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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화
아쿠아로빅
박래여
1.
“꽃샘잎샘 추위에 반늙은이 얼어 죽는다더니 땡땡 얼겠네. 얼겠어.”
현숙은 봄풀이 파릇한 마당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사월 초입인데도 밤이면 얼음이 얼었다. 단단한 땅거죽도 뚫고 올라온 고사린데 영하의 온도에는 속수무책이다. 냉해를 입어 폭삭 주저앉았다. 자연의 섭리는 사람의 힘으로 거스를 수 없다. 고사리 밭을 돌아보고 온 그녀는 서둘러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저녁을 차렸다. 농부와 오붓하게 사는 일상에서 유일한 낙은 저녁마다 수영장 가는 일이다. 수영장에 갔다.
“아쿠아로빅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무슨 소리야? 2/4분기 시작한지 며칠 됐다고. 갑자기 폐강이라니?”
“회원이 정족수를 못 채워서 그렇답니다.”
조례에 의해 회원 수가 모자라기 때문이란다. 강사도 동의 했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다. 오전에 아쿠아로빅 강사인 민초의 문자를 받았지만 폐강한다는 말은 없었다. 어젯밤 민초에게 문자를 넣었었다. 아쿠아로빅 회원이 원하는 것은 안무보다 에어로빅을 기본으로 하는 운동이다. 물에서는 무조건 빠른 음악에 맞춰 절도 있는 동작을 반복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민초는 열심히 해보겠다는 당찬 대답을 했다. 그랬는데 폐강이라니.
2.
사실 지난 연말부터 아쿠아로빅의 생존 문제가 불거졌다. 2년을 뛴 아쿠아로빅 강사가 개인 사정으로 다른 강사에게 바통을 넘겼다. 계약기간 만료 한 달 전이었다. 새로 온 강사는 젊고 연약했다. 하체는 운동복이지만 상체는 목까지 단추를 채운 티를 입었다. 몸매는 가늘었지만 단단했다. 대학에서 스포츠를 전공했단다. 눈빛은 맑고 투명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데 잘 할 것 같았다. 그녀가 민초다. 아쿠아로빅을 가르치려는 열정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문제는 금세 불거졌다. 회원들 간에 불만이 터졌다. ‘운동이 안 된다. 춥다. 템포가 느리다. 동작이 까다롭다.’ 날마다 다른 동작의 안무를 선보이자 회원들은 재미없다며 하나 둘 빠져나갔다. 봄이라지만 아직 겨울 맛 현숙은 물속이다. 다들 빠른 동작, 반복 동작으로 물에서도 땀이 날 정도로 해 주길 원했다. 회원들은 노련한 전임강사의 아쿠아로빅을 그리워했다. 물에서 하는 운동은 절도가 있어야 하고, 반복학습이 중요하다. 민초가 가르치려고 하는 운동은 운동이 아니라 안무였다. 어떨 때는 단순하고 느렸고, 어떤 때는 빠르고 복잡했다. 아쿠아로빅은 나이 많은 회원이 대다수다. 수영은 배우려면 어렵지만 아쿠아로빅은 물 밖에서 하는 강사의 몸짓을 물속에서 따라 하면 되는 것이기에 쉽게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초등학생이야? 강사는 초등학생 수준 밖에 안 되는 것 같아. 다른 곳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다 온 것 같아. 추워서 못하겠어. 우린 운동이 안 되는데 강사만 땀 뻘뻘 흘리잖아.”
베테랑 회원 몇몇은 시간 날 때마다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요구를 했지만 민초는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날마다 새로운 안무를 선보였고, 수업시간보다 30분은 일찍 와서 그날 가르칠 것을 열심히 연습했다. 민초의 눈동자는 더 파래졌고, 얼굴은 더 홀쭉해지고 몸은 더 탄탄해졌지만 아쿠아로빅 회원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한 달 만에 회원이 대폭 줄었다. 고정적으로 오는 회원 대여섯 명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민초는 씩씩했다. 회원이 줄어들어도 날마다 색다른 안무를 선보이려고 혼자 땀을 뻘뻘 흘렸다. 여자들은 말이 많다. 아쿠아로빅이 끝나고 샤워 실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분통을 터뜨렸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쿠아로빅 없앤다는 말이 있더라. 진짜 이러다 아쿠아로빅 강습이 없어지는 거 아닐까? 겨우 연 강습인데. 그렇잖아도 수영강습생이 많아 자리가 복잡하고 음악이 시끄럽다고 수영강사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데.”
“젊은 강사는 왜 그렇게 고집이 센 거야. 회원이 원하는 대로 강습을 해줘야지. 운동하러 왔지 우리가 춤추러 온 거야. 운동이 안 돼. 다음 달에 등록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첫 술에 배부르겠어.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지 않을까. 강사가 참 열심히 하잖아. 혼자 땀 빨빨 흘리는 걸 보니 불쌍하더라. 솔직히 화도 나고, 속도 상하고. 아쿠아로빅 자격증 따려면 돈도 많이 든다는데. 수영장에 비치된 구닥다리 카세트가 자꾸 말썽을 일으키자 개인 걸 준비해 왔잖아. 카세트 성능이 좋아야 한다네. 그게 최하 몇 백 줘야 한다더라.”
