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5일 연중 8주간 화요일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넋두리 한 자락
요즘은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고, 글도 잘 안 써지고, 책을 읽어도 집중이 되지 않고, 건강이 자꾸 나빠지니까 자주 혼자 중얼거릴 때가 많습니다. “주님, 저는요, 주님께서 아시는 것처럼 어려서부터 고생도 많이 하고,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도 열심히 살았는데 어째서 돈도 없고, 건강도 좋지 않고, 바쁘게 뛰어 다녀도 별 소득도 없고, 약삭빠른 사람들에게 말만 많이 듣고, 외톨이로 외롭습니까? 매일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면 주님 생각보다 속상한 일들이 저를 괴롭히고 있는데 당신께서는 아예 저를 잊어버리신 것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당신의 눈길 한번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의 기도가 부족하고, 성의가 없다고 정말 모른 체 하시는 것입니까? 열심히 노력해도 성사되는 일은 없고, 당신의 뜻을 알다가도 모르겠고, 정말 첫 째 간다고 설쳐대지만 꼴찌가 되어 빌빌대는 모습이 정말 속이 시원하십니까?
주님께서 당신과 복음 때문에 사사로운 정과 세상의 모든 욕심을 버리라고 하시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잘 아십니다. 그런 것을 모두 버리면 세상에서 바보가 되어 복음은 전해보지도 못하고 그냥 죽습니다. 당신께서는 백배나 많은 갚음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제 마음에 드는 것은 극소수고, 언제나 허탕만 치는 것 같고, 험악한 세상에서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골육지친도 잊고, 무조건 죽어서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해서 죽어라고 희생하고, 목소리 죽이고, 하고 싶은 말도 하지 않고, 희생과 봉사로 살고자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면 모두 백배 천배의 상을 주신다고 하시지만 이제는 저도 지쳤습니다. 그런데도 나 몰라라 하십니까?”
그런데 주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이러시는 것입니다. “얘야, 실컷 욕했느냐? 아니면 푸념을 다했느냐? 속이 시원하냐? 더하고 싶으냐?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렸느냐? 더 하고 싶으면 더 하렴, 내가 언제 못하게 했느냐? 네 맘대로 해봐라, 지금까지 넌 네 맘대로 하지 않았느냐? 그러고 왜 내 핑계를 대며, 내가 모른 체 한다고 하느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하고 싶으면 실컷 해보아라. 누구든지 욕먹는 사람이 있어야 한단다. 나는 욕먹고 멸시당하고, 매 맞고, 죽는 일은 이골이 났단다.”
내가 어이없어 하면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 부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너희 나라에서 전체 인구의 15%가 아주 잘사는 사람이란다. 또 0.18%의 사람들이 나머지 사람들이 가진 돈만큼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 아주 못 살아서 지금 죽고 싶은 사람들이 50%가 넘는단다. 넌 말이다 그냥 사는 사람들 속에 포함된단다. 너는 공부도 많이 하고, 먹고 살만하고, 집도 있고, 또 사람들한테 사랑도 받고, 나한테 사랑도 받고 있어서 너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뭐가 그리 불평이 많으냐? 오늘 내가 말하는 것은 세상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대의멸친은 바라지 않아도 복음을 선포하고, 선교하는데 조금만 더 애쓰라는 말인데 그 말이 그렇게 싫으냐?”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는 말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조(隱公條)에 나오는 말입니다. 춘추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때의 일인데, 위(衛)의 장공(莊公)은 충의지사 석작(石碏)이 군신간의 대의를 위해 아들까지도 죽인 고사를 일컬어 생긴 말입니다. 춘추좌씨전에는 석작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군자가 말하기를, ‘석작은 두 마음이 없는 충신이다. 그는 주우와 자기의 아들인 석후가 올바르지 않으니 군신의 대의를 다하기 위하여 육친의 사사로운 정을 버렸다.(大義滅親)’하였으니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대의멸친이란 이와 같이 올바르고 큰일을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도 희생시킨다는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입씨름을 하고 삐죽대며 중얼거리면 언제나 완패라는 것을 알면서도 푸념을 늘어놓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결국은 밑져봐야 본전이니 주님께서 제 볼기라도 치시고 멱살을 잡기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갑자기 정색을 하시면서 살며시 물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얘야, 너 ‘패션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라는 영화 봤니? 너 거기서처럼 나 죽을 때 그렇게 죽었느냐?” 는 말씀에 그만 할 말을 잃고 찍소리 못하고 앉아서 다시 주님의 말씀을 새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말한 대로 살면, 현세에서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오늘도 주님께 궁시렁 거린 것을 용서해 주시길 청하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제발 꼴찌만은 면하게 해 주십시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의 10 구원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받을 은총을 두고 예언한 예언자들이 탐구하고 연구하였습니다.
