예정이다.
이처럼 서울시와 영등포구가 시설폐쇄 사전통지를 받은 송천한마음의집 거주장애인들에 대한 타 시설로의 전원 조치를 강행하고 있어 논란이다. 이를 규탄하는 탈시설 장애인들이 25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인들은 서울시와 영등포구에 전원 조치를 중단하고, 거주장애인들의 탈시설 지원 계획을 시행할 것을 권고해달라는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탈시설 장애인들이 25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인들은 서울시와 영등포구에 송천한마음의집 거주장애인들에 대한 타 시설로의 전원 조치를 중단하고, 거주장애인들의 탈시설 지원 계획을 시행할 것을 권고해달라는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 수차례 인권침해 발생한 송천한마음의집, 지난 8월 ‘시설폐쇄’ 사전통지 받아
송천한마음의집은 서울시 영등포구 관할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이다. 송천한마음의집은 지난해(2023년)에만 26건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영등포구는 해당 시설에 예산 편성, 운영비 지출 등 돈 문제뿐 아니라 성폭력, 불법촬영 등과 같은 심각한 범죄가 있었음에도 26건 중 25건을 ‘개선명령’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시설에 대한 행정처분은 개선명령, 시설장 교체, 시설폐쇄 등으로 이뤄진다. 시설폐쇄는 가장 무거운 수위의 행정처분이다.
서울시는 영등포구가 이미 송천한마음의집에 시설폐쇄를 사전통지했다고 전했다. 기재일 서울시 장애인거주시설팀장은 9월 27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송천한마음의집에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영등포구는 지도점검 후, 서울시에 송천한마음의집을 폐쇄하겠다고 공문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송천한마음의집, 성폭력 있었는데 버젓이 운영… “폐쇄하라”)
- 탈시설 희망하는 당사자 있음에도 타 시설로 전원시키는 서울시·영등포구
송천한마음의집 거주장애인에 대한 학대 사실이 밝혀진 직후인 지난달(9월) 27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는 서울시청 앞에서 송천한마음의집 장애인에 대한 탈시설을 즉각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서울시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
서울장차연은 “현재 서울시와 영등포구가 ‘부모가 당사자의 자립을 원치 않는다’는 핑계로 거주장애인들에 대한 타 시설 전원 조치를 강행하고 있다”며 “송천한마음의집 거주장애인 중 탈시설과 자립을 희망하는 당사자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장차연은 “서울시에 따르면 무연고 거주장애인 7명 중 4명이 자립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들마저도 시설 내 체험홈으로 입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체험홈(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은 ‘소규모 거주시설’로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거주시설로 분류된다.
이에 비마이너는 서울시와 영등포구의 거주장애인들에 대한 타 시설 전원조치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영등포구 장애인정책팀, 서울시 장애인거주시설팀, 송천한마음의집과의 통화를 시도했지만 모두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민푸름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종이 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피켓에는 “잘못은 시설이 하고 유배는 장애인이? 시설 전원조치 중단하고 탈시설을 지원하라!”고 적혀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알록달록한 글씨가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각 피켓에는 “내 인생을 시설에 가두지 마라!!!”, “나는 장애인시설 밖에서 살고 싶어요. 단 한 순간이라도 ‘나’로 살고 싶으니까요”라고 적혀있다.
- 송천한마음의집 거주했던 세진 씨 “자립해서 같이 캠핑카 타고 여행가자”
이날 기자회견은 긴급하게 추진됐음에도 불구하고 30여 명의 탈시설 장애인들이 모였다. 송천한마음의집에서 거주했던 당사자인 도세진 씨도 자리에 함께했다. 세진 씨는 13년 9개월 동안 송천한마음의집에서 살다가 지난 2018년 탈시설했다.
송천한마음의집에서 거주했다가 탈시설한 당사자인 도세진 씨가 발언하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 하루 전, 서울시와 영등포구에 송천한마음의집 거주장애인들에 대한 탈시설 지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의 개최 소식을 듣고 참석을 결심했다고 한다. 세진 씨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 “자립”이라고 답한 정용 씨와 함께 시설에 거주한 동료이기도 하다.
“(거주장애인들이) 다른 시설에 간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이야기한 세진 씨는 이전에 직접 써둔 글을 읽기도 했다.
“김정용과 만남. 세진이는 정용이를 만나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정용이는 나에게 참 좋은 동생이다. 너도 어서 자립해라. 같이 캠핑카 타고 여행 가자.”
김정용(가명) 씨가 직접 그린 그림과 도세진 씨가 직접 쓴 글.
세진 씨는 “시설 선생님들이 장애인들을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나보고 ‘세진 씨, 때린 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선생님들이 애들을 자꾸 때렸다. 그래서 자립을 생각하게 됐다”고 비마이너 기자에게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두 자립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 “송천한마음의집 장애인들을 또 다른 시설로 가두지 말라”
기자회견에 참석한 또 다른 탈시설 당사자인 이용수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30년 동안 시설에 거주했었다. 이 활동가는 “탈시설 당사자로서 송천한마음의집에 대한 대안이 시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러 나왔다”며 “탈시설해서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고, 여행도 가고, 극장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연애도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 내가 선택하고 계획할 수 있게 됐다. 너무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 당연한 일상이 나에게는 탈시설 이후 가장 큰 변화”라고 이야기했다.
이 활동가는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개인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있다. 더 이상 장애를 이유로, 지역사회로의 삶이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로 시설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송천한마음의집 장애인들을 또 다른 시설로 가두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탈시설 당사자인 이용수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조력자들의 지원을 받아 발언하고 있다.
- “서울시·영등포구의 전원 조치, 당사자들에 대한 2차 가해”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서울시와 영등포구의 전원 조치를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장애인들은 자신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경험할 권리도 빼앗기고, 정리할 겨를도 없이 다른 시설로 전원 당했다. 서울시는 이 사건을 조용히 해결하려고 영등포구와 짜고 많은 거주자들을 이미 전원시킨 것 같다”고 전했다.
이 활동가는 “서울시는 우리에게 ‘자립을 원하는 당사자들에게 자립준비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라고 번지르르하게 말했다. 자세히 물어보니 해당 프로그램은 시설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인권 침해당하면서 산 세월도 억울한데, 하루아침에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시설에서 오늘부터 자립훈련 받으라는 것”이라며 “인권위는 지금이라도 긴급 구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국가인권위원회는 시설장애인의 시설뺑뺑이 중단 정책을 권고하라!”라고 적힌 종이 피켓을 들고 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도세진 씨를 포함한 탈시설 장애인들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수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가 진정서를 들고 인권위로 향하고 있다.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들이 인권위에 진정서를 직접 제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