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흐르는 물의 계보를 알아보자. 내는 시내보다는 크지만 강보다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킨다. 개울도 내와 비슷한데, 개울은 골짜기, 내는 평지에 흐른다는 느낌이 강하다. 길가에 움푹 패어 있어 사람이 빠지기 쉬운 개울은 지방이라고 한다. 개천은 내와 같은 뜻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개골창 물이 흘러 나가도록 길게 판 내를 가리키기도 한다. 개천에는 ‘개’ 자가 들어가 있어서 왠지 후자의 뜻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개골창은 수채의 물이 흐르는 작은 도랑인데, 수채는 빗물이나 집 안에서 버린 물이 흘러가도록 만든 시설, 도랑은 매우 좁고 작은 개울을 가리킨다. 물도랑, 물돌, 돌은 도랑과 같은 뜻의 말들이다. 더러운 물이 잘 빠지지 않고 썩어서 질척질척하게 된 도랑은 시궁이라고 한다. 시궁창은 시궁의 바닥이나 속을 가리키는데 시궁쥐에게는 물론 다시없는 안식처일 것이다. 시궁발치나 시궁치는 시궁의 근처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랑창은 지저분하고 더러운 도랑이라는 뜻으로, 개골창·시궁창·도랑창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뒷가지 ‘-창’은 질척질척한 곳을 뜻한다. 땅에 괸 물을 빠지게 하거나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얕게 판 작은 도랑은 갈개라고 한다. 갈개에서 바다에 이르는 계보는 다음과 같다.
갈개<개골창<도랑<시내<개울≒내<강<바다
물목은 물이 흘러 들어오거나 나가는 어귀를 가리킨다. 물의 길목이라는 뜻이다. 어귀는 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즉 입구(入口)를 뜻하는 말이다. 물나들도 물이 들고 나는 곳인데, 밀물 때만 배가 닿을 수 있는 나루터도 물나들이라고 한다.
강섶은 강기슭이나 강줄기의 옆을 가리키는 말이다. 길가를 길섶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강변의 고수부지(高水敷地)를 요즘은 대개 둔치라고 바꿔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강턱이라는 말이 더 걸맞은 말인 것 같다. 둔치는 물가의 언덕 또는 강가나 호숫가라는 뜻이고, 강턱은 큰물이 들거나 수위가 높을 때에만 물에 잠기는 강변의 턱진 땅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바닷가나 강가에서 물이 땅 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 즉 만(灣)은 구미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어 있는 상태를 ‘구미졌다’고 말한다. 구지는 그렇게 구미진 데에 괴어 잘 흐르지 않는 강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가의 배를 매어 두기 좋은 곳은 섟이라고 한다. 강물 속에 모래가 쌓이고 그 위에 풀이 수북하게 난 곳은 풀등이라고 하는데,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서강대교 아래에 있는 밤섬이 바로 풀등이다. 작벼리는 냇가나 강가의 모래와 돌들이 섞여 있는 곳, 서덜은 물가의 돌이 많이 깔린 곳을 가리킨다. 비슷한 뜻이지만 돌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서 작벼리와 서덜로 나뉘는 듯하다.
