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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양심선언
삼상 12:1-5
1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2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3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4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5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며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 증언하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가 증언하시나이다 하니라
삼상 12:1-5 / [사무엘의 고별 설교]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운 뒤에 그곳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나는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왕을 세워 놓았습니다. 2) 그 왕이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가 여러분 앞에 서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나는 이미 백발노인이 되었으며, 나의 두 아들도 이미 장성해서 지금 여러분과 같이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젊어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을 인도하며 살아왔으나 3) 이제는 그러한 자리를 떠나면서 여러분의 정직한 판단을 받고 싶습니다. 내가 그동안에 무슨 불법을 행하였다면 지금 여호와 앞에서 나를 규탄하고, 우리가 세운 왕 앞에서 나를 고발하십시오! 내가 어느 누구의 소나 나귀를 빼앗은 일이 있었습니까? 내가 어느 누구의 물건을 강탈하거나 어느 누구를 억압한 일이 있었습니까? 내가 뇌물받고 그릇된 판결을 내린 일이 있었습니까?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가 전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4) 이스라엘 백성이 대답하였다. `저희들 중에서 어느 누구를 억압한 일도 없으셨고, 어느 누구에게서 무엇을 강탈하거나 무슨 뇌물을 받은 일도 없으셨습니다' 5) 사무엘이 이렇게 선언하였다. `여러분은 내게서 아무런 부정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제 그 일의 증인이 되시고,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 또한 그 일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그러자 온 백성도 `확실히 그렇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사사시대에서 왕조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여 종교지도자인 사무엘의 지도력은 약화되어가는 상황입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종교지도자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삼상 12장에 답이 있습니다.
왕을 세웠더니(1-2) 사무엘은 백성들이 요구한 왕을 세우는 일이 다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또한 백성들의 요구가 모두 반영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던 이유는 자신들을 보호해 줄 강력한 군대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늘 충돌했던 블레셋이 상비군을 갖추고 잘 훈련된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더군다나 블레셋만이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작은 나라들이 속속 왕을 세워 왕국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도 주변 국가들과 비교하여 뒤떨어지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2절의 “너희 앞에 출입하다”라는 말의 뜻은 왕이나 사사가 백성들을 대신해서 전쟁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거나, 목자가 양떼를 돌보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3-4) 증언하라는 것은 법정 용어입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기름 부음 받은 자 앞에서 자신의 떳떳함을 평가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자신의 청렴결백을 주장합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내가 취하였느냐?”는 물음에, 백성들은 사무엘이 자신들의 것을 취하지 않았으며, 착취하거나 압제하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 주목할 것은 사무엘이 강조하는 내용은 뜻밖에도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경제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질문하고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옆에 서 있는 왕이 들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은 언제나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유혹과 백성들의 것을 착취하거나 백성들을 압제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무엘은 왕이 백성의 것을 착취하는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정치행적을 보여주면서 왕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며 왕정의 기초를 놓으려 하는 것입니다. 왕을 세우되 백성의 것을 착취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왕이 되도록 사무엘은 최선을 다해 힘썼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5) 사무엘은 왕을 “기름부음 받은 자”로 호칭합니다. 그 이유는 사무엘이 왕을 정식으로 인정하며 왕정을 수용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절대 권력자인 왕도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지도자임을 분명하게 지적하면서 왕 또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적 용 : 하나님의 사람이 매사에 의롭고 정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현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권위적이고 부당한 간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처지나 유익에는 무관심하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거룩한 삶이나 순종이란 말들이 사라졌습니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말씀에 순종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교인들도 성경 말씀이나 교회의 결정을 쉽게 무시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으며 십자가의 죽음으로 사람과 자기희생으로 오늘도 통치하십니다.
호크마 주석
=====12:1
본절은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그리고'(* , 와)로 시작한다는점에서 11장 끝부분(14,15절)의 직접적인 연속이다. 너희가...한 말을 내가 다 듣고 - 여기서 '너희가...한 말'은 이스라엘 장로들이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했던 사실을 가리킨다(8:5,20).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 사무엘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대로 사울을 왕으로 세운 일은 결코 하나님께서 그 일을 기뻐하셨기 때문이 아니었다(8:6-8). 다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요청을 허락하심으로써, 오히려 그 왕을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8:11-18), 따라서 진정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계셨다(8:9,22;9:16,17).
=====12:2
이제(* , 웨아타) - 이 단어는 자주 장(章)의 시작을 이끌거나, 앞선 행동의 논리적 결과를 소개할 때 사용된다(7,10,13,16). 따라서 여기의 '이제'(And now)는 '왕이 세워졌으므로'란 의미로 이해하면 적당할 것이다. 왕이...출입하느니라 - '출입하다'(* , 할라크)는 원래 '걸어다니다'란 뜻이지만, 성경의 여러 문맥상 그 의미는 자신의 고유한 직무, 특히 백성을 여러모로 돌보고 다스리는 공적(公的)직무의 수행을 표현하는 말로서 사용되어진다(9:6;민 27:17;삼하 2:29;왕상 3:6;대하 6:16). 한편 스미드(R.Payne Smith) 박사에 의하면, 이 말은 목자가 양떼를 인도하고 감독하면서 앞서 '가는'(walking) 목자적(牧者的) 생활 풍습에서 비롯된 은유적 표현이라 한다(Pulpit Commentary).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 여기서 '희었고'는 '석회를 뿌리다' 라는 뜻의 '시브'(*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Keil),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의 비유적 표현 방식이다(창 15:15;25:8;레 19:32;왕상 2:6).
내 아들들도...함께 있느니라 - 사무엘의 아들들의 부패는 사무엘의 노령(老齡)과 함께 이스라엘 장로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왕을 요구하게 만든 구실이 되었었다(8:1). 그러나 사실에 있어 이같은 것들은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요구하게 된 진정한 원인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무엘이 자신이 늙었음과 자신의 아들들이 함께 있다는 두 가지 사실을 특별히 언급한 까닭은, 왕을 요구한 이유를 사무엘 가문(家門)의 문제 때문으로 제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직치 못함을 암시적으로 꾸짖기 위함임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사무엘의 이같은 언급은, 그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사(士師)로서 자신의 모든 행실이 백성들에게 낱낱이 알려져서 더이상 드러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백성들이 그토록 원했던 이스라엘의 왕들은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 행위가 사무엘과 비견되어 시험되어져야 할 것이었다(Klein).
=====12:3
여호와 앞...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 - 자신의 양심 선언을 하는 자리에서 사무엘이 '여호와'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나란히 언급한 까닭은 둘 사이에 존재하는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백성들에게 가시적(可視的)으로 실천하는 자라는 점에서, 공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과 특수한 관계하에 있기 때문이다(Keil). 한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왕의 명예를 특별히 높이며, 또한 왕과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언약적 관계를 강조하는 말이다(Klein, 24:6).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 여기서 '증거하다'(* , 아나)는 법정적(法庭的) 용어로서 증인이 재판장의 질문에 대해 증언 혹은 답변하는 것을 가리킨다(Davidson). 따라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는 말은 백성들이 기소자의 입장에서 피고인의 위치에 있는 사무엘 자신의 죄를 듣고 아는대로 말해보라는 뜻이다(출 20:16;신 31:21). 사무엘은 여기서 이같은 말을 함으로써 사사로서의 자신의 청렴 결백함을 담대히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사무엘은 연속된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이스라엘 통치가 공명 정대했음을 입증시키고 있다. 한편, 사무엘의 이같은 자기 변호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호와의 신정(神政) 통치를 거부하고 열방과 같은 왕을 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동기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소...나귀를 취하였느냐 - 여기의 '소', '나귀', '취하다'라는 단어는 모두 열방과 같은 왕의 횡포를 경고적으로 예시했던 8:11-17에 나오는 말들이다. 이같은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사무엘은 사사로서의 자신이 새로 세워질 열방과 같은 왕과는 전혀 다름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한편 모세도 다단과 아비람에게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면서, 자신이 그들에게서 나귀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했었다(민 16:15). 사실 '소'나 '나귀'는 농경(農耕) 사회에서 기본적인 재산으로 간주되었던 것들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것들을 빼앗는 행위는 율법에 의해 철저히 금지되었다(출 20:17). 누구를 속였느냐 - 여기서 '속이다'(* , 아솨크)는 원래 '내리누르다', '사기를 치다'란 의미로서, 곧 물건을 빼앗기 위해 타인을 현혹.협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레 6:2;겔 18:18;호 12:7).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 '압제하다'(* , 라차츠)란 말은 '깨뜨리다', '낙심시키다', '학대하다'란 의미이다(전 12:6;암 4:1).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 - 문자적으로는 '눈을 멀게 하는 뇌물'이란 뜻이다. 결국 이것은, 뇌물(賂物, bribe)은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사안이나 사물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게 하고, 또한 그에 따라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지극히 부정적인 기능이 있음을 가리킨다(출 23:8;신 16:19). 한편 여기서 '뇌물'(* , 코페르)은 '덮다'(cover)란 뜻의 동사 '카파르'(* )에서 파생된 말로, 곧 어떤 사람이 자신이 범죄를 덮어버림으로써 그로 인한 형벌을 모면키 위하여 권력자에게 부정하게 지불하는 재물을 가리킨다(출 21:30;30:12;민 35:31,32). 갚으리라 - 기본 동사 '슈브'(* )는 '돌아가다', '회복하다'란 뜻으로서, 곧 타인의 재물을 부당하게 취했다가 손해 배상금과 함께 되돌려 주는 행위를 뜻한다(6:3;눅 19:8).
