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을 극복하는 천 개의 방법
당신의 등을 읽는 일이 낯설어졌다
바람의 꼬리를 추측하는 일기예보가 틀린 내일을 읽고
우리는 서로의 질문을 오독한다
구름이 낮은 날엔 바람이 높고
파도의 촉수로 육지를 읽는 바다의 숨은 짜다
해석되지 않는 갈피들은 새가 된다
짝을 지어 날아오르다 빛을 부수고 산란하는 새들
진공의 관계에서 우리의 숨은 건조하다
당신의 눈동자 안쪽에서 자라는 사막에는
바람이 물결무늬로 자란다
당신의 지도 어디쯤 나의 온점이 찍혀 있을까
닫힌 등을 읽는 천 개의 방법으로 밑줄을 굿는다
돌려 읽기 건너뛰기 횡단하기 뒤돌아서 열 발짝 가기
잡히지 않는 사슴에게 비탈을 지어주기
흩어진 문장들이 모래처럼 서걱거린다
손상된 여백의 틈을 찾아 헤맬 때 페이지가 닫히고
당신은
끝내 읽히지 않는다
포에니콥테루스
사랑이라는 이름의 천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요
강요하는 다정한 눈빛으로
당신은 긴 끈을 내게 휘두르죠
불꽃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새가 있어요
한쪽 다리를 숨겨 제 패를 다 보여주지 않는
우아함을 지닌 새
당신의 요구에 길들어갔죠
하늘은 다가갈 수 없는 빛으로 가득해 보였고
눈이 멀까 봐 애써 외면했어요
탄자니아 나트론*, 죽음의 호수에서도
암수를 가리지 않고 핏빛 젖을 먹이며
암컷이 비우면 다른 수컷이 채워 새끼를 기르는
그 새의 이름은 플, 라, 밍, 고
당신이 주는 음식만 먹는 나는 오늘도 '블루'해요
홍학은 제 색깔을 바꾸려고 먹이를 먹어요
구부러진 부리로 색을 토해 깃털을 문지르죠
조금씩 회색을 벗고 마침내 제 색깔을 드러내는 순간이 올까요
바람이 햇살을 부유하는 어느 날 나는
나트론의 붉은 호수에 발을 담그고 당신을 벗어요
박제와 생존 사이 가파른 줄 위에서 균형을 잡고
그제야 핏빛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올라요 나는
붉게 타오르고 하늘은 파랗게 빛나요
우리는 비로소
같은 세상을 바라보죠
* 화산에서 유입된 소다 탓에 핏빛을 띄고 있는, 탄자니아에 위치한 나트론 호수가 홍학서 식지 중 하나. 동물들이 앉자마자 화상을 입고 탄산수소나트륨 때문에 시체가 그대로 굳어서 자연 박제 되어버리는 죽음의 호수다. 홍학은 탄산수소나트륨에 영향을 받지 않고, 호수 자체가 다른 천적들의 접근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유일하게 이곳에서 무리를 지어 서식한다.
수세미가 열리는 저녁
덩굴 사이에 수세미 한 채
당신 몸 안에도 열렸다
굽은 골목 돌아 엮어 온 바람의 통로다
짧은 해를 깁고 또 기워
시간이 지나간 허공에 늘어진 그물 한 채
성근 뼈 사이를 지나는 바람의 소리 빼곡하다
텅 빈 당신의 뼈는 봄밤의 낙화에도
쉽게 으스러졌다
수세미가 제 살을 발라 지은 질긴 몸으로 세상을 닦는 동안
당신은 그물 한 채 지어 여섯 개의 탁란을 키웠다 여름 땡볕을 이고
손가락 마디마다 초록을 키워 흙의 이력을 다듬었다 매달린 하루가 길어서
해는 수평선 너머로 쉽게 지지 않았다
당신은 빠져나가기 쉬운 골목이다
물이 굽이쳐 오면 강으로 흐르고 태풍이 오면 소용돌이로 몰아치며
골목을 채운 바람의 뼈들은 온갓 시름을 품었다
어린 별들이 그 시름을 먹고 자랐다 빛을 다 뿜어낸 초신성이 안으로 쪼그라들어 블랙홀이 되는 것처럼
당신은 조금씩 빛을 벗고 있다
발자국마저 태우고 사라지는 것들은 그림자도
남기지 않는다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당신의 그물에 오늘밤
투명한 저녁이 걸려 있다
2026 월간 모던포엠 신인문학상 상반기 당선작
박정희 시인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석사
현 대경대학교 국제교류원 한국어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