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성공회 영성
영성(Spirituality)은 오늘날 종교 혹은 준 종교적인 신앙의 분위기 내지 수련을 가리키는 말이다. 윌리엄 스태포드는 성공회영성을 ‘성공회식으로 하느님을 사향하여 사는 방식’이라고 정의한바 있다.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공회영성은 매우 다양하다. 한편으로는 시인, 청교도, 예언자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정적주의자나 가톨릭적 영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어 서로 어우러진다. 그럼에도 여러 세기가 지나면서 성공회영성에 공통점들이 생겨났다.”
성공회영석 즉 ‘하느님을 향하여 사는’ 성공회의 공통된 방식에 대한 신자들의 공감대는 무엇일까?
공동기도서
우리는 성공회신앙의역사와 전통에서 공동기도서가 갖는 결정적인 의미에 대해 살펴본 바 있다. 공동기도서는 성공회신자들에게 기본적인기도양식을 반복해서 가르치며, 이러한 기도는 어려운 때에는 새로운 열의를 갖고 할 수 있다.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때 시편을 낭송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성공회기도의 자양분이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많은 성공회신자들이 이러한 관습을 등한시 하고 있으나, 적어도 사제들은 이를 규범으로 지키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매일 드리는 기도에서 시편을 낭송하는 것은 성 베네딕트가 발전시킨 수도원전통에서 비롯된다. 이 전통에서는 성무일과(divineoffices)의 각 예식에서 시편 중 어느 것을 사용 할 것인지, 절기에 따라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등등에 관해 아주 세부적인 사항까지 명시한다.
개신교국가에서 종교개혁 당시 유럽의 수도원이 폐쇄되던 시기에, 크랜머는 로마 기도서를 공동기도서의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로 개편하였다. 이리하여 공동기도서는 중세수도원, 초대교회, 그리고 예수님 생존 시 유대인회당(synagogue)에서 행했던 예배의 전통과 우리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은 하고 있다. 이러한 패턴은 기도를 드림에 있어 틀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지극히 인간적인 시편은 잘 드러나지 않는 성공회영성의 한 특징, 즉 삶을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성공회신자들은 대체로 너무 신비적이지도 않고 또한 너무 경건하지도 않다. 성공회신자들은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것만큼이나 일상생활 즉 매일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사느냐를 통해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일상 경험을 토대로 때로는 하느님과 언쟁을 하고, 때로는 조르고 사랑하고, 설득하려고도 하며, 울부짖기도 하는 시편은 바로 이러한 현실성의 모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식
성공회신자들은 기도를 할 때나 세상에서 살아갈 때나 늘 과거와 연속선상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나성공회 같으면 조상을 생각하는 감각이 있고 영국의 어느 대성당에서 기도할 때는 저절로 성공회의 오랜 역사를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성공회신자라면 누구나 성서에서 헌신의 힘을 얻고 신경으로 신앙을 정의하며 예배드릴 때마다 자신들이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전통에 서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통의 다양성
성공회신자들 간에는 광범위한 의견과 전통이 살아있다. 가장 두드러진 대조는 복음주의와 고교회 그룹 간의 대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대조저인 모습은 영국 그리소도교에서 생긴 것이나, 각 선교단체의 편향성을 통해 성공회의 다른 교회에도 전해지게 되었다.
한국, 일본, 가나 등은 고교회인 앵글로 가톨릭의 영향 특히 ‘Community of the Society of the Sacred Mission'의 영향을 받았다. 이와 달리 동부 아프리카는 대체로 복음주의의 영향이 강하며, 특히 동아프리카 부흥에서 이를 볼 수 있다. 남미의 서든 콘(Southern Cone) 교구에서도 오랜 복음주의 전통이 있다.
서인도제도교구는 일찍이 복음 전파연합선교회(SPG;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는데, USPG는 19세기에 점차 고교회의 입장을 강하게 반영하였다. 서인도제도, 특히 자메이카에서는 교회선교회 (CMS; Church Missionary Society)도 잠시 활동했는데, 대개의 경우 선교단체 간에 암묵적으로 관할지역을 분할하곤 하였다.(이에 대해서는 제 1장의 모리셔스 사례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다.) 이러한 분할을 통해 같은 지역에서도 아주 다른 전통들이 나란히 존재하기도 한다.
포용성
성공회 신자들은 자연히 초교파적 성향을 띤다 이렇게 얘기하면 논쟁의 소지가 사실 많기도 하고 성공회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부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회신자들과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 간 대화의 역사를 보면 영국성공회와 감리교 간의 통일을 위한 회의처럼 실패로 끝난 사례들도 많다. 그리고 인도대륙에서와 같이 연합교회가 생긴 곳에서도 성공회에 기원을 둔 교회들은 아직도 성공회 방식으로 행동을 하고, 감리교나다른 교회에 뿌리를 둔 교회들은 과거 자기 교파의 전통을 강하게 따르고 있다.
그러나 성공회신자들은 자신들이 교회의 단지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회 본연의 다양성이 신자들에게 어느 누구도 혼자 모든 답을 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항상 일깨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이 영성과 예배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가를 놓고 실험하거나 수용하는데 있어 대체로 개방적이다.
또한 성공회신자들은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성공회의 역사를 보면 한때 영국에서 국교로서 교회가 확고한 자리에 있었기에 공동체적 책임감에 대해 익숙하다. 자연히 세례, 혼인, 장례등 수시로 경험하는 예식은 성공회신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다. 그 결과 성공회는 구성원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또한 배타성을 좋아하지 않는 다.
이는 성공회신자들이 현세에 대해 관심을 갖는 다는 사실을 반영한 결과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성공회신자들이 신경에 언급된 말세에 대해 믿으면서도 그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공회신자들은 지금, 여기에 초점을 두고 현실적인 삶을 따른다. 즉 여기가 하느님의 세상이라는 생각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 성공회는 묵시록에 나오는, 미래에 있을 천년왕국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