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활 제 6주일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모든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사는 자만이 하느님을 압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도 사랑이며 그 사랑의 극치는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사랑은 없습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이 없다고 하신 이 말씀을 완전히 살아 성인 되신 분이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이십니다. 나치 시대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 ‘나는 가족이 있어 죽을 수 없다’라고 울부짖는 가죠우니 첵크라는 사람을 대신해서 죽기를 자청하셨습니다. 콜베신부님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벗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이 없다하신 말씀을 말씀 그대로 사시므로 성인이 되셨습니다.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먼저 그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셨는데 그분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당신 성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을 위해서 생명까지 바치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이렇게 하느님께서 먼저 이런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성인 되는 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포꼴라레 운동 시초에 함께 살았던 동료들은 아침에 직장으로 가기 전에 사랑을 다짐하며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하루를 살며 항상 이런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산다면 사랑 안에 남아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태리의 대통령이었던 스칼파로는 마더 테레사를 ‘사랑의 여왕’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을 사셨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모든 이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웃이 가톨릭 신자인지, 힌두교 신자인지, 이슬람교 신자인지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에게는 한 인간이면 족했으며 그들이 지닌 존엄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분은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셨으며, 그들을 예수님처럼 사랑하려 힘썼습니다. “가장 미소한 형제에게 베푼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그분의 좌우명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웃 안에 계신 예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모든 이와 하나 되려 힘쓰셨습니다. 그분은 가나한 자와 함께 가난한 자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자로 사셨습니다. 이것이 일반 자선사업가와 다른 것입니다. 그분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이면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예를 들어 그분과 그가 창설한 수도회에서는 세탁기 한 대조차 거절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 라고 하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난한 이들이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 역시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이들의 빈곤, 고통, 병과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모든 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셨습니다. 모든 이에게 자신의 이상을 전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주어진 곳에서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도록 강조하셨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분명히 원수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을 향한 터무니없는 비난에 대해 결코 항의 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이를 사랑하고, 먼저 사랑하며, 이웃 안에서 예수님을 볼 줄 알며, 상대방과 하나 되어주고, 상대방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이런 사랑을 “사랑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사랑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