“원래 겨울에는 아쿠아로빅이든 수영강습이든 회원 수가 적잖아. 지켜보자.”
수영강사든 아쿠아로빅 강사든 일 년 계약직이라고 했다. 일 년 후에 재계약을 해야 하고, 경쟁자가 있을 때는 시험도 쳐야 하고, 그러다 밀려나면 끝이란다. 회원들이 자꾸 빠지자 민초도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달라지려고 애썼다. 선별해 오는 음악도 달라지고, 아쿠아로빅 동작도 달라졌다. 날마다 다른 안무를 선보이지만 조금씩 회원들이 원하는 대로 바꾸어 갔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까다로운 동작을 버리고 단순한 동작으로 반복했다. 어떤 때는 회원들 간에 재미있었다는 평이 나오고 어떤 때는 아무리 해도 이미 몸에 밴 동작을 바꾸기 어렵다고 한숨도 나왔다.
여자들이 찧고 까불어도 민초는 의연했다.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이 넘쳤다. 깔끔하고 부지런한 성격이다. 몸동작도 날렵했다. 현숙은 민초의 젊음이 좋았다. 물 밖에서 풀쩍풀쩍 뛰어오르는 것을 보면 ‘저러다 관절에 무리 갈 텐데.’ 걱정됐다. 강사는 폼만 가르치고 운동은 우리가 하는 거라고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조언을 할 정도로 그녀는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시점이었다. 수영장에서 정든 지수언니가 전화를 했다.
“아우야, 낼 낮에 수영장에 좀 나올래? 내가 강사 한 사람을 섭외했는데. 실력을 한 번 봤으면 싶어서. 지금 강사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 성이 나서 못하겠어. 말을 하면 알아들어야 하는데 자기 고집만 세우잖아. 이 강사는 에어로빅을 한 사람이야. 실력 한 번 보자.”
“언니, 지금 강사 열심히 하잖아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지요. 지난번 강사도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잖아. 강습생이 없어 수업을 빠지기도 했는데 몇 달 지나자 베테랑이 됐잖아요. 이 강사도 몇 달만 지나면 잘 할 겁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기다려줍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저 모양이잖아. 배울 때 저렇게 배운 강사는 바꾸기 힘들다. 어쨌든 내가 섭외한 강사 실력 보고 결정하자.”
“언니, 낼 병원에 가기 때문에 참석 못해요.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내 눈앞에 연약한 어린 양의 커다란 눈망울이 들어왔다. 두려움에 뜨는 눈빛이었다. 그녀라고 회원들 속내를 모를까. 귀는 들으라고 있다. 듣기 싫어도 들리는 것이 자신에 대한 소문이다. 귀머거리도 자기 욕하는 줄은 용케 알아듣고 화를 낸다고 하지 않던가. 수영장에서는 웃지만 자기 집에 가면 통곡을 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양면을 가졌다.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고 자기 속에 든 두려움을 이기는 것도 용기다. 지수언니의 기분을 상하게 했지만 상관 않기로 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음악에 귀가 틔고 몸이 음악에 맞출 수 있게 되기까지 노력은 필수다.
은성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춤을 잘 춘다는 말을 듣고 자란 학생이었다. 집안도 부유했다. 학생은 자신의 재능을 믿었다. 부모도 학생의 재능을 믿었다. 부모는 학생을 어려서부터 무용학원에 보냈다. 학원 선생은 칭찬이 늘어졌다. 가르치는 것을 완벽하게 재현한다고 저런 아이라면 충분히 이름난 춤꾼이 될 소질을 타고났다고. 학생의 자질을 갈고 닦으려면 돈 타작이라도 부모는 온갖 정성을 들여 학생의 뒤를 닦아 주었다.
학생은 자기가 원하는 예술대학의 무용과에 원서를 넣었다. 학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정해진 안무를 열심히 연습했다.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용실기 시험을 치는 날이었다. 학생은 자신 있게 시험장에 들어갔다. 심사위원들이 쭉 앉아 있었다. 학생은 떨지 않았다. 자신이 안무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학생은 자기 차례가 되었다. 준비해 간 음악을 털어놓고 완벽하게 안무를 마쳤다.
그때였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다른 곡을 선정하며 그 음악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추어보라고 요구했다. 학생은 아연실색했다. 그 음악에 맞춘 춤을 출 수가 없었다. 음악도 들리지 않고 몸도 뻣뻣하게 굳어 제대로 된 춤 연기를 할 수 없었다. 심사위원은 물었다.
“학생, 앞의 춤은 완벽했는데. 왜 뒤의 춤은 엉망이지요?”
학생의 대답은 이랬다.
“그 음악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춤 동작도 연습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못 출수 밖에요.”
