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결혼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다. 결혼을 안 하면 죽인다고 옆구리에 권총을 들이댄 것도 아닌 결혼을 해놓고선 “아냐, 그때는 내 눈에 콩깎지가 씌였던 거야. 단추가 잘못 끼워졌어!” 등을 뇌까리는 아내들이 없지 않다. 남편이 부도를 내거나 명예퇴직을 안 당했어도 한두 번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아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선택 앞에 무너지지 말라. 남편이 비록 사회적 지위가 미흡하다 하더라도 그를 도와 그의 꿈을 이룩하고, 자신의 꿈도 간접 성취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버리고 다시 시작하느니 보다 훨씬 낫다.
실패하는 사회. 올라가는 사회가 아니라 내려가는 사회, 그것도 곤두박질치는 사회에는 그 실패의 속도를 견제할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에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용도 폐기는 없다. 실업을 하거나 부도를 내서 쓸모없어진 남편이라고 용도폐기를 하거나 눈치를 준다면 그 누가 이 세상에 태어나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겠는가?
이희호에게는 DJ(김대중 대통령)를 선택한 그 순간부터 고난의 시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에게는 DJ라는 남자 자체가 ‘인생의IMF’ 였다고 해도 두 사람 모두에게 실례가 아님을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여자는 한 남자와 결혼함으로서, 소녀시절부터 가슴에 품어 온 희망과 이상과 꿈을 성취하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듯 그 꿈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그녀가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았고, 그녀의 남편이 고의적으로 그렇게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닌데도 우리들 눈앞에서 그런 일들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DJ는 결혼하고 9일밖에 안 된 신부 이희호를 혼자 남겨두고 가출(?)한다. 이희호가 평범한 아내였더라면, 결혼 초부터 이게 뭐냐고 신혼의 아내답게 다부진 항의와 불평을 할 만한 여자였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가출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신혼의 단꿈에 한창 젖어있을 때인 결혼 9일 만에(1962년 5월 19일) DJ는 구속된 것이다.
46일 만에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이것은 아내에 대한 DJ의 첫 번째 배신이었다.
한국의 아내들이여!
남편과 함께하는 인생이 힘들고 벅차거든 이희호를 생각하라. 그녀라면 이 어려움을 어떻게 참고 견뎌 나갔을지 생각하고 남편의 인생을 보듬어 주라. 그것이 우리의 선택에 대해 최대한으로 책임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선택에 책임지고 스스로의 선택을 마다 않고 짊어지고 갈 때 우리들 인생의 끝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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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 김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