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오 육군 수도군단 군단장(54·중장)은 모임에서 출신 고등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신을 '삼천리고등학교' 졸업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삼천리고'는 존재하지 않는 학교. 사실 권 중장은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었다. 권 중장은 "삼천리 방방곡곡에 검정고시 출신들이 있다"며 자신의 출신고를 '삼천리고'로 명명했다. 학력을 드러내길 꺼리는 검정고시 출신들이 적지 않지만 권 중장은 당당하게 자신을 '검정고시파'라고 소개한다.
권 중장은 "명문고 출신들 앞에서 위축될 이유가 없다"며 "제대로 학교를 나온 사람들과 경쟁해 져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중·고교 진학을 못했지만 피나는 노력을 통해 3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하는 등 육군의 핵심인재가 됐다. 누구보다 배움의 목마름, 진학의 기회에 대한 간절함을 알기에 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한 사병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검정고시 준비 학교인 충의고를 부대 안에 세워 운영하며 합격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중국 최초의 외국인 대기업 부회장으로 유명한 조평규 옌다그룹 수석부회장(56)도 검정고시 출신. 얼마 전 한 교민 사업가와 만났을 때의 일이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검정고시를 봤다고 고백하자 상대방으로부터 "저도 같은 동문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저 사람도 많은 어려움을 이겨냈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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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규 옌다그룹 수석부회장 |
중국 진출 1세대 기업가인 조 부회장은 현지에서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며 성공신화를 썼다. 그는 "해외 교민사회에서는 어려움에 잘 적응하는 검정고시 출신들이 일반고를 나온 이들보다 더 잘 성공한다"며 "도전과 끈기의 예방주사를 이미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대한민국 신지식인경영대상을 받았으며 지난달에는 그의 성공기를 다룬 TV 프로그램이 방송돼 큰 주목을 받았다. 또 현재 재중국한인회 수석부회장으로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검정고시 출신 인사들이 활약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자신의 학력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다양성과 개방성이 강조되는 사회 변화에 따라 당당히 자신의 학력을 밝히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검정고시를 통해 만난 친구라는 뜻에서 스스로를 '검우인'(檢友人), '검우회'(檢友會)라 부르며 인맥을 쌓아가고 있다. 명문고 인맥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사회 각계각층에 포진한 이른바 검정고시 인맥이 새로운 '파워 인맥'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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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시 출신 법조계 인사들. 이석연 전 법제처장, 백승헌 전 민변 회장, 이근웅 전 사법연수원장,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김석휘 전 법무부장관.(사진 왼쪽부터) |
검정고시 출신들은 '사연'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우선 가정형편이 어려웠거나 청소년기 일탈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이들이 있다. 반면 수재와 영재 소리를 들으며 월반을 거듭하다 빠른 대학진학을 위해 검정고시를 본 이들도 많다. 그래서 법조계 인사가 많고, 교수와 의사도 적지 않다.
검정고시 출신 법조계 인사로는 최근 헌법재판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이석연 전 법제처장(58)을 비롯해 백승헌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49), 이근웅 전 사법연수원장(64) 등 전현직 검사, 판사, 변호사들이 수두룩하다.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74), 김석휘 전 법무부장관(77) 등은 대표적인 원로 인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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