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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힘 중창단 대만 공연 여행기
글쓴이 : 김칠태요셉 (2007.3.30)
엘로힘 중창단은 음악에 관심과 정열을 가지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모임입니다. 단원은 혼성 4부 각 2명씩 8명과 반주자, 매니저 모두 1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서울 은평구 역촌동 성당 교우들입니다. (테너 김성주그레고리오, 김석수임마누엘(악장), 베이스 황보순임마누엘, 김칠태요셉, 소프라노 배순영마리로사, 김영선세레나, 메조소프라노 정명숙피오리나(단장), 황혜숙헤레나, 반주 최선혜헤레나, 매니저 김영화임마누엘나)
엘로힘은 2003년 창단되어 올해 5년째입니다. 봄, 가을에 한 번씩 주님 찬송이 필요한 벽지 도서 지방 성당, 공소 등을 방문하여 미사 찬송 및 음악 피정의 기쁨을 나누는 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2005년 해남 ㅇㅇ성당, 2006년 봄 신안 압해도 성당, 2006년 가을 고흥 녹동 성당 금산공소) 이를 위해 단원들은 매주 1회 2시간씩 함께 모여 노래합니다.
금년 봄 공연은 대만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초청을 받아 4개월 동안 준비하였습니다. 이번 공연을 하게 된 데에는 김석수,김영화(악장, 매니저) 부부와 수십 년째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 전영수 비오 신부님의 도움 덕택입니다. 비오 신부님은 우리가 부를 곡 중의 하나(주여 당신종이:218번)를 중국어로 번역하여 주셨고, 두 차례 공연할 성당의 섭외에서부터 안내, 소개, 그리고 여가 시간의 관광가이드 역할까지, 행사 일체를 맡아주셨습니다. 대만에 계신 비오 신부님과 그리고, 엘로힘 중창단의 첫 외국 공연 준비과정에서부터 잘 마치고 무사히 귀국하기까지, 노심초사 하신 김석수, 김영화 부부와 김성주, 정명숙 단장 부부께 지면을 통하여, 단원 모두의 이름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다른 단원 여러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하며 기록을 이어갑니다.
1. 항공편 일정
(출국 BR 159 / 에바(長榮)항공 3/16(금) 21:40 인천 => 臺北 23:20) 2시간40분
(귀국 BR 160 / " 3/19(월) 14:45 臺北 => 인천 18:10) 2시간25분
2. 일정
3/16(금) 17:30 단장님댁 출발(차량2대):김성주,정명숙.김칠태,황혜숙,최선혜,황보순
45 거북맨션 김영화 픽업
18:05 역촌본당 배순영, 김영선 픽업
19:10 인천공항 도착 : 차량2대 장기주차
19:30 김석수 합류 / 입국수속 (좌석배정, 화물발송)
20:10 공항면세점 쇼핑
21:20 탑승 21:40 주행 21:45 이륙
22:00 기내식 / 와인 / 커피, 차 / 대만입출국신고서 작성
23:00 (대만시간) 착륙 / 입국수속 / 수화물 찾음
23:40 공항출발 : 전영수 비오 신부님 출영 (수도원차량 8인승+화물칸)
24:20 方濟會(대만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원 도착
臺北縣 泰山鄕 明志路 3段 26號 전화 : 02-2901-7534
24:30 체크 인 (룸 5개)
3/17(토) 06:00 기상 식사준비
07:15 아침식사
08:40 숙소출발
09:45 野柳地質公園(YEHLIU GEOPARK) 觀光 = 환경청결비 1인당 NT$ 50
11:45 공원 출발
13:20 陽明山 竹子湖 공원 식당 중식
海芋李(Calla - Lily) 꽃밭 / 협소한 주차 공간 / 비좁은 도로
14:30 식당 출발, 1차 공연 성당 行
15:40 성당도착 / 연습
桃園縣 龍潭鄕 文化路 62 十一分 天主堂 / 요한 신부님 / 도자기성모상
17:00 간식 / 만두+둥그런 튀김 +소주 한잔 /
19:30 미사(성당 110석 규모)
20:30 음악피정 (청중 약 110명)
21:25 천주당 출발
22:10 숙소 도착 / 야식 : 라면
23:00 취침
3/18(일) 06:00 기상 식사준비
06:40 아침식사