=====12:4,5
백성들은 기소자(起訴者)의 입장에서, 그리고 '여호와'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엄숙한 증인 앞에서 사무엘이 사사(士師)로서 그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전혀 책할 것이 없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로써 백성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을 구한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되고 말았다(Calvin).
< 설 교 >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삼상 12:1~5, 16~18 / 홍문수 목사
성경에 보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여러분, 혹시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저는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뭐라고 대답하면 되죠?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인물들 가운데 가장 고상하고 품위 있게 살았던 사람이 누구일까요? 요즘 잘 쓰는 말로 표현하면, 가장 쿨(cool)~한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사무엘을 꼽고 싶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 한나에게서 태어나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평생 동안 정말 신실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무엘은 사사 시대의 인물입니다. 사사시대는 여호수아의 죽음(B.C. 1390) 이후 사울 왕의 등극(B.C. 1050) 직전까지 약 340년 동안입니다. 그 때는 왕이 없었고,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 직접 통치하는 신정정치의 시대였습니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로 B.C. 11세기 사람입니다. 그는 사사(Judge)일 뿐만 아니라, 선지자(Prophet)와 제사장(Priest)이기도 했습니다. 사사시대는 신정정치 시대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아주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흔히 영적인 암흑시대라고 부르기도 하죠.
사무엘이 이렇게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도 쿨~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사무엘의 퇴임 장면의 기록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자 그는 사사 직에서 퇴임합니다. 그 때 이렇게 고별사를 시작합니다.
3절(상).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in the presence of the LORD)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 ”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 순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죠. 그의 평생 지켜온 인생의 원칙이요 신앙의 모토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데, 라틴어로 ‘코람 데오’(Coram Deo)입니다. ‘코람 데오’는 장로교의 창시자 쟝 깔뱅이 신앙의 모토로 삼은 말이기도 합니다. 한자어로는 신전의식(神前意識)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앞에서”라는 말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의 작품「모나리자」가 있습니다. 신비의 미소로 유명한 그림이죠. 미소도 미소지만, 특이한 화법(키아로스쿠로=명암대조법)으로 그려서 어느 방향에서 봐도 시선이 관람자와 마주칩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디로 가든지 모나리자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꼭 이와 그렇습니다.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를 향해 보고 계십니다. 사무엘은 평생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았고, 그로 인해 승리했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오늘 말씀을 통해 사무엘 같이 ‘코람 데오’의 신앙을 배워 쿨~한 인생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세 가지로 말씀드립니다.
1.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 평안한 삶
사무엘은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늘 사랑의 시선을 받으며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젖을 떼자마자 부모에게서 떨어졌습니다. 한나가 자식이 없을 때 아들 주시면 하나님의 종으로 바치겠다고 서원했던 대로 실행한 겁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아주 일찍이 조기 유학을 보낸 겁니다. 엘리 제사장에게 보내진 사무엘은 제사장 수업을 받으며 잘 자랍니다. 그 때 그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삼상2:21 “ ...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여기서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에게서 사랑의 시선을 받으며 자랐다는 뜻입니다. 삼상2:26 보면, 그 의미를 잘 설명해 줍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어린 사무엘은 비록 부모를 멀리 떠나 있었지만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 잘 성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평생 그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늘 평안한 모습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향해 사랑의 시선을 놓지 않습니다. 시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하나님이 매 순간마다 나를 지켜보시니까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들은 불안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시선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이 그랬죠.
창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하나님 앞에서 떠났다는 것은 사랑의 시선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그가 간 곳이 놋 땅인데, ‘놋’이란 이름이 왜 붙여졌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놋’(d/n)은 히브리어로 ‘유리’ 혹은 ‘방황’(wandering)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불안한 마음을 암시합니다.
사람이 사랑의 시선을 받으면 정서가 안정되고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반대로 사랑 받지 못하면 불안해집니다. 미국의 뉴 호우프 커뮤니티 교회 부설 학교에 여교사 톰슨이 있었습니다. 5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테디라는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자주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또 시험을 보면 죄다 틀렸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채점을 하다 이상한 생각 들어 생활기록부 자세히 들춰보았습니다. “1학년 : 착한 아이이고, 장래성이 있어 보입니다. 2학년 : 조용한 아이인데, 조금 폐쇄적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불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3학년 :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4학년 : 이 아이는 장래성이 없어 보입니다. 아버지는 가출했고, 이모가 양육하는데 학대를 받는 듯합니다.” 이런 기록을 보는 순간 선생님은 주르륵 눈물을 흘렸고, 그 날부터 방과 후에 개인 지도를 해 줍니다. 사랑의 시선을 주자 아이는 조금씩 안정되었고 얼굴도 평안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그 아이는 선생님에게 선물 2개를 갖고 왔습니다. 가짜 다이아 목걸이와 쓰다 남은 향수였습니다. 옆에서 보던 아이들이 놀려댑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고맙다며 목걸이를 직접 걸어봅니다. 향수도 뿌려 봅니다. 그러자 아이는 선생님 품안에 안겨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이 목걸이는 우리 엄마가 걸던 거예요. 그리고 이 향수도 엄마가 쓰던 거예요. 선생님에게서 우리 엄마 냄새가 나서 너무 좋아요!” 그 후 선생님과 아이는 헤어졌는데, 이따금 편지가 왔습니다. 7년 후에 이런 편지가 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2등을 했어요.” 그로부터 4년 후에는 이런 편지가 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대학을 졸업하는데, 과에서 수석을 했어요.” 또 4년 후에 편지가 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됐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합니다. 결혼식 날 어머니 좌석에 앉아주시겠습니까? 선생님은 저에게 어머니 같은 분이거든요.” 여러분, 이 아이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그 인생을 변화시킨 게 과연 무엇입니까? 사랑의 시선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시선은 사람을 평안하게 해 주고 인생에 새 힘을 줌으로 승리하게 만듭니다. 가장 강렬한 사랑의 시선은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늘 평안한 모습으로 승리했습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도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평안한 삶을 누림으로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 권능의 하나님 앞에서 : 담대한 삶
사무엘은 권능의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권능의 시선을 의식함으로 담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무엘은 ‘지는 해’였습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뜨는 해’였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입니다. 그래도 그는 사울 왕과 백성들 앞에서 담대히 외칩니다. 그들이 왕정 정치를 요구한 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행위였으니 이제라도 회개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사울 왕이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큰 징계를 당할 줄 알라고 경고합니다. 그 증표로 무엇을 보여줍니까? 17절~18절. “17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18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밀 베는 추수기는 건기입니다.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우레가 치고 비가 쏟아집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위로하면 앞으로 잘 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무엘이 어떻게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권능의 하나님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잠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 앞에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겁을 먹고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과 시선이 마주칩니다. 양심이 찔려 통곡했지만, 아직은 하나님의 권능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 후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강림으로 성령 충만해집니다. 이제 베드로는 권능의 하나님을 의식하게 됩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수도 없이 붙잡혀 핍박을 당해도 담대합니다. 행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종교개혁 시대의 순교 사화입니다. 구교도에게 핍박을 받아 화형에 처해진 스위스의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맨발로 장작더미 위에 달렸습니다. 화형 집행 직전, 감독하던 치안판사에게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판사님! 내 가슴에 손 얹어보세요! 평소보다 맥박이 더 빨리 뛰면 하나님과 기독교 부인해도 좋소.” 그는 마치 침대에 누워 잠들려는 사람처럼 태연했습니다. 권능의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확신하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험합니다. 순간순간 어려운 위기 상황이 닥쳐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권능의 하나님 앞에서 살면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담대함으로 늘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 정직한 삶