당연히 그 학생은 미역국을 마셨다. 춤은 마음의 행로다. 어떤 음악이든 그 음악에 맞추어 몸을 저절로 움직일 수 있어야 진정한 무용가다. 연습으로 되는 것보다 마음의 소리에 따라 완성되는 몸짓이 진정한 예술이다. 아쿠아로빅도 물속의 종합예술이다. 음악에 맞추어 동작을 하는 것이다. 기본은 있다. 자세를 곧추세우고 오른쪽과 왼쪽을 반대로 움직여 안 쓰던 근육을 풀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민초도 회원들 간의 민감한 반응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겉으로는 밝고 싹싹하게 굴었지만 가끔 ‘제가 너무 못하죠? 회원님들 수준이 높아서 기죽어요.’ 이런 말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새해가 열렸다. 연말부터 분기별로 초급중급 수영강습생과 아쿠라로빅 강습생을 모집한다는 방이 붙었다. 강사도 이 시기가 되면 긴장한다. 다시 계약을 갱신하거나 떨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민초도 바짝 긴장했다. 경쟁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자리 잡기도 힘들다는 현실에서 겨우 잡은 강사 자리도 놓칠 수 있으니 혼신을 다해 회원들의 호감을 사야 가능한 일이다.
“회원님과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많이 모자라지만 힘껏 하겠습니다. 홧팅!”
그녀는 아쿠아로빅 수업이 끝나면 외쳤다. 우리도 파이팅을 외쳤다. 현숙은 그새 정이 들어 새해에도 민초의 수업을 원했다. 회원들 간의 무성한 뒷말로 멍든 민초, 그녀는 손 전화에 아쿠아로빅 단톡방을 만들어 회원들을 초대를 했다. 그때부터 문자를 주고받게 되었다. ‘민초 샘, 힘내셔’
‘감사합니다. 아자 아자.’
현숙은 민초를 보면 외국에 나가 사는 딸을 보는 것 같다. 비슷한 또래다. 지방 대학을 졸업한 딸은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딸은 관광 통역사 자격증을 가졌다. 대학원에서 만난 호주 청년과 장래를 약속했다는 소식이 날아왔을 때 현숙은 믿지 못했다. 다시 그 청년의 고향 타스마니아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드디어 실감이 났다. 딸을 잃어버렸구나. 딸은 타스마니아의 모 관광호텔에 통역사로 일한단다. 딸은 민초처럼 여리고 순한 눈망울을 가졌다. 부끄럼쟁이에다 유순하지만 속이 꽉 찬 당찬 여자다. 민초가 그랬다. 딸처럼 남에게 눈물을 보이기보다 혼자 숨어 울고 마는 여자 같아서 더 애련하다.
“시험 날이네. 민초 샘 힘내! 잘 될 거야. 우리가 그댈 원하니까.”
문자를 날렸다. 민초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문자는 환하게 웃었다.
그날, 아쿠아로빅 강사 자리를 놓고 두 사람이 겨루었다. 다행히 민초가 경쟁에서 이겼다. 1/4분기가 시작되었다. 수영강습 회원은 대폭 늘어나도 아쿠아로빅 회원은 대폭 줄었다. 수영장의 두 라인을 쓰던 아쿠아로빅 회원 라인이 하나로 줄었다. 아쿠아로빅 회원은 나이가 많다. 수영을 배우기 어려운 관절 환자는 아쿠아로빅을 택한다. 보통 여남 명이 강습에 참가했다. 들쭉날쭉해도 상관없었다. 신입 회원도 제법 늘었다.
“도대체 안 바꿔. 수영강습으로 돌리던지 해야지 원.”
다시 불만이 터졌다. 현숙은 오랫동안 자유 수영을 했었다. 수영강습도 아쿠아로빅도 거부했었다. 정해진 시간, 단체 행동이 싫었다. 시간 날 때 언제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유 수영이 좋았지만 낮에는 수영장 갈 시간이 없어 대부분 저녁시간에 갔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자유 수영을 할 라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녁 일곱 시부터 8시에는 수영과 아쿠아로빅 강습생이 차지했다. 자유 수영을 하러 온 사람은 찬밥 신세가 되었다. 강습생이 우선이었다. 그러던 중에 일이 터졌다. 수영강사가 강습을 해야 하니 자유 수영 하는 사람은 수영장에서 나가달라고 했다. 현숙은 화가 치밀었다. 사무실로 쳐들어가 고함을 질렀다.
“뭐 이따위 행정이 있어. 여기가 강사들 밥줄이야? 나도 엄연히 한 달 사용료 내고 오는 이 곳 주민이라고. 여긴 개인 수영장도 아니고 국민의 건강을 위해 개설한 국민 체육센터잖아. 왜 강사가 군민을 나가라 말라 해. 국민 체육센터가 강사들 밥 먹여주려고 연 곳이냐? 주민을 위한 센터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거야? 수영강습도 좋아. 다만 한 라인 정도는 자유 수영을 할 수 있게 해 줘야 하잖아. 나도 바쁜 사람이야. 강습이 없는 시간에 맞추어 수영을 올 수 없는 실정이라고. 그러니까 강습생을 줄이든지. 다른 시간대에 맞춰 강습 시간을 조정하든지 해야지. 어쨌든 자유 수영을 할 자리 하현숙은 남겨 줘야지. 다시 말하지만 여긴 돈벌이 수단으로 연 개인 수영장이 아니잖아. 행정에서 이러면 안 되지. 강습생을 위해 자유 수영은 못한다고 조례에 명시라도 되어 있어?”
