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8년경의 영토이다.
발단
아크코윤루 세력이 언제 탄생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기록상으로는 1340년경에 트레비존드 제국 약탈에 동참한 세력으로 등장한다.
이후 근거지 없이 돌아다니는 세력이었으나 티무르의 정복 활동으로 아나톨리아를 비롯한 중동의 세력 개편이 진행되었다. 이때 아크코윤루 세력은 디야르바키르 지역을 분봉받고 본격적인 역사를 쓰게 되었다.
이후 오스만, 맘루크, 카라코윤루의 눈치를 보며 지내지만, 우준 하산의 쿠데타로 역사가 크게 변화하였다. 우준 하산의 형인 자한기르 치세까지 친 카라코윤루 세력이었으나 카라코윤루 내전 당시 줄을 잘못 서서 약탈 당하고 속국으로 격하되었다.
이런 나약한 모습에 대항하여 우준 하산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반 카라코윤루로 전향하였다. 이때의 카라코윤루의 지배자인 자한 샤는 이를 인지하여 티무르와의 전투를 중단하고 아크코윤루와의 대결을 준비하였다.
카라코윤루 전
우준 하산은 카라코윤루와의 대결에 대비해 오스만의 트레비존드 정복을 눈감아주어 화친을 맺고 후방을 안정화시켰으며 카라코윤루에 반하는 세력에 모두 친선을 맺으며 단단히 준비했다. 카라코윤루의 최전성기를 열고 정복전쟁을 단행한 자한 샤의 군대와 아크코윤루의 영혼까지 끌어모은 군대가 맞붙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때 우준 하산은 내지에 끌어들여 청야 전술과 게릴라 전술을 활용하였고 1년 동안 버티었다. 이미 카라코윤루 내전, 티무르 정복 전쟁에 이어 바로 아크코윤루 정벌 전쟁에 나선 카라코윤루의 군사들은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시작해 아크코윤루의 존버로 불만이 폭주하고 분열되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10월 말이 되어 겨울까지 다가오니 자한 샤도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를 이용하여 우준 하산이 몇년을 준비하고 힘을 비축한 군사력을 완전히 결집시켰고 카라코윤루의 군대와 차팍추르 전투에서 맞붙게 되었다. 사기가 다 떨어져 집 가려고 하는 카라코윤루 군과 이제 모든 힘을 쏟아부으려는 아크코윤루 군이 맞붙었고 아크코윤루의 정예기병 전술로 카라코윤루 군은 완전히 휩쓸렸다.
결국 자한 샤 사망, 첫째 아들 참수, 넷째 아들 눈알 뽑기를 당하며 카라코윤루 직계 가문이 작살이 났다. 반 카라코윤루 세력 중 하나인 사파비야로 아제르바이잔 작살, 다른 반대파인 페르시아 지역을 뺏긴 티무르로 정복지 작살을 냈다.
티무르 전
그래서 아크코윤루의 영토는 본토에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파르스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지역을 티무르에 바치고 영토의 종주권을 인정 받고 티무르의 조공국이 되어 주권을 안정화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티무르 제국의 지도자였던 아부 사이드 미르자는 이 기회를 틈타 파르스 지역 재탈환, 더 나아가 아크코윤루를 완전히 정복하여 티무르 제국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고자 하였다. 망명한 카라코윤루의 마지막 혈통이자 술탄을 재정복용으로 데리고 오고 파르스, 페르시아, 아제르바이잔 일대로 군대를 모두 보냈다.
아크코윤루는 다시 청야전술과 게릴라 전술을 이용했고 이는 역시 잘 먹혔다. 결국 티무르 군대 역시 보급 실패와 사기 저하가 일어났다. 결국 티무르 군 본대가 카라코윤루와 똑같이 한타로 망하는데 카라바흐 전투였다. 결국 티무르의 나머지 군대는 각개격파를 당하고 카라코윤루의 왕가의 마지막 일원까지 시라즈에서 참수시키며 티무르의 영토까지 뺏으며 강화조약을 맺었다.
오스만 전
카라코윤루, 티무르까지 차례대로 격파하여 페르시아 지역을 넘어 중동 동부 지역의 패자가 된 아크코윤루는 오스만을 견제하기 시작한다. 이때 오스만과 아크코윤루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무너지는 두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첫째는 베네치아의 반오스만 동맹 결성 노력때문이었다. 베네치아는 오스만의 확장과 침공 우려로 인해 오스만의 주변국과 모두 동맹을 맺어 견제를 하고자 하였다.(결국은 시간이 베네치아, 맘루크, 페르시아 동맹을 거의 맺을 뻔 하다가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실패하게 된다.) 이에 아크코윤루가 관심을 보이자 오스만은 크게 위협을 느꼈다.
