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에 싹이 나서 이파리에 감자 감자 싹 하나 빼기 일
감자에 하얀 눈이 자란다
온갖 비밀이 같이 자란다
말하고 싶어 말할 수 없어 감자가 썩는다
싹을 도려내고 싶다 반으로 갈라 다 퍼트려 주고 싶다 저 감자 새끼가 그랬다고
묻어 두고 새로운 씨감자가 자라게 둬보자
어디까지 자라는지 보자
몇 알이 자라는지 보자
땅속에 갇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누가 범인이었을까 소문 중에 맞는 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비밀 안에 진실이 같이 자란지도 모른다 뺄셈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감자의 이야기에 덧셈해서 퍼트려 준다 비밀은 나를 덮어서 머리 위로 이파리가 자란다 사람들은 이파리를 하나하나 뜯어 간다 감자 대신 아파해 준다 썩은 감자는 보이지 않고 새로운 알감자는 잘 자란다 모르는 감자다
감자에 싹이 나서 하나하나 잘 덮어준다 이제 감자는 땅속에 곤히 잘 잔다
감자 감자 싹
컬렉션
-P가 없어지기까지
P에게 선물 받았다 크리스마스 한정 컬렉션 산타클로스 얼굴이 그려진 귀여운 타월 세트 가장 아끼는 컬렉션으로 서랍에 진열된다 사용하지 않고 나의 순위에 담기는 타월 컬렉션 우리의 가닥이 한 올씩 연결된 예쁜 자수가 사이를 그려준다 한 올 빠진다 네가 한 칸 빠진다 타월의 그림이 옅어진 만큼 사이는 멀어진다 언제부터인지 언제부터 사용하던 타월인지 날짜 따위 기록하지 않았기에 기억도 없다 타월의 자수는 다 풀어지고 우리의 사이는 풀리지 못한다 어디부터 엉켜있던 건지 알 수 없다 해지고 헤어지고 타월은 더 이상 예쁘지 않다 더 이상 내 서랍에 장식되지 않는 욕실 바닥 물곰팡이까지 닦자 모든 것들 다 씻어 내버릴 수 있게 더럽고 축축한 기억은 타월이 모두 다 가져가고 자국은 멍이 되어 오래도록 남는다 언제까지 기억할까 P가 없어졌다 닳도록 사용한 탓일까 실오라기가 나오기 시작한 순간 고쳐야 했는데 무언가를 닦아야 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장식한 순간부터 잘못이었을 수도 예쁜데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있다. 아니 가장 쓸모가 있는 존재가 되어있다 추한 것을 많이 닦아 줄 수 있는 것이 되어있다. 창틀의 눌러 붙은 벌레를 문댄다 서랍 속에 가만히 있던 타월이 해지고 해져서
걸레가 되기까지
키링 남친
게이 남친 만들기가 유행이라 네게 친구 하자 했다
해시태그 속에 담긴 자랑이 연결로 만들어 준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같이 예쁘장한 아이는 그냥 웃고 잘 웃고 매일 웃고 가방에 달기 아주 좋다
주렁주렁 너와 관련된 이야기가 같이 달려서 유행을 만들어 준다
드라마 속 영화 속 악인은 항상 선한 인상에 웃고 있다 너와 같이 모든 이야기는 현실에 맞춰서 써진 거야
그런 너, 예쁜 얼굴에 어정쩡한 태도만 보이는 아이
여자보다 이뻐서 인기가 많은 아이 주변에서 아름답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하다는 아이
나는 대문자 I여서 친구를 못 해
가방에만 달아줘
계속 자랑할 거야 가방에만 달기 아까운 액세서리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애가 여자였으면 하기를 바라는 눈치야 너는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라는 거야 그냥 예쁜 아이로만 살고 싶은 내 키링
너는 만족스러워 했을까
여름이니까
미친 짓을 해도 괜찮지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 주세요 투블럭으로
시원해 보이게요
비가 올 때 우산 없이 뛰어들기
한여름에 롯데월드 혼자 가기
자갈치 시장에서 오이소,에 한 번 잡혀보기
나의 여름은 아직 살짝 덜 미쳐서 잊어야 할 이름이 여러 번 튀어나온다 여름에 태어났고 여름에 만나서 여름에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여름을 기다렸다
여름에 미쳐서 여름 향이 가득한 것을 주머니에 채운다
풋사랑에 빠지기 좋은 풋사과
터지기 좋은 레몬 탄산수
열대과일 맛 새콤달콤
나의 여름은 완성되지 못해서 주머니에서 여러 번 삐져나온다 여름은 짧았고 또 길었고 여러 번 찾아왔다, 갔다
견고한 모래성은 여러 번 쌓았다 쏟아진다 우리가 지은 완벽한 성벽
끝까지 잠기지 않은 지퍼처럼 빠져나온다
드르륵 스르륵
나의 여름은 어디에 미치지 못해서 여러 번 잊혀졌다
이제 여름이니까
다시 미쳐도 괜찮겠지
너에게 미쳐도 괜찮겠지
클리오네*
저기 먹이가 있을 것이다 먹지 않을 것이다
나를 천사라 말하는 사람 때문에 다가갈 수 없다
먹지 않으면 된다
착한 아이로 살아남으면 앞으로 네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번만 참으면 된다 이제 가만 유영하는 나를
여기 남은 나를
잊어주면 된다
먹지 않아도 괜찮다
우주를 대신 삼켰다가 뱉어낸다
주변은 빨려든다
내게서 나온 모든 것들은 따라붙고
꼬리가 자꾸 생긴다
먹지 않으면 안 된다
관찰당한다 이름은 여러 번 생겼다 없어진다 나를 여전히 불쌍히 여기는 사람과 욕하는 사람이 여럿 나타난다
먹을 수밖에 없다
나를 가만두지 않는 눈동자 때문에
참으면 된다 유영하던 나는
살고 싶던 나를
비워준다
그만 내가 살고 있던 바다로 남고 싶다고
입속의 이름을 뱉어낸다
* 바다의 요정 또는 천사로 불리는 고둥
제3회 웹진《님Nim》신인문학상 당선작
금해현 시인
한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전공 재학 중
한남대학교 한국어교육원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