사무엘은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했기에 정직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은 남이보든 안 보든 차이가 없습니다. 당연히 정직하게 살게 됩니다. 사무엘은 일평생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그 당시 사사,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으로 절대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왜 그렇게 될까요?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럽니다. 사람들을 무시하니까 함부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했기에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3절을 보세요.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다그칩니다. 자기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대 보라고 ... 그러자 백성들이 뭐라고 반응합니까? 4절.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백성 중 그 누구도 사무엘의 비리를 대지 못합니다. 이구동성으로 그의 정직성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십니다. 시11:4 “ ...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 영국의 뉴 캐슬대의 한 연구소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캠퍼스 내에 커피 자율 판매대가 있는데, 돈 안 내고 가져가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판매대 앞에 붙어 있던 ‘꽃’ 그림을 떼고 그 대신 ‘사람의 눈’ 그림을 부착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수입이 3배나 증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 정직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림 속에 있는 사람의 시선도 이렇게 무서운데 하물며 불꽃같은 하나님의 시선은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이 죄를 저지르고 부정직해지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안 봐도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보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면 저절로 정직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 정직한 삶(Simple Life)을 살게 되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면 죄악된 삶(Sinful Life)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본다는 허위의식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남들이 모두 부정직하게 사는데, 나만 정직하가 살면 손해가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부정직에 대해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자로서 이 세상에서 예비 심판을 하시고, 장차 최후의 심판 때 완전한 심판을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면 반드시 보상해 주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그 부인이 유혹하잖아요. 그 때 그가 어떻게 거절합니까? 창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는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더러운 짓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호히 거절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원한을 품고 모함을 해서 감옥에 가지만 하나님이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를 인정하시고, 나중에 감옥에서 만난 관원을 통해 애굽의 총리가 되지 않습니까?
■ 「한국유리」창업자인 고 최태섭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정직한 기업을 경영하고 기부도 많이 한 기업인으로 유명했습니다. 6.25 전쟁 당시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아군이 1.4 후퇴를 할 때 모두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도 피난을 가야 되는데,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이 있어서 얼른 갚고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급히 은행에 가서 직원에게 대출금을 갚겠다고 했더니, 대출 장부도 없고 피난가야 되니까 돈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받으라고 하니까 하는 수 없이 영수증을 떼어주고 받았습니다. 그 후 제주도로 피난 가서 사업을 했는데, 군부대에 식료품을 납품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단장이 그의 정직성을 보고 생선 납품을 요청합니다. 주문 물량이 자꾸 늘어서 부득이 큰 배를 구입해야 되는데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산에 있는 은행으로 가서 대출을 요청합니다. 담보도 없고 전쟁 통이라 돈을 못 빌려준다는 답변이었습니다. 포기하고 나오려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1.4 후퇴 당시 대출금 갚은 것이 잘 정리됐는지 확인해 봅니다. 영수증을 제시했더니 은행원이 깜짝 놀랍니다. 반가워하면서 “바로 그 분이군요! 선생님은 은행가에서 전설 같은 인물이 되었어요. 은행장님을 만나게 해 드릴게요!” 은행장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무담보로 거액을 대출해 줍니다. 그 돈을 갖고 사업에 크게 성공을 거둡니다. 이렇게 해서「한국유리」창업의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최 장로님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분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에 정직한 삶을 살았고, 이를 기억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사무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면 우리도 쿨~하게 살 수 있습니다. 행복해집니다. 승리합니다. 부디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평안한 삶, 담대한 삶, 그리고 정직한 삶으로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무엘
이동휘목사 / 삼상 12:1-25
1. 사무엘이 그 나이 50세가 되었을 때, 자신의 사사(士師) 직무를 돕도록 하기 위해 두 아들을 보조 사사로 두었습니다. 사무엘의 장자는 ‘요엘’로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차자 ‘아비야’인데 ‘여호와는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이 두 자녀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은 그의 믿음과 영감(靈感)이 깊이 반영된 것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이름을 지닌 두 아들을 보조 사사로 두어, 늙은 나이에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사직을 돕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사무엘의 기대와는 달리 두 아들들은 사사의 본분을 망각하고 심각할 정도로 타락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삼상8: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여기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라는 말은 자식들에 대한 바른 교육을 위해 사무엘이 온갖 노력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들이 순종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해,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서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한 점 부끄러운 것이 없이 깨끗하고 공명정대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삼상 12:3-5)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며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 증언하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가 증언하시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의 탁월한 통치는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인정하는 바였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이러한 자신의 깊은 신앙과 더할 나위없이 대단히 훌륭한 지도자의 삶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아들들은 아버지 사무엘의 행위를 따르지 않아 백성들의 실망과 불신감이 컸던 것입니다. 사무엘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지만 그가 나이 늙어 예전같이 이스라엘 전역을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사무엘이 두 아들들을 보조 사사로 세워 그 통치 공백을 메워 보려했지만 오히려 부정부패하고 타락하여 불신감만 팽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형국에 블레셋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의 침공과 약탈로 끊임없이 시달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다 안전하고 강력한 국가체제를 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미 왕을 갖고 강력한 왕정 제도를 실시하고 있던 모압, 암몬, 에돔 등 주변 국가들을 자신들의 모범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소위 왕정제도를 벤치마킹(benchmarking)하고자 한 것입니다. 왕(王)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왕정 국가 체제를 형성함으로써, 주변의 이웃 나라들과 동등한 차원의 군주국(君主國)이 되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자신들에게 고통을 준 주변 국가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들처럼 조직력을 갖춘 군대와, 또한 그 군대를 일사불란하게 통솔할 강력한 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 국가들과 숱한 전쟁을 통해, 훈련이 잘된 이방 군대의 강력한 힘과 짜임새 있는 조직, 그리고 그러한 조직을 지휘하는 위풍당당한 왕의 모습에 매료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로들인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이렇게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사무엘 상8:4-5입니다.
(삼상8:4-5)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이러한 장로들의 말에 마음이 상하여, 사무엘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니라. 그들은 내가 애굽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마다 그렇게 하여,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더니, 너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느니라. 그러니 너는 이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어라.”(삼상8:7-9) 이같은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주변 국가들로부터 압제당하는 이유가, 자신들의 범죄와 불신앙과 우상 숭배 행위에 있는 줄 깨닫지 못하고, 사사(士師)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神政政治)에 결함에 있다고 보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태도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행위로, 곧 선민(選民)으로서의 고유한 특권과 사명을 포기하는, 이른바 하나님께 대한 독립 선언과 같은 방자한 행위였습니다.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니라.” 고 말씀하신 것은 결국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일로,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절대적으로 의뢰할 또 다른 그 무엇을 섬기고자하는 우상숭배의 행위와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음을 보여 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인간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적인 허용일 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가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그러한 백성들의 요구에 응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인간 왕이 가져다 주는 온갖 폐해를 깊이 체험케 하여, 마침내 하나님만이 참된 왕이요 유일한 통치자임을 깨우쳐 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택한 왕으로 인하여 후에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롬1:24-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은 방임적 성격을 띤 것으로서 일종의 심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후일 호세야 선지자에 의해 설파된 바 “(호13: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는 메시지에 의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 자체가 악하다고는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왕정 제도는 이미 모세에 의해 예언된 바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17:14-20입니다.
