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이 부활하는 2011년 1월은 매서웠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1월 8일 2분, 14일 42분...올해 들어 고작 44분동안만 영상일 정도로 매서운 한파가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날씨에 답사는 무슨....
그러나....
몇년만에 부활하는 디딤인데 날씨 때문에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22일...
하늘은 한 없이 맑고 깨끗했습니다.
기분마저 상쾌해지는 맑은 하늘과 포근한 날씨가 디딤의 부활을 축복하는 듯 했습니다.
오전 10시를 목전에 두고 인천터미널역에 도착
김수현, 정영진, 조복희님을 만나 인천두바퀴로 이동
인천두바퀴는 승합차를 후원해주신 이소희님과 주재용님이 운영하는 자전거 전문 샵입니다.
해외 투어를 자주 하시는 분이라 나가사키, 시마네, 돗토리를 잇는 일본 서해안 루트 개발을 위해 자문을 들었습니다.
맘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하고 하고 싶지만,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 추후 다시 상의하기로 하였습니다.
잠시후 일산에서 김솔아님 도착
이어서 오늘의 주인공 김종헌. 한성민님 도착
두 분은 러일전쟁과 개항장 인천에 대해서 주옥같은 강의를 해주실 분들입니다.
인천두바퀴 사무실 건너편에 인천도호부가 있는데 2층에서 바로 보입니다.
개항 이전까지 인천의 중심지는 인천도호부가 있었던 문학산 근처였습니다.
그러나 제물포가 개항되고 제물포에 각국 영사관, 조계지, 통상사무를 위한 각종 기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제물포는 명실상부한 인천의 중심지로 등장했고 문학산과 제물포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인천은 부산, 원산에 이어 1883년에 세번째로 개항되었고 개항장이던 제물포는 작은 어촌이었습니다.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세 가지 시선, 러일전쟁] 특별전
인천 토박이 김수현님의 길잡이와 정영진님의 운전은 현지 가이드로서 완벽한 조화를 이뤘습니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은 1946년 4월에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입니다.
고인돌을 형상화 본관 건물은 송도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청량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당 한켠에는 임오군란 당시 일본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타다가 일본으로 도망가기전 인천도호부에 머무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일제가 1934년에 건립한 석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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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사 공사 일행 조난비
2011년 첫 답사지로 인천을 선택한 이유는 인천광역시립박물관 특별전 [세가지 시선, 러일전쟁] 때문이었습니다.
일본과 러시아가 만주와 대한제국을 차지하기 위해 대한제국에서 벌인 전쟁...... 세 나라는 러일전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본,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서구열강과 싸워 이긴 자랑스런 승전국
러시아, 비록 전투에서 졌지만 항복을 거부하고 명예를 지켰던 위대한 패배자
그럼 우리는....
승자의 영광, 위대한 패배 어느쪽도 되지 못하고 전국토를 전쟁터로 내줘야 했습니다.
러.일 어느 편에도 설수 없는 약소국, 중립국을 선언해지만 소용 없었고, 미국은 고종의 보호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일본은 대한제국 황실보호를 빌미로 한일의정서를 체결하고 동해안, 울릉도, 독도에 망루와 해저전신을 설치하는 등 전국을 군사기지화 하였습니다.
일본은 독도에 망루를 세우기 위해 내각회의에서 독도 영토 편입을 결정하고, 1905년 2월 22일에 고시된 시마네현고시를 통해 강제편입 조치를 하였습니다.
지난 2005년에 시마네현의회는 2월 22일을 죽도의날로 정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시마네현 조례로 공포되었습니다.
해마다 2월 22일 되면 시마네현은 죽도의날 행사를 통해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강제병합 100년이던 지난해 8월, 한일양국 시민사회단체는 '한일시민공동선언'을 통해 독도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일본정부에 요구하였습니다.
일본정부에 대한 요구
18. 독도=다케시마는 러일전쟁에 편승하여 일본에 강제로 편입되었으므로 명백히 식민지배의 일환으로 일어난 역사문제이다. 독도에 대해 영토문제로서 각 교과서에 기술하게 하는 조지를 중지할 것
독도문제에서 러일전쟁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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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함 바랴크호 깃발
바랴크호 함장 로드뇨프는 전리품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바랴크호를 수장시켰다.
러시아는 함장과 수병들을 자존심을 지킨 명예로운 영웅으로 맞이 했고,
러시아는 위대한 패배자가 되었다.
일본은 바랴크호 깃발 등을 전리품으로 수거하여 승리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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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기념잔
일본이 러일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잔이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화하기로 결정하고 1905년 11월에 무력을 동원하여 을사늑약을 체결했습니다.
러일전쟁은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쟁이었고, 러일전쟁후에 형성된 판세는 식민과 피식민의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특별전은 1월 30일까지 열립니다.)
● 풍미, 작장면....짜장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이라고 알려진 '풍미'로 이동했습니다.
