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0년대부터 1456년까지의 영토이다.
첼레 백국의 탄생은 바로 첼레 성이 건립되고 나서 탄생했다. 첼레 성은 샤를마뉴 대제 시기에 아바르의 독일 침공 및 약탈 이후 제국의 변방 수비를 구가함과 동시에 아바르 정복을 향한 전초 기지 중 하나로서 세워졌다.
시간이 지나 케른텔 공국 내 구르크의 성 엠마(자신의 부로 빈자를 구제하고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여 성자로 임명됨)에 연관이 있어보이는 소귀족이 정착하고 슬로베니아인들과 어울려 잘 지낸다.
하지만 대공위 시기 제국이 혼란스러워지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세력이 확장하여 오스트마르크 변경국, 스트리아 공국의 지배자가 되며 이 지역의 일원으로서 합스부르크의 충신이 되었다. 만슈펠트 전투에서 역시 참전하여 합스부르크의 승리에 기여했다.
합스부르크의 대약진에 신롬에서는 헨리 고르지아를 합스부르크가 먹어던 모든 영토를 상속시켜 합스부르크에 맞서게 했다. 하지만 헨리 고르지아는 견제와 동시에 합스부르크에 타협하여 사후에 합스부르크와 고르지아 가문이 나눠서 상속하도록 노렸다. 이때 티롤은 고르지아, 케른텔은 합스부르크가 먹기로 했는데 케르텔 내 모든 세력을 합스부르크령으로 통폐합하도록 명령했다. 이때 첼레 가문(이때는 아직 가문명이 아님)도 대상이었으나 합스부르크 가문은 혼약과그들의 공로 덕에 오히려 케어를 하고 지배 지역에 대한 수여 및 확장을 지원했다.
이때 첼레 가문은 정략결혼과 군사 능력에 대한 중요성을 피부로 체감했다. 그래서 딸을 많이 낳아 동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에 대한 혼인을 시행했고(보헤미아, 폴란드, 헝가리,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 혼약을 맺은 국가를 위해 군사를 운용해 용병술을 발전시킨다. 이런 인싸적인 행보와 탁월한 외교의 덕을 받아 비텔스바흐 가문 황제인 루이 4세에게 첼레 가문명을 수여받고 슬로베니아의 맹주로 인정 받고 자리잡는다.
그 전까지 조용히 지내던 것과는 달리 첼레 변경백국으로서 승격된 후 더욱 발을 넓힌다. 그리고 완전히 꽃을 피워 최전성기를 열게 된 것은 헤르만 2세 치세이다.
기사도적이고 무술, 용병술에 통달한 그는 오스만에 대한 성전 중 개박살난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몇 안되는 승전보를 울려준 장본인이자 황제의 아들이자 이후에 황제가 되어 룩셈부르크 황조를 자리잡게 한 지기스문트를 구해주는 업적까지 달성한다.
이후 룩셈부르크 황가와도 혼인 동맹을 맺은 후 크로아티아 영토였던 바라즈딘(위의 지도상 맨 오른쪽 프로빈스), 오르텐부르크 백국도 수여받았다. 그리고 명예직으로 신성로마제국의 대공으로 인정받는다. 마지막으로 슬로베니아의 지배자(계승직이 아니라 수여직)로서 거의 세속적으로 인정받는다.
헤르만 2세와 프리드리히 2세가 대에 황금기를 누린 뒤 율리히 2세가 등극했을 때는 첼레 가문의 역할은 합스부르크의 충신이자 보증인이었다. 율리히 2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보헤미아, 헝가리 지역에 영향력을 끌 수 있는 라디슬로우스 포스투무스를 밀었다.
하지만 이때는 합스부르크의 권력 확장 아니면 각 지역의 분열이 일어날 혼란한 계승 분쟁의 현장이었다. 보헤미아는 후스파 혹은 카톨릭의 지배에 대한 종교 및 권력분쟁이 있었다. 그리고 헝가리의 경우, 계승권에 대한 수많은 경쟁자가 있음과 동시에 오스만에 대한 견제와 역공이 가능한 지도자를 원하는 상황이었다. 보헤미아의 경우, 국내 문제+경쟁자가 없기에 상관이 없지만, 헝가리의 경우, 신성로마제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합스부르크, 폴리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겔리온, 토착 귀족 사이에서 하드캐리 중인 후냐디 야노스가 있었다.
율리히 2세는 아직 어리고 지지가 부족한 라디슬로우스 포스투무스를 대신해 헝가리 지역의 군사 지도자 중 한명으로서 헝가리의 정계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후냐디 야노스에 대해 견제를 하며 더 이상의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을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막았다.
결국 후냐디 야노스가 벨그라드 대첩을 이기며 헝가리에서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았으나 헝가리 내 반 후냐디 파 규합과 군사 회의 참여 등으로 헝가리 최고 군사지도자로서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그 이상으로 힘을 기르는 것을 막는 걸 성공했다. 그리고 후냐디 야노스가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병사하며 완전히 잘 이루어진 듯 했다.
첼레 변경백국과 첼레 가문은 이와 동시에 후냐디 야노스의 아들인 마티아스 코르비누스가 암살자를 모든 정적에게 뿌리며 박살나게 된다. 율리히 2세 역시 암살 당하며 아들이 없었기에 첼레 변경백국의 영토는 합스부르크 가에 상속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크킹에서 컨셉플로만 볼 법한 충신 플레이로 거의 최고 자리에 오른 첼레 가문에 알아본 글이었다.
첫댓글 항상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 대한 역사는 어떻게 공부하신건가요?
유로파에 국가가 있다 -> 실제로 있는 국가겠지? -> 영문위키, 구글 검색으로 기본 맥락 파악 -> 해당 국가 언어 위키, 관련 도서 읽으며 심화 순으로 합니다.
@테멀레인 오오... 정말 대단하십니다
첼레 역사는 진짜 처음 들어보네요 ㅋㅋㅋ
ㅋㅋㅋㅋ
짭죽에서 첼레 설명에 황제자리를 먹어라(?)라는 문구가 있는데 그거 진짜로 첼레가 먹은적이 있었나요?
실제로 먹은 적은 없습니다. 글대로 합스부르크에 몸을 바친 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짭죽 및 바닐라 스타트 대가 율리히 2세 치세인데 이때의 첼레 가의 권세와 군사력이 막강했고 당시 라디슬로우스 포스투무스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였기에 황가인 합스부르크를 꼭두각시로 부린다는 악명도 있었기에 그런 문구가 생겼습니다.
@테멀레인 오오 답변 감사합니다
오.. 되게 매력적인 국가네요. 실제 충신플 국가 ㄷㄷ
바벤베르크 시절 오스트리아가 왕조에 충성하여 융성하다 대끊김으로 몰락했던 모습도 겹치는 것이 이게 독일 남동부를 책임지는 가문의 숙명인가 싶기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번 해보고 싶네요 ㄷ
외교적 버프가 많아서 재밌는 국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