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삶의 현장을 찾아 흩어졌던 성도들의 몸과 마음을 이 회당에 불러모아 하나님께 경배하고 성도들간에 따뜻함과 포근함으로 우의를 다질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종려주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평생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았던 그 분.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며 나병환자에게 입맞추고, 귀신들린 자 귀신을 쫓아내고 강자의 군림에 압박 받는 자를 해방시키고 불공정을 공정으로 이끌어 내신 주님. 그러나 예루살렘 입성 후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쓸쓸함과 고독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애썼으나 너무도 힘들어 하신 예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큰소리로 외쳤으나 지금껏 그토록 따르던 무리들은 다 어디로 가고 믿었던 제자들마저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오직 손가락질하며 야유하는 조롱꾼 밖에 없어 얼마나 실망했을고.. 지금의 우리하늘씨앗교인이 그 때 그 장소에 있었더라면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고 제국의 병사들과 맞짱 뜨고 당신을 구했을 텐데 어찌하여 이제야 알게 됐을고..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뭐 하러 가셔서 죽음을 선택하셨습니까? 당신의 죽음은 헛되고 부활도 헛되며 이세상에 사는 사람 눈감고, 귀막고, 양심이나 도덕윤리 없어진지 오래이며 세상은 부정과 결탁하고 아부는 출세의 지름길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아들 예수 뭐하러 이 땅에 보내 헛된 죽음을 선택하셨습니까? 사람이 죽었으면 무슨 의미가 있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 땅에 당신을 따르는 무리는 많으나 진정한 크리스찬은 찾아볼 수 없고 높은 곳에 십자가상 많아 하나님을 향해 우뚝 서 있으나 쓸쓸하기만 합니다. 오래 전. 노예로 고통받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인도했던 모세.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것은 뼛속까지 종의 습성으로 가득찬 백성들의 모습 뿐. 또한 우리를 지성과 감성이 없던 짐승의 상태인 동물농장에서 사람농장으로 인도하기 위해 생명을 내주었던 예수님이 있었으나, 이천년이 지난 오늘까지 동물농장에서 지내는 우리들. 교회지도자들은 오늘도 예수를 옆구리에 차고 눈을 내리 감고 엄숙하고 경건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예수를 팔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를 떠올리며 예배시간만이라도 예수님의 행적을 쫓아 따르고 싶지만 나는 겁이 많고 방관과 외면에 익숙해 흉내 낼 수 없으니 지구촌의 극소수의 의인, 예수정신으로 살려고 애썼던 몇 사람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회퍼. 독일의 신학자이며 목사이고 히틀러 암살단에 가입한 그는 “미친 운전사에게 핸들을 맡겨 장례식장에 가는 것 보다 핸들을 빼앗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교수대에 섰습니다. 간디. 대영제국의 식민지국가인 자국의 해방을 위해 인도 전역에서 모인 많은 지도자들이 다양한 소리를 내놓아 하나로 결집하지 못해 허둥거릴 때 이렇게 회고 했습니다. “관용과 사랑과 참이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차이가 있어도 유익했다. “
체게바라. 그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지만 청진기와 주사대를 내려놓고 혁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내가 의사로서 사람을 구하면 몇 명이나 구할 것인가? 강대국들의 만행으로 자원을 뺏기고 통치권을 뺏기고 인권을 뺏기고 마지막 남은 몸둥이마저 저임금에 시달리는, 즉 노예 같은 삶을 사는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해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안중근. 대한제국의군참모중장 겸 특좌독립대장 안중근. 안중근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고,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동양평화론을 쓸 시간을 벌고자 항소하지 않았습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동양의 미래상으로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한중일 공동관리구역을 만들고 평화회의를 조직하고 공동은행과 공동화폐를 제작하고 3국청년들로 공동군단을 조직하여 평화유지군으로 활용하자는 방안이었습니다. 유럽공동체보다 반세기이상 앞선 구상이었습니다. 죽음을 몇 일 앞두고도 조국의 미래를 그토록 걱정했던 성자. 여기에 어머니 백천조씨 조마리아는 한 수 더떠 동생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습니다. “옳은 일을 하고 형을 받았다면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마라 .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이 애미에 대한 효도이며 도리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거론한 위 다섯 분. 예수, 본회퍼, 간디, 체게바라, 안중근. 저는 이분들의 가는 길에 어디만큼 가고 있습니까?
진실로 고백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