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
게임상 쿠를란드로 국변할 수 있는 리가를 택해 생긴 리가 땅을 제외하고 쿠를란드(왼쪽 프로빈스), 젬갈렌(오른쪽 프로빈스)만 먹었다.
식민지
트리니티 토바고를 먹어 뉴 쿠를란드 식민지를 재현했다. 그리고 잠비아 식민지는 영국이 먹어서 포기했다....
역사
리보니아 기사단의 세속화 및 약화로 인해 탄생한 리보니아 왕국이 탄생했다. 그들을 지지하고 종주권을 행사한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동북유럽 국가들이 동맹을 맺어 영유권을 주장하며 시작하게 된 리보니아 전쟁으로 러시아와 리보니아는 개박살이 나며 갈기갈기 찢기게 된다.
그래서 전쟁 종주국이었던 폴란드 리투아니아가 가장 많은 영토를 취하였고 이를 리보니아 공국으로 건립하였다. 그러던 중 리보니아 내부 세력 중 리보니아 전쟁 당시 리보니아 기사단과 발틱 독일인들이 폴란드를 지지한 점과 덴마크, 스웨덴, 러시아 등 세력이 나머지 지역도 갈망하는 점, 지방 통치 용이 등의 고려사항이 생겼다. 그래서 이를 종합하여 쿠를란드, 세미갈리아 지역에 리보니아 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이였던 고트하르트 케틀러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수여하며 쿠를란드 젬갈렌 공국이 탄생하였다.
케틀러 가문의 치세가 시작되었고 1대인 고트하르트는 루터파 신교 수용, 독일인 귀족과 발트 원주민 소작농과의 조율 등을 하고 세상을 뜬다. 이후 공국은 동서로 반 나뉘어 아들인 빌헬름과 프리드리히에게 수여된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빌헬름의 주도로 공국이 돌아갔는데 그는 프로이센 공국과 정략결혼을 하고 한자 동맹 권역의 상인, 길드와 연을 공공히 하는 등 외부세력과의 관계를 증진하였다. 그리고 루터파로서 공국 내의 주교령이나 카톨릭 세력을 공국령으로 편입 시도까지 하였다. 결국 이는 공국내 귀족, 대지주들과 사이가 매우 안 좋아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빌헬름은 그들에게 매우 호전적이었고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중재안을 기대했다.
그러나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빌헬름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하고 가톨릭을 탄압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지주 편을 택하였고 빌헬름을 약화시켰다. 결국 더 나아가 빌헬름은 폐위당하고 강제로 프리드리히 치하로 공국이 통일되었고 경제 노선을 완전히 대농장 경영에서 제철업, 조선업으로 돌리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폴리투와 스웨덴의 전쟁으로 폴리투가 패하며 리가를 뺏기며 쿠를란드가 최전선이 되었다. 리보니아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쿠를란드에 대한 지원을 늘리게 되었다. 추가적으로 쿠를란드•젬갈렌 공작도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셰임에 임명되어 중앙 정치에도 입김이 닿았다. 그리고 야곱 케틀러가 공작이 되었을 때는 제철업과 조선업이 자리잡고 아주 발전하게 되었다. 추가적으로 선대에 손을 댄 상업에도 경험이 높아졌다.
마침내 야곱 케틀러는 조선업, 제철업, 상업, 항해술을 모두 응용한 식민지 사업에 뛰어들고자 하였다. 그래서 먼저 항해술을 통해 아프리카 항해와 아메리카 항해를 시도하였고 성공했다. 아프리카 항해를 통해 서아프리카 잠비아 강에 도달했고 야곱 요새를 지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의 황금, 상아, 노예 무역에 뛰어들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대망의 아메리카 항해는 트리니드 섬과 토바고 섬에 진행하였다. 본래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나 항로의 주요 위치가 아니여서 관리, 지원, 보급이 부족해 사장된 식민지였다. 그래서 이 두 섬에 개인 주도의 식민가들이 시도를 했으나 그들도 실패했다. 이 중 쿠를란드 식민가도 있었고 야곱은 그들에게 다가와 국가 주도의 지원을 해주었다. 마침내 개인 주도 식민가였던 쿠를란드, 네덜란드, 잉글랜드 이주민들은 야곱 덕분에 정착할 수 있었으며 뉴 쿠를란드로 명명해 식민지를 완성했다.