아우라지
시냇물이나 개울물, 강물은 흐르다 보면 다른 갈래와 만나게 마련이다. 그렇게 여러 갈래의 물이 한데 모이는 물목을 아우라지나 통곬, 또는 합수(合水)목이라고 한다. 꼭 물의 경우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모둠도 한데 모여 합치는 곳을 뜻하고, 개치는 조금 좁은 의미로 두 개울의 물이 합치는 곳을 가리킨다. 아우라지는 정선의 아우라지가 유명하지만, 아우라지는 고유명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테면 두물머리, 즉 양수리(兩水里)의 물목도 아우라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강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서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은 여울이라고 하는데, 물살이 세차다는 뜻에서 된여울, 급하고 빠르다는 뜻에서 살여울이라고도 한다. 여울머리는 여울의 맨 위, 여울꼬리는 맨 끝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울물이 턱진 곳을 여울목이라고 하는데, 물이 얕아서 건너기 쉬운 여울목은 여울나들이라고 한다. 자갈여울은 자갈이 깔려 있는 여울, 가리여울은 물고기가 알을 낳는 여울을 뜻한다.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개라고 하는데, 강물이 흘러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어귀는 개어귀나 강어귀라고 한다. 개펄과 갯벌을 구별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에 자주 나온다. 이 기회에 확실히 알아 두자. 개펄은 한자말로 간석지(干潟地)라고 하는 것으로, 갯가의 개흙이 깔린 벌판을 말하며, 썰물과 밀물의 차가 큰 곳에 특히 발달한다. 갯벌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모래톱이나 그 주변의 넓은 땅을 가리킨다. 개흙(개펄)과 모래(갯벌)가 핵심어다. 썰물 때만 드러나 보이는 넓고 평평한 모래톱은 감풀이라고 한다. 미세기와 무수기도 구분이 어려운 말이다. 미세기는 밀물과 썰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무수기는 밀물과 썰물의 차를 뜻한다. 알기 쉽게 수식으로 만들어 보면 이렇다. 밀물을 ⓐ, 썰물을 ⓑ라고 한다면, 미세기=ⓐ+ⓑ, 무수기=ⓐ-ⓑ. 그렇다면 ⓐ×ⓑ, ⓐ÷ⓑ의 결과는? 답은 ‘……(할 말 없음)’이다.
강물이 우리 나라의 개어귀를 지나게 되면 수많은 섬들을 만나게 된다. 무리지어 있는 섬, 즉 군도(群島)는 떼섬이나 무리섬이라 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 즉 무인도(無人島)는 알섬이라고 한다. 염은 바윗돌로 된 작은 섬을 뜻하고, 여는 물석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 즉 암초(暗礁)를 가리킨다. 돌섬은 물론 돌로만 이루어진 섬인데, 독도(獨島)의 원래 이름은 돌섬이라는 뜻의 독섬이었다고 한다. 독은 돌의 사투리다. 그런데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독과 발음이 같은 독(獨) 자가 차용돼 오늘의 독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요즘엔 거꾸로 한글로 풀어쓴 홀로섬으로 불리고 있으니 인생유전이 아니라 독도유전(獨島流轉)이 무상하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드넓은 바다는 난바다나 먼바다라고 한다. 반대로 앞바다는 가까운 바다를 뜻하는 말이다. 거칠 것 없이 아득히 넓은 바다, 즉 망망대해(茫茫大海)는 날바다 또는 허허바다라고 한다. 망망대해의 앞에 서면 세상사 아무리 괴롭고 힘겨운 일도 허허 웃어 넘길 수 있기 때문에 허허바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닐까. 도래는 고기잡는 어장(漁場)을 뜻하고, 배래는 배가 파도와 싸우는 날바다의 위, 수면(水面)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나운 물결이 크게 이는 험한 바다는 놀바다라고 한다.
우듬지
우듬지는 나무줄기에서 가장 꼭대기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우두머리에 있는 가지를 의미하는 우죽과 뜻이 비슷하다. 두목이라는 뜻으로 흔히 알려져 있는 우두머리는 원래 어떤 물건의 꼭대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듬지나 우죽과 반대로 나무줄기에서 뿌리에 가까운 부분은 밑동이라고 하며, 큰 나무의 밑동은 둥치, 풀이나 나무 또는 곡식 같은 것의 밑동은 그루라고 한다. 줄기를 베고 남은 그루는 그루터기나 뿌리그루라고 하는데, 그루터기는 양초 따위가 타다 남은 밑동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등걸은 나무의 그루터기를 따로 부르는 이름인데, 실버스타인의 그림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노인이 되어 찾아온 주인공에게 나무가 마지막으로 줄 수 있었던, 앉아서 쉴 자리가 바로 등걸이다.
옹이는 나무의 몸에 박힌 가지의 그루터기를 가리키는데 ‘옹이에 마디’는 옹이에 마디까지 생긴 것처럼 곤란이나 불행이 겹쳐서 닥쳤다는 뜻으로 ‘기침에 재채기’ ‘하품에 딸꾹질’과 통하는 말이다.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는 관솔이라고 하는데, 관솔은 불이 잘 붙기 때문에 옛날에는 이것에 불을 붙여 등불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옹두리는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상한 자리에 결이 맺혀 혹처럼 불퉁해진 것으로, 작은 옹두리는 옹두라지라고 한다.