07:30 방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원 성당 연습
08:30 미사(성당 300석 규모)
09:30 ~ 10:10 음악피정(청중 약120명) / 성당 성가대 중간 찬조 출연 2곡
11:35 중식당 행 11:45 중식당(悅湘園) 전화 2902-6989
11:45~13:10 중식접대 받음/ 아리랑노래(우리 측) 高山靑(대만측:아리산더 꿔냥~)
14:00 숙소출발 관광
14:20 ~ 16:00 國立中正紀念堂 / 화가 王舒 풍경회화전 감상
16:40 ~ 17:00 龍山寺 관광
17:05 ~ 18:00 華北街觀光夜市 관광
18:40 숙소 도착 / 석식 준비
19:50 석식 / 대작 / 담소 /
23:00 취침
3/19(월) 06:00 기상 식사준비
06:50 식사 / 07:15 수도원장께 하직 인사
08:10 숙소 출발
09:10 ~ 11:15 國立故宮博物館 견학
11:25 출발 공항 행
12:30 공항도착 / 수속 13:00 면세점 쇼핑
14:25 탑승 14:40 주행 / 이륙 / 15:05 기내식
18:00 인천공항 착륙
18:15 입국 / 수화물 찾음 / 세관신고
19:30 차량 탑승 출발 은평구 20:40 귀가
3월16일 금요일 엘로힘 중창단 대만 공연 출발일. 모두들 맡은 일터에서 짬을 내어 휴가를 얻고, 약속한 시간에 픽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명숙 단장님 댁에서, 거북맨션, 역촌동 성당을 지나며, 나의 니발이는 아름다운 이들을 차례로 태우고, 황 임마누엘의 티즈를 따라갔다. 은평 터널을 지나 행주산성의 덕양산을 스치는 방화대교에서 공항까지 니발이와 티코는 앞, 뒤서기를 반복하며, 19:10에 영종도 인천공항 출국장 8번 입구에 우리를 내려주곤 헤어졌다.
(니발 : 외부주차장 “공항주차25시” Tel : 032-752-6625 인터넷 예약 \7,000/일)
(티즈 : 공항장기주차장 \8,000X50%/1일)
19:30 회사에서 개별 출발한 김석수 악장이 마지막에 도착하자, 좌석을 배정받고 수화물을 발송하였다. 파손이 우려되는 장고를 미리 박스 포장해 왔더라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었는데, 결국은 출국장 서쪽 끝 포장코너의 신세를 졌다. 구내 은행에서 신용카드로 대만 돈을 구입하고(1 NT$ = \ 30.98) 출국수속을 마친 후, 우리는 면세점 쇼핑을 하였다. KE나 OZ의 마일리지 카드가 있으면 10% 할인혜택이 가능하다고 한다.
21:40 정시에 주행을 시작한 에바(長榮) 항공기는 5분 후 이륙 대기선에 멈춰서 크게 숨을 들어 마시고는 내달린다. 차츰 속도가 빨라지며 귀가 멍한 가운데 어느 틈에 이륙하여 점차 고도가 높아지고 있다. 매번 탑승 때마다 긴장하며 이륙시점을 종그려 해도 잘 확인하지 못 한다. 가속도가 줄어듦에 따라, 어지럽고 멍한 기분은 감소되고, 몸과 마음이 둥둥 떠오르는 느낌 속에, 짜릿짜릿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되는데, 이런 우리들의 기분을 옆자리의 김석수임마누엘이 다섯 자의 전라도 사투리로 말했다.
“워매 호순거!” --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
비행기가 고도를 잡고 등속 운행으로 들어가 가만히 떠서 정지한 느낌이 드는 때부터, 스튜어디스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臺北에서 仁川은 약 2시간30분 정도로 운항시간이 짧고, 낮에 들어 왔다 바로 나가기 때문인지 별로 맛없어 보이는 대만제 기내식을 나눠 받았다. 나는 “치킨+납작국수” 옆자리의 세레나는 “돈육+밥”을 받았다. 저녁 10시, 평소보다 2시간이나 늦었으니, 그래도 꿀맛이었고 와인을 한잔 곁들였으니 마음이 흡족하다.
이젠 밥값을 해야지! 중국어는 못 배워도 한자나 익혀보자. 항공 기내 잡지의 노선도를 보니 세계 각국의 도시가 한자와 영어로 쓰여 있다. 莫斯科(MOSCOW), 倫敦(LONDON), 維也納(VIENNA), 杜拜(DUBAI), 羅馬(ROME), 洛杉磯(LA), 舊金山(SAN FRANCISCO), 紐約(NEW YORK), 夏威夷(HAWAII), 巴黎(PARIS), 開普敦(CAPE TOWN), 安克拉治(ANCHARAGE),안카납(ANKARA), 開羅(CAIRO), 우리의 서울은 首爾(SEOUL)라고 쓰여 있다.
