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이 10개월 만에 완공했다는 경복궁. '큰 복을 누린다'는 뜻을 가진 경복궁과의 만남은 수문장을 교대하는 시간에 이뤄졌다.
전통 복장에 붉고 푸른 깃발을 높이 든 사람들이 악기 소리에 맞춰 행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작된 답사 여행이었다. 경복궁의 남문이자 정문 격인 광화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는 한글 현판이 걸린 문으로 들어가면 넓은 광장이 나온다.
■영욕 점철된 역사의 현장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들어섰던 자리다. 당시 일제가 아시아 최대 규모로 지었다는 조선총독부 건물은 광복 후엔 정부종합청사로 변신했다가 1997년 김영삼 정부 때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철거됐다.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마당 바로 뒤편에는 경복궁의 중심 전각인 근정전이 있다. 임금이 주재하는 '어전 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근정전 앞마당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과거엔 일본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선 중국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혹자는 "중국이 자랑하는 자금성에 비하면 우리 경복궁이 너무 초라하다"고 말한다. 이런 지적에 대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턱없는 편견'으로 일축한다.
"현재 경복궁은 일제가 훼손하기 전 모습의 25%에 불과합니다. 경복궁의 원래 모습은 (면적을 기준으로) 자금성의 60%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궁궐이었습니다."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에 조선 왕들이 각자 취향에 따라 경복궁에서 창덕궁과 덕수궁, 경희궁, 창경궁 등으로 옮겨 다니며 나라 국정을 지휘했던 점까지 보태면 궁궐의 규모를 놓고 위축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근정전에서 왼쪽 뒤편에는 왕실 연회장으로 사용되던 경회루가 나온다. 수양버들이 우거진 연못에 반사된 모습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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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연회장이었던 경회루. |
경회루를 지나 2분가량 걸어가면 을미사변 때 일본 낭인들의 칼에 시해된 명성황후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태원전'이 나온다. 국권피탈 이후 일제에 철거됐던 전각이다. 그 빈터에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가 청와대를 경호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30경비단을 주둔시켰던 곳이기도 하다. 12·12 쿠데타 때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하나회 소속 정치군인과 하극상을 일으키는 본거지가 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된 곳이다.
씁쓸한 마음에 동쪽 건춘문을 통해 경복궁을 빠져나오면 북촌마을이 시작된다.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문화의 거리다. 북촌마을을 가로질러 20분가량 걸어가면 창덕궁이 나온다. 이복동생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이 경복궁으로 돌아가기를 꺼린 나머지 새로 지었다는 궁궐이다.
■자연미 돋보이는 창덕궁
수문장들이 지키는 돈화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얼마 전 뒷산에서 멧돼지가 내려와 관광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던 곳이다. 그만큼 자연미가 살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중심 건물인 인정전을 지나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끝자락에 낙선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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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황태자 영친왕이 머물렀던 낙선재. |
조선조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고종황제의 외동딸 덕혜옹주가 머물렀던 건물이다. 열 살 때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던 영친왕과 정략 결혼한 일본인 부인 이방자 여사가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애달픈 사연 때문인지 단청을 입히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 일반 주택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낙선재 뒤편에는 창경궁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세종대왕이 상왕인 아버지 태종 이방원을 모시기 위해 지었다는 창경궁과 연결되는 길이다. 왕비들이 주로 머물렀다는 창경궁. 숙종 때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신당을 차렸던 곳이다. 영조 때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비극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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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한때 이곳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었다. |
이처럼 권력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구중궁궐, 창경궁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중 놀이 공원으로 바뀌는 수모를 겪었다.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한 마당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지은 후 그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버린 것이다. 이후 창경궁은 1986년에야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이웃 나라 왕족이 살던 궁궐을 동물원의 원숭이를 구경하는 공간으로 개조하고도 사과할 줄 모르는 일본. 속 좁은 섬나라. 소국 근성이 드러난다.
아픈 상처를 되씹으며 창경궁 정문으로 나오면 동숭동 대학로가 시작된다. 신세대 젊은이들이 타고난 끼와 재능을 마음껏 발산하는 공간이다. 저녁노을이 내릴 무렵 창경궁 앞 대학로를 활기차게 오가는 차세대 주역들. 그들이 이끌어 갈 미래의 한·일 관계는 어떻게 펼쳐질는지.
글·사진= 정순형 선임기자
여행 팁
■먹거리
경복궁과 창덕궁을 오가는 길목에서 맛볼 수 있는 먹거리로는 수제비가 유명하다. 멸치와 조개를 우려낸 육수에 조개, 감자, 호박, 당근, 부추를 넣고 끓인 국물이 담백한 맛을 자아낸다. 1인분 8천 원. 삼청동수제비 02-735-2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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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국물이 일품인 삼청동수제비. |
■교통편
서울역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704, 1711, 7016번. 도시철도를 이용하려면 서울역에서 1호선을 타고 종로 3가역으로 가서 3호선으로 갈아 타면 경복궁역에 도착할 수 있다.
첫댓글 나이먹을수록 옛것과 우리것이 더 좋은것같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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