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과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
성리학의 심성론(心性論)에서 정(情)에 속하는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각각 이(理)의 발현과 기(氣)의 발현으로 구분하는 이황(李滉)의 학설.
주희(朱熹)를 중심으로 한 송대 성리학의 이기론은 인간과 세계의 사물을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해명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인 기와 그 존재를 그 존재이게 하는 원리로서의 이는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一而二 二而一)’라는 불상리(不相離)·불상잡(不相雜)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이 양자를 다 인정하면서도 그 중에서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사상적 내용의 차이가 생긴다. 이황의 이기호발설은 바로 이와 기의 차이점을 중시한 이기불상잡의 관점에서 전개한 이론으로서, 이 관점을 인간의 성정(性情)에 적용한 데 그 특징이 있다.
성리학의 대전제는 전통 유학의 천인론(天人論)에 근거한 성즉이(性卽理)다. 따라서 인간의 본연성(本然性)은 그대로 천리(天理)이므로 순수, 지선한 것이고, 이 본연성은 외물의 감응을 받아 드러날 때 정이 되며, 이것을 ‘성발위정(性發爲情)’이라 한다.
문제는 이 본연성은 구체적인 기질지성(氣質之性)의 한계를 통해서만 실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발현인 정이 반드시 본래의 순수지선한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른바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의 칠정으로 대표되는 정은 엄격한 의미에는 그 자체의 선악을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예기≫에 나오는 이 칠정 이외에 맹자(孟子)는 인간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에서 그대로 직출(直出)한 정인 사단을 말하고 있고, 이 순선한 사단과 선악미정(善惡未定)의 칠정 사이의 관계가 문제된 것이다. 이것이 이황과 기대승(奇大升), 이이(李珥)와 성혼(成渾) 및 후대 영남학파와 기호학파 사이의 논쟁이 된 사단칠정논변의 핵심적 문제이다.
이 논쟁의 출발은 이황이 정지운(鄭之雲)이 지은 ≪천명도설 天命圖說≫의 내용 가운데 “사단은 이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는 구절을 “사단은 이의 발이고, 칠정은 기의 발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라고 수정한 데서 연유하였다. 이 수정에 대해 기대승이 이의를 제기하는 편지를 이황에게 보냄으로써 7년에 걸친 논변이 시작된 것이다.
기대승의 논점은 사단과 칠정은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사단은 칠정의 선일변(善一邊)이니 사단을 이발로, 칠정을 기발로 대립시키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단과 칠정이 모두 이기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이발과 기발을 대거(對擧)한 것은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의 원칙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황은 이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동시에 사단과 칠정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하는 소종래(所從來)와 그것이 무엇을 중점적으로 지적한 것인가 하는 지기소주(指其所主)를 음미해보면 사단과 칠정을 이기에 분속시키는 것이 반드시 잘못은 아니라 하였다.
대개 이 논법은 주희의 <중용장구서 中庸章句序>의 “인심(人心)은 형기(形氣)의 사(私)에서 생기고, 도심(道心)은 성명(性命)의 바름[正]에서 근원한다.”는 논법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 뒤 논변 과정에서 발견한 ≪주자어류 朱子語類≫의 “사단은 이의 발이고, 칠정은 기의 발이다.”라는 주자의 말에서 이황이 확신을 얻은 것이다.
다만 그 뒤의 논변과정에서 이황은 이 구절을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이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라고 고쳐 그의 주장을 완화시켰으나, 근본적으로 문제가 된 이발(理發)의 주장을 끝까지 버리지는 않았다.
그 뒤 이황의 호발설을 긍정한 성혼과 이를 부정한 이이의 논변으로 이어졌다. 이이는 기대승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특히 활동성과 작용성을 가지지 않는 이가 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여,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으로, 정이 발할 때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게 하는 까닭(所以)은 이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이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게 된다.
이황의 이기호발설의 주안점은 실제로 그의 이발설(理發說)에 있는 것이다. 이 이론은 이기를 상대시켜 이기불상리의 원칙에 어긋나고 무작위의 소이연자(所以然者)인 이를 유작위(有作爲)로 오인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황은 이러한 이발설을 통해서 기에 대한 이의 우위를 분명히 하고, 이로써 인간의 순수심성의 발현인 사단을 소중히 해 인간의 선 의지(善意志)와 이성을 지켜 가려는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이 이기호발설은 정통 주자학의 학설에 투철하면서도 나름대로 그의 철학적인 정신을 전개한 이황의 성리 사상의 핵심이라 하겠다.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에서 본체의 ‘이(理)’와 현상의 ‘기(氣)’가 별개의 존재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임을 주장하는 이론.
이기론에서는 이와 기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 기초적인 중심 문제의 하나이며, 크게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으로 구분되고 있다.