넌출과 덩굴·넝쿨은 모두 다른 물건을 감거나 거기에 붙어서 자라는 덩굴성 식물의 줄기를 가리킨다. 그런데 사전에 나와 있는 설명을 비교해 보면 넌출과 덩굴·넝쿨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넌출은 길게 뻗어 나가 늘어져 있다는 하향 확산의 의미가 강하다면, 덩굴이나 넝쿨은 다른 물건을 감고 오르거나 땅바닥에 퍼져 뻗어 나간다는 상향 확산, 또는 평행 확산의 뜻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건 호사가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고, 또 사전의 풀이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세 낱말 가운데 아무거나 골라잡아 쓰더라도 만수무강 행복무궁에는 물론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수숫대, 콩대 할 때의 대는 초본 식물의 줄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삼대는 물론 삼의 줄기인데, 껍질을 벗긴 삼대는 겨릅대나 마개라고 한다. 홰기는 벼나 수수 같은 것의 이삭이 달린 줄기, 새꽤기는 띠나 억새 따위의 껍질을 벗긴 줄기를 가리킨다. 어렸을 때 공작 시간에 많이 썼던 수수깡은 수숫대나 옥수숫대의 껍질을 벗긴 심인데, 풀이나 나무의 줄기 한가운데에 있는 연한 심은 따로 고갱이나 알심이라고 한다. 고갱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사물의 핵심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심은 곧 마음이고, 핵심도 ‘핵이 되는 마음’이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인 것이다.
줄거리 동생 졸가리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국어 숙제로 가장 많이 냈던 것은 글의 줄거리를 적어 오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줄거리란 문맥의 흐름의 요약일 것이고, 요약이란 말 그대로 중요한 점을 뽑아서 간추린다는 뜻이다. 이처럼 줄거리는 어떤 사물에서 군더더기를 다 떼어버리고 중요한 것만을 남겨 놓은 골자를 의미하는데, 나무에서 줄거리는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를 뜻한다. 잎 쪽에서 보자면 군더더기 취급을 받기에는 억울한 점이 적지 않다. 잎은 호흡 작용과 탄소 동화 작용으로 뿌리와 함께 나무를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푸르름이라는 나무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잎이 없다면 나무가 무슨 수로 놀러 오는 바람과 수런수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다는 말인가. 잎은 말하자면 나무의 입인 것이다. 먹여 살린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말을 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런데 사실은 줄거리의 입지도 확고부동하다고는 할 수 없다. 줄거리는 어디까지나 나뭇가지이고, 가지는 몸통에 비교하자면 군더더기라고 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사물의 본질이나 본바탕을 근간 또는 근본이라고 하고, 중요하지 않고 부차적인 부분을 지엽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사정을 얼추 짐작할 수 있다. 근간은 뿌리와 줄기, 근본은 뿌리, 지엽은 가지와 잎을 가리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무의 진골 즉, 진짜 줄거리(골자)는 뿌리나 줄기이지 줄거리(가지)나 잎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줄거리를 나뭇가지라고 하는 것은 사전에 그렇게 나와 있더라 하는 것뿐이고, 실제로는 가지와 몸통을 아우르는 줄기의 뜻으로 쓰이는 것이 줄거리라는 말이다. 졸가리는 줄거리의 작은말이다.
나무의 옆으로 길게 뻗어 나간 가지는 화라지라고 하는데, 화라지는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아니라 주로 땔감으로 잘라 온 가지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가장이는 나뭇가지의 몸뚱이, 가장귀는 나뭇가지의 갈라진 부분, 나무초리는 나뭇가지의 가느다란 부분을 가리킨다. 가늘고 긴 나뭇가지는 휘추리라고 하는데, 종아리 같은 데를 때릴 때 쓰는 휘추리는 특별히 회초리라고 한다. 휘추리나 회초리처럼 가늘고 긴 것이 휘어지며 자꾸 흔들리는 모양은 어찌씨 ‘휘청휘청’이나 ‘회창회창’으로 나타낸다.
