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필리포스는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만나 세례를 주고,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시며, 그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8,26-40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4-5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오늘의 묵상
저는 단팥빵을 보면 코끝이 찡해집니다. 어린 시절 마당에서 동생들과 뛰어놀고 있으면 해 질 무렵 길모퉁이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우리 맏손주 어디 있나?” 하고 저를 애타게 찾으시는 할머니 목소리입니다. 그러면 저는 놀던 것을 멈추고 곧바로 할머니에게 달려갑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달려오는 저를 향하여 엄지를 척 들어 올리시며 “우리 맏손주가 최고지!” 하시고는 몸뻬 바지 속주머니에서 단팥빵을 꺼내시어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새참으로 나온 빵을 챙겨 두셨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맏손주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루는 맛있게 빵을 먹다가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안 드세요?” “응, 나는 욕지기가 나서 안 먹어도 돼.”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느 날 단팥빵을 먹다가 할머니가 주신 빵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농사일하시느라 허기지셨을 텐데 손주에게 주시겠다는 생각으로 참으셨구나!’ 그 순간 목이 메어 그 빵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라고 하십니다. ‘내려온’이라는 단어는 과거 시제로,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때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파스카의 어린양으로 당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어놓으신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이 되셨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어린양으로서 당신의 살을 빵으로 내어 주신 것입니다.
“나의 살”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시어 당신의 생명을 바치신 희생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희생과 사랑으로 당신의 살을 내어 주시어 세상에 생명을 주십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급한 일을 먼저 해야 할까요? 아니면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할까요? 급한 일이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급하다는 마음에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참 많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일까요? 아니면 별것 아닌 일일까요? 신앙인이라면 아마 100이면 100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핑계는 이렇게 말할 때가 참 많습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도 없어요.”
세상일이 급하다고 말하면서 중요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번까지만, 여기까지만, 올해까지만,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만….’ 등의 말을 하면서 급한 불을 먼저 꺼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까지만’이라는 급한 일은 도저히 끝나지 않으면서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하게 만듭니다.
급한 일을 포기해야 하냐고 묻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있어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특히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관점에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급한 일도 하면서 중요한 일을 행하는 멋진 삶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나는 생명의 빵”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서는 당신과 우리를 합쳐 하나의 빵 덩어리로 만들기 위하여 당신의 몸을 반죽하시며, 이 결합을 통해 부패와 그 안에 숨어 있는 죽음을 파멸시키십니다. 그래서 성찬의 살아 있는 빵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보다 훨씬 위대한 것입니다. 이 빵은 영원한 생명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몸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주시는 말씀께서 육이 되심으로써 당신의 육이 생명을 주게 하시어, 그것을 먹는 모든 이가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것보다 급한 일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모시는 것이야말로 가장 급하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것은 눈에 직접 보이기 때문에 더 급하고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어떤 것에 더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를 떠올려 보십시오. 더군다나 그분은 자신에게 오는 사람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가장 힘센 분이십니다.
지금 해야 할 것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모시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점점 독학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습관은 양치질과 공부, 두 가지다(와다 히테키).
주님은 생명의 빵입니다.
율곡 선생님이 말하는 나쁜 습관(‘격몽요결’ 중에서)
1. 마음은 게으르고, 몸은 함부로 놀려서, 그저 놀고 편한 것만 생각하고 구속받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2. 늘 부산스럽게 뭔가를 하고 가만히 있지 못해서 고요하게 자기를 추스르지 못하고, 분주히 움직이며 남과 수다 떠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3. 남 따라 하는 걸 좋아하고 남과 다른 것을 싫어해서 세속에 잘 동화되어 자기 자신을 수양해서 변화해 보려 하다가도 남과 부딪히게 될까 두려워한다.
4. 문장을 잘 써서 한때의 명예를 얻는 데에 취하고, 경전을 표절해서 겉만 그럴싸하게 꾸민다.
5. 글씨와 편지에 공을 들이고, 악기 연주와 술 마시기를 일삼아 유흥을 즐기면서 이걸 스스로 ‘운치있는 삶’이라 말한다.
6. 한가한 사람들과 게임을 즐기고, 종일 먹기를 탐하고 내기를 일삼는다.
7. 부귀를 부러워하고 빈천을 싫어하며, 보잘 것 없는 옷과 음식을 매우 부끄러워한다.
8. 기호와 욕망에 절제가 없고, 돈과 이익과 놀이와 연애에 탐닉한다.
500년 전의 글이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