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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두 실컷 울고서,
바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울의 말이었다.
그들은 배 타는 곳까지 바울을 배웅하였다.
(사도행전 20 : 37-38)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그 모습
그 미소
"장례때 슬퍼하지 말고 밝은옷 입고 오라"시던 그 유언까지 지키지 못한 저는 끝까지 말 안듣는 나쁜 제자였습니다.
손봉호 장로님의 회고. 손 장로님은 고인의 중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후배이며, 서울대 영문과 진학역시 같은과에 수학중이던 고인의 영향이었다고 합니다. 고인이 대학생일때 시골 모교 후배인 손봉호 학생에게 영문 편지를 보내고 꼭 영문으로 답을 하라고 하셨답니다. 답신 영문에 틀린 점이 있으면 일일이 고쳐 다음 편지로 보내주시곤 하시던 생각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손봉호 청년이 외국 유학길에 오를 때 고인의 선친 윤봉기 목사님께서는 "유학 마치고 돌아와서 사역을 하더라도 사례비 받지 않고 봉사하는 편이 좋겠다"고 권유하셨다고 합니다. 평생 사례비와는 거리가 먼 목회활동도 고인이나 손 장로님 모두 닮은 꼴입니다.
추모 행사후 동부, 등대, 석촌 동창생 일부가 같이 모여 중국집 거목에서 애찬을 나누었습니다. 36년 만에 만나는 동창도 있어 얼마나 반가운지 슬픔도 잠시 잊고, 윤종하 조사(선생님,총무,원장,장로 등 호칭도 다양)와 같이했던 시절의 추억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동부 조정래 집사님 (지금은 장로님)
주로 등대,석촌 교우들
심정택 장로님, 늙으실 줄도 모르시나요?
유재선 목사님과 이태희 교수님도 여전...
동부의 아가씨들, 근데 이 아가씨들은 좀...아주머니가 다 돼 부렀나? 순옥이가 먼저 가부러서 섭섭...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다정...
용주 원장님과 싸모님, 인수 화백
사진은 모두 등대 이진영 교우 작품,
배경 찬양은 임청화 교수님(http://www.limchungwh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