따따부따했다. 현숙만 그렇게 따진 것이 아니었다. 몇몇 사람이 소리 지르고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시간에 자유 수영을 하러 갔다가 열 받은 사람이 사무실을 발칵 뒤집어 놓자 국민체육센터에서 조치를 취했다. 저녁 7시에서 8시까지 자유 수영을 할 수 있는 라인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시간대에 자유 수영을 금지한 것이다. 수영 강습 회원이 아니면 그 시간에는 수영장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반 회원은 8시까지 수영장 밖에서 기다렸다 입장해야 했다. 지금도 여전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현숙은 법이라고 했다. 관청에서 정한 조례에 따른 조치라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따따부따 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이럴 때 권력의 힘이 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관공서 직원은 계약직 공무원이라도 주민에게는 권력자로 군림한다. 칼자루 쥔 사람과 칼자루 쥐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명백하다. 그리하여 현숙도 자유 수영을 포기하고 아쿠아로빅 강습을 받기로 했었다.
그것이 벌써 3년 전이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자기에게 이로운 것으로 결정을 본다. 남의 삶에 무관심하다.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 싸우라’ 했지만 싸우기보다 나를 내려놓는 것이 편하다. 현숙은 자신이 비겁하다 생각한다. 남의 입질에 오르내리기가 싫다는 것도 그녀 속에 옹송그리는 이기심 때문은 아닐까. 특히 여자들은 말이 많다. 현숙도 수영장 가면 수다쟁이가 된다. 반쯤 모자라는 여자처럼 치부 다 드러내고 ‘하하 호호’ 한다. 여자들은 남의 삶에 호기심이 많다. 가십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아쿠아로빅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민초의 능력도 연말보다 월등하게 좋아졌고, 회원들 상호간에도 ‘재미있다. 운동 된다’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아쿠아로빅은 한 라인이다. 수영강습 회원이 많은 탓이었다. 아쿠아로빅은 한 라인에 대여섯 명이면 족하다. 물이 깊은 곳에서는 어려운 동작이니 물이 얕은 곳에서 운동을 한다. 회원들 키가 작은 탓이기도 하다. 불금이라는 금요일은 두 세 명일 때도 있지만 민초는 주눅 들지 않고 신명을 다해 수업을 한다. 음악 선정도 좋았다. 여전히 반복학습보다 새로운 안무를 선보여 아쿠아로빅에 익숙하지 못한 회원은 곤혹스러워 하지만 대순가. 문제는 그런 회원은 강사의 동작을 따라하지 못한다는 생각보다 강사가 제대로 못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것이 탈이다. 말끝마다 전임강사를 내세우며 ‘그 강사는 참 잘했는데.’ 아쉬워했다. 물에서 춥다는 것은 몸을 그만큼 덜 움직인다는 뜻이다. 강사가 하는 동작을 제대로 따라 못하면 비슷한 흉내라도 내면서 열심히 움직이면 된다.
현숙은 민초의 순수함이 좋다. 귀여움도 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다섯 살짜리 아들을 둔 삼십 대 후반이란다. 이십 대 후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녀가 애 엄마라니. 여기저기 쥐어 박히면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했던 이유가 엄마였기 때문이구나.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현숙은 민초에게 섹시한 아쿠아로빅 옷을 입혀본다. 안 어울린다. 가슴은 절벽이다. 몸통은 얇다. 엉덩이는 작지만 탄탄하다. 아니 몸 전체에 살집은 없지만 근육으로 다져졌다. 그녀는 다부져 보인다. 그녀는 뒷정리도 잘한다. 회원들이 썼던 봉이나 허리띠 같은 것도 말끔하게 치워놓고 간다. 예전에는 회원들이 치웠다. 수업이 끝나면 그녀는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끝내고 나간다. 예전 강사처럼 섹시한 에어로빅 운동복을 안 입고 초등학생처럼 목까지 단추를 채우고 강습한다고 트집을 잡는 사람도 있다. 겉모습보다 속이 알차다. 왜 여자들은 겉모습에 치중할까. 골빈 여자들 보면 한심하다.
“아쿠아로빅이 슬슬 재미있더라. 음악도 좋고. 강사가 제법 하던데. 역시 시간이 약이야”
샤워 실에서 여자들 끼리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가십거리에서 민초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석 달이 지나가는 사이 그녀의 가르침도 제법 여물었다. 허리와 척추를 바른 자세로 잡아주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면서 자세를 강요했다. 그 즈음이 되자 나갈 사람은 나가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 현숙은 가능하면 결석을 안 한다. 수영장에 가서 몸을 풀고 와야 개운하다. 피치 못 할 사정이 없는 한 개근상을 받아 마땅하다. 현숙과 서너 명의 회원은 민초의 강습에 익숙해져 갔다. 음악도 안무를 곁들린 동작의 변화에 슬슬 재미가 붙었다.
“6개월만 지나 봐. 아쿠아로빅 시간이 기다려질 걸. 요즘도 재미있어. 허리와 고관절 운동이 제대로 되더라니까.”
대여섯 명 고정 아쿠아로빅 회원들 간에 칭찬이 늘어진다. 전임 강사에게 배운 동작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강사에게 적응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강사마다 가르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각자 장단점이 있다. 강사가 회원을 사로잡아야 수업이 제대로 되는데 그러지 못할 때는 안타깝지만 뭐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고 회원들 간에 수긍할 정도가 되었다.
