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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9: 23 예수의 옷 - 요 19: 27 네 어머니라
요 19: 23 예수의 옷 -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 그의 옷을 벗기었다(23-24절). 그것은 그에게 큰 수치를 끼침이었다. 그가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은 의(義)의 옷을 입게 하신다.
1]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었다.
그들은 네 명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속옷도 취하였는데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다.
요 19: 24 제비 뽑자 -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
군병들이 그것을 제비 뽑아 가진 것은 시편 22: 18의 예언대로 된 것이었다. 옷은 사람의 품위를 보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겉옷과 속옷을 벗겨진 채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으셨다.
1]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요한은 그리스도의 가상 칠언 중 세 가지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솔기가 없는 옷을 제비뽑으며
* 시 22: 18 -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신포도주를 주는 것
* 시 69: 21 -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어떠한 뼈도 꺾이지 않고 옆구리를 찔린 것에 대한 성경의 성취를 주의깊게 주목한다.
* 시 34: 20 -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 출 12: 46 -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 슥 12: 10 –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러나 37절은 스가랴 12장 10절을 성취하였다는 뜻이 아니라는 데에 유의하자. 오히려 스가랴 12장 10절은 그가 찔리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장차 영광중에 돌아오실 때 그를 볼 것이다.
* 계 1: 7 –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십자가형에 대한 모든 세심한 일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조심스럽게 수행되었다.
요 19: 25 십자가 곁에 있는 여자들 -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 즉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등 세 사람이 서 있었다.
1]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원문에는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사이에 ‘와’라는 말이 없으므로 그 두 사람은 동일한 인물로 보인다. (KJV, NASB)
다른 복음서들은 많은 여인들이 멀리서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한다.
* 마 27: 55 -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 막 15: 41 -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2]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십자가 처형 때 처형장의 병사들이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지켰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거리는 마가의 기록처럼 멀리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 막 15: 40 -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그러나 마 27: 56에서도 십자가 곁에 여인들이 있었다고 증언하는 것은 일치한다.
* 마 27: 56 -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그러나 약간의 인물들은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이 혼란한 장소에서 저자들이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요한을 제외한 다른 저자들은 이 장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은 것을 정리했다고 볼 때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다는 사실은 일치한다. 이 여자는 눅 8: 2 일곱 귀신이 들려 고통받던 중 예수께 고침을 받고 예수를 따랐다.
* 눅 8: 2 -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요 19: 26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 -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
요한과 마리아를 서로에게 소개하여 건네줌으로써 그리스도는 지상에 있어서의 가족 관계를 최종적으로 끊으셨다. 그 일들을 조정한 것은 마리아가 아니라 그리스도셨다.
우리는 십자가로 온 마리아의 헌신에 감탄한다. 그녀의 침묵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대한 증거였다.
1]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예수의 초점은 모친과 사랑하는 제자(요한)에게 머물렀다. 그리고 제자에게 어머니를 당부한다. 예수께서는 그 모친과 그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셨다.
‘그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의 다른 곳에서 네 번이나 나온다.
* 요 13: 23 -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 요 20: 2 -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 요 21: 7, 20 –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그는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임이 분명하다.
2]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여자여"(Guvnai 귀나이)는 당시에 여자를 제일 정중하게 부르는 용어인데 한글 번역상 경히 부른 것처럼 이해될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말은 첫 번째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부를 때도 사용되었다.
* 요 2: 4 -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공동 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은 "어머니"로 옮겼다.
* 눅 23: 34 –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자신을 못 박는 군병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옆에 있던 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43절) 말씀도 하셨다.
‘여자여’라는 호칭은 당시에 존경심을 가진 말로 쓰인 말이라고 한다. “[당신의] 아들이니이다”라는 말씀이 자신을 가리키는지, 그 사랑하시는 제자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으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후자로 이해하며 문맥도 그것을 지지하는 것 같다.