-- 서울을 전에는 漢城(한성)이라 하였는데 2003년 우리 측에서 소리 나는 대로 써달라고
요청하여 首爾로 쓴다 한다. --
더 뒤적이다보니 에바 항공 편대가 소개되어 있다.
長 榮 航 空 機 隊 : 여객기35대, 화물기 15대 총 50대
6대 B 747-400 368~386인승 CLASSES 4 : F / C / ED / Y
5대 B 777-300 316인승 “ 3 : C / ED / Y
9대 B 747-400 COMBI 272인승 “ 4 : ”
11대 A 330-200 252인승 “ 2 : C / Y
4대 MD 90 134~152인승 “ 2 : ”
3대 B 747-400 CARGO(화물기) 120t
12대 MD-11 CARGO(화물기) 90t
全程禁止使用無線電話(No Cellular Phone During Flight), 豫計抵達目的地時間(목적지 도착 예정시간) 22:58이 되어 에바는 무사히 착륙에 성공하였고, 좌석등받이 스크린 자막은 期待再相會(또 만나기를 기대함)로 바뀌었다. 착륙할 때는 항공기가 아무리 속도를 낮춘다 해도, 가슴을 욱조이는 불안감에 떨다가 “쿵”하며 바퀴가 닿아 구르는 순간 무사히 착륙했다는 안도감 휩싸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입국수속이 빨리 끝나고 나가니 비오 신부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뒤쪽이 짐칸인 8인승 승합차에 모두 타고 23:40분에 공항을 출발하여 40여분을 달렸다. 평지를 지나왔는데, 산위로 올라와 있었고 저 아래 타이빼이 시가지의 야경이 차창 밖으로 내려다보인다. 목적지 天主敎方濟會(프란치스코수도원)은 산속이 아닌 시내에 있었다. 주소지는 臺北縣 泰山鄕 明志路 3段 26號 전화 : 02-2901-7534 이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수도원 입구 도로에 전기공사차량이 보이더니 아니나 다를까 정전 중이어서 엘리베이터가 작동이 안 된다. 계단 중간 중간에 신부님이 켜놓은 촛불 빛을 따라, 우리는 6층 숙소까지 낑낑대며 짐을 옮겼다. “그래도 수도원인데 아무리 부부라지만 한 방을 쓰면 되겠느냐“는 의견에 남녀로 구분하려다, 짐들을 나누는 문제 등 불편한 점이 많아 세 부부(김성주정명숙/김석수김영화/김칠태김영선)가 한 방씩 쓰고, 외짝 회원들은 남녀로 갈렸다. 우리 부부는 68호실, 방안에는 2층으로 4개의 침대에 화장실도 있었으나, 방음이 안 되어, 길거리의 차 소리, 오토바이 소리, 바람 소리는 물론 옆방의 얘기 소리까지 다 들렸다.
그리고, 헌혈을 요구하는 모기들이 계속 윙윙거린다. 한국에서는 양 손바닥을 펴서 빰 옆에 두고 자는 척하다가 모기가 물면 그 부위에 힘을 줘서 침을 빼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때려잡는다. 헌데, 이놈들은 잘 내려앉지도 않을뿐더러 내려앉아도 쉽게 침을 박지 않는다. 윙 소리는 그쳤는데 빨리 물지를 않으니 어디에 앉았는지 파악이 어렵다. 그냥 때려 문지르면 모기의 사체가 작은 때처럼 밀려야하는데, 맨 빰 또 허탕이고, 모기는 날아올라 윙윙거린다. 4~5번은 맨 빰을 때려야 모기 한 마리를 잡을 수 있다. 대만의 모기는 모험심은 약하나 조심성이 강하고 흡혈보다는 잠 못 자게 놀려대는 것을 즐기는 취미를 지녔구나. 애라, 1시간에 겨우 모기 두 마리를 잡으며 못 자느니, 헌혈하면서 잠이나 자자. 마음을 바꿔 먹으니 그곳이 곳 천당이라,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3월17일(토) 아침 6시에 기상하기로 되어 있었다. 소음과 모기에 시달렸으나 4시 반에 깨어 다시 잠깐 자고 있는데, 벌써 옆방의 자매님들이 일어나 수군거리며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고 야단이다. 어둠 속에 시계를 보니 아직 5시30분이다. 자매님 들은 빨리 일러나야 한다고 옆방까지 깨우기 시작한다. 한국과 1시간 차이를 깜빡 잊고 한국시간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첫 날 밤을 보내고, 우리 남자 단원들은 6시에 지하 1층의 주방으로 모였다. 여행 중에는 식사준비를 사나이들이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원답게 주방은 넓고 수십 명이 앉을 탁자와 좌석이 비치되어 있었다. 초청을 받았다 해도 어디까지나 봉사활동이므로 식사는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여행경비를 절약하기위해 각자 쌀과 밑반찬을 분담하여 가져 왔는데, 모아보니 반찬도 여러 가지이고 한국식이니 입맛에 맞는다. 다들 한 그릇씩 먹고 누룽지에 숭늉에, 커피까지 한잔씩하고 08:40에 첫 번째 관광 겸 공연 여행길에 올랐다.