(신 17:14-20)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라.” 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왕으로 세워, 평생에 하나님 말씀을 옆에 두고 읽어 하나님 섬기기를 배우며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왕정제도나 그 외 모든 일의 진행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방법대로 행해져야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때와 경륜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인본주의적 욕구를 따라,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대로 왕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그들의 통치자로 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이 추앙하면서 자랑할 수 있는 초(超)영웅을 원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는 왕이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게 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백성들과 달라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 구원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11:45입니다.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거룩하라.”는 말씀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살라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하나님의 뜻을 살펴 구별되어 깨끗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한 대로, 사울이라는 잘생긴 젊은이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울은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이스라엘은 다시 블레셋에 처참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백성들이(교회와 개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에게 주심으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사무엘은 그의 남은 생애를 사울과 쇠퇴해가는 나라를 바라보면서 탄식해야 했습니다. 사무엘은 새로운 세대가 경험이 많은 나이 든 경건한 지도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다른 방식으로 일하기 시작할 때,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먼저, 사무엘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사울을 왕으로 세운 후,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무엘 상12:12-15입니다.
(삼상 12:12-15)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그리고 10년 후,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삼상 15:2-3)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그러나 사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상15:8-9)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에게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책망합니다. “(삼상15:17-19) 왕이 스스로를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던 그 무렵에, 주께서 왕께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왕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이 되신 것이 아닙니까? 주께서는 왕을 전쟁터로 내보내시면서, 저 못된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고, 그들을 진멸할 때까지 그들과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주께 순종하지 아니하고, 약탈하는 데만 마음을 쏟으면서, 주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 그러자 사울이 비겁하게도 이렇게 변명합니다. “나는 주께 순종하였습니다. 주께서 보내시는 대로 전쟁터로 나갔고, 아말렉 왕 아각도 잡아왔고, 아말렉 사람도 진멸하였습니다. 다만 우리 군인들이 전리품 가운데서 양 떼와 소 떼는 죽이지 않고 길갈로 끌어왔습니다만, 그것은 선지자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진멸할 짐승들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으로 골라온 것입니다.” 이에 사무엘이 다시 책망합니다. “(삼상 15:22-23) 주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을 봐주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왕이 주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주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후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각을 불러내 죽이고, 사울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죽는 날까지 다시는 사울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무엘이 사울을 더 이상 왕으로 인정치 아니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버린 왕은 폐위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불순종한 사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왕직을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껏 함께 하셨던 성령을 거두시고 악신이 들게 하여 비참한 말로(末路)로 내몰렸습니다.
(삼상 16: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하나님 말씀을 버린 사울은 그 후부터 아무리 하나님을 불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삼상 28: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결국 사울은 신접(神接) 무당 여인을 찾아가 악령에 이끌려 전쟁터에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의 세 아들과 함께 한 날에 처참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삼상 28:7)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삼상 31:6)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항상 성령이 함께 하시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열방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했을 때,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것으로 전혀 다른 세대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사무엘은 시대가 변해가고 있었고, 나이 든 사무엘은 자신이 마지막 사사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행 13:20-22)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늙었다는 이유로 버리고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요구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사무엘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삼상 8:7-8)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을 들어주라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삼상 8: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사무엘은 늙어가는 세대, 즉 ‘가는 세대’로서 새로운 시대 변화를 요구하는 ‘오는 세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우도록 했고, 왕정제도의 폐단에 대해 엄히 경고하고 그 제도를 가르쳤습니다. 사무엘은 ‘가는 세대’로서 자신을 배제하고 왕정(王政)시대를 열고자 했을 때, 신실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의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빌라도가 체포된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세우고 “보라. 너희 왕이로다.” 라고 말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소리로 ‘죽여 버리시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며 외쳤습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란 말이오?’ 라고 하자 대제사장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면서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 위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세대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대할지라도, 그리고 이 세대에 어떠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성도 여러분은 끝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인생의 참된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여러분 삶에 왕이 되는 신앙생활로 범사에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사무엘은 하나님께 기도한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상 1:11입니다.
(삼상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아들을 낳은 후 ‘이는 내가 여호와께 구하였다.’는 뜻을 지닌 ‘사무엘’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삼상 1: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그래서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기도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사무엘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편99:6입니다.
(시 99:6)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이라는 말은 곧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들 중에 바로 사무엘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 사무엘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렘 15:1) 그 때에 주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록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나와 빈다고 해도, 내가 이 백성에게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이 백성을 내 앞에서 쫓아내라!’
이러한 말씀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보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무엘 자신 역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아니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하나님이 보시는 사무엘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기도하면 날씨도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기도하자 군대가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것을 거부하고 새것을 요구했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사무엘을 늙었다는 이유로 그들의 지도자로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이 든 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역 가운데 하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인 것입니다. 새로운 세대가 가는 세대를 거부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즉 오는 세대를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세대가 변한다 할지라도 성도 여러분의 기도를 뛰어 넘을 수는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기도가 오는 세대의 삶을 변화시켜 복된 세대를 가져올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의 자손들을 위해, 오는 세대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4.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은 기도를 멈추지 않은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초대 교회 사도들이 중시했던 일들 두 가지는 바로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3-4입니다.
(행 6:3-4)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 이 두 가지 일을 결코 분리시켜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요 15:5-7)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결합시키셨습니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 거하는 생활이 없는 기도나, 기도가 없는 신앙생활은 열매가 없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마다 죄사함을 위해 중보 기도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신 5:31-33) 너는 여기 내 곁에 서 있으라. 내가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네게 이르리니 너는 그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내가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는 땅에서 그들에게 이것을 행하게 하라 하셨나니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신6:7-9)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다니엘은 성경을 읽고 공부하던 중 이스라엘이 70년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된 원인이 우상숭배의 죄악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렘 25:11-14)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그리하여 여러 민족과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들을 섬기게 할 것이나 나는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로 주어진 70년 포로 생활이 끝나게 되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리라는 말씀도 보게 되었습니다.
(렘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다니엘은 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 예언의 말씀에 대한 구체적인 성취의 때를 알려주셨습니다.
(단9:20-27)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주야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생활로 자신의 향한 하나님의 뜻과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셨고, 말씀을 전하며 다니셨습니다.
(막 1:35-39)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성경을 다 알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능력이 없고, 말씀을 모르고 기도하면 지식 없는 열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는 말씀과 기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무엘은 사사직에서 물러난 후 바로 하나님 말씀 사역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선지자 생도들”을 모아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다음 세대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그의 고향 마을 라마(삼상 19:18-24)와 기브아(삼상 10:5-7)에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세웠습니다. 나중에는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도 학교가 세워졌습니다(왕하 2장, 왕상 20:25).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도록 나이 든 세대에게 명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신 11:18-20)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시 34:11-14)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시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는 세대를 위해, 자손들의 복된 삶을 위해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전하고 가르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5.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 말씀을 버리므로 하나님께서도 사울을 버려 그를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 후로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보지 아니했습니다.
(삼상 15: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사무엘이 사울을 다시 보지 아니한 것은 사울을 위해 슬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얼마든지 나라를 반듯하게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그 모든 기회를 잃어버리고 허송세월하고 있는 사울의 어리석음 때문에 슬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으로 사무엘은 하나님과 함께 가슴 아파했던 것입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마저도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삼상14:29)고 탄식했었습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나이 든 사람들을 완고한 세대들로 보며 노인들의 지혜와 영적인 통찰력을 배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사무엘을 찾아갔고 그의 가르침을 구했습니다(삼상 19:18). 그리고 사무엘은 다윗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선도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젊은 세대들을 바라보며 ‘가는 세대들’인 노인들이 장탄식하는 점들이 많지만, 이 세대의 미래인 젊은이들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슬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무엘처럼 ‘가는 세대들’은 비록 ‘제도 권 밖에서’ 섬겨야만 한다 할지라도 울고 기도하며 가르치고 격려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못지않게 그들을 위해 울 수 있길 바랐습니다. 예레미야 9:1-6입니다.