“기다려보소. 완전 아쿠아로빅 붐이 불거야. 이만큼 좋아진 것 봐. 좀 더 지나면 베테랑 될 거야. 강사가 동작의 변화에 치중하긴 하지만 달라졌잖아. 우리가 반늙은이라 못 따라하는 점도 인정해야지. ‘단순하게 반복학습’ 명심하고 있잖아. 강사는 아직 젊어. 우리는 늙었고. 인정할 건 합시다.”
서로 간에 그런 말도 서슴지 않고 오간다.
민초는 회원들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날이 실력이 늘었다. 개인적으로 투자도 많이 했다. 강사로 취직을 했지만 수영장의 낡은 전축이 무용지물이라 개인 카세트를 준비했고, 다른 지방까지 다니며 개인 교습도 받고, 아직 초보운전 딱지를 떼지 못했다는 열성파다. 장거리를 오가려면 운전이 필수다. 민초, 가난하고, 힘없고, 불쌍한 촌부와 비슷한 이름이다. 현숙도 민초다. 억울한 일이나 불이익 당할 때 분노하기보다 체념하는 것이 민초다. 그 민초라는 이름 때문에 강사가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지.
삼월이 되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가뭄도 심했다.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크게 나자 감기 환자가 속출했다. 민초도 감기에 꽉 잡힌 채 수업을 했다. 병원에 다니는데도 감기가 안 떨어져 속상하단다. 마늘 죽을 푹 끓여 먹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 슬슬 2/4분기 강습생을 모집할 때가 되었다. 하루는 카운터에 앉았던 여직원이 2/4분기에도 아쿠아로빅을 하실 거냐고 의향을 물었다. ‘당근이죠.’ 그랬는데 소문은 달랐다.
“4월부터 아쿠아로빅은 폐강한다네.”
“그럴 리가. 그래서도 안 되고. 한 번 폐강 되면 다시 개강하기 어렵잖아. 아쿠아로빅 강사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강사가 있고, 회원이 있는데 폐강이라니 말도 안 돼.”
“이미 기정사실이 된 것 같던 걸. 아쿠아 인원이 15명이 안 되면 폐강한대. 강사 실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는데.”
항상 새로운 강사가 영입되면 후유증이 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는 베테랑 강사는 우리 고장처럼 작은 읍의 수영장에 오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아쿠아로빅 강사를 못 구해 애를 먹은 적도 있고, 한동안 아쿠아로빅이 없어지기도 했었다. 젊은 사람은 초급, 중급 수영을 하지만 나이 육칠십 대는 수영보다 아쿠아로빅을 선호한다. 오랫동안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하는 현숙은 수영장 덕에 산다. 아쿠아로빅이 수영보다 확실히 관절에 좋았다. 현숙은 아쿠아로빅 열성파가 되었다.
그런데 폐강소식이라니. 사무실 내에서 꿍꿍이짓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관리소장이 바뀌었다. 탈의실에서도 욕실에서도 강사가 잘하니 못하니 수영 강습생이 많아 자리가 좁다느니 음악소리가 커서 수영강사들 불만이 터져 나왔다느니 여론이 분분했다.
“아쿠아로빅을 없애면 안 돼요. 강사 있을 때 밀고 나가야 해요. 등록 많이 해 주세요.”
현숙은 입술에 침을 발랐다. 민초 강사가 잘 한다고, 많이 늘었다고, 조금만 더 지나면 아주 베테랑이 될 것이라고, 아쿠아로빅 신청하라고 노래했다. 현숙은 이상하게도 민초에게 끌렸다. 호주에 간 딸 같아서 안쓰러웠다. 생머리를 질끈 묶고 화장도 하는 둥 마는 둥이다. 그녀는 아쿠아로빅 수업을 하고 땀에 절어서 집으로 간다. 목욕을 하고 가지 왜 그냥 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친정에 맡겨둔 아들 때문에 빨리 가야 한단다. 한 남자의 아내와 한 아이의 엄마로서 생활전선에서 뛰어야 하는 일이 요즘 젊은 세대다. 머나먼 호주의 외딴 섬에서 딸도 민초처럼 살지 않을까. 딸의 전화 속말은 늘 ‘괜찮다. 잘 산다. 건강하다. 아무 문제없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 돈 때문에 돈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현안이 돈이다.
현숙은 미리 아쿠아로빅 등록을 하겠다고 설쳤다. 카운터 여직원은 구두 약속만 받고 강습비는 뒤에 계산하면 된단다. 일단 숫자 파악부터 한단다. 3월 말이 되어도 수영장센터에서는 등록을 받지 않고 의사만 물었다. 구두로 회원 수를 확인한 후 개강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의외로 아쿠아로빅을 하겠다는 회원이 17명이나 되었다. 안심을 했다. 3월 말에 이틀 동안만 아쿠아로빅 강습비를 받았다. 사월 첫 날 개강을 했다. 민초는 모든 회원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더 열심히 보답 하겠다고 울먹였다.
그러나 개강한지 닷새 만에 갑자기 폐강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전까지 민초와 문자놀이를 했을 때도 폐강 소식은 없었다. 수영장에 가서야 알았다. ‘오늘 등록하려니까 폐강했다고 등록을 안 받아 주네요.’ 예전에 아쿠아로빅을 하던 회원이었다. 그녀는 개인 사정으로 며칠 간 결석하는 바람에 등록 기간을 놓쳤단다. 현숙은 카운터 여직원에게 물었다. 진짜냐고.