泰山縣의 시가지를 가노라니 조그만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핼맷을 쓰고 슬리퍼를 신은 사람도 있었다. 보통 80~125cc를 타는데 50cc는 면허 없이도 탈 수 있어 젊은 층에서 선호한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도 영상 10도 안 밖이니 4계절 오토바이를 타기에 적당한지 대만 사람들은 다들 오토바이 선수들이다. 좌로 우로 폭주는 아니건만 차들보다 더 빨리 요리조리 잘도 빠지며 자동차들을 추월하며 달린다. 교차로 신호등 앞에는 차보다 앞줄에 오토바이가 몇 겹으로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다.
가다보니 과일가게가 있어 차를 세웠다. 참 이상하게 생긴 과일도 많다.
蓮霧(앤우) : 모양은 커다란 무화과 같고 색깔은 사과처럼 발갛다. 사과보다 밀도는 낮으나 먹기가 좋고 과즙이 많다. 속에 씨앗 꽝탱이가 없다. 참 맛있다.
火龍果(화룡과) : 선인장의 일종인 나무에 열린다. 발간 색깔에 여의주가 불타오르는 것 같은 모양을 지니고 있다. 검정 깨알 같은 씨가 많이 들어 있는데 씨가 작아서 그냥 같이 먹는다. 김영화임마누엘라 님에 의하면 전번에 대만에 왔을 때 “화룡과를 갈아 만든 쥬스를 개구리알 쥬스라고 해서 그런 줄로 착각했었다.”고 한다. 외관에 비해 맛은 그다지 달지도 시지도 않아 과일 맛을 느끼지 못했다.
黃金聖女 : 우리나라의 금귤(낑깡) 과 똑같아 보인다.
鳳梨釋迦(부처님머리과일) : 鳳梨는 파인애플을 뜻한다는데 석가모니의 머리모양으로 오돌토돌하게 생겼다. 안에는 큰 콩이나 돈부 만한 크기의 검정색 씨앗이 들어 있었다.
頭榴槤(두리안) : 겉이 오돌토돌하나 봉리석가보다는 더 뽀족뽀족하고 작은 럭비공 만한크기이다. 칼로 줄기를 자르고 껍질을 쪼개어 속살을 파 비닐에 싸주는데, 뇌 속을 꺼내 주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노랗게 끈적이는 치즈 같은데 처음엔 굉장히 역겨운 냄새가나지만 계속 오물거리면 나름대로 맛있다. 속에는 고환 모양의 갈색 씨가 들어있다. 우리 단원들 중 절반이상은 역겨움에 먹지 못 하였고, 나처럼 비위가 강한 사람들만 2배로 포식하였다. 우리는 비닐을 펼치고 꺼내어 칼로 잘라 접시에 담아 먹었는데 나중에 신부님이 오셔서는 그냥 비닐에 싸인 채로 손에 들고 펼치며 베어 드신다.(1頭 구입가격은 NT$400 : 약 \12,000)
10여분 후 中山高速公路 좌측에 보이는 산이 관음산 이라 한다. 산 모양이 누워있는 관음보살의 얼굴처럼 생겼다기에 서울의 인수봉을 떠올리며, 다시 봐도 얼굴 윤곽이 잘 잡히지 않는다. 09:10 좌측에 기와 지붕의 황금색 고층 건물이 보인다. 圓山大飯店, ‘97년 대만 三商 타이거즈 야구단을 방문할 때 봤던 건물이라 반갑다. 09:20 시가지를 벗어나 계속 북동쪽으로 달리니 터널들을 지나고 좌우에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산들이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4계가 뚜렷하여 낙엽수가 많으면 드러나 보일 텐데, 4계절 상록으로 뒤덮여 있고 다습하니 그나마 드러난 바위들도 이끼로 뒤덮여 기암절벽의 풍광을 감상할 수가 없었다. 화강석이나 시멘트로 인위적으로 설치된 납골당들이 밀집되어 있어 볼상 사납다. 09:25 基隆市를 지난다. 공장 지붕이 초록빛이다. 70년대 우리나라 새마을 지붕개량 사업 때 쓰던 그 슬레이트 지붕을 이끼가 뒤덮고 있다.