이와 기의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일반적인 원칙은, 이와 기는 뒤섞여도 서로 혼동할 수 없는 것(理氣不相雜)이며, 동시에 둘 사이를 갈라서 나누어 놓을 수도 없는 것(理氣不相離)이라는 상반된 규정이다.
이 두 규정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면, 이와 기는 인식 과정에서는 개념적으로 서로 ‘구별’할 수 있지만, 존재의 차원에서는 하나의 실재로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와 기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하더라도 두개의 존재가 함께 있는 것이라는 입장에 서면 이기이원론이 되지만,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가 다른 양상으로 인식될 수 있을 뿐이라는 입장에 서면 이기일원론이 된다. 따라서, 이기일원론에서는 이와 기 사이에 앞서고 뒤서는 것[先後]이 있다거나, 이가 기를 낳는다는 관계로 파악하는 이기이원론적 입장을 철저히 거부한다.
정자(程子)는 성(性)과 기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성을 논하면서 기를 논하지 않으면 갖추지 못한 것이요, 기를 논하면서 성을 논하지 않으면 밝지 못하다.”면서 성과 기의 일체성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주희(朱熹)도 “기가 아니면 이도 머물 곳이 없다”고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기론을 집대성한 주희의 경우는 이와 기가 어느 한 쪽이 없이 다른 한 쪽만 있을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이와 기는 확실히 두 가지 존재”라고 이기이원론적 입장을 확인하고 있다.
이와 기의 일원적 통일성을 주장한 이기일원론의 대표적 인물로는 명나라 때의 나흠순(羅欽順)을 들 수 있다. 그는 주희의 이기이물설(理氣二物說)의 이원론을 거부하면서, “이는 기에 의거해 수립하고, 기에 붙어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이가 기에 의존해 통일된 존재임을 확인하였다.
그는 인식에서 이와 기의 구별이 필요함을 인정해, 이는 기에 나아가 인식하는 것이지만 기를 이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나흠순의 영향은 16세기 전반기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항(李恒)은 “심·성과 이·기는 혼연한 하나의 존재”라고 이기일물설의 일원론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서경덕(徐敬德)은 “기의 바깥에 이가 없으며, 이는 기를 다스리는 것(氣之宰)”이라 면서, 이가 기의 밖으로부터 와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요, 다스린다는 것은 기의 작용에서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 규정해 기 중심, 곧 주기론(主氣論)의 이기일원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황(李滉)은 서경덕이 <비이기일물설 非理氣一物說>에서 말하는 “기이하고 기이하며 오묘하고 오묘하다.”는 이기일원론의 입장을 이기일물설에 빠진 것이라 비판하면서, 나흠순도 같은 입장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비해 기대승(奇大升)은 이황이 이·기를 분별하는 입장에 반대하면서, “이·기는 오묘하게 결합한 가운데 혼융(渾融)한 것”이라고 이기일원론적 입장을 제시하였다.
이이(李珥)의 경우도 “이와 기는 혼연하여 틈이 없어서 원래 서로 떠나지 않았으니 두 가지 존재(二物)라 할 수 없다.”라고 이기이원론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의 근원도 하나일 뿐이요 기의 근원도 하나일 뿐이라 서로 떠날 수 없으니, 이와 기는 하나다.”라고 이기일원론의 입장을 확인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이와 기의 분리될 수 없는 통일성을 ‘이·기의 오묘함(理氣之妙)’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기를 발동하는 것(發者)이라 하고, 이는 발동하는 까닭(所以發者)이라 하여, 기가 없이는 발동할 수 없고(不能發), 이가 없이는 발동이 없다(無所發)라 하여 어느 한쪽이 결여될 수 없는 통일체로 인식하고 있다.
이기일원론은 조선 중기에는 서경덕·이이 등에 의한 주기론적 입장에서 이를 기 속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조선 말기에는 기정진(奇正鎭) 등에 의해 유리론(唯理論)의 입장에서 기를 이 속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대두되고 있다.
기정진은 이기일체론을 전제로 하면서, 기를 이와 상대[對擧]시키는 것은 성현의 말씀이 아니라 하여 이기이원론을 거부한다. 그리고 기를 이 속의 일이요 이가 유행하는 데 손발 노릇 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이기일원론은 본체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를 통일시켜 일체로 파악한다. 그리하여 가치론에서는 이이의 경장론(更張論)처럼 현실과 이상의 이원화를 거부하고 현실에 적극적 관심을 지닌 현실주의적 입장을 취하기도 하고, 한말 위정척사론의 경우처럼 이상을 현실화시키려는 의지가 강한 이상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수양론적 도학의 학풍에 비해 능동적인 현실 참여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