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개* 내리는 날, 한가로이
월백당에서 차를 우린다.
짜고 맵고 쓴 시간 다관 하나에 담아
향을 우려내는 여백.
일찍이 이 맛을 알 수 있었다면.
머뭇거리다 당신을 스치는 일 없었을 것을
마음으로 스며드는 는개 속에
성성적적* 차향이 어우러진다.
△ 는개* : 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조금 가는 비
△ 성성적적 惺惺寂寂*: 고요하면서도 의식이 맑게
깨어 있는 상태. 깨어있는 가운데 고요함.
-『불교신문/문태준의 詩 이야기』2024.08.09. -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 시인은 쉴 겨를이 생겨서 한가함을 얻는다. 시인은 찻물을 끓여 차를 마신다. “짜고 맵고 쓴” 일상의 신산(辛酸)했던,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시간에서도 비로소 차향이 우러난다. 그리하여 맑고 고요한 마음에 이르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마음에 보다 일찍 이르렀다면 귀하고 너그럽게 인연을 맺고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시 ‘종심(從心)’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꿈에 자주 찾아온다./ 모두가 가식 없는 온유한 얼굴이다.”라고 노래했다. 맑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에서는 크게 어긋남이 없을 것이니 누구에게라도 겸손하고 온화하기 때문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