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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주제별 성경요절
 
 
 
카페 게시글
신학논문 모음 칼빈과 알미니우스 구원론 비교표
김용호전도사 추천 0 조회 145 13.10.23 07:52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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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1.07 10:47

    첫댓글 크리스찬이 사용하는 구원이란 단어 만큼 애매모호한 단어가 없을 것입니다. 그처럼 애매모호한 단어를 가지고 논쟁을 하니 논쟁 자체가 뜬구름 잡는 관념에서 머무르게 되구요.
    성경에서 계시된 구원이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의 약속에 지적으로 동의하는 인간의 믿음에서 출발해서 그리스도의 피스티스를 받게되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기 시작하게 되지만 계속 이땅에서는 빛과 어둠사이를 오락가락 하면서 살면서, 죽을 때까지 계속 성장하면서 진행되는 것이며 죽고 나서도 최후 심판때 최종적으로 영생과 영벌로 나눠지는 것이며 그 구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 13.11.07 10:55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못받는지 논쟁한다는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도록 현세구원과 내세구원으로 나누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 같네요. 살아있는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가 얼마나 성경에서 약속하신 현세구원, 즉 새로운 피조물과 하나님 나라의 삶이 실현되고 있는지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구요. 최후심판은 우리가 선택받기를 소망하게 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이니까요. 서구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 내세구원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과거에 나도 그런 신앙생활을 하다가 전도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당시 느꼈었던 것이 무었이었냐하면 일반 교회에서 말하는

  • 13.11.07 11:06

    구원의 내용과 전도사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었는데 전혀 듣지 못했던 그 내용이 지금 현세구원으로 표현된 것이었고 그 당시 내가 어둠속에서 헤메고 있던 크리스찬으로서 나에게 그것이 새롭게 다가오면서 나의 문제가 무엇이었는가를 알기 시작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성경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이 영어로 we are saved, we have been saved, 등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 땅에서 생존과 번영에 몸부림 칠 수 밖에 없는 어둠의 삶에서 새로운 피조물의 삶, 즉 빛으로의 이동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즉 현세구원으로 이해를 해야 그게 문맥에 맞지 그걸 죽고나서 천국 티켓을 따는 내세구원으로 보면

  • 13.11.07 11:12

    이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된다는 것인지가 전혀 풀리지를 않게 되고 죄와 사망의 법의 노예로 살면서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구원 받았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게 되는 신앙생활로 이어지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네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의 나의 모습이 그랬었으니까요.

  • 작성자 13.11.07 11:26

    예 집사님 그렇습니다.
    쏘테리아, 즉 구원은 deliverance로도 번역되는 것에서 보듯이 A에서 B로의 이동입니다.
    그 이동을 무엇으로 보느냐가 성경의 구원의 약속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지요.
    이 구원이 내세 구원의 약속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성경의 구원의 약속의 본질은 현세에서의 존재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삶의 변화입니다. 구약에서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자, 신약에서는 사랑하는자, 즉 의인으로의 존재 이동과 그에 따른 존재 목적과 존재 양식의 변화인 것이지요.

  • 작성자 13.11.07 11:30

    가톨릭과 개신교를 망라해서 서구 주류 기독교가 잃어버린 현세 구원을 찾고 또 간구함으로써 현실에서 이루어가는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13.11.07 11:33

    이 현세 구원의 약속을 깨닫지 못한 서구 기독교가 세속의 윤리도덕, 휴머니즘 심지어 기복으로까지 빠지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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