개항장 인천을 답사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차이나타운의 짜장을 먹는 즐거움입니다.
작장면(짜장면)의 시작이 공화춘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화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짜장면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월미도로 이동했습니다.
● 월미전망대
겨울 답지 않은 쾌청한 날씨 덕분에 영종도, 인천내항, 인천대교, 연안부두, 차이나타운(청일조계지)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답사의 최대 행운은 월미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천 풍경이었습니다.
월미도는 청일조계지와 각국조계지가 어떻게 구분되고, 주요 시설물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기에 좋은 자리 입니다.
육안으로 관측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망원경과 안내지도를 준비하면 현장을 방문하는 것 만큼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청.일등 열강들이 각축을 벌이던 개항장 인천 답사를 위해서 반드시 가장 먼저 들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내심을 발휘하면 인천내항과 외항을 연결하는 갑문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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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전망대에서 바라본 조계지
가운데 숲이 중구청을 중심으로 형성된 조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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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내항과 외항을 연결하는 갑문
● 개항장 인천의 중심, 중구청을 중심으로 형성된 청일조계지
계획대로 한다면 4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걸어야 했지만, 일정마다 조금씩 늦어진 시간이 누적되어 예정대로 진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불호텔 터에서 조계지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대불호텔 터에서 바다를 등지고 바라보면 청일조계지를 구분하는 계단과 공자상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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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 터에서 바라본 청일조계지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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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바라본 청일조계지 계단
왼쪽이 일본조계지, 오른쪽이 중국조계지
1883년 9월, 조선과 일본은 <조선국인천구조계약서>를 체결하여 약 7,000평에 이르는 일본 지계를 획정하였습니다.
일본 지계에는 본정, 이정, 산수동, 해안통 4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1884년 4월, 조선과 중국은 <인천구화상지계장정>을 체결하였고 약 5,000평에 걸쳐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습니다.
각국조계는 1884년 11월에 조선과 미국, 영국, 청, 일본이 체결한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에 따라 청일조계지 후면 산자락 약 14만평에 설정되었고, 이후 인천은 국제항으로서 면모를 갖추어 나갔습니다.
● 인천 개항장 역사 도보 여행
개항장 답사는 주제별로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시간이 늦어 대불호텔 터, 제일은행, 일본18은행, 일본58은행, 제물포구락부, 삼국지거리를 둘러봤습니다.
각지역에 대한 설명은 인천문화재단에서 발행한 [인천 개항장 역사 도보여행] 으로 대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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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구락부
청.일.각국은 조계지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1889년에 신동공사를 설립하였다.
2년 뒤에 회원국들의 원할한 교류를 위해 제물포구락부를 조직하고 회관건물을 건립하였다.
일제때는 일본부인회, 광복후에 미군장교클럽, 6.25전쟁때는 북한군 대대본부와 미군 사병클럽
1952년에는 시의회, 교육청,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쓰였다.
한때 중구문화원으로 쓰였고 현재는 인천광역시문화원연합회가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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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구락부 내부
제물포구락부는 영상스토리텔링 박물관으로 수리복원되어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차 한잔과 함께 답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 답사후기를 마감하며....
러일전쟁 특별전 도록을 제작하지 않아 전시내용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어둡고 설명문이 사진 한장에 들어오지 않아 보정하고 편집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부활하는 [디딤]이라 답사후기도 제대로 쓰려고 했는데 아쉽지만 여기에서 후기를 마쳐야 겠습니다.
부족한 후기는 참석하신 분들이 채워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첫댓글 대표님, 아주 훌륭한 탐방기입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後記입니다. 평상시에도 늘 자주 둘러버는 곳들인데도 자세히는 몰랐었습니다. 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둘러 볼 것입니다. 해박한 대표님의 해설을 상기하면서~~이제 곧 우리의 설날, 회원님들 새해에 복많이 받으세요 !
김종헌, 한성민님의 설명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편하고 즐겁게 마무리 했습니다. 밴뎅이회도 처음 먹어봤구요. 맛있었습니다.....인천에 회원 몇분이 계시는데 날이 풀리면 번개모임으로 둘러봐도 좋을 듯 합니다.....
무조건 환영합니다. 설 지나고 한번 내려 오시지요~~
시간이허락한다면 담엔 꼭 저도 참석하겠습니다........
김수현님, 독도탐방 이후 건강하신 모습으로 뵐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해를 넘겨 만난 솔아도 더 예뻣습니다. 김종헌. 한성민님 뜻있는 시간 고마움을 전합니다. 인천두바퀴 이소희, 주재용님 차량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도움 참 따뜻 했습니다. 2011년에 부활한 " 디딤 " 앞으로 횟수에 비례하여 동참하는 벗님들도 점점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녁(벤댕이회)및 진짜녹두빈대떡 같이 못해 무척 아쉽습니다. 조만간 또 뵐 수 있게 되기를~~
사진과 함께 곁들인 설명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