09:35 동북쪽 해안에 도착 우측에 펼쳐진 동지나해는 음산하고 거센 바람 탓에 계속 해안에 부딪혀 철썩이고 있었다. 해안을 끼고 10여분을 더 가서 도착한 곳은 萬里, 그 옆에는 野柳地質公園(YEHLIU GEOPARK). 바닷가 구릉 절벽이 사암으로 이뤄져 있다. 사암 절벽에는 수 억년 그곳을 스치는 바닷물이, 그 어떤 조각가도 흉내 내지 못할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 두었다. 그곳 사람들은 각 작품마다 적당한 이름을 붙이고 학습 관광 공원지로 개발하여 볼거리를 제공한다. 仙女鞋(FAIRY'S SHOE), 女王頭(QUEEN'S HEAD), 우리의 사진작가 김석수 임마누엘님의 연출로 나머지 세 형제들은 여왕의 머리를 끌어안고 키스하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 공원에 성인이 입장하려면 환경청결비 NT$50을 납부해야 한다.
11:50 지질공원 구경 후 해안가로 북행하다, 金山(JINSAN)에서 좌측의 陽明山 길로 올라간다. 높이 올라가도 가는 안개비가 계속되어 주변경관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길은 왕복 2차로이나 산길이라 오르막에 굽이가 심하고 시계도 안 좋은데도 신부님은 운전을 잘하신다. 4~50분을 가서 도착한 곳이 陽明山 竹子湖 地區. 옅어진 안개 속에 보이는 하얀 꽃밭, 白色花海를 이룬 꽃의 이름은 海芋李(CALLA-LILY). 대궁이 끝에 하얀 꽃 잎사귀 하나가 봉오리로 피고, 사람들은 꽃 대궁이를 뽑아 들며 기뻐하고 있다. 해우리축제기간(3/24~4/29) 중에는 海芋畵展, 海芋創作歌曲發表音樂會, ‘芋’見幸福 臺北市民聯合婚禮,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우리는 이곳 농원 식당에 들러 난로를 쪼이며 원탁에 둘러앉았다. 요리를 골고루 주문하여 점심을 잘 먹었다. 시골 농원식당이라 허름해 보이긴 해도 수백석이 넘는 자리는 가득 차고 손님들이 계속 드나들었다.
14:00경에 우리는 竹子湖를 떠나 陽明山國家公園을 내려왔다. 다음 목적지는 우리가 처음 공연할 성당이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인지도 모른 채, 15:00경에 도착한 곳은 十一分 天主堂, (桃園縣 龍潭鄕 文化路 62番地 / 도원현은 타이완서북해안에 위치하며 용담향은 도원현의 동남방에 있는 소도시임). 영화배우 뺨치게 잘 생긴 요한 신부님(40대 중반의 한국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새로 지은 2층 교육관 옆에 조그마한 검정기와집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안뜰에는 도자기로 만든 아담한 마리아 상이 놓여 있고 茶나무(동백과 비슷함), 桂樹나무(목서와 비슷함), 七里香나무들이 둘러있었다. 성당 맞은편에는 7층으로 번듯하게 지어진 커다란 교회 건물이 있었으나, 이 천주당이 훨씬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미사시간(19:30)전 18:00시로 저녁을 예약해뒀다는 요한신부님께, 이를 취소하고 17:00에 간식으로 만두를 약간 준비해주기를 부탁하였다. 공연 전에 식사하면 노래가 잘 안되기도 하지만, 봉사활동인데 지나치게 부담을 드리면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엘로힘 중창단의 방침이기 때문이다. 15:30부터 90분간 1차 연습을 마치고 17:00에 만두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복장을 갖추어 18:10부터 다시 연습을 시작하였다. 19시가 넘어 미사시간이 가까워지자 교우들은 소학교 학생에서 노인들까지 가족단위로 계속 입장하였다. 우리의 중창 봉송 소식을 모르고 오신 분들은 처음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으나, 차근차근 입장하여 미사시간 전에 성당 120여 석이 가득 차 우리는 더욱 신이 났다. 우리는 좌석 맨 뒤에서 미사곡을 부르며, 모든 미사 절차를 마치고 앞으로 나아가 음악피정 곡들을 차례로 불렀다. 그동안 연습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어 잘들 불렀다. 마지막 “풍악을 울려라”에 우리 장구의 가락을 곁들이니, 청중들도 신이 나서 앙콜을 외쳤고 요한 신부님까지 합세하여 “만남” 과 “아리랑”으로 1차 공연을 잘 마무리 하였다. 21:30 요한 신부님과 교우들의 환송을 받으며 숙소인 수도원으로 돌아오는데 40분이 걸렸다. 밤늦었지만 라면을 끓여서 밥을 말아 저녁을 먹고 내일 일정을 주지한 후 취침.