부루말, 가리말
요즘의 자가용은 말할 것도 없이 자동차를 의미하지만,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도 없었던 옛날에는 말이 자가용 노릇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사랑하는 차를 애마(애마)라고 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에쿠우스(EQUUS)라는 차 이름도 이런 점에 착안해 지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에쿠우스는 말이라는 뜻이니까. 물론 요즘 자가용 비행기나 요트를 가진 사람이 있는 것처럼 옛날에도 코끼리나 낙타, 돌고래 따위를 자가용으로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기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유덕화가 주인공으로 나온 어느 홍콩 영화에서 유덕화가 범고래와 친해져 자전거를 타듯이 신나게 타고 다니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자동차에 수많은 종류가 있는 것처럼 옛날 자가용인 말도 여러 가지로 나뉜다. 자동차가 고객의 다양한 취향에 맞추어 외관과 성능을 달리하고 있다면, 적토마 같은 예외를 빼면 성능에는 별 차이가 없는 말은 겉모습, 특히 털빛이 분류의 기준일 수밖에 없다.
백마는 토박이말로 부루말, 흑마는 가라말이다. 쌍창워라는 엉덩이만 흰 가라말, 총이말은 갈기와 꼬리가 파르스름한 부루말을 가리킨다. 털빛이 완전히 검지 않고 거무스름한 놈은 담가라말, 검은 털과 흰 털이 섞여 난 놈은 먹총이, 흑백의 바둑무늬로 되어 있는 놈은 바둑말이라고 한다. 황고랑은 누른 빛깔, 절따말은 붉은 빛깔의 말이고, 구렁말은 밤빛, 돗총이는 검푸른 빛의 말을 가리킨다. 흰 털과 붉은 털이 섞여 있는 놈은 적부루마, 털빛이 얼룩얼룩한 놈은 워라말, 잿빛의 워라말은 그은총이라고 한다.
갈기만 검은 부루말은 가리온, 마찬가지로 갈기만 검은 절따말은 부절따말이나 월따말이라고 부른다. 누른 빛깔의 황고랑 가운데 붉은 빛이 도는 것은 결따마, 등에만 검은 털이 난 것은 고라말, 흰 털이 섞인 것은 황부루, 주둥이가 검은 것은 공고라라고 한다. 이마와 뺨이 흰 말은 간자말인데, 찬간자는 간자말 중에서도 몸빛이 푸른 것을 가리킨다. 뭔가 관계가 있을 것처럼도 보이지만 레간자는 간자말에 속하지 않는다.
돈점박이는 몸에 돈짝만한 점이 있는 말을 뜻하는데, 표범의 별명으로 쓰이기도 한다. 네 굽이 흰 말은 사족발이, 뒷발의 왼쪽이 흰 말은 외쪽박이라고 한다. 뒷발의 오른쪽, 아니면 앞발의 왼쪽이나 오른쪽이 흰 말을 가리키는 말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전에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주연을 맡았던 ‘나의 왼발’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외쪽박이라는 아주 특별한 말을 위해 ‘나의 왼 뒷발’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만들어 볼 사람 누구 없을까. 없으면 말고.
느리와 토록
느리(어떤 사전에는 누리로 돼 있다)와 토록이라는 말이 있다. 느리는 범이나 곰, 사슴, 사람처럼 상대적으로 큰 종류에 속하는 짐승이고, 토록은 반대로 작은 종류에 속하는 짐승을 가리킨다. 불곰은 몸이 크다는 이유로 말곰이나 큰곰으로 불린다. 왕통이나 칭퉁이는 호박벌이나 말벌같이 벌 중에서도 큰 종류를 가리키고, 서산나귀는 중국에서 난다는, 보통 나귀보다 조금 큰 나귀를 말한다. 쥐 종류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은 새앙쥐, 줄여서 생쥐라고 부른다. 이런 말들은 종 자체의 크기가 문제가 되지만, 개체의 크기에 따라 이름이 따로 붙는 경우도 많다.