11 그들 안에서 작용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께 닥칠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증언하실 때에 가르쳐 주신 구원의 시간과 방법을 두고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12 예언자들은 그 일들이 자신들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일들이 하늘에서 파견된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한 이들을 통하여 이제 여러분에게 선포되었습니다. 그 일들은 천사들도 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13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14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무지하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15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1서 1,10-16)
아무리 넋두리를 하여도 우리가 구원될 것은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는 주님께 모든 희망을 걸고 주님께서 당부하시는 것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푸념을 늘어놓을 때에는 푸짐하게 늘어놓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부지런히 또한 중단 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5,1-15
1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이고
2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3 은혜를 갚는 것이 고운 곡식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4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5 악을 멀리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불의를 멀리하는 것이 속죄하는 것이다.
6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타나지 마라.
7 사실 이 모든 것은 계명에 따른 것이다.
8 의로운 이의 제물은 제단을 기름지게 하고 그 향기가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올라간다.
9 의로운 사람의 제사는 받아들여지고 그 기억은 잊히지 않으리라.
10 기꺼운 마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네 손의 첫 열매를 바치는 데에 인색하지 마라.
11 제물을 바칠 때는 언제나 즐거운 얼굴을 하고 십일조를 기쁘게 봉헌하여라.
12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네게 주신 대로 바치고 기꺼운 마음으로 능력껏 바쳐라.
13 주님께서는 갚아 주시는 분이시기에 일곱 배로 너에게 갚아 주시리라.
14 그분에게 뇌물을 바치지 마라. 받아 주지 않으신다.
15 불의한 제사에 기대를 갖지 마라.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축일 : 5월 25일 성 베다 (Bede)
신분 : 신부, 교회학자, 역사가
활동 연도 : 672/673-735년
같은 이름 : 비드
영국 타인(Tyne) 강 남쪽 지역의 노섬브리아(Northumbria) 왕국에서 태어난 성 베다(Beda)는 7세 때 친척들에 의해 캔터베리(Canterbury) 위어머스(Wearmouth)의 성 베드로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수도원 원장인 성 베네딕투스 비스코프(Benedictus Biscop, 1월 12일)의 지도하에 교육을 받았다. 685년부터는 성 베네딕투스 비스코프가 새로 지은 재로우(Jarrow)의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옮겨 그곳의 원장인 성 체올프리두스(Ceolfridus, 9월 25일)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성장한 뒤에 그 수도원의 수도자가 되었고, 19세에 부제품 그리고 30세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몇 차례의 짧은 여행을 제외하고는 늘 수도원 안에서 생활하면서 주로 성경 연구에 전념했으며, 수도원 내의 교육과 저술 활동에 몸을 바쳤다.
그는 당대의 가장 박학한 사람으로 존경받았고, 영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성경에 관한 그의 주해서들은 당대에 가장 권위가 있었고 중요시되었으나, 그는 역사가로서 더 유명하다. 그의 “영국 교회사”는 널리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역사서이다. 그는 또한 영문법과 연대기 작업을 하였고 찬미가와 시를 썼다. 이외에도 그는 서한집과 강론집 그리고 순교록을 썼는데, 이들 책들이 모두 라틴어로 저술되었지만 그는 영어로 집필한 저술가로도 이름이 나 있다. 만년에 그는 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성 요한 복음서”를 번역하였고, 세비야(Sevilla)의 성 이시도루스(Isidorus, 4월 4일)의 저서들을 추출하였다. 그는 735년 5월 26일 재로우의 수도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재로우에 묻혔다가 더럼(Durham)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더럼 성당의 갈릴리 경당에 묻혀 있다.
성 베다는 일생 동안 기도하고 노동하며 단순하게 살고자 노력한 수도자였으나 그의 학문적 업적으로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그의 지혜와 학문을 높이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존자’(Venerable)라는 칭호를 덧붙였고, 이 칭호는 853년 아헨(Aachen)의 교회회의에서 공식화되었다. 그는 뛰어난 학자이면서도 겸손하였으며, ‘영국 역사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1899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가 교회학자로 선언하였고,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는 성 베다를 일컬어 ‘성령의 빛이자 교회의 빛’, ‘우리 스승이신 베다 존자’라고 하였다. 그는 단테(Dante)의 “신곡”(La Divina Commedia)의 ‘천국 편’에 등장하는 유일한 영국인이기도 하다. 비드(Bede)로도 불리는 그는 1100년 이전까지 영국 전례력에서 5월 26일에 기념되다가 1969년부터 5월 25일로 확정되어 기념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베다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