3/18(일) 06:00에 일어나 준비를 서둘러 06:40분에 아침을 들었다. 분주히 준비를 마치고 07:30부터 수도원 본당에서 연습하였다. 본당은 300석 이상의 넓고 천정도 높아 어제 성당보다 공간은 8~9배는 되어 보였으나, 공명이 잘 되어 다행이었다. 전면 좌우측에 마리아님과
성 프란치스코님의 아담한 조각상이 벽 속 공간에 세워져 있다. 성 프란치스코님의 왼쪽어깨에는 흰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앉아 있다. 좌측의 성모님은 한국의 성모상보다 5도 정도 고개를 더 숙여 아래를 보고 있다. 중앙 십자가상 좌우에는 “東西新舊兩經堂遙相連氣工位聖方濟主保泰山”, “南北前後參十字交互建立六層神宮殿天佑明志” 라는 금색글씨가 쓰여 있다. 미사와 관련하여서는 進堂曲, 奉獻曲, 謝主曲, 禮成曲 의 곡번호와 미사경본, 미사독경을 쓰도록 되어 있다.
08:30부터 미사가 진행되었고 그곳 성가대와 교대로 미사곡을 불렀다. 미사 후 09:30부터 40여 분간 음악피정이 시작 되었다. 중간에 그곳 성가대가 3곡을 불러 우리의 공연을 축하하였다. 청중 수는 어제 밤과 비슷하였으나, 성당이 크고 낮 시간이라 아늑함이 부족하였다. 그리고 중간 곡사이에 박수를 받을 때, 다함께 고개 숙이는 동작을 미리 연습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의 노래를 듣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고, 또 이에 자극을 받아 눈시울이 뜨거워진 우리 단원들도 있었다. 앵콜 곡까지 모두 마치고 우리는 청중의 뜨거운 박수갈채 속에 나란히 손을 맞잡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음악 전공자가 아닌 일반 대만 사람들은 악보를 보지 않고 가사 위에 숫자와 줄을 그어 악보로 사용하고 있다. 대만에 오기 전에 이런 말을 듣고, 이곳 분들은 우리 민족보다 음악성
이 뒤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였으나, 이곳 분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우리가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을 깨달았다. 가사위에 숫자와 줄 표기는 서양식 악보의 어려움을 없애고, 누구나 쉽고 간단히 익히게 하기 위해서다. 수도원 지하 식당에 있는 식사전후 기도가를 옮겨 적는다.
食前祈禱歌
5 5 1 2 3- 2 1 6 1 5- 5 5 1 2 3 3 4 3 2-- 2 3 4 4 4 3 3 2 2
天上 的父 親 我們 讚美 祢 賜給 我們 美 好 的食 物 求祢 降福 我 們的 思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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求祢 降福 這此 食物 在生 活中 常懷 感 思的 心
食後祈禱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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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上 的父 親 我們 感謝 祢 讓我 們飽 餐 祢 的美 食 讓我 們記 得 祢的 恩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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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習 憧得 去 分享 在生 活中 常懷 感 思的 心
공연 기념촬영을 마치고, 대만의 교우들과 인근 식당 悅湘園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우리 일행 10명과 대만측 교우 10명 에 비오 신부님까지 21명이 2개의 원탁에 섞여 앉았다. 의사출신의 樊忠元(Pan Chong Yien 81세), 침구상회를 운영하는 陳德仁(54세) 潘瑞貞 부부, 반서정의 언니, 형부 黃德盛(Huang Der Sheng 60세), 신부님을 도와 우리가 부른 “주여 당신 종이(218번)”를 중국어로 바꿔준 蔣婷華(Chiang, Ting-Hua / Maria), ----- 여러분들과 함께 葡萄酒와 金門高梁酒(진먼까오량슈)로 건배와 謝謝(쒜쒜)를 외치며 음식을 함께 나누니 말은 잘 안 통해도 즐거운 시간 이었다. 식대는 10인 테이블당 150,000원 정도라는데 맛있는 음식이 많았다. ---芭樂汁(구아봐 쥬스), 柳橙汁(류낀: 오렌지 쥬스), 螃蟹(방세:게요리), 紅石鯛(홍스탸오: 빨간물고기 요리), 烏骨鷄(우구치: 삶은오골계), 絲瓜(스이꽈: 수세미 나물) ---- 음식을 어느 정도 들고난 후, 우리 모두는 한국의 “아리랑”을 불렀고 대만 분들은 “高山靑”을 불러주었다.