알을 낳을 수 있을 만큼 다 자란 고기는 엄지고기, 다 자란 곤충은 엄지벌레라고 하는데, 엄지벌레는 어미벌레, 어른벌레, 자란벌레라고도 한다. 송사리가 커야 얼마나 클까마는 어쨌든 굵고 큰 송사리는 추라치라고 하고, 크고 굵은 명태는 왜태로 부른다. 애기태는 반대로 작은 명태에 붙여진 이름이다. 열목이도 다 큰 것은 산치, 어린 새끼는 팽팽이라고 불린다. 본노루는 오래 묵어서 늙고 큰 노루, 피를 많이 빨아먹어서 크고 굵게 살찐 이는 수퉁니라고 한다. 나쁜 놈.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복 가운데 썩 작은 것은 떡조개나 초고지라고 한다. 겨울에 잡히는 덜 자란 청어는 굴뚝청어로 불린다. 초고지와 비슷한 초고리는 작은 매, 좀닭은 크지 못하고 자질구레한 닭을 가리킨다. 한국 남자들이 유난히 밝히는 영계는 병아리보다 조금 큰 닭인데, 약이 된다고 해서 약병아리라고도 한다. 영어에 중독된 요즘 아이들은 영계를 ‘영(young)계’쯤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영계는 원래 연한 닭이라는 뜻의 연계에서 비롯된 말이다. 딸콩말은 작은 말을 뜻한다. 박세리에 이어서 골프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김미현의 별명이 ‘슈퍼 땅콩’이다. 나는 이 별명이 김미현의 인기를 높이는 데 아주 많이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 실력은 박세리가 나을지 몰라도 김미현의 인기가 훨씬 더 높은 것은 박세리에게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별명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골프 여왕’ 같은 것은 절대로 별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각설하고 다시 ‘슈퍼 땅콩’으로 돌아가자. 누구나 ‘슈퍼 땅콩’의 땅콩이 작다는 뜻임을 알고 있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땅콩은 콩의 종류 가운데 결코 작은 편이 아닌데, 아니 오히려 크다면 큰 편인데, 왜 땅콩이 당연하게 작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일까. 혹시 이런 것은 아닐까. 딸콩말이라는 말(여기서는 말〔마〕이 아니고 말 〔언어〕이다)이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한국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딸콩’이 작다는 것을 뜻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어서 ‘딸콩’과 비슷한 땅콩을 자연스럽게 작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땅콩에 맥주나 한 잔 하면서 생각해 볼 문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사전에는 잎이 '식물의 영양 기관의 하나로 호흡과 광합성 작용을 한다'고 돼 있다. 한 단어로 소리낼 때는 잎과 똑같은 입은 ‘체내에 먹이를 섭취하며, 소리를 내는 기관’이라고 풀이돼 있다. 그렇다면 잎과 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한 단어일 때 발음이 같다는 것. 둘째, 둘 다 기관이라는 것. 셋째, 호흡과 관계가 있다는 것. 넷째, 소리를 낸다는 것(입의 경우에 말할 것도 없고, 말해야 입만 아프고, 잎의 경우에는 이를테면 낙엽이 우수수). 다섯째, 또 뭐가 있나, 이제 입을 다무는 편이 낫겠다.
잎을 가리키는 말로는 이파리, 잎사귀, 잎새 같은 것들이 있는데, 여러 가지 사전의 풀이를 종합해 보면, 이들 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먼저 이파리는 나뭇잎이나 풀잎, 꽃잎을 가리키는 데 두루 쓸 수 있는 말이다. 반면에 잎사귀나 잎새는 꽃잎이나 풀잎을 지칭하는 데는 쓰이지 않는다. 또 잎사귀는 비교적 넓고 큰 나뭇잎이나 채소의 잎을 가리키고, 잎새는 잎사귀보다는 작은 나뭇잎을 뜻하는데, 나무에 붙어서 살아 있다는 뜻이 강조되고 있다. 채소의 잎은 잎새라고 하지 않는다. 하기야 채소 잎에 부는 바람을 두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잎은 대개 잎자루와 잎몸의 두 부분으로 돼 있다. 잎자루는 잎꼭지라고도 하는데, 잎이 줄기에 붙어 있고, 또 햇볕 방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잎자루 덕분이다. 가지나 줄기에 잎자루가 붙은 자리는 잎겨드랑이라고 한다. 벼나 보리 같은 볏과 식물을 보면 잎자루가 칼집 모양으로 되어 줄기를 감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잎자루를 가리켜 잎깍지나 잎집이라고 한다. 또 잎집의 끝이 줄기에 닿은 자리에 붙어 있는 작고 얇은 조각 잎은 입혀라고 하는데, 잎혀는 줄기와 잎집 사이에 불순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잎몸은 잎의 넓은 부분으로 잎맥과 잎살로 이뤄져 있다. 잎살은 잎몸에서 잎맥을 뺀 나머지 부분이고, 잎맥은 잎살 안에 벋어 있는 관다발을 가리킨다. 관다발은 다시 체관부와 물관부로 나뉘는데, 옛날 생물 시간에 달달 외운 대로 체관부는 양분의 통로, 물관부는 수분의 통로가 된다.