(렘 9:1-6)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가 머무를 곳을 얻는다면 내 백성을 떠나 가리니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요 반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활을 당김 같이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을 조심하며 어떤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완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라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지치거늘 네가 사는 곳이 속이는 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속이는 일로 말미암아 나를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는 민족의 장래를 바라보며,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렘10:19)고 울부짖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 당시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겔 9:4)의 이마에 표시를 하시고, 에스겔에게 사람들 앞에서 “허리가 끊어지듯 한식”(겔 21:6)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비참한 상태와 곧 임하게 될 심판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눅 19:41-44)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지 못하고, 축제의 분위기 띄워 웃음으로 가득하고, 말씀과 기도로 변화되기 보다는 즐기기를 더 원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은 극장이 되고, 강단은 ‘예배 전문가들’이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이 다 잘 돌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무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야고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야고보서4:9-10입니다.
(약 4:9-10)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요즈음 이러한 야고보의 메시지를 들어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기도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영적 투자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그의 교만과 겉치레로부터 구원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다음 왕으로 그가 기름 부은 다윗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은 학교에서 가르쳤던 젊은이들이 퇴폐적인 세대 속에서도 하나님께 신실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마지막까지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대로 되었습니다. “늙은 독수리가 젊은 참새보다 낮다.”는 헬라 속담이 있습니다. 사무엘은 독수리였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언제라도 독수리가 되어 더욱 높이 나는 법을 젊은 참새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 40:30-31)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하며 사는 세대들은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가는 모습으로 살아갈 뿐만 아니라, 이 세대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대를 위해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 가운데 애통하는 신앙생활로, 성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에게,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삼상 12장 1절 ~ 절 / 양인국목사
1. 사무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워 그들 가운데 출입하게 하였다는 것을 말하였다. 이것을 말한 것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자신이 해오던 일을 새로 세운 왕에게 위임해 주고자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무엘은 지도자로서 행해 온 일들을 새로 세운 왕에게 위임해 주기 전, 자신이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해 줌으로 “지도자란 어떤 자인지” 그리고 지도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자인지”에 대하여 말해 주고자 했다. 이것을 알 때, 비로소 백성들은 어떤 지도자를 따라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위임해 주신 지도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모든 세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처럼 지도자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것은 우리 모두는 삶의 여정에서 언제나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동시에 또한 따르는 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도자의 위치에서 또는 따르는 자의 위치에서 각각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마땅히 행할 일을 한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더 온전함으로 세워질 것이다.
2. 그러면 지도자란 어떤 자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1-5절에서 찾는다면 다음의 몇 가지 대답을 얻을 수 있다. 그 대답들 가운데 하나는 지도자란 듣는 자라는 것이다. 1절의 말씀이다. “보라 너희가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이 말씀은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하는 말을 모두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 이스라엘이 사무엘에게 한 말은 사무엘이 듣기 원했던 말이 아니고, 오히려 사무엘을 거스르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이 사무엘에게 한 말은 이방인들처럼 자신들에게도 왕을 필요하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통치하시는 것을 특권으로 알지 못하는 무지로부터 나온 말로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었고 사무엘 개인에게도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무엘은 이미 후의 시대를 위하여 자신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아버지 사무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원망을 사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이 그들을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가게 하지는 않았다. 사무엘이 이렇게 한 것은 그의 성품으로 볼 때 단지 아들들이기 때문만을 아니었을 것이고 오히려 그렇게 할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한 것은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한 말들은 하나님의 뜻에도 그리고 자신의 뜻에도 거스르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그들의 말을 모두 들어 주었다. 물론 여기 사무엘이 그들의 말을 모두 들었다는 것은 그들의 요구 모두를 들어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진정성에 귀를 기울이고 바른길로 행하도록 지도해 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실제로 사무엘은 그들의 말을 모두 들은 후 하나님께 나가 그들의 요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을 때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해 주었다.
놀라운 사실은 성경에서 계시해 주고 있는 영적 지도자의 모범은 백성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나가 그들의 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은 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 주는 자라는 것이다. 이처럼 지도자의 지도력은 듣는 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지도자란 듣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백성들 가운데 출입하는 자다. 여기 지도자가 백성들 가운데 “출입 한다”는 것은 지도자가 먼저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들의 사정과 필요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도움을 주고자 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도자는 섬기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이런 지도자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누가복음4장 42-44절의 말씀이다.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여기 사람들이 주님께 자신들을 떠나지 말기를 강권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주님의 이와 같은 모습이야말로 사람들을 찾아가는 지도자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영적 지도자는 섬기는 자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실제로 주님도 세상에 섬기는 자로 오셨다. 따라서 영적 지도자의 지도력은 이와 같은 섬김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또한 지도자는 부르심에 응답하며 사는 자다. 여기 부르심에 응답하며 산다는 것은 삶의 여정에서 마땅히져야할 책임과 누려야 할 권리를 모두 하나님 안에서 찾는 것을 말한다. 지도자로서 자신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쁘심을 위하여 성실하게 행할 수 있고, 지도자로서 행하는 수고에 대한 보상도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으로 믿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라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자신이 지도자로서 행해야 할 일들을 부르심으로 믿는다면 어떤 경우에도 지도력을 사유화하여 사람들로부터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자신에 대한 증언을 요청한 것을 통하여 부르심에 응답하며 사는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12:3)” 여기에 대하여 백성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12:4)” 사무엘의 삶을 비춰보았을 때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지도력을 사유화하여 자신의 탐욕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은 자신이 지도자가 된 것을 부르심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영적 지도자들이 정말 하나님을 전지, 전능, 편재, 영원하신 분으로 믿는다면 물질에 집착하거나 탐욕을 부릴 이유가 없을 것이고 오히려 선지자 하박국처럼 고백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사무엘을 통하여 우리 모두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하게 살았어도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말씀에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하게 살아가면 세상에서 낙오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자들에 대하여 “어떻게 세상에서 믿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종여일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늙을 때까지 잘살았다. 그는 지도력을 사유화함으로 누구를 압제한 적도 없고 속인 일도 없고 누구의 것을 탈취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믿음으로 살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 역시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살아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복된 삶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지도자란 어떤 자인가? 듣는 자이고 찾아가는 자이고 부르심에 응답하여 사는 자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공식적인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반드시 지도자의 위치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부모의 위치뿐만 아니라 형제들 가운데서 지도적 위치에 있을 수 있고, 사회에서 선임자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때 우리는 사무엘을 통하여 보여주신 지도자로서 합당한 일을 하게 된다면 우리를 통하여 세상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보다 더 복된 사회로 변화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배우고 따르는 위치에 있을 때도 사무엘을 통해 보여주신 지도자의 모습을 갖춘 자를 따른다면 그들의 지도력으로 인하여 우리는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지도자에 대한 바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우리는 삶의 여정 동안 지도자로 존재하는 동시에 따르는 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도자로 존재할 때 지도자로서 합당하게 행하고, 따르는 자로 존재할 때 따르는 자로서 합당하게 행한다면 우리는 시간이 더해 갈수록 더욱 온전함으로 세워지고 우리로 인하여 세상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보다 더 아름다운 곳으로 변화될 것이다.
3.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지도적 위치에 있을 때는 지도자로서 합당한 일을 하게 해 주시고, 따르는 자의 위치에 있을 때는 따르는 자로서 마땅히 행할 일을 하게 해 주옵소서. 아멘!
사무엘의 교사도(敎師道)
노창영목사 / 삼상 12장 1-3, 17-18, 23-24절
서론: 저는 학창시절 성가대 지휘자의 몸에서 맡은 흡연 냄새로 인해 잠시 힘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사가 사람들이 기대한 기준을 벗어날 때 실망하게 됩니다. 오늘은 교사주일을 맞아 올바른 믿음의 스승이었던 사사 사무엘의 생애를 보며 교사도(敎師道)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자합니다.
Ⅰ. 사무엘은 개인적인 이득을 위하여 사역하지 않았습니다(삼상12:1-5)
A. 사적 이득을 취하지 않은 순전한 지도자 사무엘
성경의 인물들도 사사자리에 있으면서 뇌물을 많이 받았나봅니다. 그러나 오늘 사무엘은 사사로서의 은퇴고별사를 하며 자신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회중들도 모두 이에 공감을 합니다(삼상12:3). 사도바울도 사도행전 20장 33-35절에서 금이나 은이나 의복을 탐하지 않았고 약한 자는 도와주었다는 내용의 고별설교를 하는 것을 봅니다. 사도베드로도 교회지도자들에게 더러운 이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섬기라고 말씀합니다(벧전5:2). 사무엘과 바울처럼 주님의 교사들은 개인적인 이득이 아닌 순전함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합니다.