“오늘이 마지막 수업입니다.”
현숙은 카운터 여직원의 대답에 아연실색했다.
“이유가 뭐지요?”
“아쿠아로빅 강사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둔다고 했다던데요.”
사무실 여직원의 대답이었다.
“강사 말은 다르던데요. 사무실에서 그만 두든지 결정하라고 했다던데요.”
한 회원이 따지고 들었더니 궁여지책에서 나온 것인지 조례까지 들먹였단다. 아쿠아로빅 강습비를 낸 회원이 10명뿐이라 부득이 폐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뭐 이래. 17명이 등록한다고 했으면 조만간 등록을 할 것 아닙니까. 하루 이틀 못 기다려준다는 거야. 뭐야. 강사는 일 년 계약직이라며? 겨우 석 달 했잖아. 폐강이라니. 그럼 강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저는 잘 모르겠어요.”
카운터 여직원에게 따따부따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현숙은 탈의실로 들어갔다. 현숙도 앞뒤좌우가 어찌 된 건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샤워 실에서도 말이 많았다.
“아쿠아로빅이 오늘부로 없어진다며? 어떻게 된 거야? 회원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강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건 말도 안 돼.”
“담당공무원이 갑이고 우린 을인 거지 뭐.”
“폐강 한다는데 당장 사무실에 가서 따져야지. 왜 수영강습만 하냐고. 회원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강습을 계속해야지. 등록한 회원이 열 사람이나 되는데 강습을 없앤다고? 이건 완전 월권이잖아. 따져야해. 아쿠아로빅 회원들끼리 똘똘 뭉쳐서.”
샤워 실에서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는 사이 음악소리가 들렸다. 아쿠아로빅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현숙은 서둘러 복장을 갖추고 실내수영장으로 들어섰다. 민초에게 직접 자초지종을 들어야겠다. 주민이 갑이고 공무원이 을이어야 마땅한데 항상 권력 쥔 자가 강자로 군림하는 세상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강사본인이 그만둔다고 했을 때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쿠아로빅 회원이 적다는 것은 이유가 안 된다. 평균 대여섯 명은 기본으로 강습을 받는다. 수영장 라인도 한 개만 사용한다. 회원 수가 적다고 이미 개강한 강습을 폐강시킨다는 것은 이해불가다. 수영장에 먼저 와 있던 회원들끼리도 술렁거렸다.
“냄새가 나 냄새가”
한 회원이 입을 삐죽거린다. 그렇다. 3월에 공무원 인사이동이 있은 직후부터 국민체육센터 내에서 묘한 기류가 흘렀다. 탈의실과 욕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1년 계약인데 6개월 후에는 나가라고 하더란다. 퇴직금도 없어졌단다. 계약직의 설움이 이런 것이구나. 깨달았단다. 강사는 모두 계약직이라고 했다. 상사에게 밉보이면 모가지다. 민초도 일 년 계약을 했을 텐데. 상사에게 밉보였을까. 계약직이지만 여러 해를 수영장에 붙박이로 있는 수영강사들 간에 미운 털이 박혔을까. 사실 수영강사들은 불편하다. 음악 때문에 수영강습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강습생에게 큰 목소리로 가르쳐야 하니 피곤하다고도 했다.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이구나.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폐강이라니. 그동안 민초는 얼마나 가슴앓이가 심했을까. 살얼음판을 디딘 것 같았으리라. 강사가 스스로 못 견뎌서 그만두겠다고 할 만큼 코너로 밀어붙였던 것은 누구일까. 충분히 그려지는 그림이지만 예측에 불과했다. 직접 민초에게 묻는 수밖에 없다. 사태가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현숙은 수영장에 들어가자마자 민초를 불렀다. 수업은 중단되었다.
“민초 샘, 어떻게 된 거야?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니. 자다가 날벼락 맞은 기분인데. 설명 좀 해 주소. 오전에 나랑 문자놀이 할 때만 해도 그런 말 없었잖아.”
“어머님 죄송해요. 저는 계속 하고 싶어요. 이게 제 밥줄인데. 제가 많이 모자라서 이렇게 됐어요. 죄송합니다. 제 실력이 모자란 데다 조례에서 정해진 15명 이상이 안 되니 폐강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회원 수가 모자란다는데 어떻게 해요. 개강할 때부터 회원이 20명이 안 되면 중간에 그만둬야 한다더라고요. 제가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다음에 더 많이 배워서 기회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니까 끝까지 열심히 하고 싶어요. 마무리 잘 하도록 어머님들이 도와주세요.”
눈은 크렁크렁 눈물이 괴어 금세 뚝뚝 떨어질 것 같지만 입은 억지로 웃는다. 하얀 치아가 참 고르다. 차라리 그녀가 울어버리면 우리가 덜 미안할 것 같다. 나풀나풀 입방아 찧은 회원들 잘못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다. ‘마지막 수업이니 열심히, 정말 열심히 하자.’ 우리는 서로 눈짓했다. 똘똘 뭉친 여섯 명의 회원은 일부러 즐겁게 수업에 임했다. 민초도 밝게 웃으려고 애썼다. 시간은 금세 50분을 넘겼다. 민초는 여기 저기 놓인 알록달록한 봉을 주워 창고에 갖다 넣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 떠났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아쉽다는 말, 다음에 만나자는 말이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소중한 것도 곁을 떠나고 나면 그만인 것이 인생 아니던가.
