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많이 먹긴해도,
신감독의 팀빌딩이나 전술적인 능력은,
조금이라도 축구를 보셨던 분들은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색깔이 나오기 시작한 콜롬비아전부터 경기력향상이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나름 전적도 3승2무 무패입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건, 수비전술이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것인데,
수비라인을 이루는 선수들간의 호흡이나 간격,
윙백들이 오버랩핑할 때 비게되는 공간에 대한 볼란치와의 구획 분배나,
상대역습시 커버들어오는 볼란치와 오버랩핑에서 복귀하는 선수들과의 의사소통 등등
분명 이전에는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실 이건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히딩크와 베어백이 플랫백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었는지 복기해보면,
신태용 감독이 짧은 시간동안 할일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외국인 감독이 가지지 않은 국내감독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동아시안컵 중국전과 일본전은 초반 실점들은,
패턴이 브라질 월드컵 알제리전의 초반 실점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상대가 선축하자마자 빠른 템포로 공격해 들어올때의 허둥거림은
전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선수들이 상대의 빠른 템포에 적응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발 투수의 구속에 익숙한 타자들이 교체로 들어온 구원투수의 초구를 노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로,
모든 운동에는 템포와 리듬이라는 것이 있는데,
제 주관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케이리그와 유럽빅리그의 가장 큰 차이는 기술의 차이라기 보다는
경기속도의 차이, 즉, 리듬과 템포에서의 차이이고,
감독들이 유럽파선수들을 등용하는 이유도,
전술적인 부분이외에도, 유럽파 선수들이 유럽리그의 템포에 익숙하다는 점도 한가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히딩크감독도 처음 케이리그 경기를 관람했을때, 느린 경기속도와 템포를 지적했었죠)
축구에서 말하는 상대에게 말려든다는 표현도, 따지고 보면 상대에게 리듬을 뺐겼다는 뜻과 같고,
상대에게 내어준 리듬은 경기의 흐름과 직결됩니다.
잘 버티던 팀이 한순간에 무너져서 어이없이 연속실점하거나,
브라질이 독일한테 대패했던 것도, (기술이나 전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이유입니다.
리듬과 템포라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경기를 뛰는 선수들만의 감각이고,
심리적이거나 체력적인 부분과도 연결됩니다.
(비교가 적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집단 노동요나, 사공이 노를 저으면서 흥얼거리는 노래등이
쿵짝짝 쿵짝짝~, 강약약 중간약약~ 리듬의 3/4박자인 이유도 이런 이유이고.
복싱선수의 스테핑과 호흡도 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 동작과 흡사하죠.
골프에서 멀쩡히 스윙하던 선수의 스윙이 흐트러지고, 다음홀부터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것도,
그 선수만이 가진 리듬과 템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
리듬과 템포는 경기를 직접뛰지 않고 눈으로만 보는 입장에서 느끼는 것이 쉽지가 않은데,
오랫동안 경기에 뛰지 않은 선수가 경기감각을 되찾는 것도,
이 리듬과 템포를 다시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술과 체력도 잡아야할 것들이지만,
당장 팀전체가 EPL이나 라리가에서 경기를 뛰어도 무방할 정도의 리듬을 찾아야 하고,
강팀과의 평가전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가 가장 큽니다.
무언가에 쫓기고 조급하다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지만,
신감독도 어느덧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히딩크 이후 이어져온 한국축구의 시행착오나
신감독 본인이 겪었던 시행착오에 대한 학습효과라는게 있을 겁니다.
우리가 아는 유능한 명장들도 이런 과정이 있었고, 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내년 6월까지는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겠다는 그의 말에서 신뢰를 느끼고, 그의 고군분투가 느껴집니다.
팬으로서 우리가 할일은 일단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것이 겠지요.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