황금기가 지나고 쿠를란드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 거대한 전쟁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대북방 전쟁이다. 다양한 전략 목표, 명분, 이권, 정치가 뒤섞인 이 혼란한 전쟁 속 쿠를란드가 있는 리보니아도 주요 명분이었다.
스웨덴의 쿠를란드 함락 등이 포함된 대홍수, 러시아의 자포로제 코사크 반란 지원으로 인한 침공과 리보니아 영유권 주장, 리가 요새 정복을 위한 스웨덴과 러시아의 대결 등 쿠를란드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다. 이때 쿠를란드의 식민지는 본국의 지원을 못 받아 사장될 위기에 처하고 결국 쿠를란드는 아메리카 식민지는 네덜란드에 아프리카 식민지는 영국에 매각하며 짧은 식민제국 시기가 끝났다.
혼란한 와중에 지배 가문도 케틀러 가문 단절로 사위 가문인 바이런 가문으로 넘어갔고 종주국도 폴란드 리투아니아 1차 대분할로 인해 러시아로 넘어갔다. 바이런 치하의 쿠를란드는 러시아의 프로이센 견제 및 지정학 요인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리고 바이런 가는 러시아의 로마노프 황가와도 혼약을 맺고 충성을 다하며 생존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러시아에서는 제정 러시아 역사상 강력한 군주 중 한 명인 예카테리나 대여제가 등극하였다. 그녀는 혼란한 모스크바의 정치체를 더 악랄한 계략과 강력한 군사력으로 휘어 잡았고 제정 러시아의 서쪽 강역을 끝낸 3차 대분할을 주도했다.
쿠를란드는 이 상황에서 위의 이점을 다 잃었다. 프로이센 견제 및 지정학 요인은 영토 확장으로 인해 최전방이 리투아니아로 넘어가게 되며 사라졌다.
그리고 로마노프의 혼약을 통한 바이런 가문의 입지 강화와 러시아 귀족 견제를 위한 로마노프의 외부 세력과 결탁은 예카테리나가 귀족을 개박살내거나 할 수 있음을 충분히 자신했기에 무의미해졌다.
추가적으로 리보니아에 대한 러시아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설명하면 러시아의 리보니아는 우리나라에 빗대면 요동 반도와 같다고 보면 된다. 루스 연맹체를 무력으로 통일했으나 아직 변방이었던 러시아를 유럽에서의 역사에 등장시키고 하나의 강국으로 인지하게 한 것이 러시아의 리보니아 지배이다. 이때가 바로 이반 뇌제 등이 있었던 강력한 왕권의 시기였다. 하지만 리보니아 전쟁으로 힘을 잃었고 그 이후의 시기는 바로 동란의 시대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극복하기 시작한 것이 표트르 대제였고 예카테리나 대여제가 이를 완전히 극복했고 이반 뇌제와 같은 강력한 황권의 시기가 온다는 정치적 쇼가 필요했다. 그래서 예카테리나는 이미 표트르 대제 사후 혼란한 러시아 정치 속에서 유배, 사형 선고 등 약해진 바이런 가문에 눈치를 계속 주었다. 결국 페테르 바이런은 예카테리나 대여제에게 쿠를란드•젬갈렌 공국직을 바치면서 독일로 망명을 갔다. 결국 쿠를란드•젬갈렌 공국은 실제 통치 지역이 아닌 러시아 황제 직위 중 하나가 되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첫댓글 와 쿠를란드가 잠비아에 식민지가 있었군요 신기하네요
많이 신기하죠
2000시간 가까이 하면서 AI가 형성하는건 한번도 못본 국가
프로이센의 경우, 메이저 dlc나 잠수함 패치로 강제 형성을 많이 유도했는데 쿠를란드는 그 점이 거의 없죠
감비아인줄 알았는데 잠비아였군요
감비아, 잠비아 모두 있는 지명이지만, 두 나라를 흐르는 강의 지명은 잠비아 강입니다.
엠파이어 토탈워 시절부터 젬갈렌이 무슨 뜻인가 궁금했는데 10년만에 궁금증이 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