그리고 마지막 수업은 끝났다. 우리는 욕실에 모였다. 무성한 말 꽃이 피었다. 사무실에 쳐들어가 따지자는 말도 나오고, 한 번 아쿠아로빅이 없어지면 강사도 귀한데 다시 개강하기 어렵다고 군청 홈페이지에 민원 제기를 하자는 말도 나왔다. 차라리 잘 됐다며 수영강습을 받아보겠다는 사람도 있고, 목욕탕으로 자리를 옮기겠다는 사람도, 자유 수영을 하겠다는 사람도 나왔다. 사무실에서 안 된다는데 방법이 없단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나랑 같이 사무실에 갈사람 손드세요.”
현숙이 앞장을 섰다. 그때 구석에서 몸을 씻던 여자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제 말 잠깐 들어보세요. 믿을 수 있는 소식통에서 전해들은 이야긴데요. 아쿠아로빅에 관한 거요. 진작 다 끝난 게임이에요. 결정은 연말에 해 놨다고 하더군요. 다른 강사로 교체하려고 했는데 외지에서 온 심사위원이 현 강사의 손을 들어준 거지요. 왜냐면 새로 영입한 강사는 경력이 없었어요. 현재 강사는 6개월 간 아쿠아로빅을 했다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할 수 없이 아쿠아로빅은 개강을 했고 첫 분기를 채웠어요. 3월 마지막 날 강습비를 낸 회원이 10명이라더군요. 사무실에서는 제대로 빌미를 잡은 거지요. 우선 강사를 불렀답니다. ‘회원 수가 적다. 이래도 계속 강습을 할 거냐? 나갈 거냐? 회원 수가 20명이 안 되면 스스로 나가기로 한 것 아니냐.’ 강사가 스스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압박한 거지요. 여러분이 사무실에 쳐들어가 따진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 싶어요. 지금까지 끌었던 것도 강사가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하기를 기다린 거랍니다. 앞으로 현재의 강사가 나가고 나면 아쿠아로빅은 없어지느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해요. 5월 달에 회원 모집을 할 거래요. 지금 강사를 다시 오라할 거냐고 했더니 다른 강사를 구할 거라는 것 같았어요. 제가 들은 것은 여기까집니다.”
아하, 감이 왔다. 의혹은 의혹을 낳는다. 치열한 경쟁사회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관공서의 청렴결백은 서류에 그친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생계형 도둑은 잔챙이고, 합법적으로 큰 물건을 훔치고 사기 치는 족속은 권력층이다. 생계형 도둑은 감옥에 가도 권력형 도둑은 미꾸라지보다 더 미끈하게 빠져나온다.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라고 생각한다.
현숙은 생계형 민초를 도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의 기운이 쭉 빠졌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가난한 민중에게도 감투를 씌우면 권력을 행사한다. 마을 이장도 권력자다. 면사무소 공무원도 권력자다. 국민 체육센터의 직원도 권력자다. 주민위에 군림한다. 조례니 뭐니 서류 앞세워 자기가 가진 권력을 100% 활용하려 든다. 군민의 봉사자를 자처하는 공무원 사회가 국민이나 군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말단 공무원조차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가 아니라 힘없고 평범하고 착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다. 철 밥통을 단 정규직 직원은 계약직 직원을 제멋대로 좌지우지 할 권력을 쥐고 있다. 민초만 희생양이 된다. 새로운 민초는 아부를 잘하고, 같은 사무실 직원들과 잘 어울려야 왕따 안당하고 잘 지낼 수 있다. 젊으나 늙으나 어떤 단체에 들어가 보면 은근히 멸시하고 왕따 시키는 분위기가 있다. 자기보다 강자다 싶으면 최대한 공손하게, 자기보다 약자다 싶으면 멋대로 부리고 짓밟으려는 심리가 인간의 본능인가. 현숙은 소름이 돋는다. ‘인간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이 벌레보다 못한 것 같아.’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말처럼 천사도 악마도 내 속에 있다.
“내가 특별나게 굴 것도 없겠네. 다들 얽혀들기보다 발뺌하고 구경하는 게 좋지요?”
현숙은 거기 있는 회원들을 돌아보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자신도 거기 있는 별 볼일 없는 아낙들도 경멸했다. 사회는 그렇게 굴러가는 거다. 나도 그들도 타인이다. 민초는 계약직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했다. 사무실에 가서 따지고, 관청에 민원을 올리는 것도 소용없다. 이미 민초는 자진해서 강사자리를 내 놓았다. 어떤 압박을 가했는지조차 본인이 따따부따하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는다. 군민이 다시 아쿠아로빅을 개강하라고 강요하면 그들은 새로운 강사를 영입할 것이다.
“폐강은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네. 다들 고스톱 칠 줄 알아요? 나도 고스톱 배워야겠다. 멋지게 고도리 하게. 그나저나 아쿠아로빅은 물 건너갔고 이미 낸 아쿠라로빅 수강료는 언제 돌려준대요?”
