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큰 어머니
노자 25장
원문 글자 사진
원문해석
혼돈으로 이루어진 사물이 있으니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겨났다. 고요하구나! 쓸쓸하구나! 홀로 우뚝 서서 변함이 없고, 두루 행하여 게으르지 않으니 천하의 어머니라 할 만하다. 내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글자를 붙여 도라 부르고, 굳이 그것에 이름을 짓는다면 크다고 부를 수 있다. 크다는 간다고 말할 수 있고, 멀다는 돌아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는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왕도 역시 크다. 이 세상에 사대가 있으니 왕이 하나를 차지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 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금요일에 강우가 내린다. 다행히 눈은 아니라 집에 가는 길을 김포에서 의정부로 돌아 동 서울로 오니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집에 오면 할 일이 나를 기다리는 고로 우선순위가 밀리면 글을 쓰는 것은 자꾸 뒤로 간다. 마고가 비닐하우스 수확을 하는 고로 하루는 도와주고 하루는 스크린 골프를 즐긴다. 남은 시간은 행서를 배우고 나면 남는 시간이 없다. 그러고 보니 생일 축하한다는 글이 많이 떠서 보니 양력 생일이다. 아들내외가 밥상을 차리러 온다니 빨리 식사를 맞춰야 한다. 그리고 월요일은 날씨는 추우나 눈이 없어 잘 돌아 왔다. 제주도에 폭설은 청주에서 비닐하우스를 하는 마고가 의외로 횡재를 한다. 제주에서 유체가 올라오지 않으니 볼품없는 마고의 유채가 상한가로 중간 모집상이 찢어간다. 아직 다 크지도 안은 것을 100관 출하를 하고 몸살이 난 것이 나에게도 전염이 됐다. 월요일 밤부터 삭신이 쑤시더니 오늘은 병원엘가 약을 처방 받았다. 인생은 모두 연결 고리가 있다 제주도 폭설이 청주 강서 하루나 농사 짓은 마고에 행운이 오고, 마고는 몸살감기에 걸리고 남편인 나는 전염이 된 것이다.
원문으로 들어가 보자
노자 오천 자는 도의 진상에 관한 답이 그 속에 들어 있다. 1장 첫머리가 단도직입적으로 道可道 非常道“도는 말 할 수 있으면 변함없는 절대적인 도가 아니다” 말한다. 이 말은 마치 구름을 헤치고 해가 나오는 듯한 힘찬 기세를 가지고 있어서 상대적인 장애를 단숨에 없애 버린다. 노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주와 생명의 존재가 “心物一元”적이라 설명한다. 역경은 중국 몇 천 년 문화의 근본으로 철학 중의 철학이요 경전 중의 경전입니다.
하늘과 땅보다 먼저 물이 있었으니 “有物先天地 본시 형상도 없이 천지보다 먼저 존재했고 우주 만물의 모습이 원래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떤 모습일까? 노자는 그것을 ”고요하구나“ ”쓸쓸하구나“”홀로 우뚝 서서 변함이 없고 두루 행하여 게으르지 않다“라고 합니다.
모든 도는 왕도와 인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도란 명칭은 중국문화에서 종교를 초월한 대명사로서 서양철학에서는 그것을 第一因이라 부르고 종교 명사로는 하느님 주재자 신 알라 여래 불이라 칭합니다. 도란 명칭 이외에 몇 개의 명사를 별명으로 가지는데 “굳이 이름을 짓는다면 크다”雖爲之名曰大 너무 크고 무한하기에 크다고 한다는 것이고, “크다는 간다는 것이고” “간다는 멀다고 할 수 있고, 멀다는 돌아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도교는 천지인을 나란히 배열하면서 사람을 그 속에 넣었습니다. 인문정신이 농후한 人道를 으뜸으로 치고 인도의 가치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중국 도의 관점의 답은 “만물은 천지를 만들어 자라게 하는데 참여하는 것입니다 ” 일 것입니다.
“천지가 만물을 만들어 자라게 하는데 에 참여하는 것“에 인도의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이 천지사이에 태어나서 수십 년 살아가는 것은 마치 나그네가 잠시 머물다 가는 것 같으니 도대체 그 의미가 어디에 있습니까? 인류는 그 위에 태어나서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대단히 어려운 자연
사람의 지위가 이처럼 중하고 특별한데 노자는 어떻게 “도를 닦고 도를 행할지에 관해 말합니다.”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이것은 노자의 천고불변의 비밀이자 노자 사상의 정화가 들어 있는 곳입니다. 法은 본받다 의 동사입니다.
자연의 두 글자를 문자적으로 나누어 해석하면 自는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자연스런 자신을 뜻하며 然은 마땅히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노자의 자연은 道 자신 바로 절대성을 가리킵니다. 도가 자연이고 자연이 바로 도이므로 도는 근본적으로 다른 누구를 본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도란 본래부터 그러하기 때문에 그래서 자연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우주의 일월성신과 지구는 도대체 누가 움직이게 합니까? 무엇이 그것들을 주관합니까? 하느님 신 부처 일까요? 노자는 이런 신격화된 명사를 차택하지 않고 상고시대에 있던 단어 도라고 부르고, 자연이라 부른 것입니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어서 선업과 악업이라 부르는데 사실은 천지가 지닌 생명의 힘에는 선악이 없습니다. 이른바 선악은 인류가 갖다 붙인 가치 판단에 불과합니다.
2016 02 17
대만학자 남 회근 지음 노자타설 요약
첫댓글 감상하고 합니다.
몸살 감기 중입니다
可以爲天下母(가이위천하모), 천하의 어머니라 할 만하다.
공부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댓 글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