B. 사심을 품은 지도자들의 모습들
사람은 이득이 없는 일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속된 동기들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입니다. ‘신바람 건강법’의 황수관박사는 강남중앙감리교회의 장로였습니다. 그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갔을 때, 출마한 지역의 대형교회로 이적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장로의 모범이 안 된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선거결과 불과 153표 차이로 낙선하였지만 올바른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동기가 순수해야합니다. 자신의 이득이나 자아실현을 위해 교회를 등록하고 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교회학교교사 유형에도 보면 스트레스발산형, 스타의식형, 배우자물색형, 자녀감시형, 회춘소망형 등 5가지 불순한 봉사유형이 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학교 교사들은 철저히 자신 속에 있는 나쁜 이득과 불순한 동기들을 버리고 깨끗하고 순전하게 봉사해야합니다.
Ⅱ. 사무엘은 백성을 책망 할 줄 아는 선지자였습니다(삼상12:6-22)
A. 사무엘의 백성책망
사무엘은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이 아닌 눈에 보이는 사람 왕을 구한 것을 크게 책망합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친히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신정정치(神政政治)를 버리고 인간 왕을 구했고 하나님은 이에 응답하여 사울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오늘 사무엘은 마지막 고별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 일에 대하여 분노하셨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기도로 건기(乾期)에 장대 같은 우뢰(雨雷)와 비를 내리게 하여 백성들이 깨닫고 회개하게 하였습니다(삼상12:17-18). 기독교는 Democracy 즉, 민주주의(民主主義)가 아니라 신정정치(神政政治, Theocracy)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의 그 죄가 큼을 사무엘을 통하여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교사들은 인기나 지지도를 생각지 말고 올바르게 책망해야 합니다.
B. 칭찬뿐 아니라 책망하는 교사
점수 따려고 좋은 말만할 수 있습니다. 칭찬도 좋은 칭찬이 있습니다. 그러나 칭찬을 잘못하면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불필요한 칭찬은 듣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부모나 교사들은 더욱 칭찬을 조심스럽고도 잘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칭찬은 사람을 살립니다. 프레드 크레독(Fred Craddock)목사는 좋은 칭찬의 한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테네스(State of Tennessee)지역으로 여행을 가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데, 그 지역의 ‘벤후퍼(Ben W. Hooper)’라는 주지사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벤후퍼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미혼모의 아들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예배가 끝나면 목사님과 마주치지 않게 빨리 예배당을 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은혜를 받고 기도하다 늦게 예배당을 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목사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얘야 너를 보니 네 아버지도 참 좋은 분인 것 같구나 난 네 아버지를 알아! 그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시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저는 감격하고 은혜를 받아 상처를 다 이겨내고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칭찬은 사람을 살립니다. 칭찬과 함께 책망이 있어야 교육의 균형이 생깁니다. 책망은 소중하지만, 사랑 없는 책망은 사람을 죽입니다. 몇 해 전 어떤 조폭이 사형판결을 받을 때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그림을 그린다고 물감을 가져오라했는데 집안형편이 안되어 빈손으로 학교에 나가니 선생님이 “이 형편없는 자식아”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일로 상처를 받았고 삐뚤어진 마음으로 인해 결국 조폭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바르지 못한, 사랑 없는 책망이 가져온 비극이었습니다. 사랑으로 끌어안고 때리는 징계와 책망은 사람을 살립니다. 책망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며 끌어안고 때리는 것 바로 그것이 바른 책망입니다.
Ⅲ. 사무엘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삼상12:23-24)
A. 사무엘의 양떼를 위한 기도
하나님의 종이었던 사무엘은 은퇴하면서 까지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사무엘상 12장 23-2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열두제자를 세우시고 수제자 시몬에게 “시몬아 사탄이 밀을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나는 너를 위하여 너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였으니 너는 너 자신을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 하시며 친히 중보하셨습니다(눅22:31-32). 동일하게 로마서 8장 34절에도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이시니라”고 말씀하며 교사로서 맡은 양떼를 위한 기도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것이 맡은 자로써 교사들이 가져야할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B. 양떼를 끌어안는 기도의 네트워킹(Networking)
강신명목사님은(1957-1980) 영락교회에서 한경직목사님과 동사목사를 하셨고, 새문안교회 담임을 역임하신 목사님이십니다. 그리고 강신명목사님은 800여명의 전교인들의 이름과 형편을 다 알고 외우고 기도하시는 목사의 지표가 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기도의 네트워킹, 성도를 기도로 묶는 기도의 헌신이 필요함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가 군목을 제대하고 89년에 부산 동래구 온천장 지역에서 목회할 당시 지하철로 1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서부교회의 교사들이 몰려 와서 이 지역의 아이들을 전도하고 심방하는 모습을 매주 목격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백영희목사님이셨는데, 당시 교인이 장년 4천명에 아이들이 1만 명쯤 모인 주일학교 한국최대교회였습니다. 부산이 작은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말만 되면 전교사들이 부산전역으로 흩어져 기도하고 심방하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전역에서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양떼를 위한 기도와 돌봄이 바로 그 힘이었습니다.
결론: 사무엘은 순전한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백성을 책망하고, 백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교사의 도이자 믿음의 도입니다. 사무엘이 교사로서의 보인 모범을 우리 마음으로 본받아 살아가는 성도, 교사, 부모, 주님의 일꾼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투명한 지도자
삼상 12장 1~5절 / 김상복목사
금년과 앞으로 몇 년은 우리나라에 대단히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특별히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우리나라가 계속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려면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한국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남해의 땅 끝에 있는 섬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땅의 끝이라서 ‘땅 끝’이라 부르는 줄 알았는데 ‘땅 끝’이라는 지명이 있더군요. 제가 하나님 앞에서 할 이야기가 생겼어요. “제가 성령이 충만해서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왔습니다.” 그곳에 가면서 놀란 것은 땅 끝에 가까울수록 도로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서울은 오래 전에 닦은 길이 많아서 울퉁불퉁한데, 거기는 최근에 닦았기 때문에 아주 좋습니다. 이제 한국에는 시골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 섬 주민들은 자동차 한 대, 배 2척씩 갖고 있어요. 제가 어느 의사 댁에서 잤는데, 언덕 위에 아주 멋지게 지은 집이었어요. 배를 타고 30, 40분씩 가는 그곳도 서울 못지않게 얼마나 좋은지, 하나님께서 이 땅을 놀랍게 축복해 주셨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 수가 백만에 이르고 있습니다. 불법 외국인이 많은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한국에 오면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외국인들로 인한 문제가 없으려면 방법은 한 가지, 우리가 가난하게 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축복과 은혜로 왕성케 하셔서 외국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오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나온 지 5년 정도 된 어느 외국인과 대화를 했는데, 초등학교만 나온 이 분이 남편과 자식들 4명의 가족을 먹여 살리고, 5년 만에 자기 나라에 아파트도 샀다고 합니다.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합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순위 12번째 나라가 되었는데 앞으로 추락할지 상승할지 지금이 기로에 서있습니다. 여러분, 더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고, 공부해서 우리나라가 반드시 경제 대국이 되도록 힘을 씁시다.
우리에게는 돈을 벌어야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해서 사업이 왕성해지고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많은 경제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선택하셔서 선교 대국을 만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한국이 일어나 빛을 발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우리의 기도제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나라를 경제 대국으로, 선교대국으로, 통일 대국으로 만들어주시옵소서.”