잎은 홑잎과 겹잎으로 나눌 수도 있는데, 홑잎은 한 장의 이파리로 된 잎이고, 겹잎은 하나의 잎자루에 여러 개의 낱잎이 붙어서 된 잎이다. 예를 들어 아카시아의 잎이 겹잎인데, 겹잎을 이루는 낱낱의 잎은 꼬마잎이나 잔잎이라고 한다. 아카시아 나무 우거진 뒷동산에 올라 가위바위보로 꼬마잎을 한 장씩 떼며 놀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아카시아 흰꽃으로 배를 채우던 눈물 찔끔 배고픔도 이제는 그립다. 그리운 것들 천지다.
미주알
'밥줄이 끊어졌다'고 할 때의 밥줄은 '직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지만, 또한 식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식도는 목구멍에서 밥통까지를 잇는 부분으로 밥 식, 길 도라는 글자 그대로 밥길이라고도 한다. 밥길의 입구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목구멍인데, 사람한테는 잘 안 쓰는 말이지만 동물의 목구멍은 멱통, 살아 있는 동물의 목구멍은 산멱통이라고 한다. 멱미레는 소의 턱 밑에 달린 고기, 멱부리는 턱 밑에 털이 많이 난 닭을 가리킨다.
소는 새김질을 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보다 길고 복잡한 소화관을 갖고 있어서 밥길에도 따로 이름이 붙어 있다. 주라통이 소의 밥길을 가리키는 말인데, 붉은 소라처럼 생긴 통이라는 뜻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또 이 주라통에 붙어서 새김질한 것이 밥통으로 넘어가는 줄은 물통줄이라고 한다. 잘 알다시피 소의 밥통은 혹위, 벌집위, 겹주름위, 주름위의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세 번째 겹주름위가 바로 간과 콤비를 이뤄 술안주로 애용되는 처녑이다.
밥길이 목구멍과 밥통을 잇는 길이라면 밥통과 똥구멍을 잇는 길은 창자다. 창자를 가리키는 말로는 결창, 애, 배알(줄여서 밸) 같은 것들이 있다. 소의 창자는 특별히 안찝이라고 부르는데, 곱창은 소의 작은창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큰창자는 대창이라고 한다. 소의 창자에는 이밖에도 유창, 새창, 똥창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한다(‘있다고 한다’라고 쓴 것은 사실 그런 이름을 알고 있다 뿐이지 정확히 어디에 붙은 것인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이실직고한다). 유창은 소의 창자 가운데 가장 긴 것(가장 긴 것인데, 이상하게 와전되어 어떤 사전에는 가장 질긴 것으로 나와 있기도 하다. 사전을 뒤적거릴 때 가끔 이런 걸 보면 재미있기도 하지만 걱정스럽기도 하다. 사전은 가장 엄정해야 할 말 세계의 법이니까)이고, 새창은 이자머리와 똥창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이자머리는 열구자탕의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열구자탕은 말 그대로 입을 즐겁게 하는 국이라는 뜻인데, 나는 아직 그런 즐거움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신선로에 고기와 생선·채소 따위를 색스럽게 넣고 그 위에 여러 가지 과실을 넣어 끓인 음식이다. 똥창은 이름이 그래서 왠지 창자의 끝 부분을 가리키는 말일 것 같다는 짐작이 간다.