공식일정을 모두 마친 우리는 다들 시험 끝난 수험생처럼 홀가분하고 해방된 기분으로 시내 관광에 나섰다. 14:00에 출발하여 14:20 중산남로의 중정기념공원에 도착했다. 이 공원은 1975년4월5일 장개석 총통이 89세에 서거 후, 전 국민의 성원으로 기념관을 착공하여 5년만인 ‘80년4월5일에 개관하였다. 25만평 공원에는 국립극장과 국립음악당 그리고 중정 기념당이 삼각형으로 배치되었다. 중정기념당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청천 백일과 붉은 대지”를 형상화 하였다. 건물의 팔각지붕은 파랑색 유리, 사방의 벽은 흰색대리석, 기념당 앞은 붉은색 화단과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이다. 그리고 붉은색 바탕의 파란 하늘 속에, 하얀 해가 그려진 대만 국기는 “靑天白日旗“라 부른다.
기념당 지하 1층의 전시실에는 維也納(Vienna)에서 호평을 받았던 화가 王舒 님의 風景繪畫 展示會가 열리고 있다. 방명록에 이름을 쓴 나는 거주지에 망설임 없이 大韓民國 首爾(서울)라고 적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데, 안내원이 따라와서 중얼거린다. 왠일인가 했더니 사인펜을 돌려 달란다. 무심결에 들고 왔었나 보다.
16:20에 중정기념공원을 나온 우리는 16:40 龍山寺를 구경하였다. 대만의 절간 지붕들은 황금빛이다. 용산사 울타리 위로 수천 개의 등이 10층으로 걸려 있었다. 대만 2천3백만 인구 중에 불교-도교 신자가 93%, 그리스도교 4.5%, 기타 2.5%라더니, 용산사 경내는 향불을 피우는 냄내는 물론 연기로 인해 매캐한 가운데, 인파가 가득하여 몹시 혼잡하였다. 기둥 현판에는 澤厚民豊, 護國佑民, 泛舟利濟, 修德揚靈 이라고 쓰여 있어 호국기복의 민간신앙 성격이 짙다. 절 안뜰에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고 과일, 과자 등 각종 제물이 놓여 있다. 원하는 이는 사다 놓고 복을 기원한다고 한다.
17:00 용산사 옆의 야시장 구경에 나섰다. 華北街觀光夜市라는 현판이 보이고 좌우로 온갖 상가가 즐비한 시장거리가 수백 미터가 되었다. 안마소, 닭고기집, 조각케익매장, 구렁이 탕집, 지네파는집, 元祖燒酒蝦, 帝王養生足道(맛사지 반신 40분 500圓 전신 60분 800圓 발안마 40분 400圓), 成人 用品店, 각종 희귀한 것들을 다 모아서 팔고 있다. 우리는 1시간 쯤 구경하고 나오다 입구 맞은편에서 저녁 식사 후식으로 과일 頭榴槤(두리안)을 1두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18:40 우리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저녁, 만찬을 위해 있는 반찬 모두 걸게 차려 먹기로 했다. 항상 남자 단원들은 식사 당번이다. 다들 한 마음으로 통하고 조금이라도 더 도우려하니, 밥을 짓고 찬을 차리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다. 함께 저녁을 먹다 한국에서 나올 때 사온 캐나다산 위스키도 마시고, 한담을 나눴다. 할 일을 마치고 나서 여유로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보니 금방 23:00가 되어 각자 숙소로 흩어졌다.
3/19(월) 마지막 날, 여전히 06:00부터 식사 준비를 06:50에 식사를 마치고, 숙소를 정리하였다. 몇 사람은 신부님과 함께 07:15에 수도원장님께 하직 인사를 하러 갔다. 원장신부님은 이탈리아 출신이신데, 다른 수사님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간단한 선물을 드리며, 파격적인 염가에 숙소를 제공해 주고, 공연을 할 수 있게 해주신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각자 짐을 챙기고 나서 체크 아웃 ---- 再現(자이지엔) 方濟會(프란치스코수도회) !