주의 말씀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증언한다. 예수님과 모친과의 인간적 관계는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리아의 아들이셨다. 십자가에 달린 아들 예수를 보는 모친 마리아는 인간적으로 그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을 것이다.
30여년 전, 그가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려갔을 때 시므온이라는 선지자가 마리아에게 칼이 네 마음을 찌를 것이라고 예언하였었다.
* 눅 2: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지금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그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가 모친을 그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려는 뜻이 있어 보인다.
그는 육신의 모친에 대한 사랑과 공경심을 끝까지 가지셨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은 후 다른 여러 자녀들을 낳았음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표현하였다.
* 마 1: 25 -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 눅 2: 7 -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또 성경에는 ‘그의 모친과 동생들(혹은 형제들)’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며(마 12: 46. 13: 55-56. 요 2: 12. 행 1: 14) ‘주의 형제 야고보’라는 표현도 나오기 때문이다(갈 1: 19).
요셉은 여러 해 전에 세상을 떠난 것 같다. 주께서 모친을 왜 동생들에게 부탁하지 않으셨는지는 불명확하지만 그의 동생들은 다 결혼하였거나 믿음이 부족했고(요 7: 5)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 예수님의 모친을 돌볼 만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영적 관계는 육신적 관계보다 더 낫다.
요 19: 27 네 어머니라 -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
그는 또 그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에 모셨다.
1]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그리스도인의 부모와 형제
(1) 아버지
자기를 낳아 준 남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구약에서는 민족의 조상을 나타내는 말로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아버지이다.
* 창 17: 4 –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 눅 16: 24 -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 요 8: 39 -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보통 민족의 지도자나 제사장에게도 아버지라고 불렀다.
* 왕하 2: 12 -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 삿 18: 19 -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신약에서는 '아버지'에 대해서 삼위일체 제1위이신 하나님을 일컫는 말로 주로 사용된다.
* 마 6: 9 -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갈 4: 6 -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 막 14: 36 –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눅 23: 34 –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님은 하나님을 늘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친밀하게 소개해 주셨다. (마 6: 9)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이셨으며 늘 함께 활동하셨다.
* 마 5: 48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마 11: 27 -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 요 17: 21 -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요 14: 10 -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눅 23: 46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요한계시록의 사데교회에 대해서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 5)고 예언되었다.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세 번째 약속으로 마 10: 32을 반영한다.
* 막 8: 38 -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 눅 9: 26 -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것은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공적(公的)으로 시인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2) 형제
구약 성경 언어에서 '형제'는 실제 친형제나 이복형제(창 4: 8. 42: 15)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일반적인 뜻으로 친척들(이를테면 조카. 창 13: 8. 24: 48에서는 '형제'를 뜻하는 히브리 낱말을 각각 '골육'과 '동생'으로 번역했다)도 가리키고 더 나아가서는 같은 부족이나 민족에 속한 사람들을 뜻하기까지 한다.
* 출 2: 11 -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 레 19: 17-18 –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는 사람들은 서로 형제자매 같다는 점을 표현하거나 그런 점을 그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 이 낱말을 자주 쓴다. 신약 성경에서는 특히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라고 부른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한 하늘 아버지께 속한다는 사실을 성령께서 확증하시는데, '형제'라는 칭호가 이 사실을 아주 똑똑히 표현해 준다.
* 마 23: 8 -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 롬 8: 12-17 –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벧전 2: 17 -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사도 바울은 그의 여러 편지에서 이 낱말을 복수로 썼는데, 헬라 말의 쓰임새로 보면 '형제들'이라는 말에는 여자들도 포함된다.
빌 4: 1-2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이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자매들'이 분명히 언급되는 경우는 눅 14: 26뿐이지만, 여성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단수로 '자매'라고 하는 경우는 몇 군데 더 있다.
* 눅 14: 26 -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 롬 16: 1 –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 고전 7: 15 -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 약 2: 15 -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예수님도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 50)고 하셔서 형제의 범위를 육신의 형제를 넘어선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 된 지체들로 확대 시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