우리나라는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이 제대로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조그만 땅 덩어리에 똑같이 비가 왔는데 북한은 저렇게 어렵게 되고, 왜 남한은 풍작을 누립니까? 남한에는 천만 명의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으나 북한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는 나라가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북한을 속히 해방시켜 우리나라가 자유로, 복음으로 통일이 되게 하시고 북한에도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통일이 되면 6천700만의 대국이 되어 과거 우리 한국 역사에서 보지 못했던 세계적인 민족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금년에 우리는 새 대통령을 뽑아야 됩니다. 우리나라를 경제대국으로, 선교대국으로, 통일대국으로 이끌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이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경선은 끝났습니다. 다른 당에서도 좋은 지도자들이 선정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잘 이끌 대통령이 나와 후퇴하지 않고 상향적으로 전진하는, 한 단계 높이 뛰는 우리나라가 되기를 함께 기도하십시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훌륭한 지도자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3대 산맥이 있는데, 모세, 사무엘, 예수님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을 전한 선지자입니다. 또 인간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낸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들을 세운 킹메이커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선지자겸 제사장겸 킹메이커는 사무엘 밖에 없습니다. 대단한 파워를 가졌던 최고의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첫째로, 사무엘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가 있는 분입니다. 지도자는 머리만 좋아서는 안 됩니다. 머리만 좋으면 자기 혼자 생각해서 “너희가 뭘 안다고 그러냐? 대통령인 내가 알아!” 자기 멋대로 하려고 합니다. 지도자는 귀가 좋아야 합니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1절). 사무엘은 당시 최고의 지도자인데 백성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다 들었다고 합니다. 혼자 똑똑하다고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백성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통하여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시는지 들을 줄 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 명의 대통령만으로 나라가 잘 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한 명의 대통령들 때문에 지난 50여 년 동안 우리가 얼마나 머리가 아팠습니까!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우리의 다음 대통령은 귀가 밝은 대통령이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국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듣고 행동하는,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가 나오도록 기도합시다. 대통령 한 사람만으로는 안 됩니다. 국민이 똑똑해야 합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도 귀가 밝아야 됩니다. 여러분과 제가 가정, 직장, 동네에서 전체를 들어보고 잘 판단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잠언과 야고보서에서 얼마나 많이 들으라고 합니까?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약1:19). 어떤 아이들이 망합니까? 부모님 말을 안 듣고, 선생님, 선배, 친구들의 말도 안 듣는 아이들입니다. 듣지 않는 아이가 어떻게 제대로 성장하겠습니까? 듣지 않는 아이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에게도 귀가 밝고 듣기를 잘 하는 큰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듣기를 잘 합니다.
둘째로, 사무엘은 국민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너희가 나에게 하는 말을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1,2절)고 했습니다. 자기의 뜻만 이루려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을 듣고 국민의 뜻을 시행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국에는 모두 왕이 있었으나 이스라엘에만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우리나라도 왕을 좀 세워 주십시오” 하자 사무엘이 말합니다. “왕을 세우면 너희는 고생한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왕이셨으나, 이제 사람으로 왕을 삼으면 그가 무엇을 하겠느냐? 그는 너희들에게서 세금을 걷어갈 것이며, 너희 자식들은 그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 사람도 인간인데 인간이 인간을 통치하면 너희는 힘들어질 것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살아라.”
이 말이 옳습니다.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으면 나라가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까! 호위병이 있어야 되고 아침마다 이발 관리하는 사람도 있어야지요. 그러니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자고 사무엘이 말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아니요, 그래도 우리에겐 왕이 필요합니다. 꼭 왕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하도 원하니까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었습니다.
셋째로, 사무엘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지도자였습니다. 투명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2절). 내가 겨우 젖을 뗄 때 우리 어머니가 이 성전에 나를 데리고 오셔서 내가 이 성전에서 큰 것을 너희들이 보지 않았느냐? 내가 결혼한 것도 보고, 자식이 태어난 것도 보고, 자식들이 어떤지 다 알고, 내 평생을 펼쳐진 책과 같이 여러분이 보고, 읽고 다 알지 않는가? 그리고 질문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3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언을 하자 백성들은 그의 말을 인정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4절).
이스라엘의 느헤미야는 자기의 있는 것을 모두 이스라엘에 쏟아 부었습니다. 총독으로서 받을 월급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의 물질을 예루살렘의 성전 벽을 짓는데 다 내어놓았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살지언정 자기의 권력과 영향력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돈을 끌어 모으며 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누가 되든지 자기 자신을 쏟아 부어 국민을 섬길지언정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가지고 자기와 후손을 위해 재물을 쌓는 지도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사무엘은 검증받은 지도자입니다. 요즘 검증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검증은 필요하지요. 하지만 제가 볼 때, 지금 대통령 후보로 나서려는 사람들은 어느 면에서는 이미 검증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됩니다. 군수, 국회의원, 도지사, 장관, 총리로서 평생 국민들 앞에서 산 사람들입니다. 국민들이 인정해 준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검증이 필요한가요? 혹시나 어딘가에 눈에는 안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나타나는 것이 있을까요? 만약에 그런 것이 있다면 옛날에 다 나왔겠지요.
지금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나온 사람 대부분은 이름만 들어도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동안 공인으로서 많이 섬겨온 분들입니다. 눈과 코가 어떻게 생겼으며 피부가 어떤지도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누가 되어도 괜찮을 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 뭘 터뜨리고 폭로를 해서 서로 잡으려고 하는 것은 치사한 행동입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대통령이 되려 하다니요. 앞으로 이 민족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발표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밝혀서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은 없이 ‘어떻게 이것을 폭로 한 방으로 넘기나?’ 하고 있으니 “우리 지도자들이 좀 더 공정하고 좀 더 떳떳하고 당당한 지도자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는 기도가 절실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정정당당하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로, 사무엘은 모두가 합의하고 일치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즉, 국민이 인정을 했고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며” 하나님이 또한 인정하시고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날 증거하느니라.” 지도자도 인정했습니다. 이 땅에도 이런 지도자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한국은 경제 대국, 선교 대국, 통일 대국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 한 명의 노력과 힘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든 국민이 사무엘 같은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과 직장, 사업체, 여러분이 있는 그 장소에서 여러분과 제가 사무엘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만 나라가 튼튼해집니다. 대통령 한 사람만 바라보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 사람만 바라보고 얼마나 기대를 많이 했습니까? 또 기대만큼 얼마나 낙심을 많이 했습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무엘과 같이 하나님과 이웃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아름다운 인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좀 흔들려도 국민들은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쭉쭉 전진하는 이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경제대국을 만들어 주옵소서.” “영성대국을 만들어 주옵소서.” “통일대국을 만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이 기도제목에 하나 더 덧붙이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 발전에 크게 공헌할 사무엘과 같은 지도자를 세워주시옵소서. 이 백성을 축복하셔서 판단력과 지혜를 주시고 사무엘과 같은 백성들이 많이 일어나 이 민족이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고 세계에 크게 공헌하는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좋은 지도자는 좋은 국민이 필요하고, 좋은 국민은 좋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시시때때로 열심히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한 단계 높여주시는 이 시대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름다운 은퇴를 준비합시다
삼상 12장 1~5절 / 임현수목사
지난주 6월 5일 토요일 오후 4시 9분에 93세의 일기로 주의 부르심을 받은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69세의 나이에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그리고 73세에 두 번째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그 후 89년 대통령 직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77세로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을 77세에 은퇴하고 나서도 15년 동안을 더 살면서 10년간의 투병 생활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이스라엘에 새로운 왕을 세운 후에 사무엘이 공식 적인 은퇴를 선언하면서 백성들 앞에서 한 고별 메시지입니다. 그가 태어난 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던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이런 때에 어린 나이에 하나님께 드려진 사무엘은 성전에서 지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과 함께 계시면서 그의 말이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사무엘의 사역은 사울을 왕으로 세움과 동시에 끝마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이 땅에서 영원하지 못합니다. 건강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일도 영원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모두가 손을 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항구를 떠난 배는 반드시 항구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60세에 ‘출항’이라는 책을 내시고 80세에 다시 ‘귀항’이라는 설교집을 내시면서 은퇴 이후의 삶을 아름답게 사셨던 김성열 원로 목사님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은퇴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들도 이러한 은퇴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오늘 사무엘의 은퇴식을 통해서 배워보고자 합니다. 사무엘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다.