밥길의 입구는 목구멍이고 창자의 출구는 똥구멍이다. 그런데 목구멍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똥구멍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음하기에는 점잖지 못한 말이다. 그럴 때 대신 쓸 수 있는 말이 미주알이다. 미주알은 똥구멍을 이루는 창자의 끝 부분을 가리킨다. ‘미주알’이라고 하면 낯설지만 ‘미주알고주알’의 ‘미주알’이라고 하면 아하 그렇군, 하게 된다. 무엇을 이것저것 모두 속속들이 캐묻는 모양을 ‘미주알고주알’이라고 한다. ‘밑두리콧두리’와 비슷한 뜻이다.
(장승욱/ 시인)
껄쩍지근
더럽고 지저분함을 표현하고 있는 말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가 있다. 첫 번째가 ‘게접스럽다’ ‘구접스럽다’ ‘귀접스럽다’ ‘추접스럽다’처럼 ‘-접스럽다’로 끝나는 말이다. 지저분하고 더러운 데도 정도와 단계가 있는 모양이라 ‘게접스럽다’는 약간, ‘구접스럽다’와 ‘귀접스럽다’는 몹시, 그리고 ‘추접스럽다’는 중간 정도로 더럽고 지저분함을 나타낸다.
두 번째는 '-저분하다'로 끝나는 말이다. '게저분하다(센말은 께저분하다)' ‘구저분하다’ ‘너저분하다’ ‘지저분하다’ ‘추저분하다’ 등인데, 앞에서 말한 ‘-접스럽다’가 붙은 말 가운데 ‘게접스럽다’는 ‘게저분하다’, ‘구접스럽다’와 ‘추접스럽다’는 ‘구저분하다’ ‘추저분하다’와 각각 밀접한 관계에 있다. 형평이 맞으려면 ‘너접스럽다’ ‘지접스럽다’ ‘귀저분하다’ 같은 말들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다. 복불복(福不福)인 것이다.
'-저분하다'로 끝나는 다른 말로는 '저분저분하다'가 유일하다. ‘저분저분하다’는 성질이나 태도가 부드럽고 조용하며 찬찬하다, 또는 가루 같은 것이 부드럽게 씹히는 성질이 있다는 뜻이다. 또 채소로 만든 음식이 먹음직스럽다는 뜻도 있다. 뜻은 참 좋은데 다른 게저분하거나 너저분하거나 추저분한 말들 틈에 섞여 있다가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괜히 물들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세 번째는 '-지근하다'로 끝나는 말인데, '게적지근하다(센말은 께적지근하다)' ‘구접지근하다’ ‘귀접지근하다’ ‘덴덕지근하다’ ‘추접지근하다’ 같은 것들이 있다. 다른 말들의 뜻은 앞에서 언급한 말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덴덕지근하다’는 매우 덴덕스럽다는 뜻인데, ‘덴덕스럽다’는 개운하지 않고 좀 더러운 느낌이 있다는 의미다.
'-지근하다'로 끝나는 다른 말로 우리가 흔히 쓰는 ‘껄쩍지근하다’라는 말을 살펴보자. ‘껄쩍지근하다’라는 말은 ‘꺼림칙하다’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껄쩍지근하다’를 ‘꺼림칙하다’의 사투리로 다루고 있는 사전도 있다. 그러나 형태가 상당히 다른 ‘꺼림칙하다’보다는 ‘께적지근하다’의 사투리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께적지근하다’는 조금 너절하고 지저분하다는 뜻과 마음에 내키지 않고 은근히 꺼림칙하다는 뜻을 아울러 갖고 있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구질구질하다'처럼 어근이 되풀이 꼴로 되어 있는 말, 예를 들어 ‘나닥나닥하다(큰말은 너덕너덕하다)’ ‘너절너절하다’ ‘노닥노닥하다(큰말은 누덕누덕하다)’ ‘닥지닥지하다(큰말은 덕지덕지하다)’ ‘쾨쾨하다(큰말은 퀴퀴하다)’ 같은 말들이다. ‘구중중하다’ ‘귀중중하다’ ‘귀축축하다’ ‘꾀죄죄하다’도 이 범주에 같이 넣고 싶다. ‘구중중하다’ ‘귀축축하다’는 구질구질하고 축축하다는 뜻이고 ‘귀중중하다’는 몹시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뜻이다. ‘중’자 하나만 없었어도 ‘귀중하다’고 아낌을 받았을 텐데 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