“계좌번호 적어주고 가면 입금 시켜준다 하더라고요.”
“글쿠나. 새가 날아갔구나. 고도리는 깨졌다. 여러 분 날아간 새 잡긴 글렀어요.”
현숙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아쿠아로빅 회원은 뿔뿔이 흩어졌다. 어떤 사람은 수영강습생으로, 어떤 사람은 자유 수영을 택했다. 현숙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 수영이 좋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현숙은 것이 상수다. 수영장을 떠날 수는 없으니 한가한 시간에 맞춰 오갈 수밖에. 현숙은 탈의실을 나설 때 소태를 씹는 것같이 입이 썼다.
그리고 카운터에 앉은 여직원이 물었다. ‘수영강습을 받으실래요? 환불 받으실래요?’ 환불 받겠다고 했다. 미리 납부한 강습비의 반환요구서를 기재했다. 이유를 적는 칸에 ‘사무실의 운영관계 때문’이라고 썼지만 후회했다. ‘수영장의 운영관계 미비로 초중 수영강습에만 취중 해 돈 벌이에 나섰기 때문에 아쿠아로빅은 폐강됐고 이미 낸 아쿠아로빅의 강습료를 되돌려 받게 됐다’고 세세하게 쓰지 못한 것이 아쉽다.
더구나 민초를 생각하면 더 아팠다. 호주에 사는 딸도 민초와 비슷한 일을 겪지 말라는 법도 없다. 계약직과 정규직의 차별화보다 인종차별로 인해 받는 고통은 없을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수영이든 아쿠아로빅이든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치고 배우다보면 능숙해진다. 그녀도 강사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할 때는 회원이었을 것이고 강사가 되어 처음으로 회원 앞에 섰을 때는 의욕은 앞서도 가르침을 펼치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상태다. 회원과 강사가 서로 화합하다보면 서로 배우고 가르치게 되어 나중에는 능숙하게 된다. 이제 겨우 잘한다. 재미있다는 말을 할 정도가 됐는데. 민초가 밀려난 것은 계약직의 설움이고, 칼자루를 쥔 자의 농간이다. 문제는 공직에 있는 사람은 은밀하다. 나중에라도 자기가 다칠 짓은 안한다는 거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는다. 증빙서류나 근거자료도 육하원칙에 따라 법규의 맹점을 이용해 용의주도하게 마련해 놓는다. 덫에 걸린 것은 약한 자다. 그대 이름은 민초.
3.
민초는 떠났고 현숙은 여전히 수영장을 오간다.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아무 때나 시간 날 때 편하게 수영장을 찾는다. 누군가 오월부터 아쿠아로빅 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군청 홈페이지에 떴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으로 지나쳤다. 오월 아쿠아로빅 개강은 흐지부지 되었다.
그리고 석 달이 흘렀다. 칠월이 다가왔다. 석 달 동안 꾸준히 아쿠아로빅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첫 시작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초급, 중급 수영 강습생이 줄어든다. 수영장의 빈 레일이 널고 넓은 수영장 전체를 몇 명의 수영강습생이 차지한 것이 사람들 입질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저녁 일곱 시부터 8시까지 일반인은 수영장 입소를 못한다. 조례에 정해져 있는 것인지. 체육센터 사무실에서 정한 방침인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시간 엄수는 지켜지고 있다.
“아쿠아로빅 회원 모집한다는 문자 안 받았어? 할 거지? 남자 강사를 초빙했다네.”
“아쿠아로빅이든 수영이든 강습은 안하기로 했어요. 자유 수영하니 참 좋더라고요.”
6월 중순이 지날 즈음 수영장에서 만난 지수 언니가 반색을 하며 물었을 때 현숙은 딱 잘랐다. 7월 첫날부터 아쿠아로빅이 시작되었다. 젊은 남자 강사는 박진감이 넘친다. 그런 말이 들릴 때마다 현숙은 민초를 생각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직장은 잡았을까. 우리 고장의 수영장에서 받은 수모를 잊지 않고 있다면 뭔가 해 내리라.
현숙은 갈망한다. 그녀를 딸처럼 불러본다.
‘민초야, 어디서든지 와신상담 알지? 너를 생각하면 여전히 아릿하다. 내가 힘 있는 사람이었다면 너를 도울 수 있었을까. 겨우 석 달을 쉬다가 다시 시작한 아쿠아로빅이다. 너를 강사직에서 내쫓기 위한 모의가 아니고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민초야. 어디서든 더 멋진 강사 선생으로 사랑받기를, 넌 사랑 받을 거야. 난 너를 믿어.’
현숙은 그 여리고 심성 착한 강사의 가슴에 생채기를 낸 그들이 누구이든 민초는 더 멀리 더 멋지게 비상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울지 마라. 길은 어디에든 있다. 그 길을 찾는 것도 너 자신이다. 항상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의심하지 말고 그 길을 가라. 가장 강한 적은 너 자신의 두려움이라는 마음이다. 그 두려움만 이기면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이미 가진 것이다. 민초야, 아니 딸아. 알지?’ 수영장에 오갈 때마다 그녀를 위해 짧은 기도를 올린다. 아니, 타스마니아에서 별똥별 떨어지듯 소식 오가는 딸을 위해 기도한다.
2020. 5. <경남작가 37호 원고>