1. 우선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모든 백성들의 눈과 귀에 항상 노출된 삶을 살았습니다. 12장 2절 하반 절부터 읽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혹시 내가 남의 것을 빼앗지는 않았는가? 백성을 압제하지는 않았는가? 뇌물을 받지는 않았는가?” 사무엘은 마지막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면서 혹시라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부끄럽게 행한 일이 없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백성들은 사무엘이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결백하다 고 증거해 주었습니다. 이런 당당함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그것은 사무엘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정직 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존전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백성들을 거울 삼고 살았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삶은 모두에게 공개되고 있다고 여기며 공인으로 살았습니다. 한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부끄러움 없이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실수 가 있기 마련 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보십시오. 백성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뇌물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토색하거나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진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얼마든지 쉽게 범할 수 있는 죄악들을 그는 한 가지도 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과 백성들이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모습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은퇴를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매일같이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지 돌아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박재훈 목사님 …정직)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복권열풍, 카지노 열풍, 경마열풍, 심심찮게 뉴스에 오르는 주부 도박, 사라지지 않는 뇌물 관행...., 이 모든 것들이 한번 성공하면 그 동안의 모든 잘못이 묻혀지는 잘못된 사회 구조의 틀 속에서 만들어진 부산물들입니다. 부자만 되면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묻지를 않습니다. 아니 그가 비록 악한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 무마가 됩니다. 권세를 얻을 수만 있다면 법도 무시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예인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윤리와 도덕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입니다. 정직하다는 것이 세상의 가치로 볼 때는 미련하고 한심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맥스 루카도]라는 사람이 한 말은 참으로 큰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는 상사의 호감을 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첨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윤활유라고 부르죠.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말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칭찬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과장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극적 효과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말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분에 넘치는 집에서 삽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된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록은 우리가 인생을 끝나는 그 날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심판록은 매일 매일, 그리고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마다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살아온 날들과 사역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음으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자에게니라”
(딤후4:6-8). 그는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한 일들을 돌아보면서 얼마든지 자신이 수고한 것을 기념하고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마지막에 하나님으로 부터 받을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평생 주님을 위해 수많은 업적과 공로를 세운 노 사도의 마지막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들의 영혼을 자신 있게 하나님께 내어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밤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부르신다면 그 앞에 설 때, 부끄러움이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였습니까? 불의한 재물을 취하지는 않았습니까? 악한 생각과 죄악의 습관을 간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남을 미워하지는 않았나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불평을 제거하셨습니까? 원망을 물리치셨습니까? 여러분을 죽음에 이르게 할수 있는 욕심을 버리셨나요? 돈과 권력의 힘으로 약한 사람들을 압제하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하루를 주님과 동행하셨나요? 우리는 매일같이 이러한 물음 들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 인생이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며, 그의 은퇴는 아름다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무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의 삶을 정직하게 드러 내고 살아서 아름다운 은퇴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2.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를 준비하였습니다.
사무엘의 고별 메시지에는 새로운 제도, 즉 왕의 제도의 출범과 함께 하는 길갈에서의 언약 갱신입니다. 다시 말해서 왕과 함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거나, 그의 말씀을 거역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사역을 정리하면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걱정하였습니다. 장래 이스라엘이 왕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두 아들과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을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으며,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나님께서는 마른하늘에서 우레와 비를 내리셨습니다. 백성들은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을 다짐하게 된 것입니다.
한 세대가 가면 또 다른 세대가 옵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사람은 바뀝니다. 시간이 지나면 한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는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역사는 우리의 선배들에 의해 준비되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미래,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역사는 오늘 우리들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 세대,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만나는 위대한 지도자들 중에 깊은 감동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민수기 2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보여주며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자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간청을 합니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데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안수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모세는 평생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살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는 그 사명 때문에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런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얼마나 크게 낙심하고 절망스러웠겠습니까? 더군다나 모세는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끝났다고 낙심하고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절망할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약속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워달라고 간청 했던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모세의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는 자녀들을 축복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나이 많은 아버지가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들의 미래를 축복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는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위대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우리가 누렸던 지난 100년간의 부흥의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사무엘은 은퇴 후에도 끊임없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은퇴는 삶의 정지나 후퇴가 아닙니다.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육신이라는 껍데기에 두지 않았습니다.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요즘 다시 이런 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노인]을 은퇴시키지 말라 당신도 늙는다, 인권이 있듯이 일권을 보장해줘야한다 [우리모든 국민은 어떠한 연령 제한 차별 정년제로 일권을 박탈하면 안된다, 우리모든 국민은 죽을때가지 일해야한다.
오늘날, 노령화 사회가 되면서 아직도 일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떠나야하고, 하던 일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과거에는 은퇴와 동시에 남은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그래서 구약에도 50세면 은퇴 연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은퇴 한 후로부터 죽기 전까지의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퇴 후에 남은 생을 어떻게 값있고, 건강하게 살 것인가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무엘의 은퇴 후의 삶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은퇴 후에도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사사의 자리를 떠나지만 그는 죽기 전까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오히려 은퇴 후의 그의 삶을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중보자로서 남은 생애를 보내겠다고 하는 사무엘의 고백을 우리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인생은 은퇴 후에 빛이 나는 것입니다. 물론 인생에는 은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면서 공식적으로 자신이 할 일이 없어졌을 때, 그때부터 우리는 더욱 중요 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갈렙을 잘 아실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14장 10-11절에 보면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 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 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 세로되 모세 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 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 즉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가나안 땅 분배를 막 시작하려는 때, 갈렙과 유다 지파의 자손들이 여호수아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헤브론 산지를 기업으로 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은퇴할 나이, 원로 대접을 받으면서 후손들에게 섬김을 받으며 안주해도 되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갈렙은 유다 지파 중에서 제일 앞장서서 “헤브론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결국 갈렙의 열정으로 인하여 갈렙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의 노른자위와 같은 헤브론 땅을 기업으로 받고 누리게 되었습니다.
은퇴 후에 빛나는 삶을 살고 있는 한 부부 선교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모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은퇴 후에 퇴직금 전부를 들고 주님의 부름과 음성을 따라 아프리카 ‘보츠와나’라는 나라에 가서 유치원을 짓고 젊은이들을 양육하는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두 부부의 나이가 62세와 61세였습니다. 4년간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면서 기적같이 아름다운 사역을 하다가 건강 문제로 잠시 귀국하여 일년간 안식년을 지내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는데, 그분들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시작한 1기 사역이었습니다. 잠잘 때 쥐가 얼굴 위로 지나다녔고 전갈이나 독사의 위험을 수없이 겪었으며, 무지한 사람들과 익숙하게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몇 번이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또다시 2기 사역을 위해 들어가려니 나이도 있고 건강도 문제가 있어서 쉽지는 않지만 주님의 부름과 명령에 따라 기쁘게 떠나겠습니다.
언제 다시 이 자리에 와서 예배드리게 될지 모르지만 기쁘게 떠나서 든든한 마음으로 새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쉬어야 할 나이에 어쩌면 이렇게 헌신할 수 있습니까?
한 치과 의사는 50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병원을 정리하여 중국 연변으로 들어가면서 [오십 평생 나를 위해서 이만큼 살아왔으니 후회가 없습니다.
이제 주님의 뜻대로 남은 생애를 바치게 되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나의 선택과 결정은 결코 내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들입니까?
출애급의 지도자 모세는 80세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메시야를 만났던 안나는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85세가 되어서도 40대 처럼 출입이 여전했습니다.사도 요한은 90세에 유배지 밧모섬에서 요한 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약속의 아들을 품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나이가 80세가 넘어 정계에서 은퇴하고 야인으로 돌아가 있었지만 이 나이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여전히 국가적인 위기의 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90세가 훨씬 넘으셨는데 지금도 집회를 인도하십니다.맥아더 장군은 78세 때 사람이 노쇠하는 이유는 꿈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얼굴의 주름살 보다 마음의 주름살이 문제라고…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 젊을 때에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는 쉬어야겠다고 생각 하시는 분들 계십니까? 아직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는 할 일이 있습니다. 아니 할 일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한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께 나가 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젊을 때에 열심히 헌신하지 못했음으로 늘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으십니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주님 부르실 때까지 주님의 교회를 위해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지금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사역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일 할 수 없는 밤이 오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지금부터 기도하고 준비하여 은퇴 후에도 끊임없는 열정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다가 바울처럼 사무엘처럼 영광스러운 면류관의 주인공이 되는 복을 모두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