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치비가-이정환.hwp
국치비가(國恥悲歌)
-이정환
1
한밤중에 혼자 일어 묻노라 이 내 꿈아
만리 요양을 어느덧 다녀 온고
반갑다 학가선용(鶴駕仙容)을 친히 뵌듯 하여라.
* 한밤중 : 야반(夜半) * 요양 : 청나라가 건국된 곳.
* 학가선용(鶴駕仙容) : 학을 탄 신선의 모습. 여기서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2
풍설(風雪) 석거친 날에 뭇노라 북래사자(北來使者)
소해용안(小海容顔)이 언매나 치오신고,
고국(故國)의 못 죽는 고신(孤臣)이 눈물계워 하노라.
* 북래사자(北來使者) : 북쪽 심양에서 온 심부름꾼(사자)
* 소해용안(小海容顔) : 우리나라 왕자의 모습
* 고국(故國)의 : 고국의 다음에 생략된 말 : '국치(國恥)에도'
* 고신(孤臣) : 필자 자신
▶ 주제 : 우국충정(憂國衷情)
▶ 출전 : <송암유고>
▶ 한역 : 風雲交紛日 爲問北來使
小海容顔苦 幾多耐嚴冬
故國孤臣在 未死但垂淚
3
박재상 죽은 후에 님의 사람 알리 없다
이성 춘궁을 뉘라서 모셔오리
지금에 취술령 고혼을 못내 설워하노라.
4
구중 달밝은 밤의 성려인뎡 만흐려니
이역 풍상에 학가인들 니즐소냐
이밖에 억만 창생을 못내 분별하시는다.
8
구렁에 낫는 풀이 봄비에 절로 길어
알을 이 없으니 긔 아니 조흘소냐
우리는 너희만 못야 실람겨워 하노라.
골짜기에 나 있는 풀이 봄비에 저절로 길어나네.
풀은 애통해 할 일이 없으니 그 아니 좋을쏘냐.
우리는 사람이 되어 너희만 못하니 시름겨워 하노라.
* 구렁 : 움쑥하게 팬 땅
* 검줄 : 검불. 가느다란 마른 나뭇가지, 마른 풀, 낙엽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 요점 정리
▶갈래 : 평시조, 연시조
▶성격 : 애통적
▶주제 : 병자호란(丙子胡亂)의 국치(國恥)로 인한 괴롭고 답답한 마음
● 이해와 감상
‘국치비가(國恥悲歌)’라는 10수의 연시조 중 여덟 째 수로, 작자가 병자호란의 국치를 당한 뒤 벼슬을 버리고 두문불출(杜門不出),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지은 시조로 병자호란의 치욕에 대한 비통한 마음을 자연물과 인간사를 대비시켜 치욕스러웠던 조선의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순수 국어를 사용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 심화 자료
비가(悲歌) : 조선 인조~헌종 연간에 이정환이 지은 시조, 원래 제목은 ‘국치비가’이며, 작자의 문집인 <송암유고>에 실려 있다. 제작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작품의 소재인 병자호란의 국치와 이정환의 사망 연대로 보아 1636년(인조 14)에서 1673년(헌종 14) 사이로 추정된다.
병자호란의 국치(國恥)를 통분히 여겨 지은 연시조로 모두 10수이다. 첫째 수는 한밤중에 꿈을 깨어 혼자 일어나 청(淸)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의 학가선용(鶴駕仙容)을 만나고 온 이야기의 술회로 시작된다.
여섯째 수에서는 조정에는 무신(武臣)도 많건만 화친(和親)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되물어 안타까운 마음을, 마지막 열 번째 수에서는 ‘이거사 어린 거사 잡말 마라스라 / 칠실(漆室)의 비가(悲歌)를 뉘라셔 슬퍼하리 / 어듸서 탁주(濁酒) 한잔 얻어 이 실람 풀가 하노라.’라 하여 국치의 비분강개를 꾸밈없는 직선적인 어법으로 노래하고 있다.
각 수의 뒤에는 자신의 한역시를 붙였는데 한결같이 5언 6구의 직역시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송암유고>에 전할 뿐, 다른 시조집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이로 보아 이 작품이 가창을 통해서는 유포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병자호란을 내용으로 한 대표적인 시조 작품이며, 특히 연시조 형식으로는 이 작품이 있을 뿐이다.
9
조그만 이 한 몸이 하늘 밧긔 떠디니
오색 구름 깊은 곳의 어느 것이 서울인고
바람에 지나는 검줄 갓야 갈 길 몰라 노라.
조그만 이 한 몸이 하늘 밖으로 떨어지니
오색 구름 깊어진 곳 어디가 서울인가?
바람이 이리저리 구르는 검불같이 갈 길 몰라 하노라.
10
이것아 어린 것아 잡말 마라스라
칠실(漆室)의 비가(悲歌)를 뉘라셔 슬퍼하리
어디서 탁주 한 잔 얻어 이 실람 풀까 하노라.
이것아! 어리석은 사람아! 부질없는 말 하지 말아라.
어두운 방구석에서 부르는 슬픈 노래를 누가 슬퍼하랴.
어디서 탁주나 한 잔 얻어 이 시름을 풀어 볼까 하노라
1
* 칠실(漆室) : 매우 캄캄한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