08:10 우리는 수도원을 나와 고궁박물관을 향했다. 가다가 자동차에 加油 (無鉛汽油 1리터에 26圓(약780원)) 그리고 09:10 國立故宮博物院에 도착. (이하 퍼온글입니다)
세계 4대박물관 대만고궁박물관(故宮博物院)
고궁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또한 5,000년 역사에 버금가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중국보물과 미술품으로 꽉 차있다. 62만점에 달하는 박물관의 대부분의 전시품은 천년 이상 지난 초기 송나라의 황실에 속했던 것이다. 중국황실 콜렉션중 최고의 것들은 모두 이곳 타이완에 보관되어 있다. 그래서 한꺼번에 전시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너무 많다. 인기 있는 것들은 항상 전시가 되고 있지만 옥, 도자기, 회화, 청동의 보물들은 참관 할 때마다 색다르도록 정기적으로 바꾸어 전시한다.
소장품 모두 관람하는데 8년
중국의 문화유산을 보려면 베이징이 아니라 타이페이로 가야 한다.
1949년 대륙 본토가 공산당 정권에 넘어가면서 장개석 정부는 무엇보다 남경에 있던 역대 중국 황제의 컬렉션 수십만점을 대만으로 이동시키는 데 주력했다.
5천년 중국 역사를 송두리째 간직한 고궁박물관은 송왕조로부터 원, 명, 청의 역대 조정이 수집해온 방대한 황실 수장품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고궁박물관에는 상설 전시되는 유물만도 2만점으로 3개월마다 1번씩 교체 전시되고 있다. 그래서 소장품 모두를 관람하려면 8년의 시간이 걸린다. 유물들은 주제와 시대별로 나뉘어 20개의 전시실에 전시되는데 전시실의 설계와 조명은 관람객들이 작품 감상을 하기 편하게 구성되어 있다. 시대순에 따라 배치된 전시장 입구에는 세계 문화사의 장구한 흐름과 중국 5천년 역사를 비교하는 연표를 만들어 놓아 중국의 역사가 곧 세계사의 중심에 자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 까지 퍼온 글입니다.)
박물원은 이번에 북송시대의 서화, 여요 도자기를 위주로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품 중에 북송 정요의 白瓷嬰兒枕(갓난아기 모양의 베개), 모양은 물로 색깔까지도 배추 형상으로 만든 옥돌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11:25 우리는 시간도 부족하고 2시간이상 관람으로 다리도 아파서 공항으로 출발 하였다.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는 이런 저런 주념 부리를 하였으나, 배들이 고팠는지, 아니면 벌써 한국이 고팠는지, 빠끔살이, 학독, 도구통, 정재, 밀개떡, 보리개떡, 술빵에 배추 겉저리까지 먹는 얘기들이 주로 나온다. 그러다가 김성주그레고리오 님이 답답했는지 “로사씨! 거그 옆 떼깡(옆 차창) 좀 열어 뿌시오!” 라고 하여 한 바탕 크게 웃었다.
12:30 공항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13:00에 출국장 면세점에서 기념품들을 샀다. 면세점이라 해도 그동안 이곳저곳 다닐 때 보았던 거보다 비싼 것이 많다. 외국 나올 때마다 미리 중간 중간에 기념품을 사두고 면세점에서는 구경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만, 항상 그렇지 못하였다. 우리는 배고픈 줄도 모르고 한국에 있는 서운한 얼굴들을 떠올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14:25에 탑승하였다. 14:40 이륙, 또 맛 없지만 시간이 지나 허기 때문에 맛있게 먹게 되는 기내식을 들었다. 17:58 착륙, 입국카운터를 지나 짐을 찾고 세관신고서를 써내고 공항을 나왔다.
19:20 공항에 재웠던 니발이와 티즈을 데려와 나누어 타고 20:30에 은혜와 평화로움이 넘치는 우리의 은평구에 무사히 도착하여 가정과 일상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이번 여행의 축복과 감동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번 여행으로 충만한 감동의 엔돌핀이 우리 단원들의 일상에 꾸준한 활력으로 되살아나리라 믿는다. 대만의 비오, 요한 두 신부님과 대만에서 만난 모든 분들의 건승하심을 기원한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치도록 줄곧, 서로 이해하고 협력한 단원 여러분께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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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씨![~](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3년 전,엘로힘 대만 음악봉사방문 3박4일간의 생생한 추억,회상에다시금 푹 빠져봅니다 그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요로콤,상세한 우리단체활동기를 기록해 놨으니 매우 훌륭 ![짱](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44.gif)
댕큐우![~](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