둘째는 카라만 계승 문제였다. 다른 글로 서술할 통수갓 카라만이 다시 반란각을 잡고 있을 때 오스만 지지파의 대항마로 아크코윤루가 지원하게 되었다. 결국 아크코윤루의 지지를 받은 카라만 독립 및 반란파가 유리하게 흘러가고 오스만은 이 기회에 카라만과 아크코윤루를 한꺼번에 짓눌러 놓고자 하였다.
이때 아크코윤루는 자신을 제국에까지 올려준 상대방이 자국에 깊숙히 들어와 보급과 사기를 저하시키고 이기는 전술을 다시금 구사하였다. 오스만과의 결전 때는 티그리스 강에서 대치하였다. 오스만 군이 도하하면 도하는 중에 갈아버리는 전술을 취했는데 오스만의 명군 중 하나인 메흐메트도 이를 인지했고 우준 하산도 다시 이런 상황을 인지했다. 그러다 오스만 군 측에서 도하를 시도했고 아크코윤루 군이 이 군대를 몰살시켰다. 오스만의 지속적 출혈을 바랬지만, 메흐메트는 구원군 파견을 하지 않고 나머지 군사를 재정비했다. 애초에 오스만과 아크코윤루는 체급 차이가 3배가 되었고 역사적으로 계속 증명된 중동의 기병 전술에 대한 화력 전술의 압도적 우위가 여기서도 증명되었다.
결국 수비 측에 유리한 드루와 전술에도 화승총과 대포를 이용한 화력 운용 전술에 아크코윤루도 출혈이 컸고 카라만 개입 포기로 오스만과 화친을 맺었다. 이때 오스만은 동쪽의 위험을 막음으로서 유럽 전선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오스만 베네치아 전쟁에서 오스만이 승리하게 되었다.
멸망
우준 하산이 죽기 직전에 아크코윤루는 최대 영토와 최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우준 하산이 죽자 아크코윤루는 혼란스러워졌다. 애초에 일칸국 멸망과 티무르의 쇠락 후 분열된 중동 지역을 카라코윤루가 10 몇년만에 갑자기 흡수하였고 지역 반란이 가득했다. 그런 영토를 아크코윤루가 명분이나 통합을 위한 것이 아닌 생존을 위해 완전 합병한 것이다. 결국 자한 샤, 우준 하산의 개인 역량에 의해 유지된 국가였기에 그들의 공백은 너무 컸다.
결국 아크코윤루는 계승 분쟁과 동시에 전국에 11개의 반란이 동시에 터졌다. 이를 한번은 막아냈지만, 중앙 세력의 약화와 반란군이 통합되는 결과를 나았다. 결국 다음 대의 계승 분쟁과 동시에 거대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세력이 아크코윤루에 도전했는데 바로 사파비야라는 군사 종교 집단이였고 이스마일 사파비라는 비범한 인물이 등장하였다.
이미 내홍으로 인해 군사력이 약화되었고 아크코윤루 가문 역시 술탄밖에 남지 않았다. 약화된 군사력이지만, 사파비야의 군사력보다는 컸기에 수많은 합을 겨뤘는데 사파비야의 주력군인 키질바시는 시아파를 맹신하였고 이스마일을 현인신으로 숭배하는 광신도 집단이였고 아제르바이잔인으로 똘똘 뭉친 전투 민족에 기병 전술 혁신을 일으킨 전쟁 병기 그 자체였다. 결국 수많은 합은 사파비야의 세를 키우고 키질바시를 괴물로 만드는 결과를 만들었다. 마침내 사파비야는 아크코윤루를 정복하고 그 영토를 고스란히 받으며 아크코윤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첫댓글 이런 중동역사는 어디서 보시나요
잘보고 갑니다~
영문 위키 n번 정독, 관련 인물사 정독, 오해가 있지 않을지 한국어 자료도 있어보고 씁니다.
다음 업데이트 때는 이런 중동 쟁탈전 어떻게 구현할까 싶네요.
결국 다 오스만의 것이거늘......
글이 맛있다
야미~~~
양질의 내용 감사합니다
어색한 몇 부분을 고치신다면 매끄럽고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글이 길어지니 어색한 부분도 생기네요
저 넓은걸 휴먼은 물리적으로 할수가 없는 속도로 땅따먹기해두고는 귀신같이 멸망한
중동 쪽이 개인의 능력만으로 뜨는 경우가 많아서요.
판도는 진짜 하악
군침이 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